원효대사 · 이광수

Chapter 8: 도량

원효는 불보살의 위신력이 이 자리에 도량[道場]을 나토신 것을 깨달았다.

첫가을 산 옆 들국화 피인 곳, 맑은 바람 불고 저녁 햇빛 비치었으니 청정한 도량이요, 사벽여 명 대중이 피와 눈물 을 흘리고 무릎을 꿇었으니 정히 법을 설할 때다.

원효는 허공을 향하여 합장하고 제불보살을 염하여 큰 힘 을 가피하시를 빌었다.

원효는 뱀복의 무덤 앞에 앉아 입을 열었다.

"보살이 이미 옹으로써 법을 설하시고 가셨으니 내 또 무 엇을 설하랴. 다들 잡념 망상을 끊고 가만히 제 마음을 들 여다보면 만법이 다 갖추어 있어서 배울 것도 없고 얻을 것 도 없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제불보살도 중생이 청할 때에 는 법을 설하셨으니 이몸도 한 노래를 불러서 여러 불자제 의 마음을 깨우리라."

이렇게 허두하고 원효는 노래를 불렀다.

"산하대지와 사생고락이 내 마음의 조작이라 콩 심거 콩이 되고 팥 뿌려 팥 거두니 인과응보가 내 뒤 따르는 양 몸 가는 데 그림자요 소리에 울림이라 업보의 끄는 힘이 황소두곤 더 세어라 눈 깜박하는 결에 마음에 이는 생각 아뿔싸 천만겁에 사생고락 씨가 되니 어허 두려운지고 인과응보 두려워라.

그러나 인과일래 범부도 성인 되네 천지가 넓다 해도 선을 위해 있사오매 터럭같이 작은 선도 잃어짐이 없을러라 방울방울 물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듯이 날마다 작은 공덕 쌓아 큰 공덕 되니 하잘것없는 몸이 무상 보리 이루는 법 여덟 가지 바른길을 밟아 적선함이로다 어허 고마운지고 인과응보 고마워라.

석가여래 아니시면 이 좋은 법 어이 알리 삼천대천세계 바늘 끝만한 빈 데 없이 목숨을 버리시면 겪으신 난행고행 나를 위하심일세 악도에 떨어질 몸 무궁락을 얻는 법을 정녕히 설하시니 팔만 사천 법문이라 문 따라 들어가면 백무일실(百無一失)하게 도피 안 하오리라 어허 무량할손 부처님의 은혜셔라.

팔만대장경이 모두 다 불법이라 경중이 있을소냐 어느 경 하나라도 수지독송하는 중생 반드시 악취(惡趣) 떠나 불지(佛地)에 들어가리.

일념수희(一念隨喜)한 공덕도 만겁 적악 깨뜨리고 사구게(四句偈)를 믿는 신심(信心) 삼계에 대법사(大法師0 라 경권(經卷) 있는 곳이 부처님 계신 데요 경을 읽는 중생 부처님의 사자(使者)로다.

어허 중생들아 경을 받아 읽었으라.

절이 없을진댄 불법 어디 머무르며 남녀승 아니런들 뉘 있어 법 전하리.

그러매로 절을 짓고 성중(聖衆) 공양하였으라."

원효는 한 절마다 소리를 높여서 끝 두 귀를 세 번 부르 고, 잠시 쉬고는 또 계속한다.

"헐벗고 배고픈 이, 옷과 밥을 주었으라.

앓는 이 구완하고 약한 이 도와주니 모두 보시행(布施行)이로다.

재물이 없다 한들 몸조차 없을건가 이몸 타고나기 도 닦자는 본원(本願)이니 도 위해 쓰고 버림 진정 소원이 아닌가 제불인위시(諸佛因爲時)에 국성처자(國城妻子) 보시하니 이몸의 두목신체(頭目身體) 보시 않고 어이하리.

신명(身命)을 바칠진댄 더 큰 보시 있을소냐.

물살도음(勿殺盜淫)하는 일을 지계(持戒)라 일러 있고 남 미워 아니함을 인욕(忍辱)이라 불렀으며 정업 정명(正業正命) 근행함을 정진(靜振)이라 하시옵고 마음 굳게 잡아 잡념 망상 다 떼이고 가을 하늘 맑은 듯이 무애삼매(無碍三昧) 닦는 법을 선정(禪定)이라 하거니와 모두가 마하반야바라미(摩訶般若 波羅蜜)의 길이로다.

만행(萬行) 어느 것이 육도(六度) 아님 있으리만 제 힘에 믿는 행을 힘다하여 닦았으라.

팔만 사천 법문 어느 문 아니리 신심 굳게 가는 중생 구경 성불 하오리라.

어비이 크신 은혜 모르는 이 있으리만 스승의 고마우심 아는 이 그 뉘런고.

부처님이 본사(本師)시고 보살님네 대사로다 한 가지를 배웠어도 스승 공경하였으라.

나라님 아니시면 어느 땅에 발 붙이리 효도인들 어이하며 불법인들 닦을소냐 그러매로 군사부(君師父)는 일체라고 일렀도다.

임금께 충성할 제 목숨을 아낄소냐.

효도를 하는 길에 도 닦음 으뜸이라 아들딸이 쌓은 공덕 다생 부모 제도하네 먹고 입고 쓰는 것이 모두 중생 수고로다.

입에 드는 밥 한 알을 절하고 먹었으라 사중은(四重恩) 못 갚으면 극락을 바랄소냐 군사부 중생은을 수유나 잊을세라 한숨 두숨 쉬는 숨이 은혜 갚는 맹세로다.

성인은 그 누구며 범부는 그 누구냐 유정(有情) 무정(無情)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

한마음으로 나톤 중생 불(佛) 아닌 이 어디 있나 미(迷)할 제 범부러니 깨달으니 불이로다.

지옥 천당이 내 마음의 지은 바라.

삼독(三毒) 오욕(五慾) 벗어나서 무상보리 닦을진댄 생사 윤회 끊었거니 악도를 두릴소냐.

세상에 박복한 이 누구 두고 이름인가 불법을 못 듣는 이 그를 두고 이름이라.

다생 악업장(障)이 되어 이 목을 가리우니 불법 속에 살면서도 못 보고 못 듣는다.

업장을 떼는 법이 예불 참회 고작이라 섭률의(攝律儀) 섭선법(攝善法)이 업장을 녹이더라.

철통 같은 묵은 업장 일조에 터지는 날 광명일월 넓은 법계 자유자재 내로구나."

듣는 사람은 고요하다. 원효의 음성은 더욱 높아진다.

"불도를 닦는 사람 무엇으로 알아내노.

얼굴에 빛이 나고 몸에서 향내나네.

마디마디 기쁨 주고 걸음걸음 꽃 피어라.

자비심을 품었으니 노염 미움 있을소냐.

청정행을 닦았으니 거짓을 끊었어라.

오욕 번뇌 멸한 사람 제천(諸天)이 공경커든 요마한 악귀 무리 거들떠나 볼 것이냐.

송경 염불하는 중생 선신이 옹호하니 물에 들어 안 빠지고 불에도 아니 탄다.

한 중생 초발심(初發心)에 법계가 진동하고 은밀한 작은 행도 하늘에 적히도다.

불법을 닦는 집이 그 모양이 어떠한고 큰소리 성난 모양 꿈엔들 보일 건가.

신명이 도우시고 불보살이 지키시니 자손 창성하고 부귀공명 하오리라.

불법을 닦는 나라 그 모양이 어떠한고 백성은 다 충성이요 아들딸은 효자로다.

악귀가 물러가고 선신이 모여드니 우순풍조하고 국태민안하다.

선업 닦은 중생들이 이 나라에 원생(願生)하니 제상선인(諸上善人)이 구회일처(俱會一處)라.

산 모양 들 모양도 얼굴을 변하고 날짐승 길버러지 악심을 떼었으니 현세 즉 극락이라 이 아니 보국(報國)이냐.

어허 기쁜지고 지화자 좋을씨고.

법고 둥둥 울려 한바탕 춤을 추자."

노래를 끝내고 원효가 춤을 추니 사백 명 대중도 모두 일 어나 춤을 추었다.

"니누나누 늴리리."

하고 입장단을 치는 이도 있었다.

신라 사람은 춤을 좋아한다. 한바탕 춤이 끝난 뒤에 원효 는,

"자 이제 다들 갑시다. 오늘 뱀복이 모자 장례가 기연이 되 어서 이곳에 한바탕 도량이 나타났으니 모두 불보살의 대원 력이요, 대위신력이라. 이제 불은을 보답하는 뜻으로 우리 소리를 모아서 염불을 부르며 행진합시다."

하고 먼저,

"나무아미타불."

하고 앞을 섰다. 거지들이 먼저 원효의 뒤를 따르며,

"나무아미타불."

하고 화답하였다. 중들도 거지의 뒤를 따랐다.

원효는 서울 성중으로 대중을 끌고 들어섰다. 사백 명 대 중이 나무아미타불을 합창하는 소리가 성중을 흔들었다. 원 효는 대중을 끌고 흥륜사 분황사 같은 큰 절과 호구 즐비한 시가로 순회하였다. 사람들은 이 희한한 광경을 보려고 모 두들 길가에 나섰다.

어떤 사람은 같이 염불을 하며 행렬에 들기도 하였으나 어 떤 사람은 원효가 불교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 을 만나는 대로 원효를 악담하였다. 그러하기 때문에 중들 중에는 슬몃슬몃 이 행렬에서 빠져가는 자도 있었다.

사로 팔백 여든 절에서 저녁 쇠북이 울기 시작하였다. 하 루 동안 고달프던 중생이 편안히 쉬이라는 쇠북이다.

원효가 걸음을 멈추고 합장하매 일동도 그와 같이 하였다.

쇠북 소리를 들으매 불법을 염하는 것이다.

원효가 뱀복의 집에 머무른 지가 벌써 반년이 넘어 가을과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돌아왔다. 뱀복이가 죽으매 원효가 거 지의 두목이 되었다. 거지들은 뱀복의 말을 듣던 모양으로 원효의 말을 잘 들었다. 거지로서는 죽기 전에 어려운 일까 지도 원효가 정하여 주는 일이면 하였다.

거지의 근본 되는 병은 일하기 싫음이었다. 즉 게으름이었 다. 거지 중에도 여러 가지로 층등이 있거니와 그중에도 머 렁이라는 거지는 몸을 꼼짝하기를 싫어하였다. 그는 머리가 누스스름하고 키가 늘씬하고 팔다리가 제가끔 노는 것이 얼 른 보아도 게으름뱅이로 생겼거니와 정신 작용에는 결코 부 족함이 없었다. 부족함이 없을뿐더러 그의 말에는 조리가 있고 또 슬기도 있어서 이따금 비범한 생각도 하였다. 그러 나 그는 더할 수 없이 게을러서 누가 발길로 차기 전에는 언제까지나 누워 자고 얼굴에 파리나 모기가 붙어도 날릴 생각을 아니하였다.

그는 본래는 집도 있고 처자도 있고 문벌도 낮은 사람은 아니었으나 게으름이 병이 되어서 집을 헤치고 거지가 된 것이었다.

"밥 얻으러 가기는 싫지 않어?"

하고 물으면 그는 빙그레 웃었다. 말도 하기 싫은 모양이 어서 여간해서는 입을 벌리지 아니하였다.

기분이 좋은 때 같으면 머렁이는,

"턱 밑에 놓은 밥도 먹기가 싫은데 주기 싫다는 밥 빌러 가기가 어찌 좋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글자를 배운 것이 있 어서 뱀복이 문하에서는 적개질을 맡아 하고 평생 집을 보 고 있었다. 혹시 동냥을 나가면 한끼 먹을 것을 얻으면 돌 아왔다. 욕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얻으러 다니기가 싫은 것 이었다.

원효는 이런 게으름뱅이를 처음 보았다.

"너, 그 게으름을 깨뜨리지 아니하면 내생에는 사람의 몸을 잃을 근심이 있다."

하고 훈계할 때에 머렁이는 큰 구렁이나 큰 바위를 생각하 고 빙그레 웃었다.

원효는 머렁이에게 방과 뜰을 쓸리고 하루에 천 번 관세음 보살을 부르게 하였다.

머렁이는 시키는 대로 하였으나 그것이 무척 힘이 드는 모 양이요, 한 번 쓸어도 안 쓸려서 두 번 손이 갈 것이면 그 래도 두었다. 원효는 아무 말 없이 손수 그것을 다시 쓸었 다. 그러면 머렁이는 심히 미안한 모양을 보였다. 방과 마당 쓸기보다도 염불 천 번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열흘이면 천 번을 채우기는 하루나 이틀이 될락말락하였다.

"그걸 못 채워?"

하고 원효가 소리를 지르면,

"똑바로 앉았기가 어렵소와서."

하고 빙그레 웃었다.

"누워서라도 천 번을 채워."

원효는 이렇게 명하였다.

그러나 누워서 염불을 하기는 미안한 모양이어서 비비꼬면 서도 똑바로 앉아서 천 번을 채우게 된 것이 한달이 넘어서 였다.

이렇게 되면서부터 머렁이는 느린 것이 줄었다. 아침이면 일어나고 제가 할 일을 하게 되었다. 방이나 마당을 쓰는 것도 차차 재미를 붙여서 점점 깨끗하게 문밖까지도 쓸게 되었다.

원효는 모든 거지에게 게으른 버릇이 있음을 발견하였거니 와 게으름만이 사람이 거지가 되는 원인이 아닌 것도 알았 다. 거기는 두 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었다. 하나는 일할 거 리가 없는 것이요, 둘은 일을 한다고 잘 살아지지 않고 도 리어 세상에는 일 아니하고 넉넉히 사는 사람이 있다는 생 각이었다.

"농사를 하자니 바탕이 있어야지요."

하는 것은 첫째 원인이요,

"그까짓거 뼈가 휘도록 일을 해도 배고프기는 마찬가진 걸 요."

하는 것은 둘째 원인이었다.

이러한 동기로 한 번 거지 노릇을 시작하면 염치심을 잃어 버려서 그대로 평생을 보내는 것이었다.

다부지라는 거지는 몸도 단단히 생겼거니와 기운이 있고 또 무슨 일이나 하려 들면 잘하였다.

"그깐놈거, 힘드는 일을 왜 해요. 우리 아버지는 평생에 쉴 새없이 일을 하고도 죽을 때에는 거적송장밖에 안 되는 걸."

다부지는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다부지는 밥을 빌어먹을지언정 우는 소리로 남의 동정을 구할 줄은 몰랐다. 거지의 무기가 사람들의 자비심을 움직 임에 있는 줄을 다부지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으나 그는 이 런 일은 더럽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누구 집 문전에 가면 집이 떠나가라 하듯이 큰소리로,

"거지 밥 얻으러 왔소."

하고 마치 호령조였다.

"이놈. 사지가 멀쩡한 놈이 일을 아니 하고 거지 노릇을 다 녀?"

하고 어떤 주인이 나무랄 양이면 그는 눈을 흡뜨고,

"여보. 왜 악담을 하오? 사지가 멀쩡하길래 밥을 얻으러 다 니지 않소? 그러면 누워 뭉개는 병신이 되란 말요, 여보, 거 지 조상 안 둔 부자 없다 하오. 당산 집 자손이 거지가 되 고 개 자손이 부자가 되어서 당신 집 자손이 내 문전에 걸 식을 올 때에 내 자손이 만일 그런 악담을 한다면 내가 귀 신이 되어서라도 다릿마댕이를 분질러 주겠소."

이렇게 대들어서 기어이 밥을 얻고야 말았다. 만일 그래도 밥을 안 주면 퍼더버리고 문전에 앉거나 누워서 하루 종일 이라도 큰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부지를 아는 집에서는 그 다부진 음성이 들리기만 하면 진저리를 내어서 얼른 밥을 내다주었다.

원효는 다부지에게 아이 둘을 맡겼다. 그 둘을 벌어먹이란 것이었다. 다부지는 신이 나서 밥을 얻어다가는 아이들을 먹이고 또 누더기를 얻어다가 제 손으로 꿰매어서 두 아이 를 입혔다.

다음에는 나비라는 거지가 있었다. 이 사람은 얼굴이 멀끔 하고 얼른 보면 점잖은 집 서방님 같았다. 그는 거짓말이 난당이어서 참말은 한마디도 아니하려 드는 것 같았다. 거 짓말을 하여서 사람이 속을 것을 보고는 기뻐하였다. 원효 에게 대하여서도 번번이 거짓말을 하였다. 한번은 나비가 멀쩡한 거짓말을 하는 기회를 타서 원효는 막대기로 납의 정수리를 갈겼다.

"아야!"

하고 나비가 소리를 지르고 손을 머리에 대었다.

"아프냐?"

"에헤헤."

하고 나비는 얼른 머리를 만지던 손을 치우며,

"누구를 떠보려고 그러시우? 아프기는 그까짓게 무엇이 아 프오."

하고 능청을 부렸다. 원효는 그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번개 같이 또 한 개를 갈겼다.

"아야 아야."

이번에는 나비의 눈에 불이 번쩍 난 모양이었다.

"인제 아프냐."

원효는 성난 얼굴로 물었다.

"아이구."

하고 나비는 원효를 흘겨보았다. 그래도 아프단 말은 아니 하였다.

나비라는 이름은 그가 흉내를 잘 내는 데서 왔다. 그는 어 떤 날은 애꾸 행세를 하고 어떤 데서는 절뚝발이 모양을 하 고 또 어떤 경우에는 벙어리가 되었다. 그래서는 저편의 자 비심을 움직여서 물건을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 흉내를 내 는 모양이 하도 천연스러워서 아무도 그가 지어 한다고 생 각할 수가 없었고 그뿐 아니라, 그가 한바탕 신세타령을 하 게 되면 눈물을 아니 흘릴 수가 없었다. 그가 신세타령을 하는 어조도 어떤 때에는 어눌한 사람 모양을 하고 어떤 때 에는 순박하고 못난 모양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아주 도 닦는 방아 모양을 하여 언변이 썩 좋았다.

그는 무엇을 하더라도 밥벌이를 할 만하건마는 거짓말이 병이 될뿐더러 거지로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속이는 것이 무 척 재미있어 하는 모양이었다.

동무들 간에도 아무도 그의 말을 믿는 이가 없었다. 한번 은 무엇을 먹고 관격이 되어서 배가 아프다고 대굴대굴 구 는 것을 한방에 있는 동무들이 이놈 또 익살이라 하고 모르 는 체하여서 온종일 곯은 일이 있었다. 그래도 그것쯤으로 거짓을 뗄 위인이 아니었다.

원효는 번번이 나비에게 속았다. 나비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처음에는 나비는 원효가 연해 속는 것을 재미있게 알았으나, 차차 원효가 속는 것이 어리석어서 속는 것이 아 니라 자기의 말을 그대로 믿어서 속는 것인 줄을 알고는 슬 그머니 미안한 생각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원효에게 무슨 거짓말을 하고 나서는 얼른 뒤를 이어서,

"아니야요, 시님. 지금 제가 한 말은 거짓말이야요."

하게 되었다.

다음에는 수리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몸이 가냘프고 살이 희고 손이 붓끝 같아서 마치 귀인 같았다.

그를 수리라고 부르는 까닭은 남이 가진 것을 수리가 병아 리를 채는 것 모양으로 번개같이 채고 시치미를 떼면 아무 도 그가 훔친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많이 나오는 구경터 같은 데로 슬슬 돌면서 여자의 머릿 장식이며 패물이며 남자의 몸에 지닌 것이며 가게에 벌여 놓은 물건이며 이런 것을 훔쳤다. 그러나 그렇 다고 그는 재물에 욕심이 있는 것 같지도 아니하여서 훔친 것은 제가 몸에 지니는 것 외에는 누구를 주었다. 동무들의 말을 듣건대 그는 계집을 준다고 하였고 또 가난한 사람을 준다고 하였다.

그가 뱀을 잘 잡는 것도 눈치와 솜씨가 빠르기 때문이었 다. 그의 손이 번뜻하면 벌써 뱀의 모가지는 그의 손에 잡 혀 있는 것이었다.

수리는 제 부하가 많았다. 아이들, 여편네. 수리가 어떤 골 목에 나서면 끄나풀들이 그를 옹위하였다.

그 밖에도 거지 중에는 여러 가지 재주를 가진 자가 많았 다. 가령 코풍류라는 이름을 가진 자는 콧소리로 갖은 풍류 를 다하여서 사람을 웃겼고, 꼽추는 꼽추춤으로 이름이 나 고, 어떤 놈은 코와 눈과 입과 귀까지도 실룩거려서 흉물을 부려서 사람을 웃기고, 어떤 이는 휘파람을 썩 잘 불고, 어 떤 이는 근두박질 재주넘기를 잘하고, 또 어떤 놈은 맴을 잘 돌아서 구경군이 어지러워 떨릴 지경이었다.

이런 것은 다 공부들인 재주여니와 생기기를 익살스럽게 생겨서 그것을 밑천으로 거지 노릇하는 이도 있었다. 가령 나이는 사십이 넘어 수염까지 났으면서도 키는 댓 살 먹은 아이밖에 안 되는 사내라든지, 코가 없는 계집이라든지, 팔 이 둘이 다 떨어지고 다리만 있어서 발에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든지, 앞뒤 곱사등이라든지, 대가리가 장구통 이요, 눈이 바늘로 꼭 찍은 듯한 얼굴이라든지, 걸음을 걸으 려면 사지를 덜덜 흔들어 떠는 것이라든지, 목이 비뚤어져 서 길을 가자면 모으로 걷는 이라든지, 수염난 여편네라든 지, 가지각색 흉물이 많았다.

이런 사람들은 특별한 재주가 없어도 물건을 얻을 수가 있 었다.

아무려나 원효의 부하가 된 이백여 명 식구들은 다 한 구 석 특별한 데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무리는 한 사람 씩 떼어 놓고 보면 흉물스럽지마는 여러 십 명이 한데 모여 서 떠들기나 할 경우에는 원효도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아침에 동냥을 떠날 때에는 모두 진흙과 검정을 낯 바닥에 아웅을 그려서 저마다 사람의 주의를 끌도록 화장을 하였고, 또 집을 떠나기 전에는 오늘 부릴 재주를 연습을 하였다. 그리고는 서로 비평도 하고 웃기도 하였다.

그들이 이 모양으로 차리고 잠시 양지쪽에 멀거니 앉았는 것은 오늘 어디로 갈까, 무슨 재주를 피울까를 생각하는 것 이었다. 그러다가 어슬렁어슬렁 시가로 향하고 나갈 때에는 그래도 제각기 무슨 희망을 가진 양싶어서 걸음이 가뿐가뿐 하였다.

거지들이 다 떠나면 원효는 머렁이를 집에 두고 비 한 자 루, 걸레 하나를 들고 바리때를 바랑에 넣어 지고 집을 나 선다. 원효는 지저분한 집을 찾아서는 우선 문전을 쓸고 기 둥을 닦고 그러고는,

"마당 쓸어 드리러 왔소. 수챗구멍. 똥둑간, 무엇이나 깨끗 이 치워 드리오리다."

하고 외친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슨 사람인가 하고 경계하는 이도 있었 으나 차차 안심하여 안마당으로 불러들이게 된다. 그러면 원효는 장삼을 벗어 놓고 쓸고 훔치고 하여 집안을 깨끗이 한 뒤에 물을 얻어 손발을 씻고는 바랑을 지고 합장하여 주 인께 인사하고 나온다.

이것이 시작이 되어서 원효의 밑에 있는 거지들도 차차 원 효를 배우게 되었다.

"모든 궂은 일은 다 해드립니다."

거지들은 사로 성중에 이렇게 광고를 하였다. 그러면 사람 을 원효에게 보내어서 어디어디를 어떻게 치워 달라는 주문 을 하는 이도 생겼다. 일을 하고 나면 밥도 주고 쌀도 주었 다.

일이 없는 날은 원효는 거지들을 거느리고 개천이며 시가 를 깨끗이 하고, 혹은 길 무너진 데를 고치고 혹은 눈을 치 우는 일도 하였다.

원효는 늙은 거지, 병신 거지, 아이 거지, 여편네 거지는 밖에 나가지 않게 하고 집에 머물러 있게 하였다. 그리고는 성한 사람들이 벌어다가 이들을 먹이게 하였다. 헝겊이나 누더기를 주워 오면 그것을 빨아서 모아서 옷을 만들고 기 타 집에 앉아서 할 일을 마련해 주었다.

오래 묵은 게으른 습관은 좀체로 떨어지지 아니하였으나 자기들을 편안히 앉혀 두고 남들이 벌어다가 먹여 준다는 것에 감동이 되어서 맡은 일을 하게 되었다.

궂은 일을 맡아 하게 된 뒤로부터 세상 사람이 거지에게 대한 대접이 높아졌다. 제 편에서 청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라지 않은 데 가던 거지가 청하는 곳에 가게 된다는 것은 큰 변화였다.

어떤 때는 큰 집을 짓는 사람들이 터를 쳐 달라고 청하기 도 하였다. 원효는 북을 매달고 치며 염불을 먹이며 달구를 다지게 하였다. 다음에는 이런 일에는 나비가 선소리군이 되었다. 그는 갖은 덕담으로 집주인을 기쁘게 하였다.

원효는 나비와 함께 이런 때에 쓰는 덕담을 지었다. 재미 있는 중에도 진리를 풍겨서 듣는 자에게 교훈이 되게 하자 는 것이었다.

원효가 서울에 머무르게 된 뒤에 대안대사가 가끔 원효를 찾은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시님. 삼모헌테 한번 더 안 가려오?"

대안대사는 이런 농담을 하였다. 그런 때는 원효는 요석공 주와의 관계가 두고두고 마음에 못이 되는 것을 말하였다.

"허. 걸음 걸으면 다리 아픈 게지."

대안은 이렇게 말하였다. 향락을 하면 그 벌을 받는다는 뜻이다.

원효는 요석공주가 자기를 찾아온 것을 내버리고 왔다는 말과 또 아사가의 말도 하였다.

"그래 보고 싶지 않소?"

대안은 싱글벙글 웃었다.

"보고 싶으니 걱정이 아니오."

원효도 이렇게 대답하고 웃었다.

"그렇거든 성불을 몇 겁 연기하시오그려. 보고 싶으면 실컷 보고 몇 생사(生死) 더 하시오그려."

대안은 원효를 놀렸다.

거지들도 대안대사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들은 대안을 익살맞은 늙은 중이요, 자기네와 같은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어떤 때에는 대안대사가 원효를 찾아오면,

"소병 소뇌(小病小惱)하시고 교화나 잘 되시오."

이렇게 불보살에 대한 예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대안대사는 가끔 거지들과 함께 자고 함께 돌아다녔다. 거 지들은 대안대사를 크게 환영하여서 저희가 얻어온 밥과 반 찬을 대사에게 주었다. 어떤 때에는 대안이 술을 좋아한다 하여 술지게미를 얻어다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 대안은 술 지게미를 손으로 집어먹으며 맛이 좋다고 흥에 겨워하였다.

그러고는,

"허허. 이 늙은이는 거지 위에 거지가 아닌가."

하고 소리는 내어서 웃었다.

대안은 밥 얻어먹은 값을 하여야 한다 하여 여러 거지들이 떼를 지어서 하는 일터에 가서는 방울을 흔들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혹은 그 우렁찬 소리로 염불을 불렀다. 대안대사 의 염불소리는 어느 구석에서 부르더라도 어느 구석까지도 들린다고 소문이 났다.

그것은 대안대사의 목소리가 우렁차다는 뜻도 되거니와 대 사가 아침이나 저녁이나 정처없이 돌아다니면서 염불을 하 는 까닭도 된다. 대안대사는 지척지척 걸어가다가 어디서든 지 흥이 나면 한바탕씩 염불을 하였다. 게다가 원효의 거지 떼가 염불을 하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사로성 중은 염불 소 리 아니 들리는 날이 없어서 어른이나 아이나 염불을 불렀 다. 장난삼아 흉내로 부르더라도 염불을 아니하는 이가 없 었다.

"一稱南無佛. 皆己成佛道."

한번 염불을 부른 사람도 다 불도를 이루었다 하는 것이 다.

이 때문에 큰 절들에서 점잖게 있는 중들이 대안과 원효에 게 대하여서 시기와 불평을 가지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 다. 더구나 원효가 거지의 두목이 되었다는 것은 승려 간에 는 큰 문제가 되어서 왕이 시왕경(十王經)법회를 크게 행할 때에 중들은 결속하여서 원효가 강사 되는 것을 반대할 지 경이었다.

왕이 황룡사에 시왕경법회, 금광명경법회를 베푼 것도 모 두 백제,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함이었다. 첫째로 불보살의 가호를 빌고, 둘째로, 국내의 선신을 안위하고, 셋째로 전몰 장졸들의 명복을 빌고, 아울러 국민의 애국심을 분기시키려 는 것이었다.

이때에 법회를 하면 반드시 전몰 장졸의 명복을 비는 것이 었다.

왕의 희망으로는 시왕경이나 금광명경의 설법을 원효에게 청하고 싶었으나, 자장을 비롯하여 혜통 등 모든 높은 중들 이 일제히 원효를 반대하여서 왕도 우기지를 못하였다. 그 들은 왕의 앞에서 감히 원효를 파계승이라고는 못하였으나 땅군의 두목이 되어서 살생으로 업을 삼는다는 것과 젊은 중들과 일반 민심이 원효를 즐겨하지 아니한다는 말로 원효 가 법사 되기를 반대하였고, 또 어떤 이는 원효는 이미 중 이 아니요, 한 속인이니 절에서 사부중을 향하여서 법을 설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강원에서도 원효의 저서를 배척한 데도 있었다.

원효가 시골에 숨어 있을 때에는 좀 덜하더니 그가 성중에 들어와서 날마다 거지떼를 데리고 장안 대로상으로 활보하 는 것을 보니 본래 원효를 시기하던 승려들의 비위에 더욱 거슬렸다. 그러나 원효는 그들이 지르밟아 버리기에는 너무 나 큰 힘이었다. 장난 거지가 모두 원효의 부하라는 것이 무섭기도 하였다. 세상에서는 그 거지떼 중에는 별별 사람 이 다 있는 줄 생각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원효가 도적떼의 두목이 되었다는 소문이 났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근거 없는 소문이 아니었다. 근래에 장 안에는 괴상한 도적이 횡행하였다. 큰 집에 들어가서 물건 을 훔치고는,

"欲知我誰 問於曉師(내 뉜 줄 알려거든 효사께 물으라)."

이러한 글귀를 벽에 쓰고 가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관가에서는 공주 부마인 원효대사를 건드릴 수는 없었고, 다만 상사에 이런 뜻을 보고만 하였다.

이 말이 마침내 대각간 유신의 귀에 들어가서 유신은 이 말을 왕께 고하였으나 왕은,

"원효대사를 해치려는 자의 소위겠지."

하고 웃으시고 말았다.

하루는 대안대사가 원효를 찾아와서 이 말을 전하였다.

"시님은 또 도적의 두목이 되었다."

하고 웃었다. 원효도 나비와 기타 부하로부터 이런 말은 듣고 있었다.

"이것이 필시 무슨 까닭이 있나 보오."

대안도 원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 도적들을 한번 만나 보았으면 좋겠소. 그중에는 인물다 운 인물이 있을는지도 몰라."

원효는 대안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 도적들이 들어간 집은 대개 백성의 원망을 받는 집이었 다. 관원이 되어서 토색을 한다든가, 장사를 하되 고객을 속 여서 부정하게 돈을 모았다든가, 인심이 박하여서 동네에서 인심을 잃었다든가, 이러한 부자집이 도적을 맞는 것이었다.

원효도 제 이름을 팔고 돌아다니는 도적을 궁금하게 생각 하고 있는 때에 의명이 원효를 찾아왔다.

의명의 말에 의하건댄 요석공주와 아사가 남매가 원효가 돌아오기를 고대하다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도 소식 이 없으므로 무애암을 떠나서 서울로 오던 길에 도적의 떼 에게 붙들려 갔다는 것이었다.

"어디서 붙들렸나?"

"무애암 동구에 나오다가 붙들렸소."

"시위하는 사람은 없었느냐."

"요석궁 대사가 군사 둘을 데리고 시위하다가 싸워 죽었 소."

"무엇으로 싸워?"

"칼로."

원효는 요석궁 대사의 검술을 아는 터이라 그를 죽일 만하 면 비범한 솜씨라고 생각하였다.

"몇 명이나?"

"이십 명이나 되었소."

"너는 어째 안 잡혀갔느냐."

"처음에는 소승도 결박을 지웠으나 도적 두목이 소승의 결 박을 끄르며 빨리 너는 가서 원효대사에게 바람복이가 공주 와 아기와 아사가 남매를 잡아가더라고 일러라 그랬소."

원효는 의명에게 도적 두목이란 사람의 모습을 물었다. 나 이 육십이나 되고 수염이 많이 나고 얼굴이 희고 키는 자그 마하고 푸른 방아라를 입고 풀잎으로 결은 방갓을 써서 점 잖은 방아도사 같더라고 의명이 설명하였다.

"그런데 칼을 잘 쓴단 말이지?"

원효는 이렇게 물었다.

"처음에는 자기는 뒤에 서고 젊은 부하들이 대사와 싸우더 니 대사의 칼에 부하들이 죽고 다른 사람들이 밀리는 것을 보더니, 그리 길지도 아니한 칼을 빼어들고 적을 눌리는 듯 슬적슬적 싸우는 것이 사뭇 날던 걸요. '이제 고만 항복하여 라, 내 칼에 네 피를 바르기가 싫다' 그 두목이 칼을 거두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대사가 아니 듣고 싸움을 돋우다가 어 느 틈에 맞았는지 대사는 바른편 어깨에서 왼편 옆구리까지 엇비슷하게 두 동강이 나고 말았소."

의명은 그때 상황을 추억하고 얼굴을 씰룩씰룩하였다.

"그래 너는 떨구 있었구나."

하는 원효의 말에 의명은 무안한 듯이 고개를 숙였다.

"내려가서 뜰이나 쓸어라."

원효의 명을 받고 의명은 가사 장삼을 벗어 걸고 비를 들 고 뜰에 내려갔다.

원효는 사람을 시켜서 산 뱀 한 마리를 의명의 발앞에 던 지게 하였다. 뱀은 의명을 향하여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의 명은 비를 던지고 악 소리를 치며 뒤로 물러섰다.

"대가리를 잡아라."

원효는 이렇게 소리를 쳤다.

의명은 죽어라 하고 손을 내어밀고 뱀을 따라갔다. 구석에 몰린 뱀은 의명을 향하여 덤비어들었다. 의명은 뱀의 목을 잡았다. 뱀은 의명의 팔에 어느덧 감겨 버렸다. 뱀의 꼬리가 소리를 내고 떨었다.

마침내 뱀은 숨이 막혀서 축 늘어지고 말았다. 원효는 웃 고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의명은 원효의 앞에 절하고 울 었다.

"무엇을 보았느냐."

원효는 의명에게 이렇게 물었다.

"시님 은혜가 수미산(須彌山) 같소."

의명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저는 무엇을 무서워하였 는가. 대체 무엇을 아껴서 무서워하였는가. 의명은 몸을 결 박하였던 쇠줄이 끊어진 듯함을 느꼈다. 세상에 무서운 것 이 하나도 없었다. 자유자재인 것 같았다. 원효는 의명에게 보은사를 맡기고 바람복이를 찾아 떠났다.

바람복이는 바람이라고 통칭하여서 전국에 유명한 도적이 었다. 태백산 이하로 모든 큰 산이 다 그의 소굴이어서 그 의 거처를 아는 자가 없었다.

바람의 끄나풀 사로성중에도 많이 있는 모양이나, 바깥 사 람에게는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원효는 무턱대고 떠난 것이다. 그러나 원효에게는 이러한 자신이 있었다. 바람이가 공주 일행을 잡아가면서 의명을 놓아보내어 원효에게 말을 전한 것은 필시 원효를 만나려 하는 것이라고. 그렇다 하면 원효가 돌아다니노라면 필시 바람의 끄나풀을 만나리라고.

원효는 예전 방랑할 때 모양으로 허리에 뒤웅박을 주룽주 룽 달고 이번에는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칭하고 발 가는 대로 걸었다.

바람이가 공주 일행을 잡아 가지고 가면 멀리는 아니 갔으 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원효는 일선주 쪽을 향하고 걷 는 것이었다.

원효는 봄바람에 봄 새소리를 들으며 아비야[阿火屋] 고을 지경에 다다라 옥미원(玉彌院)에서 주막에 들었다. 원효는 서울을 떠나서부터 날마다 한두 사람 동행을 만났다. 그들 은 다 원효 모양으로 차린 거랑방이로서 봄철을 타서 산천 구경을 다니는 사람이었다. 다들 풍류도 알고 글도 알아서 경치 좋은 곳을 만나면 소리도 하고 시도 짓고 춤도 추었 다. 그러다가 하루 만에도 갈리고 이틀 만에도 갈렸다.

원효가 옥미원에 드는 날도 거랑방이 하나와 동행하였다.

그는 버들잎 피리를 썩 잘 불어서 버들잎 하나로 능히 칠십 여 곡을 불었다. 원효는 그 가락에 맞추어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그동안 원효가 만나던 중에 가장 재미있는 사 람이었다. 그는 과연 비범한 풍류객이었다.

이 사람은 나이도 원효와 상적하여서 하루동안에 허물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무론 원효는 제 이름을 말하지 아니 하였고 그 사람도 마찬가지요, 또 서로 이름을 묻지도 아니 하였다.

옥미원에 자기를 청한 것과, 또 이 집을 숙소로 정한 것도 그 피리장이였다.

주막에 들어서 두 사람은 술을 먹고 늦도록 놀았다. 주인 집에 있는 저[笛]를 빌려서 피리장이는 저를 불고 원효는 거문고를 타고 늘어지게 놀았다.

"이것이 다 인생의 성사가 아닌가."

피리장이가 저를 놓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고말고."

원효는 피라장이에게 일종의 압력을 느끼면서 이렇게 대답 하였다.

"자, 우리 먼저 잠드는 사람 밥값 내기라고. 인제 그만 자 세."

피리장이는 이런 소리를 하였다.

"나중 잠드는 사람이 먼저 잠드는 사람의 짐을 지고 가기 라고."

원효는 이렇게 말하였다. 피리장이는 눈이 한번 번쩍 빛나 더니 하하하고 소리를 내고 웃었다.

원효는 목침을 당기어서 베고 누웠다. 원효가 취한 김에 한 잠을 잘 자고 깨어 보니 피리장이도 없고 원효의 짐도 없었다.

원효는 웃었다. 밝은 뒤에 보니 창에 글자가 씌어 있었다.

"欲知我誰. 問於曉師. 一聲草笛. 鳳龍來儀."

원효는 조반을 얻어먹고 옥미원을 떠났다. 비봉산 용천사 (飛鳳山龍泉寺)로 향하는 것이었다.

원효가 용천사 동구에 들어선 때는 벌써 석양이어서 수풀 속으로부터 저녁 종소리가 은은히울려 왔다.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이고 쌀인가 싶은 짐을 진 사람들이 절을 향하고 올라가는 이도 있고 빈 지게를 지고 내려오는 이도 있었다. 얼른 보아도 이 절이 큰절이요, 대중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원효는 시냇가에 앉아 세수하고 발을 씻고 시내를 따라 올 라갔다.

판도방 밖에는 짚세기가 스무남은 켤레나 놓여 있고 사방 에 저녁 공양의 쇳소리가 들렸다.

원효는 우선 판도방을 쓱 들여다보았다. 모두 광대뼈가 나 오고 이마가 좁고 눈망울 톡톡 불거진 무리가 둘러앉아서 윷을 놀고 있었다. 원효가 들여다보는 것을 보고 모두 눈을 원효 쪽으로 향하였다. 원효는 그 눈들이 불량한 것이 곧 도적의 떼라고 생각하였다.

"누구를 찾으시오."

그중에 늙수그레한 자가 물었다. 다른 자들도 또 윷놀이를 계속하였다.

"구경 다니는 거랑방이가 찾을 사람이 어디 있소. 날이 저 물고 시장도 하니 밥이나 한술 얻어먹고 드새고나 가볼까 하고 그러오."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고 궁둥이를 방으로 들여대고 문지방 에 걸터앉아서 신을 끌렀다.

원효가 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에 엉덩이를 문으 로 향하여 원효가 못 들어오도록 막는 자가 있었다. 원효는 그것을 못 보는 듯이 무릎으로 그 사람을 밀고 들어갔다.

그 사람은 원효의 무릎에 채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왜 사람을 차노?"

하고 그놈이 벌떡 일어나 원효에게 대들었다.

"왜 내 앞을 막았노?"

원효는 이렇게 대꾸하였다. 그 사람은 원효를 때리려고 팔 을 둘러메었으나 원효는 내려오는 그 팔목을 붙들어서 그 사람의 따귀를 붙였다.

"왜 사람을 때리노?"

그 사람은 또 대들었다.

"내가 때렸나. 제 손으로 저를 때리지 않았나? 만좌중이 다 보시지 않았나?"

원효의 눈에서는 불이 번쩍 났다. 모두 욱 일어났다.

"다들 앉으소. 일어나면 어찌할라노? 윷이나 노세."

원효는 혼자 앉아서 윷판을 옆으로 다이어 놓고 윷가락을 들어서 천장에 닿도록 던지고 벌떡 일어나 두 무릎을 턱 치 며,

"윷이냐, 모냐."

하고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다들 원효의 기운에 눌려 버려서 멀거니 보고 있었다.

원효는 혼자서 서너 번 윷가락을 던지더니 뺨 맞은 작자의 팔목을 끌어앉히며,

"아따, 앉아라. 윷이나 놀자. 사내가 무얼 그만 일로 그러 노."

그 사람을 앉히고 원효는 윷가락 둘을 그에게 주며,

"자, 놀아라. 쟁두하자."

그 사람은 반항할 수 없는 듯이 윷가락을 던졌다. 도다. 원 효가 던진 것은 윷이다.

"내가 먼저 논다."

하고 원효는 기운차게 윷가락을 던졌다. 천정에 올랐던 가 락이 방바닥에 있던 가락을 때려서 큰소리를 내고 모가 되 었다. 다음은 개다.

"모개 넣어라."

뺨 맞은 친구는 비로소 기운이 난 듯이 윷가락을 던졌다.

"모야."

하고 일동이 소리를 질렀다. 분명히 일동은 원효를 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원효가 던진 것이 모가 진 것을 걷어치우면서 한 친구가 나 앉았다. 그중에 몹시 광대뼈가 내밀고 눈이 여덟팔자를 뒤집어 놓은 듯이 눈초리가 위로 올라가서 매우 간판이 사 나운 자였다.

"여보, 이 친구."

하고 그 광대뼈는 윷가락을 걷어 쥐인 채로 원효의 앞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기왕 윷을 놀 바에는 내기를 합시다."

하였다.

"무슨 내기를 하자오?"

원효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이기면 저녁밥을 먹고, 지면 당신이 저녁밥을 굶기 로 합시다."

광대뼈의 이 말에 일동은,

"그거 좋다."

하고 응하였다. 그리고 원효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나 하고 쭈그리고들 앉아서 들었다.

"그거 안 될 말요."

원효는 딱 잡아떼었다.

"왜 안 된단 말요."

광대뼈가 눈을 부라렸다.

"내기란 피차에 같아야 하는 게지. 지금 말대로 하면 나만 앵하지 않소.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내가 지면 내가 오늘 저 녁밥을 굶고 당신네가 지면 당신네가 굶기로, 어떻소."

원효의 제의에 여러 사람은 서로 돌아보았다.

"아따. 그럽시다."

하고 이번에는 새까만 땅딸보가 나앉았다. 그는 옆에 사람 들 보고는 눈을 끔적하였다. 원효가 지면 원효를 밥을 굶기 고 저희들이 지더라도 밥을 먹자는 뜻이었다.

"그래라."

일동이 승낙하였다.

땅딸보는 윷판을 들어서 윷말을 다 떨어버리고 광대뼈의 손에서 윷가락을 빼앗아서 두 짝을 원효에게 주었다.

"말은 내가 쓴다."

하고 말라깽이가 광대뼈를 밀고 나앉았다. 이 말라깽이는 살은 없을망정 뼈가 온통 쇠로 된 듯이 단단해 보였다. 병 신이 아니면 흐미중이 느림보만 보던 원효에게 비록 약한 빛은 있을망정 기운찬 이 무리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속으로 은근히 유쾌하였다.

원효가 먼저 놀아서 도에 붙였다. 땅딸보가 걸에 붙였다.

원효가 모개를 쳐서 땅딸보의 것을 잡아 가지고 연거푸 네 모걸을 쳐서 석 동문이를 구어 빼고 막동을 꽂을 걸에 보내 었다. 말라깽이는 말판 쓰는 데 농간을 하려 하였으나 농간 할 새가 없었다.

땅딸보는 이를 악물고 쭈그리고 앉아서 윷가락을 모아 들 고 잔뜩 꼬났다.

"다서 모 한 걸은 없느냐."

누가 뒤에서 이렇게 응원을 하였다. 땅딸보는 악 소리를 치며 윷가락을 던졌다.

"모야!"

하고 함성이 났다. 또 던졌다.

"모야!"

사람들을 모두 씨근씨근하였다.

그러나 다음 것은 도였다. 땅딸보는 기가 막히는 듯이 윷 가락을 내어던졌다. 두 모로 속모로 가서 원효의 말이 돌아 오는 것을 지키게 하고 한 도를 달아서 뒤로 따를 근거를 만들었다.

원효의 막동사니는 두 모 개면 나는 것이다. 윷가락은 원 효의 손에 들렸다.

다소의 파란은 있었으나 결국 윷은 원효가 이겼다. 일동은 이를 악물고 원효를 노려보았다.

"삼판 양승이다. 두 번 더 놀아라."

하고 광대뼈가 윷가락을 걷어 잡으며 나앉았다.

"아니다. 대장부가 일구이언하겠느냐, 내가 졌다."

하고 땅딸보가 물러앉았다.

밥이 들어왔다. 큰 함지박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흰 밥이 그뜩 차고 시꺼먼 질버치에는 국이 아직도 설설 끓는 소리 를 내고 있었다. 방안에는 밥과 국의 향기가 그뜩 찼다.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선반에서 제 바리때를 꺼내어서 앞에 놓았다. 처음에는 큰 물동이가 돌면서 사람마다 물을 한 그 릇씩 받았다. 다음에는 큰 주걱을 든 사람이 밥 함지를 들 고 돌면서 밥을 펐다. 큰 나무 주걱으로 밥을 이모 재고 저 모 재어서 한 주걱 떠서 바리에 담으면 새로 밥 향기가 코 를 찔렀다. 또 다음 사람의 바리때에 담았다.

국도 그러하였다. 커다란 나무 국자로 듬뿍 국을 떠서는 국그릇에 붓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물국 향기가 물씬하고 코를 받치는 것이다.

원효의 앞에는 바리때가 없었다. 원효의 것은 어젯밤에 풀 피리가 훔쳐간 것이었다.

"바리때도 없소?"

밥을 돌리는 중은 이렇게 말하였다.

"내 바리때는 내 상좌가 지고 벌써 용천사에 왔는걸."

원효는 천연스럽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무리 거랑방이기로 밥그릇도 아니 가지고 다닌단 말요?

체!"

하고 원효를 훑어보더니,

"그 허리에 주렁주렁 단 뒤웅박이라도 내놓오. 아무리 거랑 방이라도 밥은 먹어야 살지 않소?"

하고 밥 푸는 사람은 손을 내밀었다.

"이녁 먹을 것이나 푸고는 그 밥 함지와 국 버치를 내 앞 에 놓오. 물동이도 내 앞에 놓고."

원효는 이렇게 말하였다. 밥 돌리던 사람은 눈이 둥그래지 며,

"그것은 왜요?"

하고 들고 가려던 밥 함지를 원효의 앞에 놓았다. 그는 중 이었다.

"내가 아까 이 사람들과 밥 굶기 내기 윷을 놀았소. 이기는 사람만 먹고 지는 사람은 안 먹기로. 그런데 내가 이기고 이 사람들이 졌단 말요. 그러니까 밥 먹을 사람은 나 하나 밖에 없고, 저 친구들은 냄새나 맡고 물이나 마시게 되었소.

보아허니, 이 양반들은 다 천하에 호걸들이신 모양인데, 대 장부 일구이언을 할 리가 없겠지. 여보 그 국그릇도 여기 놓으시오. 물동이는 여기 놓고."

하고 원효는 손으로 놓을 자리를 가리켰다.

국그릇을 가진 중은 원효가 놓으라는 자리에 국그릇을 놓 았다. 그러나 물동이 든 중은 놓을까말까 하는 모양으로 좌 중을 돌아보았다. 좌중에서는 눈만 부라리고 말이 없었다.

"왜, 안 놓소? 어서 놓으라면 놓아."

하고 원효는 호령하였다. 조용하던 방이 쩡쩡 울리도록 큰 소리였다. 그 중은 얼걸에 물동이를 내려놓았다. 원효는 밥 함지를 머리에 떠받들고,

"삼보께 공양하나이다."

"중생아 다 배부를 지어다."

하는 두 마디를 외우고 나서 혼잣말 모양으로,

"어허, 내가 오늘 무슨 공덕을 쌓았길래, 이 밥을 받나. 부 처님께서는 중생을 위하시와 무량겁의 근고를 하셨건마는, 하루 한 때밖에 밥을 안 자셨거늘 나는 무엇을 했길래로 아 침 낮에 밥을 배불리 먹나. 어허 두려운지고. 이 쌀 한 알이 밥이 되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중생의 수고는 얼마나 하 며 하늘과 땅의 수고는 얼마나 한가. 일 아니하고 밥을 먹 는 것은 중생의 피를 빨아먹는 것과 같다. 도적이다. 도적이 다. 나는 도적이다. 밀한 이삭 주인 모르게 먹은 죄로 소가 되어 그 빚을 갚았다 하거든. 이 밥 한 그릇 값없이 먹은 죄는 얼마나 할까. 아 무서워라, 무서워라."

원효는 눈앞에 무서운 것이 보이는 듯이 몸을 떨었다.

좌중은 멀거니 원효의 하는 양만 보고 있었다. 앞에 밥그 릇에서 김이 오르고 밥의 향기가 나는 것도 잊은 것 같았 다.

원효는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어 창을 한다.

"이룬 공 없이 중생의 수고를 먹어 천겁에 중생의 몸을 받느니보다 차라리 굶어 이몸이 죽으리라."

이렇게 두 번을 불렀다. 그 청에 좌중은 황홀하였다.

그들은 평생에 이러한 소리를 들은 일이 없었고 또 그런 것을 생각한 일도 없었다. 욕심은 많고 일하기는 싫으니 힘 아니 들고 욕심을 채울 욕심으로 도적이 된 것이었다.

원효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는 마디마디 일동의 폐간을 찔렀다.

원효는 다시 혼잣말을 계속하였다.

"내가 밥을 받아먹을 아무 공덕도 없는 것을 생각하니 이 구수한 밥내를 맡는 것도 가슴을 에는 것 같구나. 작년 흉 년으로 쉴새없이 일하는 농부들도 풀뿌리를 삶아서 연명을 하고 있는 터에 이 하얀 밥이 황송하다."

하고 원효는 밥 함지를 번쩍 들고 문밖으로 내어대고,

"굶주리는 중생들아 밥내라도 맡으소."

하였다. 밥그릇의 김은 굶주리는 중생을 향하여 떠나는 듯 이 모락모락 공중으로 올랐다.

원효는 밥 함지를 놓고 다음에 국그릇을 번쩍 들고서,

"자, 국내도 맡으소. 금년에는 오곡이 풍등하여 배불리들 먹으소."

하고 도로 제자리에 놓은 뒤에 손으로 밥 한 주먹을 움켜 들고,

"좌중에 말하오. 마음 같아서는 이 밥을 아니 먹고 굶어 죽 고 싶소마는 목숨이 모질어서 이 밥을 먹소. 내가 온종일 먼 길을 와서 몹시 시장해. 그러나 내 여러분께 맹세하오.

이 밥이 내 뱃속에 들어가서 삭는 동안에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모든 악심을 삭여 버리고 내일 아침 해 뜰 때부터는 중생을 위해서 무슨 일이나 하는 사람이 되려 하오. 만일 이 말이 거짓말이 되어서 이 밥을 먹고도 또 중생의 것을 훔쳐먹는 사람이 된다면 내 먹는 밥이 알알이 송곳이 되어 영겁에 내 몸을 꼭꼭 찌르고 꺼지지 않는 불길 되어서 무간 지옥에서 이몸을 태울 것이오. 내 맹세를 제불보살과 천지 신명과, 또 이 지라에 계신 여러 호걸들이 증명하시오."

하고 주먹에 든 밥을 입에 넣고 맛있게 우물우물 먹었다.

주먹으로 밥을 쥐어 먹고는 국 버치를 번쩍 들어서 국을 마 시고 이렇게 몇 차례 한 뒤에,

"고마와라. 배가 불룩하니 새 기운이 나오."

하고 이번에는 물동이를 들어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 고는 원효는 만족한 듯이 입맛을 쩍쩍 다시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제 정신이 들어서 제 밥그릇을 내려다보 았다. 말라깽이는 무슨 궁리를 하는지 눈을 깜작깜작하고 있으나 땅딸보만은 까딱 아니하고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그는 대장부의 일언을 지킨다는 결심이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 눈을 힐끗힐끗 다른 사람들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누구든지 먼저 먹는 사람만 있으면 저도 따라 먹자는 것이다.

밥과 국을 돌리던 중들은 이 야릇한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 만 있었다.

이 구석 주 구석에도 침 삼키는 소리가 더욱 커지고 더욱 잦아졌다. 배들은 고프고 구미는 동하고 입에서 침이 쉴새 없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의 눈은 원효에게로 모이기 시작하였다. 침을 꿀꺽 삼키고는 원효를 바라보았다.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떨어져 야만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이 생각된 까닭이었다.

방 한복판에는 아직도 윷가락이 자빠지고 원효의 막동사니 를 두 길로 따라가다가 만 말 둘이 아직도 말판에 놓여 있 었다. 하나는 날개요, 하나는 속윷이었다.

원효는 짐짓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못 보는 체하고 두 손 을 무릎 위에 놓고 한가로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이 밥 먹고는 악심을 안 내고 일을 잘 하겠노라고 맹세를 하고 먹을까.'

광대뼈는 이런 생각을 하였으나 그 말이 입 밖에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원효는 의외로 생각하였다. 이 사람들이 이만큼 한번 한 말을 지키는가 하고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자 어서들 자시오."

하고 싶었으나 그들이 대체 얼마나 한 자제력이 있고 통제 력이 있는가, 나중에 그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가 보고 싶었다.

혹은 그들이 원효에게 대하여서 폭행이나 아니할까 염려도 하였으나 만일 그리 된다면 거기서 또한 그들의 본심을 알 수도 있고 그들에게 도를 깨닫는 기틀을 줄 수도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목젖이 불쑥하고 오르내리는 것이 보였다. 비인 입을 우물우물하였다. 눈을 내리깔아서 밥을 보고는 또 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마치 마 아밥을 볼 수 없어 하는 것 같았다.

광대뼈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광대뼈는 눈을 꽉 감고 침을 한번 삼켰다. 땅딸보는 좌선하는 중 모양으로 눈 을 모아서 허공을 바라보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원효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이 광경을 더 오래 계속하는 것은 자비심에 어그러지는 것 같았다. 배가 고픈 것도 어려 운 일이어니와 먹을 것을 앞에 놓고도 못 먹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말라깽이는 몇 번 목젖을 불룩불룩하더니 이쪽저쪽으로 눈 을 꿈적꿈적하였다. 그러나 하나도 그의 군호에 응하는 사 람이 없었다. 땅딸보는 도리어 말라깽이를 향하여서 눈을 흘겼다.

원효는 그것이 더욱 고마웠다.

"여러분께 한 말씀 여쭈오."

하고 원효는 공손히 이마를 땅에 대이고 말하였다.

"여러분은 과연 의리가 있는 이들이오. 장난삼아 한번 하신 말씀을 그대도록 정성으로 지키시니, 필시 전생에 많이 도 를 닦고 이생에서는 좋은 일 많이 하시려는 원으로 태어나 신 이들일시 분명하오. 이제 이 사람이 한 가지 여러분께 간청할 말씀이 있소. 그것은 무엇인고 하니 비록 저녁을 굶 으시기로 마음을 작정하셨더라도 그만하시고 잡수시오. 지 금 잡수시더라도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오. 한 가지 더 청할 것은 이 밥이 여러 중생의 피와 땀으로 되었 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시고, 이 밥을 잡수시고 몸이 튼튼 하시고 기운이 많으시와, 중생을 많이 도우시와서 위로는 사중은(四重恩─君, 父, 衆生, 師)을 갚으시고, 아래로는 삼 도고(三途苦─地獄, 畜生, 餓鬼)를 건지시는 갸륵하신 어른 네가 되소서 함이오."

하고 잠깐 고개를 들어서 일동을 둘러보고,

"한자리에 앉는 것도 천겁의 인연이라 하였사오니, 여러분 네는 이 사람의 사뢰는 말씀을 들어 주시옵소서."

하고 한번 더 머리를 방바닥에 대고는 바로 앉았다. 사람 들의 얼굴에는 살아났다 하는 빛이 돌았다.

"자 먹세."

이것은 광대뼈였다.

"그럼 먹습니다."

이것은 땅딸보였다.

"당신도 좀더 잡수시지."

이것은 말라깽이였다.

손들이 분주히 밥에서 입으로 오락가락하였다. 쩍쩍 밥 씹 는 소리, 국 마시는 소리가 났다. 모두 씨근씨근 숨이 찼다.

이때에 먹는 밥은 특별히 맛이 있었다. 배고프고 먹고 싶 은 것을 참다가 참다가 먹는 밥이라 입에 돌아가는 대로 꿀 이 되고 배에 들어가는 대로 피가 되었다.

원효는 가만히 그들이 먹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는 아무 잡념이 없었다. 마음 전체가 입으로 몰렸다. 몸이 온통 입이 된 것이었다. 살려는 본능이 얼마나 강한가를 목도하 였다고 원효는 생각하였다. 더구나 기운찬 젊은 사람들이요, 탐욕이 남달리 많은 사람들임을 볼 수가 있었다. 저마다 밥 과 국을 남보다 먼저 더 먹으려고 눈은 뻘갰다. 순식간에 밥 한 알, 국 한 방울 없이 다 먹어치웠다. 동이에 물 한 방 울도 남지 아니하였다.

좀더 먹었으면 하는 듯이 군입을 다시면서 제 밥그릇을 부 시어 혀로 핥듯이 다 먹어 버렸다.

말라깽이가 과식을 하여서 끄륵끄륵 트림을 하고 있었다.

밤이 되어도 풀피리는 보이지 아니하였다. 원효는 궁금하 게는 생각하나, 그렇다고 그들에게 묻기도 안 되었ㄷ고, 또 무턱대고 찾아 떠날 수고 없었다.

'一聲草笛 鳳龍來儀'는 저를 비봉산 용천사에서 찾으라는 풀피리의 말이라고 원효는 해석한 것이었다. 더구나 용천사 판도방에 모여 있는 무리의 행색을 보니, 도적의 졸개들일 시 분명하였다. 그럴진댄 반드시 피리를 만날 길이 있을 것 이요, 그리되면 공주와 아사가 남매의 일을 알리라 하고 여 러 사람들과 함께 목침을 베고 드러누워 있었다.

그들은 있는 소리, 없는 이야기로 계집과 놀던 소리를 하 고 있었다. 하나도 제 처자는 없는 모양이었다. 아마 그들은 이야기를 만들어 가지고 그것을 남에게 들리는 것을 만족으 로 삼는 모양이었다.

"그년, 암만해도 말을 안 듣길개 모가지를 꼭 졸라매고."

이런 소리는 하는 자도 있었다. 듣고 보면 모두 사람깨나 죽인 사람들일는지도 모른다고 원효는 생각하였다.

거지들은 대개 탐욕은 있어도 그것을 실행할 기운이 부족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음에 드는 것을 보면 바라보고 부러워할 뿐이었으나, 이 사람들은 탐나는 것을 보면 곧 칼 이나 몽둥이를 가지고라도 그것을 제 것을 만들고야 마는 것이었다.

사람 안 보는 데서 남의 물건을 몰래 집어가는 일도 노상 아니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이 사람들은 어떤 저항을 배제 하고 목적물을 빼앗아야 비로소 만족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이 가장 천히 여기는 것은 좀도적이어서, 만 일 좀도적이 눈에 뜨이기만 하면 가만두지 아니하였다. 저 희는 범이라 하고 좀도적은 고양이라 하였다.

큰 저항을 배제하여야 목적을 달하기 때문에 그들은 한 두 목밑에 굳은 단결을 지었다. 그들은 웃사람의 명령에 복종 하고 또 동무의 원수를 갚을 의리가 있었다.

원효도 도적 나라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신라에 한 분 만이 계시는 임금 모양으로 신라 도적에도 대두목이 하나가 있었다. 세상에서 알기는 그가 바람복이었다.

대두목 밑에는 여러 층으로 소두목이 있어서 마치 나라의 조직과 같았다.

원효는 이번 기회에 이 도적 나라의 내정을 알아보고 싶었 다.

듣는 바에 의하면 고구려에도 그런 도적의 나라가 있어서 나라로서는 도적 중에서 쓸 만한 자를 뽑아서 장수를 삼는 일도 있어 그러한 장수들이 용감하게 싸운다고 하고, 또 고 구려에서는 거지를 이용하여서 신라와 백제에 들여보내어 염탐군이 되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신라와 같은 작은 나라 에서는 그런 것을 이용하였단 말을 못 들었다.

원효는 저 거지의 떼와 이 도적의 떼를 나라 일에 이용할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도 하고, 또 저 땅딸보 같은 자가 불 도에 들어올 양이면 필시 힘있는 중이 되어서 큰 일을 하지 아니할까, 이러한 생각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음담패설도 차차 적어지자 코를 고는 사람이 하 나씩 둘씩 늘었다.

밤새 소리가 들렸다. 코도 힘있게 골았다.

다들 잠이 들었다. 말라깽이도 오줌을 누러 나가는 모양이 더니 들어오는 길로 잠이 들었다. 어두워서 사람들의 얼굴 은 보이지 아니하고 숨소리와 코고는 소리만 들렸다.

"이놈, 이놈."

하고 잠꼬대를 하는 자도 있었다.

수도생활을 하는 자도 전생 기억으로 무서운 꿈을 꾸려든 살인 강도하는 자의 꿈이 편안할 리가 없어서 그들의 잠든 모양은 화평하지를 아니하였다. 꺽꺽하고 숨이 막히는 소리 를 하는 자도 있었다.

"응, 응."

하고 무서운 것에 쫓기는 소리를 하는 자도 있었다.

원효는 가만히 일어나 앉아서 관세음보살을 염하였다.

"이들의 마음의 어두움을 당신의 빛으로 밝히시고, 이들의 괴로워하는 넋을 당신의 손으로 만져 편안하게 하시옵소서."

하고 원효는 비는 것이었다.

원효가 이렇게 관세음보살을 염할 때에 문득 피리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분명히 옥미원에서 듣던 곡조였다. 원효는 방안에 누운 무리를 제도할 것을 굳게 맹세한 뒤에 밖에 나 섰다. 캄캄하였다. 봄의 어두움이란 원래 심한 법인데다가 수풀 속이라 과연 칠통과 같았다. 게다가 먼 데가 뿌연 것 을 보면 안개가 있는 모양이었다. 원효는 피리 소리 나는 데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쯤 가서 원효는 옥미원에서 부르던 노래를 피리에 맞 추어서 불렀다.

피리 소리가 잠깐 그쳤다.

원효도 우뚝 섰다.

얼마 후에 다시 피리 소리가 났다. 원효는 또 그 가락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이번에는 피리 소리가 그치지 아니 하고 더욱 힘차게 계속되었다.

원효는 바위를 돌고 나무를 피하여서 걸었다. 소리는 가까 운 듯하면서 암만 걸어도 그만하였다.

원효는 어떤 등성이에 올라섰다. 거기서 소리 한마디를 길 게 뽑았다.

그때에 원효가 바라보고 있는 편에서 불이 번쩍하였다. 피 리소리가 끊이더니 불이 움직이기를 시작하였다.

원효도 불을 향하고 마주갔다. 절에서 십리는 온 것 같았 다.

마침내 불이 원효의 앞에 와 섰다.

"내가 피리요."

하고 피리는 등을 들어 제 얼굴과 원효의 얼굴이 비치도록 하였다.

"나는 소리요."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하하하하."

피리가 먼저 웃었다. 그는 장삼을 입고 거사로 차리고 있 었다.

"하하하하."

원효도 웃었다.

"나는 대사께서 오늘이야 웬걸 오시야. 아마 내일이나 모레 쯤 오실 줄 생각하고 있었소."

하고 그는 등을 들고 앞을 섰다.

원효는 뒤를 따랐다.

피리는 걸으면서 원효에게 용천사 말을 물었다. 원효는 내 기 윷 놀던 말과 밥 먹던 말을 하였더니 피리는 원효를 돌 아보고 소리를 내어서 웃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 네 부하냐, 이런 말은 묻지 아니하였다.

골짜기를 몇 건너자 길에 나서서는 차차 낮은 데로 내려갔 다. 달이 떴다.

원효가 인도받은 곳은 큰 촌락이었다. 마을 앞에는 꽤 큰 개천이 흘러 달빛이 번쩍거리고 촌락에는 기와집이 즐비하 였다.

"누추한 곳이오."

하고 피리는 한 대문을 두드렸다.

삐걱하고 대문이 열리고 개가 내달았다. 개는 원효를 한번 쳐다보고는 피리를 보고 꼬리를 치고 앞을 섰다.

사랑으로 들어갔다. 으리으리한 차림차림이었다. 거기는 원 효의 바랑과 바가지들이 놓여 있었다. 예가 끝나고 좌정한 뒤에 피리는 웃으며,

"저 짐을 먼저 날라 온 것이 손님 대접이오. 하하하."

하고 나서,

"공주와 아기와 아사가 남매 다 편안하시니 내일 아침에 만나시기로 하고 오늘 저녁은 편히 쉬시오."

하고는 찬란한 잠자리를 깔아놓고 들어가 버린다.

원효는 잘 자고 잠이 깨었다. 창이 훤하고 참새들이 지저 귀었다.

원효는 용천사 판도방 패가 잠이 깨어서 원효가 간데 없는 것을 보고 문제가 되었으리라 생각하니 우스웠다.

세수물이 나오고 아침상이 나올 때에 피리는 장삼이 아니 요, 속인의 옷을 입고 나왔다. 모두 옥색 명주였다. 그렇게 차리니 귀인 같았다. 그는 장삼을 입으면 거사와 같고 방갓 을 쓰고 방아라를 걸치면 또 방아 같았다. 무엇을 입어도 어울리고 무엇을 차려도 그럴듯하였다. 옥같이 흰 얼굴에 까만 구레나룻이 제비날개 모양으로 나고 눈에 인정스러운 광채가 있었다.

아직 통성명도 아니 하였건마는 벌써 친하였다.

원효의 상은 특별히 소찬이요, 피리의 상은 육찬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에는 말없이 밥을 먹고 있었다.

피리는 무슨 말을 할 듯 할 듯 원효를 힐끗힐끗 바라보았 다. 원효도 공주 일행의 말을 묻고 싶었으나 계제를 만나지 못하였다.

"원효대사."

하고 피리가 먼저 입을 열어서 물었다.

"나는 원효대사가 아니라 소성거사요."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글세. 그야 대사시거나 거사시거나 사람은 한 사람 아니 오."

피리는 숟가락을 멈추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그렇소. 본래는 원효대살러니 이제는 소성거사요."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면서 훌훌 국을 마셨다. 산나물 국이 었다.

"그러실는지 모르겠지마는 나는 소성거사라고 부르기는 싫 소그려. 원효대사 한 분을 잃어버리기가 싫단 말이`오. 그는 그렇다 하고 내가 어떤 사람이요, 여기가 어딘지는 벌써 짐 작하시겠지요?"

피리는 싱긋 웃는다.

"당신은 피리를 잘 부시니 나는 당신을 피리라고 이름을 지었고, 이 동네는 아마 당신네 같은 이들이 사는 소굴인가 생각하오."

원효의 이 말에 피리는 발연히 변색하고 숟가락에 상에 던 지면서,

"아니, 어쩐 말씀이오. 소굴이라니? 대사가 망녕이시오그 려."

하고 원효를 노려본다.

"소굴이란 말을 모르시오. 날짐승이 사는 데를 소라 하고 길짐승이 사는 데를 굴이라 하여, 무릇 짐승들이 모여 사는 데를 굴이라 하거니와 도적을 짐승으로 보는지라 도적이 모 여 사는 곳을 소굴이라 하는 것이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데를 마을이라 하고, 신들이 모여 사는 데를 시로라 하고, 중들이 모여 사는 데를 절이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오?

내가 바른대로 말하였거든 댁이 노열 것이 없지 않소. 그럼 무엇이라고 불렀으면 좋겠소."

원효는 빙그레 웃었다.

피리는 노한 빛을 약간 거두며,

"대관절 대사가 어찌하여 이곳에 오신지 아시오?"

하고 몸을 바로하여 위엄을 갖추었다.

"내가 온 일을 내가 모를 리가 있소. 도적의 떼에 잡혀간 내 가솔과 제자들을 찾으러 왔소."

"찾으러 왔다? 대사 마음대로 찾아갈 것 같소."

피리는 '안 되리라'는 듯이 입을 다문다.

"내 처자와 내 제자를 내가 데려갈 것을 누가 못하게 할 까."

원효의 어성도 컸다.

"원효대사가 도력이 크고 이름이 높아서 천하를 횡행하여 도 거칠 것이 없을는지 모르겠소마는, 도적의 소굴에 잡혀 왔다가는 호락호락하게 놓여 나가기 어려우리다."

"하하하하. 요석공주가 나를 사흘 동안 요석궁에 잡아 가둔 일은 있소마는 광대무변한 이 법계(法界)에는 아무도 원효를 막을 자가 다시는 없을걸. 하하하하."

하고 원효는 한바탕 실컷 웃고 난 뒤에 흥에 겨운 듯이 젓 가락으로 밥상을 두들겨 장단을 맞추면서,

"一切無碍人이 一道出生死를."

하고 길게 뽑았다.

그러는 동안 피리는 전신이 화석이 된 듯이 눈알도 움직이 지 아니하였다.

원효는 마음껏 소리를 뽑고 나서는 밥그릇에 물을 부어서 숟가락에 듬뿍듬뿍 퍼서 입에 넣었다.

피리는 원효의 이 방약무인한 모양에 견딜 수 없는 모욕을 느꼈다.

"내가 원효를 죽이더라도. 원효를 죽이고 살리는 것이 내 손에 달렸거든."

이렇게 피리는 얼렀다. 그러나 그 소리는 쭉 펴이지를 못 하였다.

원효는 잠시 물끄러미 피리를 바라보더니,

"하핫하핫."

하고 크게 웃는 바람에 입에 물었던 밥이 튀어나와서, 반 찬 씹힌 것과 아울러 피리의 얼굴과 전신을 수없이 때리고, 더러는 그냥 붙어 있고 더러는 방바닥에 떨어졌다.

피리는 맴을 돌린 사람 모양으로 정신을 진정할 수가 없었 다. 산전수전 다하고 몸과 마음이 닦일 대로 다 닦인 줄로 자신하고 있던 피리도 이러한 경우는 처음 당하고 이러한 사람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원효는 한참 웃고 난 뒤에,

"어, 그 밥풀이 모두 얼굴에 붙어서 안 되었소."

하고 팔을 쑥 내밀어서 피리의 얼굴을 이마에서 턱까지 쓸 어 주었다.

피리는 원효의 팔을 부러져라 하고 홱 갈겼으나 원효의 팔 은 어느 새에 제 자리에 돌아오고 피리의 팔이 제 밥상을 쳐 국그릇을 둘러엎어서 무르팍이 젖고 쇠고기 비린내가 방 에 찼다. 피리는 더욱 원효에게 밟힘을 느꼈다.

"거, 어디 그 솜씨 가지고야 원효를 죽이겠소. 원효를 친다 는 것이 제 국그릇을 쳤으니 남이 안 보았으니 망정이니 큰 망신하실 뻔했소그려. 자, 어서 국 한 그릇을 더 가져오래서 밥이나 자시오. 국만 아니라 한 상을 다시 차려오라시오.

어, 그 반찬 그릇에 모두 내 입의 밥이 튀었군."

하고 원효는 먹던 밥을 다시 먹는다.

"그래. 살아서 이 동네를 벗어날 것 같소?"

피리는 겨우 정신을 차린 듯이 원효를 향하여 활을 당기는 것이었다.

"어, 또 그런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구려. 그러니까 웃음이 터지지 않소. 내가 살아 나가고 싶으면 살아 나가고 죽어 가고 싶으면 죽어 나가는 것이지, 누가 나를 죽이고 살리고 한단 말요? 화불능소, 수불능표(火不能燒, 水不能漂)란 말도 못 들었소. 하늘도 나를 어찌하지 못하려든 탐진치를 가진 범부가 천만 명 덤비기로 나를 어찌한단 말요. 당신은 도적 부하 몇천 명, 몇 만 명 되는지 모르지만 내게는 천지에 모 든 선신(善神)이 따르고 있고, 무변법계에 제불보살이 다 내 편이니 내가 도를 잃는 날이면 모르되 내가 정정당당하게 불도로 나가는 동안에는 천지가 모두 합하기로 나를 어찌한 단 말이오. 피리, 노형이 만일 눈이 바로 뜨였다면 내 옆에 저 무서운 방망이를 든 금강역사가 옹위하고 섰는 것을 보 리다."

원효의 이 말에 피리는 몸에 소름이 끼침을 깨달았다. 아 까부터도 무엇인지 제 몸을 누르고 때리는 듯하여서 원효에 게 저항하기 어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피리도 지금 원효가 한 말과 같은 말을 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소 리는 다 허황한 소리라고 생각하였다. 사람에게 낙을 가져 오는 것은 재물과 술과 계집이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칼이 라고 믿고 있었다.

피리도 귀신을 무서워한다. 산에 가면 산신령이 계시고 물 에 가면 물신령이 계시고 집에 오면 집에 모시는 여러 신령 이 계시다고 믿는다. 그래서 큰 도적질을 떠날 때에도 송아 지 드릴 데는 송아지, 도야지 드릴 데는 도야지, 닭 잡아 제 사할 데는 닭, 소로 할 데, 시루떡으로 할 데, 다 가려서 제 사를 드린다. 그들은 신령도 이렇게 재물을 바치기만 하면 다 말을 들어주실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도적의 제사를 받 는 귀신은 도적 귀신이요 결코 선신이 아니실 것은 생각하 지 아니한다. 선하신 신명이 받으실 제사는 마음 착한 이가 바치는 제사인 줄을 모른다.

원효의 말 중에 가장 피리에게 무섭게 들인 것은 천지의 모든 선신이 다 제편이라는 말이었다. 과연 그렇다 하면 그 것은 큰일인 것 같았다.

원효가 밥을 다 먹고 상을 물릴 때에 피리는,

"대사도 도적의 밥을 자시지 아니하였소?"

하고 웃었다.

"내가 도적의 밥을 먹었을 리가 있소. 선한 중생의 공양을 받았소."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쩐 말씀이오? 금방 내 집에서 지은 밥을 자시고서도 아 니라 하시오?"

피리는 이렇게 역습하였다.

"도적의 손에 쌀 한 알이 지어질 리가 있소? 다 선한 중생 이 임금의 땅에 땀을 흘리며 천지신명의 이 되게 하신 것이 지."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고 잠깐 멈추었다가,

"도적의 입에 밥 한 알이 들어갈 리가 있소? 오늘이나 오 늘이나 하고 도적들이 바른길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밥을 먹여 살린 것이지. 만일 기다릴 만치 기다려도 회과천선을 아니 하면 나라에서는 법의 칼이 움직이고 저생에서는 지옥 의 불이 노형을 태우려고 마련될 것이오. 그런데 아마 오늘 이 그 한 날인 것 같아."

이렇게 말하고 원효는 피리를 뚫어지게 보았다.

피리가 분명히 무엇인지를 아는 이가 없다. 세상에서는 그 를 번개라고도 부르고 또 원효가 부르는 모양으로 피리라고 도 부른다. 그를 번개라 하는 까닭은 그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되 번쩍할 뿐이요 자취를 찾을 수 없단 말이다.

세상에서는 그가 둔갑장신을 한다고 믿고 있고, 어떤 이는 그가 사람과 귀신과의 사이에 난 아들이기 때문에 어떤 때 에는 사람의 모양을 나토아서 눈에 띄고, 또 어떤 때에는 귀신이 되어서 사람이 보지 못하게 다닌다고까지 한다.

피리는 대두목 바람의 책사다. 이를테면 제갈 양이다. 전신 라 수만 명 도적의 떼를 지휘하는 두령이 곧 바람과 번개 다.

바람은 벌써 육십이 가까운 늙은 사람이지마는 아무도 그 의 모양을 본 이가 없다. 그의 하는 일은 뚜렷이 보이는데 몸은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 바람과 같다고 하여서 바람이라 고 불려지는 것이다.

피리는 젊은 사람도 되고 늙은 사람도 되고 여러 가지로 변형을 하였고, 목소리까지도 변하는 재주가 있었다. 게다가 몸이 날래기 제비와 같다는 것이다. 몸만 그러한 것이 아니 라 꾀로도 일찍 누구에게 져 본 일이 없다는 것이다.

큰 고을을 습격하거나 하는 일은 다 피리의 꾀에서 나온 것이요, 이번에 원효를 유인해 온 것도 피리의 꾀였다. 수없 이 관군의 토벌을 당하였으되 언제나 꾀로 관군을 이기어 깜쪽같이 면하는 것이었다.

그러하던 피리가 오늘 밥 먹는 동안에 원효의 손에 공기 놀 듯이 놀리운 것이다. 꾀를 내려도 베풀 곳이 없고, 일어 나 싸우려도 원효는 그러한 틈을 주지 아니하였다. 원효는 마치 발붙일 수 없는 석벽인 것 같았다. 원효가 하도 만만 하게 그려온다 생각하였기 때문에 피리의 타격은 더욱 큰 것이었다.

'과연 거물이로구나.'

피리는 속으로 원효를 탄복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원효기 로니 이 소굴에 잡혀온 뒤에야 제 무슨 재주로 빠져나가랴, 이러한 생각도 있었다.

이때에 밖에서,

"군사 안전(軍師案前)에 아뢰오."

하는 소리가 있었다.

원효는 군사란 말에 빙긋 웃었다.

"오오. 무슨 일이냐."

피리는 창을 열며 점잖은 소리로 대답하였다.

"장군마마께옵서 손님 인도하시고 듭시라 하옵시오."

붉은 방아라에 벙거지를 쓴 자는 이렇게 아뢰었다.

원효는 이 무리가 영작자문을 만들어 가지고 관에서 하는 모양대로 흉내내는 것을 알았다.

"오오. 지금 곧 갑니다고 아뢰어라."

피리는 이렇게 말하여서 사자를 돌려보내고 원효에게,

"자, 일어나시오."

하고 재촉하였다.

"어디로 가는 게요?"

원효는 이렇게 물었다.

"우리 장군 계신 데로 가는 게요."

피리는 위엄을 보이려 한다.

"당신네 장군이라니 바람이란 이요?"

"그렇소. 세상에서 바람이라고 일컫는 이요. 천하에 아니 가는 데가 없으되, 흔들리는 나뭇가지는 보여도 바람의 몸 은 아니 보이듯이 우리 장군으로 말하면 자취는 보여도 몸 은 못 본다 하여서 천하가 바람이라고 일컫소."

원효는 피리를 따라서 나섰다. 그 동네에서 나와서 갖은 시내를 끼고 얼마를 올라가면 조그마한 고개가 있고 그 고 개를 넘으면 늙은 소나무와 새로 나불나불 잎이 피는 느티 나무, 들매나무, 홰나무들이 있는 커다란 집이 있었다. 얼른 보기에도 여러 백 년 된 고가인 것 같았다.

"저 집이오."

하고 피리가 원효에게 말하였다.

"어, 대단히 고가로군."

원효는 고개턱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고가고말고. 우리 신라 나라보다 더 오랜 집이오. 상아강 아[辰韓] 적부터 있는 집이니까."

피리는 자랑하는 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상아강아 적부터?"

원효는 놀랐다.

"그렇소. 도적 나라의 내력을 말할 테니 들어 보시오."

피리는 바위 하나를 골라서 원효더러 앉으라 하였다.

도적 나라의 내력이란 말에 원효는 빙그레 웃었다.

피리는 설명을 시작한다.

"세상에 도적이 있는 것이 마치 세상에 중이 있는 것과 같 습니다."

이것이 첫말이었다.

"그건 또 웬 소리요?"

원효는 정말 놀래어서 물었다.

"원효대사도 그까지는 모르시는군."

피리는 한번 이기었다 하는 듯이 웃는다.

"도적과 중과 같다?"

원효는 한번 더 외워 본다.

"들어 보실라오. 세상 사람이란 중간이 많은 거야. 도적도 싫고, 중도 싫고, 그러나 유시호 도적질할 생각도 내 보고, 중노릇 할 생각도 내 보고, 그러면서도 중도 못 되고 도적 도 못 되고 일생을 보내는 것이 중간치기란 말요. 세상이란 그러한 중간치기들로 되어 있습니다."

피리는 원효가 찬성하나 반대하나 눈치를 본다.

"그렇지. 당신 말이 옳소."

원효는 찬성하는 뜻을 표하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도적질을 먼저 하면 도적이 도고, 중질을 먼저 하면 중이 되는 것이야. 한번 도적질을 하면 생전 도 적이 된단 말요. 도적질을 하니 죄인이 되어, 죄인이 되니 달아나, 달아나니 도적질을 할 수밖에. 중도 그렇지 않소?

원효대사도 요석공주한테 장가를 드시고는 거사 행세를 하 나 봅디다마는 세상이야 어디 그런가, 여전히 원효대사지.

그러니까 도적과 중이 마찬가지란 말요. 하하하하 안 그렇 소. 대사?"

여기 대하여서는 원효는 찬성하는 뜻은 표하지 아니하였 다. 그래서 화두를 돌렸다.

"그런데 도적 나라의 역사가 신라 나라보다 오래다는 것은 무슨 소리요?"

"아따, 그것도 모르시오. 벌에도 도적 벌이 있고, 개미에도 도적 개미가 있지 아니합디까. 이 세상에 사람이 살기 시작 할 때부터 도적도 있기 시작했단 말요. 마한, 진한, 변한이 생길 때에 벌써 도적의 나라가 생겼단 말요. 우리 신라 나 라에 도적의 첫 두목으로 말하면 망난이란 사람이오. 전하 는 말에 의하면 시조 박 혁거세와 같은 선생 밑에서 공부를 하였답디다. 그러다가 박 혁거세가 임금이 되니, 망난이는 산으로 들어가서 도적이 두목이 되고 만 것이오. 시조께서 나와서 나라를 다스리자 하시니까 망난이는 대답하기를 그 대는 착한 백성이나 다스리소, 나는 악한 백성을 다스림세, 하고 아니 나갔다 하오. 딴은 그렇기도 하단 말요. 그 많은 도적을 다스리는 사람이 없으면 나라이 서 갈 수가 있나.

안 그렇소. 대사?"

피리는 또 말을 끊고 원효의 눈치를 본다.

"도적을 다스리다니 어떻게 다스린단 말요? 도적에게도 법 이 있고 도가 있소?"

"허, 원효대사만한 이가 그런 말을 해서 쓰겠소? 당신네 중 들도 왕법의 다스림은 안 받더라도 불법의 다스림은 받지 않소? 도적도 마찬가지요. 도적에도 도적의 도가 있고, 도적 의 법이 있길래로 무고한 백성이 살아가고 또 도적의 나라 가 천추만세에 누려 가는 것이 아니오?"

하고 피리는 뽐낸다.

"어디 그 도적의 도라는 것을 좀 들어 봅시다."

원효는 재미있는 듯이 눈썹을 쭝긋하였다.

"도적의 도를 내 말할게 들어 보시오. 첫째로 가난한 사람 의 것을 빼앗지 말지어다."

"그래서."

원효는 유심히 듣느라고 눈을 감는다.

"둘째로는 나라 것을 건드리지 말지어다."

"옳지, 충이렷다."

원효는 눈을 감은 채로 대꾸를 한다.

"셋째로 바른 사람의 재물을 빼앗지 말지어다."

"흥, 의렷다."

"넷째로 잠든 사람의 것을 빼앗지 말지어다."

"그건 또 무엇인가."

원효는 눈을 떴다.

"잠든 짐승을 죽이지 말라고 안 했소."

"흥, 살생유택이라."

"그렇지. 당신네 중들이 이른바 자비심도 되겠지마는 우리 네는 그것을 좀도적이라고 아주 천하게 여기는 거요."

피리는 정말 좀도적을 멸시하는 정을 낯에 보인다.

"또."

하고 원효는 다음을 재촉한다.

"다섯째는 혼자서 지고 가는 짐을 빼앗지 말 것."

"또."

"유부녀를 겁탈하지 말 것. 수절과부를 겁탈하지 말 것."

"그렇게 여섯 가지만이오?"

원효는 눈을 떴다. 노송 가지에서 까치가 지저귄다.

"어떻소? 우리 도적 나라의 법이 어지간하지요. 이것이 몇 천 년 내려온 법이오."

피리는 이렇게 말하고 수염을 내려쓴다.

"그러면 어떤 물건을 빼앗아 오오?"

원효는 피리의 눈을 본다. 대단히 빛나는 눈이다.

"백성의 원망을 듣는 관원, 백성의 원망을 듣는 부자, 그리 고 원체 많이 가져서 좀 떼어내어도 괜찮은 사람의 것, 우 리는 이런 것을 노리지요. 한번 우리가 노린 다음에는 면하 지 못하지요."

피리는 위엄을 보인다.

"인명도 살해하오?"

"자유는 한번 하려고 한 일을 방해라는 자면 기어코 죽이 고야 말지요. 그러나 무고한 인명은 살해하는 일이 없고 도 리어 가난한 자와 불쌍한 자는 구제하는 일도 많지요."

"도적질해다가 구제한다?"

원효가 웃는다.

"그렇지요. 우리는 부자가 되자는 것이 아니니까. 있는 자 의 것을 갖다가 없는 자를 먹여살리자는 것이니까."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서 피리의 갓에 앉는다.

"법을 어기는 자는 어떻게 하오."

원효는 이런 말을 묻는다.

"경하면 책망하고, 중하면 볼기를 때리고. 더 중하면 내어 쫓고 사발통문을 돌려서 아무데도 접촉을 못하게 하고, 대 단히 중하면 죽여 버리고—이를테면 나라의 법과 같지요. 만 일 우리 속을 관에 밀고하는 놈이 있으면 그놈의 집안을 온 통 도륙을 해 버리지요. 그러나 관에 잡혀가서도 불지를 아 니하고 저 혼자만 벌을 받으면 우리는 그 처자를 잘 살리지 요. 그러니까 원효대사도 한번 여기를 다녀 나가면 우리편 이 되어야 망정이지 그렇지 아니하면 어디를 따라가서라도 기어이 복수를 하고야 말지요. 장군령이 한번 내리면 면할 길은 없습니다."

피리는 위협하는 눈으로 원효를 노려본다.

"글세. 도적의 무리가 다 들러붙기로 원효의 장삼 소매 하 나를 건드릴 수 있을까. 하핫하핫."

원효는 커다랗게 소리를 내어서 웃는다.

원효의 이 말에 피리의 낯색이 변한다. 그의 입술이 푸르 르 떨린다.

"큰소리 하지 마오. 원효의 명성이 천하에 진동한답디다마 는 우리 눈에는 거랑방이 중 한 마리로밖에 아니 보이지.

제발 살려 줍소사고 빈다면 몰라도 까딱 잘못하면 이 고개 를 살아서는 못 넘으리다. 칼로 선뜻 목을 자르는 것쯤은 경한 벌이오. 산채로 땅에 묻어 버릴 수도 있고, 산채로 껍 질을 벗기고 각을 뜰 수도 있고, 대사의 몸이 큼직하고 살 이 많으니 통으로 장작불에 구워서 훌 안주를 할 수도 있 고, 그보다 심하면 당신의 처자를 당신의 눈앞에서—."

하다가 피리는 말을 뚝 끊는다.

피리가 이런 소리를 하는 동안에 원효는 물끄러미 피리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더니 피리가 말을 끊으매 원효는 어이 없는 듯이 웃으며,

"글세 그렇게 만만히 될까."

하고 손을 들어서 피리의 옆구리를 꾹 찌른다.

피리는 흠칫 놀라서 몸을 비틀며 원효를 노려본다.

"왜 사람을 찌르오."

"하도 어린애 같은 소리를 하길래 귀여워서 그러오."

하고 원효는 이번에는 피리의 턱주가리를 손바닥으로 쳐든 다. 피리는 원효의 손을 따라서 고개를 뒤로 젖힌다. 피리는 원효의 손의 힘을 저항할 수 없음을 느낄 때에 일종 공포심 이 일어났다. 무엇인지 모르게 갈수록 제 몸은 졸아들고 원 효의 몸은 커져서 그 하늘에 닿은 듯한 큰 몸이 저를 덮어 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나 피리는 호락호락하게 원효에게 항복하기는 싫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톡톡히 원효를 골리고 싶은 충동이 무럭무 럭 일어났다.

피리는 원효의 손을 턱에서 물리치려 하였으나 원효의 말 은 쇠뭉치와 같아서 피리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으응. 점잖지 못하게."

하고 피리는 원효를 노려보았다.

"도적질을 그만두라고. 세상에 할 일이 태산 같은데 자네만 한 위인이 왜 도적놈의 졸도 노릇을 한담. 지금이라도 도적 질을 그만둔다면 내가 대접을 해 주지. 그렇지만 여전히 고 치지 아니하면 이번에는 크게 경을 치고야 말걸."

이렇게 말하고 원효는 피리를 바로 앉혀 주었다.

피리는 겨우 원효의 손에서 벗어나서 위엄을 갖추고 수염 을 내리쓸면서,

"그 큰소리 말어. 여기까지 와서야 생사가 내 손에 달렸지, 제가 어찌할 테야. 지금 무엇이 원효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어? 그중에 하나만 보아도 벌벌 떨 걸 웬 큰소리야."

피리는 이렇게 뽐낸다.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나, 어디 말 좀 하게."

원효는 싱글싱글 웃는다.

"첫째는 창검이 별겻듯한 위의고."

"또."

"그다음에는 볼기 때리고 형문치고 주리트는 형틀이고."

"또 그다음에는?"

"지네와 뱀이 우글우글하는 토굴이고."

"허허, 거 참 별것이 있군. 또 없나."

"물이 펄펄 끓는 큰 가마."

"옳지, 사람을 삶는 거라."

"그 가마에 건방진 중이 몇 놈이 삶겼는지 모르지."

"그러렷다. 그담엔 또 무엇이 있나?"

"원효대사는 이름 높은 중이니까 장작더미에 올려앉힐걸."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중들은 불에 타기를 좋아하지 않나. 원효대사는 도가 높으 니까 화장을 하면 사리(舍利)가 많이 나올 거야."

"옳지 나를 태우고는 내 사리를 도적질한다. 하하하하."

원효가 배를 그러안고 웃는다.

"웃긴 왜 웃어? 제 아무리 원효기로 장작더미에 올려놓고 불을 지르면 탔지 별수 있나?"

피리는 원통한 듯이 입맛을 다신다.

"글세. 누가 탈는지 보아야 알지. 하늘이 늙었으면 원효가 탈 것이고, 하늘이 아직도 제정신대로 있으면 도적의 무리 가 경을 칠 것이고. 어쨌으나 가세. 자네네 두목을 만나서 말을 해야지, 자네따위 졸도와 아무리 승강이를 하기로 쓸 데 있나."

하고 원효가 먼저 일어나서 두목의 집을 향하고 고개를 내 려간다.

피리는 싱거운 듯이 뒤를 따른다.

"체. 대체 세상에 뱃심좋은 놈 다 보겠네."

하고 피리는 원효의 귀에 들려라 하고 중얼거린다. 물소리 와 새소리가 요란하다.

"이 좋은 경치 속에서 그래 도적질할 궁리들을 하고 있담.

도를 닦을 생각은 못하고."

원효를 피리를 돌아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큰 우물이 있었다. 우물을 쌓은 돌에는 돌옷이 곱게 입혀 서 여러 백년 된 우물임을 보였다.

"어 고약한 샘이로군. 도적의 마음이 나게 하는 샘이람."

하고 원효가 지팡이로 우물 둑을 두들겼다.

우물 속에서 웅웅하는 소리가 일어나며 우물이 끓어올랐 다.

"이 물을 먹은 중생이 마음을 고쳐서 불도에 들기까지 다 시 샘을 내지 말아라."

하고 원효가 또 한번 지팡이 끝으로 물을 치니 불꽃이 번 쩍 일고는 우물이 말라 버리고 말았다.

피리는 어안이벙벙하여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멀거니 섰지 말고 먼저 들어가서 내가 왔다고 거래를 하 오."

원효는 불이 펄펄 붙는 지팡이로 피리를 가리켰다.

피리는 그 지팡이를 두려워하는 듯 몇 걸음 뒤로 물러섰 다.

우물을 지나니 수십 필 준마를 매어 놓은 마구가 있고, 그 리고는 높다란 대문이 있었다. 이 대문을 활짝 열어놓지 못 한 것은 도적의 집인 때문이라고 원효는 생각하였다. 집은 무척 오랜 집이어서 어떤 기둥은 그루가 썩은 것도 있었다.

피리가 들어간 지 얼마 아니하여서 협문이 열렸다.

"이리 들어오시오."

하는 것은 피리가 아니요 처음 보는 작자였다. 푸른 옷을 입은 것이 통인 따위인 모양이었다.

원효는 푸른 옷을 보고 호령하였다.

"손을 협문으로 맞는 법이 있느냐. 대문을 열라 하여라."

하는 소리가 온 동천을 쩡쩡 울렸다.

후원별당에 감금되어 있는 요석공주와 아사가가 원효의 음 성을 들었다.

"공주마마, 시님이시오!"

아사가는 이렇게 외쳤다.

"그렇구나. 시님이시로구나."

공주와 아사가는 서로 껴안고 울었다. 수상한 이 모양에 설총이 으아하고 울었다. 설총이 우는소리가 원효의 귀에도 들렸다. 아사가의 오라비도 달려와서,

"시님이 오셨소."

하고 외쳤다.

"오시기는 오셨지마는 이 도적의 소굴에서 시님 혼자서 어 떻게 벗어나실까."

공주는 일변 반가우면서도 염려가 되었다.

"공주마마. 염려마셔요. 시님은 비범하신 어른이시니 반드 시 이기시리라고 믿습니다."

아사가는 눈물을 씻으며 이렇게 공주를 위로하였다.

"그야 대사께서는 비범하신 어른이시지마는 너와 나를 내 놓으라고 해서 시님이 거절하시면 필시 그놈들이 시님을 해 할 것 아니냐. 지금 장작더미를 만들어 놓고 기름 가마를 끓이고 토굴에는 독사를 잡아다 넣고 그런다는데."

공주는 이런 말을 하였다.

"그래도 시님은 하늘이 아시는 어른이시오, 불보살이 옹호 하시는 어른이신데."

아사가는 이런 말로 공주보다도 자기를 위로하려 하였다.

"만일 우리 두 사람 때문에 시님이 해를 받으시게 되면 아 사가는 어찌할래?"

공주는 이런 소리를 물었다.

"결단코 시님이 이기십니다."

아사가는 자신있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믿나?"

공주는 마음놓이지 못하는 양을 보였다.

아사가는 수삽한 듯이 잠깐 고개를 숙이더니,

"사람이 가장 이기기 어려운 것이 남녀의 정이라 하옵는데, 앙아당에서 세 날 세 밤 시님과 저와 단둘이 있었건마는 시 님은 터럭끝만치도 마음이 아니 움직이셨고, 마지막으로는 이몸이—이몸이 시님께 매어달려서 아들을 하나 낳게 해 달 라고 하였건마는 까딱없으시고, 너는 이 불세계의 어머니가 되어라 하셨으니 이러한 어른이야말로 불에도 아니 타고 물 에도 아니 빠지실 어른이 아니십니까."

하고 또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인다.

"정말야? 아사가, 그랬어?"

공주는 비로소 모든 의혹이 풀리는 듯이 웃는 낯으로 아사 가를 보았다.

까치와 까마귀가 몹시 지저귀었다.

대문이 열리고 원효는 대문으로 들어갔다.

과연 넓은 뜰에는 수십 명 군사가 창검을 빼어들고 늘어섰 다.

원효는 지팡이를 끌고 군사들의 창검 틈으로 뚜벅뚜벅 걸 었다. 지팡이 끝에서는 아직도 불길이 펄펄 붙고 연기가 났 다. 그 연기에 군사들은 눈을 감았다.

바람이 남전복 도홍띠, 금파 갓끈에 호피로 싼 칼을 넌지 시 차고 계하에 내려와 원효를 맞았다. 허연 수염을 늘이고 불그스레한 얼굴에는 웃음을 띠어서 아주 점잖은 장군이었 다. 다만 두 눈에 붉은 기운이 있었다. 살기다. 결코 우락부 락한 무장의 모습은 아니요 귀인다왔다.

'이 사람은 무엇에 쓸데가 있을까 보자.'

원효는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였다. 피리는 바람의 곁에 세 우니 빛이 없었다.

"대사께서 원로에 이런 누추한 벽지에 왕림하시니 산천이 다 빛을 발하오."

바람은 이렇게 첫인사를 하였다.

원효는 바람을 바라보며,

"이 좋은 산천이 도인의 도량이 되지 못하고 도적의 소굴 이 된 것을 유감으로 여겼더니, 이제 장군을 대하니 저 좋 은 풍신이 나라에 충성된 명장이 되지 못하고 도적의 두목 이 된 것이 더 가여운 일이오."

이렇게 대답하였다.

바람은 마루에 한 발을 올려 짚었다가 다시 내려놓으며,

"여보시오. 그러기로 초면에 남의 집에 와서 그런 말씀이 어디 있단 말이오?"

하고 원효를 노려본다.

원효도 마루에 올려놓은 발을 다시 내려놓으며,

"내 스승 석가여래께서는 도적질 말라, 거짓말 말라 하고 가르치셨기로 내 입이 거짓말할 줄을 잊었소."

하고 정색하였다.

"그래도 예라는 것이 있지 않소?"

바람은 한번 더 항의하였다.

"직심시불(直心是佛)이라 곧은 것이 예요."

원효는 대답하였다.

바람은 곧 웃는 낯을 지으며,

"대사는 과연 도인이시오. 직심시불이라, 직심시불이라."

하고 탄복하는 빛을 보인다.

그러나 그의 떨리는 입술은 그의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 였다. 바람은 평생에 이렇게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들어 본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웃는 낯을 짓고 주인의 체면을 보 전하는 것이 그의 오래 닦여서 능함이었다.

대청에는 정면에 거울이 놓이고 동서로 주객의 자리가 베 풀어 있었다.

"대사 앉으시오."

하고 바람은 비단 방석을 가리켰다. 국법에 서민은 비단 옷도 못 입는 것이다. 하물며 비단 방석이랴. 도적의 무리는 국법밖에 섰는 것이다. 그들은 도리어 국법을 반항하고 살 고 있는 것이다.

"중이 어디 비단 방석을 까오?"

하고 원효가 방석을 밀어놓고 마룻바닥에 앉는다.

"미인의 무릎을 깔면서 비단 방석은 못 깔 것 무어 있소?"

바람은 웃었다.

"맞았소."

하고 원효는 무안한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매로 파계승이 된 것이오."

하좌에 앉았던 피리는 모든 원수를 다 갚았다는 듯이 빙그 레 웃으며,

"원효대사도 항복할 때가 있구려."

하고 빈정대었다.

"불이인폐언(不以人廢言)이라 비록 도적의 말이라도 옳은 말에야 항복 아니할 수 있소?"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한번 지은 허물이 몸에 그림자 모양으로 어디까지나 따라서 몸의 빛을 가리우고 힘 을 줄인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이윽고 차가 나왔다. 자주 옷을 입은 어여쁜 계집 하인 둘 이 주선하고 있었다.

찻종은 푸린빛 나는 금오산 옥이었다.

원효는 권하는 대로 차를 마셨다. 향기가 은근하였다.

"대단히 좋은 차요."

원효는 찻종을 놓으면서 치사하였다.

건시와 생률이 놓여 있었다. 계집 하인이 집어 권하는 대 로 원효는 하나씩 받아 먹었다.

바람이 문득 이런 소리를 물었다.

"예가 도적의 소굴인 줄 아시는 바에 우리가 대접하는 음 식을 그렇게 마음놓고 자시오?"

원효는 손에 묻은 시설을 혀로 핥아먹으면서,

"불제자를 한번 공양하는 공덕으로 지옥고를 면한다 하오.

죄많은 중생이 모처럼 받드는 공양을 물리칠 수가 있소?"

하고 입술에 묻은 시설까지 혀로 핥았다.

"그러다가 독약이 들었으면 어찌하오?"

바람의 얼굴에서는 빈정거리는 빛이 스러졌다.

"보살이 중생을 대할 때에 최애일자지(最愛一子地)로 하는 것이오. 사랑하는 외아들이 받드는 공양을 의심할 줄이 있 겠소."

"내가 대사를 이곳으로 유인한 것은 대사를 죽이고 대사의 처첩을 빼앗으려 하는 것이어든 그래도 마음을 놓고 무슨 음식이나 자시겠소?"

바람은 시치미떼고 이런 소리를 하였다.

"보살은 중생을 의심하지 아니하거니와 설사 중생이 독약 을 받들더라도 그 독이 보살을 상하지 못하오."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바람은 계집 하인에게,

"네 그 항아리 내오너라."

하고 명하였다.

두 계집 하인이 각각 항아리 하나씩을 들고 나왔다.

"네 그 항아리를 열어라."

하고 바람이 명하였다.

계집 하인들은 유지로 봉한 것을 끄르고 뚜껑을 열었다.

비린 냄새가 나왔다.

"대사 이 항아리를 보시오."

하고 바람은 젓가락으로 그 항아리 속에서 사람의 귀 하나 를 집어서 원효에게 보였다.

"이것은 이르는 말 아니 듣는 놈들의 귀요. 이중에는 중의 귀도 여럿이 있소. 아마 원효대사도 내 말을 아니 들으시면 그 큼직한 귀는 이 항아리에 담겨야겠소."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피리가 옆에서 좋아라 하고 웃었다.

원효는 바람과 피리의 귀를 둘러보더니,

"보살의 옳은 가르침을 아니 듣는 귀는 어찌할까. 귓바퀴를 베어서 젓을 담그는 것쯤은 경한 일일걸. 세세생생에 귀 없 는 귀신이 되고, 귀 없는 짐승이 되다가 아승지겁고를 치르 고 나서 사람의 몸을 타고 나더라도 귀 없는 사람이 될걸."

하고 쩟쩟 혀를 찼다.

바람과 피리는 깜짝 놀라는 듯이 눈을 둥글게 뜨고 귀를 쭝긋하였다. 바람의 손에 들었던 귀가 항아리에 도로 떨어 진다.

"글세, 그건 지내보아야 하겠고."

하고 바람은 되살아나면서 둘째 항아리에서 사람의 입술을 도려낸 것을 젓가락으로 집어들고,

"이것이 무엇인지 아시오? 이것은 거짓말하거나 우리 일을 관가에 일러바친 자들의 입이오. 아마 원효대사의 입도 이 항아리에 들어갈는지 모를걸. 염라대왕은 피할 수 있어도 우리 손은 피할 수 없을 것이오. 천리만리를 가더라도 그 입은 찾고야 말 거야. 이중에는 허황된 소리를 하여서 혹세 무민하는 중의 입도 많이 있소.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하고 젓가락을 원효의 눈앞에 내어댄다.

원효는 빙그레 웃으며,

"입으로 짓는 죄가 네 가지라 하오. 망어(妄語), 양설(兩 舌), 악구(惡口), 기어(綺語)요. 입으로 지은 죄가 경하면 입 술이 검푸르고 이빨이 가지런치 못하고 입에서 구린내가 나 지마는, 좀더 중하면 어음이 분명히 못하고 음식 맛을 몰라 아무리 좋은 것을 먹어도 입맛이 없고, 만일 더 중하면 벙 어리가 되고, 더 중하면 지옥, 아귀, 축생보를 받거니와 입 으로 짓는 죄 중에 가장 중하고 무서운 것은 인과를 없다 하고 불도를 훼방하는 것이오. 그러한 입을 도려내어서 젓 이나 담그는 것은 참으로 경한 일이오. 당신네 입도 똥을 먹는 개 입이 되었더면 다행이었을 것을 하고 원통하게 뉘 우칠 날이 아니 오게 하시오."

바람은 원효의 이 말에 낯빛이 파랗게 질리고 손이 떨려서 들었던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피리는 일어나 벽에 걸린 검을 내려서 서리 같은 날을 빼 어 들었다. 바람의 명령만 있으면 원효를 치자는 것이었다.

"아서, 아서."

하고 바람은 다시 태연한 태도로 변하며 손을 들어서 피리 를 말렸다. 피리는 원효를 한번 노려보고 칼을 집에 도로 꽂으며,

"원효의 모가지에는 칼이 안 들어갈까."

하고 뽐내었다.

"그 칼로 원효의 목이 베어질까."

하고 원효는 우스운 듯이 웃었다.

피리는 반쯤 칼집에 꽂았던 칼을 다시 빼어들더니 원효를 향하고 칼을 내리쳤다. 그러나 어느덧 피리의 팔목이 원효 의 손에 잡히고 칼은 벌써 원효의 손에 들렸다.

원효는 피리의 팔목을 놓으며,

"맨손으로 앉은 사람을 그렇게 불의에 치는 법이 있나."

하고 칼을 피리에게 도로 주었다.

"응, 사내답지 못하게."

하고 바람이 피리를 책망한다.

"칼을 도로 걸라니까."

피리는 원효에게서 칼을 받아들고 쩔쩔매었다. 또 한번 원 효를 친댔자 또 한번 망신할 뿐인 것 같았다. 그는 분함과 부끄러움으로 벌벌 떨었다.

원효는 바람의 눈치를 보았으나 바람은 태연하였다. 원효 는 피리에게 칼을 들리면서 슬쩍 바람을 겨누어 보았으나 바람은 눈도 깜짝하지 아니하였다. 바람은 피리에 비길 인 물은 아니라고 원효는 생각하였다.

피리는 칼을 집에 꽂아서 벽에 걸었다. 피리도 스스로 칼 쓰기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신하였던 것이다. 그 러기로 그다지도 만만하게 원효에게 패할 줄이 있으랴 하고 원통하였다. 정말 원효의 곁에는 눈에 안 보이는 금강역사 가 호위하고 있는 것인가, 이렇게도 생각되었다.

천년도 더 묵었다는 우물이 담박에 끓어오르고 불길이 나 고 말라 버리는 것도 놀라왔으나, 그것은 요술이라고도 생 각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피리가 전심력을 다하여서 내리 치는 칼을 원효가 맨손으로 막아내는 것은—막아낼 뿐 아니 라 언제 빼앗긴지 모르게 제 손에 들렸던 칼이 원효의 손에 건너가 있음을 볼 때에 피리는 정신이 아뜩하여서 두 손으 로 제 목을 가리웠다. 원효의 손에 들린 칼이 반드시 제 목 에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원효가 잡았던 팔 목을 놓고, 또 칼을 도로 줄 때에는 피리는 목이 떨어지는 것보다도 더 무서웠다. 어찌하면 그렇게 태연할 수가 있을 까. 그러한 뱃심이 어찌하면 생길까. 피리는 어리둥절하였 다.

바람은 다시 차를 나외라고 명하였다.

뜻밖의 큰 풍파에 한편 구석에 떨고 섰던 계집 하인들이 비로소 살아난 듯이 다시 김 오르는 차를 나외었다. 이번에 는 차 안주로 깨다식, 송화다식을 나외었다. 더욱 독약인가 의심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바람은 손수 봉지 하나를 펴서 원효의 차에 하얀 가루를 탔다. 그러고는,

"비상가루요. 먹고 죽기만 아니하면 보약이 된다 하오."

이런 소리를 하였다.

원효는 여전히 심상하게 그 차를 들이마셨다.

바람은 그것을 보고 한번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중도 여러 사람 시험하였으나, 이렇게 태연한 사람은 처음 보았 다. 바람은 속으로 은근히 원효를 존경하는 생각이 났다.

'나로는 못 당할 사람이다.'

이러한 생각이 일어날 때에 바람은 얼른 그 생각을 쓸어 버렸다. 그것은 너무나 저를 지르밟는 것 같았다. 스스로 왕 과 같은 자존심을 가지고 육십 평생을 살아온 그다. 벽력이 머리에 떨어져도 까딱 아니한다고 자신할 만한 수련도 하였 다. 백번 천번 연단한 그 몸과 마음은 무엇에나 동하지 아 니할 만한 자신도 있었다. 그러한 자신을 일조에 버리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바람에게는 큰 목적이 있다. 그것 은 요석공주와 아사가를 제 것을 만드는 일이었다.

"유부녀를 범하지 말라."

하는 도적 나라의 법을 바람 자신이 범할 수는 없었다.

비록 도적들이지마는 그들에게도 신앙하는 신이 있었다.

그것은 아신, 또는 앙아신이었다. 아신은 천지창조 전의 허 공신이다. 아신은 어두움의 신이다. 허공이언마는 그 속에서 는 만물이 다 나올 수가 있는 것이다. 아신의 성격이 도적 의 욕심에 맞는 것이었다.

도적이 앙아신을 신앙하는 것은 그 밖에도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허공이기 때문에 칼로 베일 수도 없고 불로 태울 수 도 없다는 것이었다. 도적들이 칼에도 안 상하고 불에도 아 니 타기를 바라는 것이다.

옛날에 어떤 방아 도인이 도적에게 앙아신의 계명을 준 것 이다. 만일 이 계명을 범하면 반드시 앙아신의 큰 벌역이 내려서 앙아신의 사자인 범에게 먹힌다 하는 것이다. 피리 가 원효에게 설명한 것이 이 법이다.

그러므로 요석공주와 아사가를 제 것을 만들려면 원효가 허락을 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원효가 죽어서 요석공주와 아사가가 과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아사가가 원효 의 애첩으로 아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원효의 허락—처첩을 바람에게 준다는 허락을 받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원효를 죽여 버려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큰일이었다.

바람이 요석공주를 처음 본 것은 공주가 원효를 찾아오는 길에 낙동강 나루를 건널 적이었다. 평생의 대부분을 산속 에 있어서 귀한 집 여자를 대할 길이 적던 사람, 나이 이미 육십이 되어서 앞날이 얼마 남지 아니하였다는 적막감이 있 는 바람에게는 요석공주의 아름다움이 견딜 수 없는 매력이 었다. 공주는 이미 삼심이 넘었건마는 그 필 대로 핀 모양 이 더욱 바람의 마음을 끌었다.

'아무렇게 하여서라도 저 여자를 내 것을 만들리라.'

낙동강의 흐르는 물을 보고 바람은 이렇게 맹세하였다.

그가 공주인 것과 원효의 아내인 것은 곧 알 수가 있었다.

그때에도 바람은 피리와 동행이었다.

"여보. 내가 마음을 진정할 수 없소."

하고 바람은 피리에게 말하였다.

기실은 피리도 공주에게 반한 것이었다. 어느 남자나 요석 공주의 아름다움을 보면 정히 황홀하지마는 생활력이 왕성 하기가 맹수와 같고 또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면 목숨을 내 걸고라도 하고야 마는 생활을 하여 온 그들에게는 마음에 일어나는 욕심을 억제하여 본 일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사 람을 죽이거나 남의 것을 도적하는 것은 항다반이다.

"공주요."

피리는 바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공주면 안 될 것 있나. 공주니까 더 탐이 나는구려."

바람은 이런 소리를 하였다. 상긋한 여름옷을 입은 공주의 모양이 눈에 박혀서 떨어지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럼 어떡허실라오?"

피리는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계교를 내어보시오. 아무렇게 하여서라도 공주가 내집 안방에 들어올 계교를 써 주시오."

바람은 이렇게 피리에게 명하였다.

피리에게 이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왜 그런고 하면, 피리는 바람으로 더불어 공주를 다툴 수는 없는 까닭이었다. 피리 는 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바람의 것을 만들기 위하여서 애 를 써야만 하게 되었다. 싱겁고도 기막힌 일이었다. 그러나 바람의 신하가 된 피리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글쎄요, 이 일에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소."

하고 피리는 바람에게 말하였다.

"무얼?"

"첫째로는 공주를 건드리면 관군의 토벌을 받을 것이오."

"또 한 가지는?"

"둘째로는 요석공주가 원효의 아내니까 유부녀를 건드리면 천벌을 받을 것이오."

하고 피리는 바람을 바라보았다. 될 수 있으면 그가 단념 하여 주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바라도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피리는 이 기회를 타서 단 념을 시키려고 더욱 어려운 까닭을 말하였다.

"관군은 피할 수가 있다 하더라도 천벌이야 피할 수가 있 소?"

바람은 또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바람도 본래부터 도적 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진평왕의 외아들이었다. 진평왕이 늙 으시도록 아들이 없으셨고 오직 따님(선덕여왕)뿐이었다. 그 런데 바람은 진평왕과 농부 가람의 딸 나나와의 사이에 난 아들이었다. 그 연유는 이러하다.

진평왕이 신하 몇을 거느리시고 토함산 동쪽 기슭에서 사 냥을 하셨다. 때는 첫가을. 왕은 백마를 타시고 흰 수염을 바라에 나부끼면서 사슴 한 쌍을 따라서 달리셨다.

사슴은 살과 창에 몰려서 바다 쪽을 향하고 달렸다.

왕의 말이 어떤 시냇가에 다다랐을 때에 삼을 벗겨서 물에 씻고 있는 처녀를 발견하였다. 그는 굵은 베옷을 입고 발을 벗은 마을 처녀였으나 그 얼굴과 몸의 아름다움이 왕의 마 음을 끌었다.

나나는 왕이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걷었던 소매를 내리 고 땅바닥에 왼편 무릎을 꿇고 고개를 고부슴하게 숙였다.

왕은 배종하는 신하를 명하시와 그 처녀의 집이 어딘가를 묻고, 그 집으로 인도하라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나나는 잠깐 눈을 들어서 왕을 우러러보았 다.

'저 눈!'

하고 왕은 속으로 결심하셨다. 슬픈 듯, 부끄러운 듯한 눈 이 왕의 마음을 뒤흔든 것이었다.

왕은 열정가시지마는 나나를 사랑하신 것은 열정만으로는 아니었다. 아드님이 없으심을 한탄하여서, 혹시나 이런 청정 한 처녀의 몸에서 아드님이 나지 아니할까 하는 희망도 가 지셨다.

처녀는 물에 씻던 삼을 천천히 짜고 있었다.

"상감마마 분부신데 언제 그런 일을 하고 있느냐. 내버려 두고 앞서라."

하고 시신이 재촉하는 말에 처녀는 서슴지 않고,

"바사마(日神) 주신 심 나라님께 바칠 삼이온데."

하고 다 짜서 함지박에 담아 머리에 이고 앞을 섰다.

왕은 나나의 하는 말을 듣고 하는 양을 보시고 더욱 그리 운 마음을 누르실 수 없었다.

처녀의 집은 묏 기슭 시냇가에 있었다.

왕의 오심을 보고 나나의 아버지 가람은 황망하여 그 아내 와 아들들로 더불어 뜰을 쓸고 방을 치우고 새옷을 갈아입 었다.

"상감마마 듭실 자리가 못되어 황송하오."

하고 가람은 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왕은 그날 밤을 가람의 집에서 주무셨다.

나나는 몸을 씻고 머리를 감고 새옷을 입고 왕의 자리에 모셨다. 그러나 나나의 얼굴에는 수심 기운이 있고 기쁜 빛 이 없었다. 왕은 그것이 슬펐다.

"나나야."

예."

"나는 너를 만나서 이렇게 기쁜데 너는 어찌하여 기뻐하지 아니하느냐."

"황송하오."

하고 나나는 고개를 푹 그렸다.

"네 마음에 정들인 다른 남자가 있느냐."

"산간에서 자라 외간 남자를 대한 일이 없사오니 어찌 정 들인 남자가 있사오리까."

"그러면 이몸이 늙어서 네가 기뻐하지 아니하느냐."

하시고 왕은 당신의 백발을 생각하시고 추연하셨다. 저런 젊은 처녀는 젊은 총각을 위하여 있는 것이 늙은이가 꺾는 것은 죄스러운 일인 것같이 생각되셨다.

나나는 수그린 얼굴에서 눈물을 떨구었다. 그 눈물을 감추 려고 나나는 얼른 소매로 낯을 가리웠다.

"나나야. 바로 말하여라. 두려워 말고 네 속에 있는 대로 말하여라. 이몸이 임금이 되어서 죄 없는 한 백성의 뜻을 빼앗겠느냐. 나나야, 네 눈물을 보니 이몸이 비감하다. 그러 지 말고 네 속을 말하렷다."

왕의 말씀은 은근하였다. 나라의 주인이시면서도 한 계집 애의 마음을 어찌할 수 없음을 느끼셨다.

"무엄하게 눈물을 보시게 하와 죽을 죄로 잘못하였나이다.

천한 몸이 지존을 모시오니 한시각을 우러러만 뵈와도 이만 황감한 일이 없사오려든, 하물며 그처럼 어여삐 여기시오니 하도 천은이 망극하와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그러하오나 지존을 모시옵기도 이 밤뿐일 것을 생각하오니 자연 눈물이 솟나이다."

이러한 나나의 대답은 왕을 놀라시게 하였다. 산산 초부의 딸이 이러할 수가 있을까. 과연 신라는 좋은 나라라고 생각 하시고 법흥, 진흥, 두 분 성왕께옵서 나라를 잘 다스리시와 백성이 신명과 불보살을 신앙하고 글을 잘 배운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진평왕이 즉위 이래로 선왕의 뜻을 이러 문화 의 발달에 힘을 쓰신 보람도 되는 것이라고 내심에 만족하 셨다.

그러나 "모시옵기도 이 밤뿐인 것을" 하는 나나의 말에는 왕도 마음이 찔리지 아니할 수 없었다. 옛날 같으면야 임금 으로서는 후궁을 몇 사람 두어도 좋았으나, 법흥왕 이래로 불도를 숭상하여서 그러하기가 어려웠다. 나나를 사랑하더 라도 궁중으로 불러들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양심대로 말 하면 왕은 나나의 방에서 나오는 것이 옳았으나 왕의 정욕 은 그러하기를 허하지 아니하였다.

"하룻밤만이 될 리가 있느냐. 네가 아들을 낳으면 태자를 삼으리라."

이러한 약속을 나나에게 하셨다.

"황송하오나 무슨 표적을 주시옵소서."

왕은 선뜻 일어나시와 벽에 걸었던 검을 내리어 나나에게 주셨다. 오동집에 금으로 박꽃과 박을 아로새긴 보검이었다.

"이것은 이몸이 평생에 사랑하여 몸에 지니던 보검이다. 이 것을 신표로 주마."

왕이 손수 주시는 검을 나나는 꿇어앉아 받아서 제 머리 위에 받들었다가 날을 빼어서 촛불에 비추어 보았다. 거울 과 같이 맑은 날! 나나는 칼날을 다시 꽂아서 벽에 걸고,

"상감마마. 이몸이 세세생생에 상감마마를 모시오리다."

하고 몸을 허락하였다.

그날 밤 왕의 즐거움은 비길 데가 없었다. 나라의 절반을 떼어 주어도 아깝지 아니할 것 같았다.

첫가을 밤은 얼마 길지 아니하였다. 왕은 눈을 붙이실 사 이도 없이 닭이 울었다.

이튿날 아침에 왕은 나나의 집을 떠나셨다. 어찌하여서라 도 나나를 궁중에 맞아들이리라는 약속을 하신 것이었다.

이리하여서 바람이 난 것이다. 그는 분명 진평왕의 아들이 다. 그러나 왕으로부터서는 다시 소식이 없었다. 나나는 혼 자서 바람을 길렀다.

진평왕이 돌아가시고 선덕여왕이 즉위하셨다.

나나는 바람에게 일절 그가 임금의 아들이라는 말을 하지 아니하고, 네 아버지는 어떤 사냥군이었더니라고만 일러 왔 었다. 그러다가 진평왕이 승하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날 밤 에 나나는 바람을 불러서 왕이 신표로 주신 칼을 보이고 사 실을 말하였다.

그리고는 그날 밤에 나나는 왕의 칼로 목을 찌르고 죽었 다.

"임이 주신 칼로 이 목숨을 끊어 생전에 못 모신 임을 혼이 되어 따르리이다."

하는 노래를 적어 머리맡에 놓았다.

바람은 죽은 어머니는 장사하고 그 보검을 싸서 지고 서울 로 올라갔다. 그때에는 벌써 선덕여왕이 등극하셨다.

바람 평생에 아버지를 모르고 자랐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안 때에는 그 아버지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닐뿐더러 어 머니의 원수요, 자기의 원수인 것 같았다. 피를 받은 아버지 를 원수라고 생각하지 아니치 못하는 바람의 슬픔은 비길 데가 없었다.

바람은 아버지를 원망하고 대궐을 저주하고, 그리고 도적 의 굴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런 지가 벌써 삼십 년 가까이 되었다. 그동안 그는 신라의 왕이 될 몸으로서 도적 나라의 왕이 된 것이었다.

바람은 아직 한번도 제 내력을 누구에게 말한 일이 없었 다. 생전에 제 몸의 비밀을 들어줄 사람이 없으리라고 생각 하고 있었다.

신라의 도적이 지금처럼 잘 통일이 된 것은 바람이 장군이 된 이후였다. 그는 왕자의 통어력을 가진 것이었다. 그는 불 교 하나를 내어놓고 모든 수련을 다 해보았다. 칼쓰기, 머시 기 거시기 아니한 수련이 없었다. 그는 도덕경, 남화경을 좋 아하였고 열자(列子), 손자(孫子)도 애옥하였다. 그는 양생술 을 연구하여서 흡기(吸氣), 조식(調息), 취정(取精) 등의 불 로장생법도 하였다. 그의 낙은 몸을 건강히 하고 식색(食色) 의 욕을 마음껏 채우고, 그리고는 미운 놈을 철저히 응징하 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해보는 것이었다. 그에게 부귀공명욕도 없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제가 임금의 지위 를 찾을까 하는 야심도 있었으나 차차 그것도 다 귀찮은 생 각이 났다.

그는 늙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백발이 왔다. 그는 아버지 진평왕 모양으로 수염이 나고 또 조백하였다. 아무리 양생 법을 하여도 나이 오십 고개를 넘으면 모든 것이 쇠하는 것 을 어찌할 수 없었다. 안정도 줄도 모든 기운이 줄었다. 오 직 줄지 않고 갈수록 왕성하는 것은 정욕이었다.

요석공주와 아사가가 이 눈에 뜨인 것이다. 아무리 하여서 라도 이 두 계집은 제 품에 넣고 싶은 것이었다. 지나간 반 년에 바람이 궁리한 것은 오직 이 일뿐이었다.

"관군은 피할 수가 있더라도 천벌이야 피할 수가 있소?"

하는 피리의 말은 바람을 괴롭게 하였다.

바람은 허공신을 믿고 일월신을 믿었다. 허공신은 바람이 되어서 언제나 제 몸을 살폈다. 숨이 되어 몸속으로 들락들 락하여 뱃속까지도 살폈다. 낮에는 해가 되고 밤에는 달과 별이 되어서 이몸을 살폈다. 모기와 파리도 허공신의 사자 요 화신이었다. 신의 눈이 안 비치는 데가 없고 그 손이 아 니 가는 데가 없었다. 바람은 이것을 믿었다.

바람은 사람이 하는 일이면 모든 힘에 다 반항하고 싶었 고, 또 반항할 수도 있을 것 같았으나 신의 힘에만은 반항 할 수 없음을 갈수록 더욱 느꼈다. 그는 그의 머리와 수염 에 센터럭이 나고 모든 기력이 쇠하는 것을 볼 때에 허공신 의 법이 어떻게 엄하고 힘 있어서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한치 한푼도 어기지 못하고 반항할 수 없음을 믿는다.

'내 마음에 하고 싶은 일은 못하는 것이 없어도 신의 뜻만 은 거스릴 수 없다.'

이것이 바람의 슬픔이요 단념이요 또 신념이었다.

실상 바람에게는 하나도 어려운 일이 없는 것 같았다. 그 의 부하들은 그를 신같이 알았다. 허공신이 산신과 용신을 보내어서 언제나 그를 옹호하기 때문에 그의 몸에는 살도 아니 들고 칼도 아니 든다고 믿었다. 그가 명령을 내려서 일찍 그대로 안 된 일이 없었다. 게다가 그는 부하에게 심 히 엄한 대신에 심히 인정이 깊었다. 재물을 도적한 것도 저는 저 쓸 것 이외에 아니 가지고 다 부하를 노나 주고, 그리고 남는 것은 가난한 사람 불쌍한 사람에게 주었다.

그가 누구를 구제할 때에는 구제받는 자가 모르게 하였다.

누가 밥을 굶는다 하면 밤에 몰래 그 집에 양식을 던졌고, 어느 동네가 기근으로 곤경에 빠졌다면 그는 밤중에 몇 십 석의 쌀을 동네 앞에 갖다 놓고,

"골고루 노나 먹어라. 앙웅."

하고 소리를 지르게 하였다. 앙웅이란 허공신의 아들이란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이 바람의 일인 줄을 안다.

질병이 많은 동네가 있으면 바람은 의원과 약을 보낸다.

지나가던 의원 모양으로 며칠이고 병 치료를 하고 떠난다.

만일 백성의 원망을 듣는 자가 있으면 밤중에 꿩의 깃을 단 화살을 그 집에 들여쓴다.

"푸르르."

하고 화살이 날아 들어오면 그 집 식구는 벌벌 떤다.

그래도 그 사람이 속죄하는 일—가령 재물을 빼앗았으면 그 것을 돌려보내는 등—을 아니 하면 또 살 한 개가 날아 들어 온다. 살 두 개가 들어오면 대개는 속죄하는 일을 한다.

그러나 만일 그래도 아니 듣고 있으면 반드시 그 집에 불 을 놓거나 죄의 경중을 따라서 식구 중에 하나, 혹은 둘이 언제 죽는지 모르게 죽는다. 이러한 경우에 그 집의 젊은 계집과 재물은 몽땅 빼앗아온다. 이렇게 빼앗아온 재물과 계집은 부하에게 나눈다.

만일 화살 둘을 받고 집을 떠나서 다른 데로 피한다 하더 라도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설사 서울 한복판에 들어 가서 안팎을 군사로 지키더라도 바람의 벌을 면할 수는 없 었다.

그네의 특색은 일을 저지른 자의 집에 혹은 벽에나, 혹은 문에나 먹으로 동그라미 하나를 그려 놓는 것이었다. 이것 이 허공신의 기호다.

"검은 동그라미."

이것은 극히 무서운 것이었다.

"欲知我誰 問於曉師.

라는 것도 검은 동그라미 속에 씌인 글발이었다.

그 동그라미 속에는 대개는 죄목(罪目)을 적는 것이었다.

바람은 사람을 죽을 때에 잔인하게 죽이는 것을 꺼리지 아 니하였다. 죽은 뒤에도 생명이 있은 것을 믿지 아니하는 바 람은 제가 악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벌할 때에는 그가 목숨이 끊어지기까지에 제가 남에게 준 것만한 아픔과 괴로 움을 당하게 하는 것이 공평하다고 믿었고, 또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경계가 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산속으로 잡아 올리기도 하였다. 바람 은 이것이 죄라고 생각지 아니하였다. 이리하는 것이 체천 행도(替天行道)라고 믿었다. 이리함으로 그가 마땅히 되었어 야 할 임금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어떤 자는 잡혀와서 바람에게 인의(仁義)를 설하였다. 그러 면 바람은 손가락으로 벽상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大道不發."

라는 액이 붙어 있었다. 이것은 노자(老子)의 '大道發而有 仁義'라는 말을 뒤집은 것이다.

"대도가 폐할 리가 있나. 너희가 말하는 인의는 너희에게 편하게 만든 것이지 천지의 대도가 아니다."

하고 꾸짖었다.

중을 잡아오면 바람은,

"이놈들, 불경부직(不耕不織)하고 고루거각에서 호의호식하 니 멀쩡한 도적놈이 아니냐."

하고 도리어 도적이라고 족쳤다.

선비나 중이나 무릇 놀고 먹는 자를 잡아오면 바람은 이 모양으로 시험을 하여서 별로 취할 점이 없으면,

"이놈들, 세상에 하나 쓸데 없는 놈들."

하고 힘드는 일을 시키거나 죽여 버리거나 하였다.

"이놈들아, 마소는 짐을 나르고 개는 집을 보고 고양이는 쥐를 잡지. 도야지면 잡아먹기라도 하지. 너희 같은 놈들은 아무짝에 쓸데 없고 양식과 옷감만 축을 내니 죽어 마땅하 다."

고 판결하는 것이었다. 이 말에 능히 대답하는 중이나 선 비가 드물었다.

한번은 대안대사가 붙들려온 일이 있었다.

바람은 의례로,

"이 멀쩡한 도적놈."

하고 을렀다.

"하핫하핫."

해고 대안대사는 웃었다.

"왜 웃어?"

바람은 분노하였다.

"내 무엇을 도적하겠노? 내어버리는 누더기를 입고 뜨물찌 끼를 먹고 굴속에서 사니 내 무엇을 도적하겠노?"

대안대사의 이 대답에 바람은 일어나 절하였다.

대안대사는 바람의 절을 받고 거꾸로 서서 다리를 허공에 버둥버둥하였다.

"대사, 그것은 무어라는 것이오?"

하고 바람이 공손하게 물었다.

"값없이 받는 자네 절이 빚이 될까 보아서 도루 돌리는 것 일세."

바람은 기가 막혀서 어안이벙벙하였다.

"도란 무엇이오?"

바람은 대안에게 도를 물었다.

대안은 물끄러미 바람을 바라보더니,

"이크."

하고 두 손으로 머리를 싸고 달아나고 말았다. 부하가 그 를 따르려 하는 것을 바람은 말렸다. 그리고,

"진개 도인이다."

하고 탄복하였다. 그러나 대안이 달아난 뜻이 무엇인지를 바람은 몰랐다. 또 그리 깊이 알려고도 아니하였다.

이번 원효를 유인해 올 때에도 바람은 일종의 호기심을 가 지고 있었다. 원효 하나쯤 껍질을 벗기거나 사지를 자르거 나 또 끓는 물에 튀기거나 힘드는 일이 아니었다. 거조를 내기 전에 원효를 이리저리 시험하여서 재미로운 소일거리 를 삼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바람이 보기에 원효는 제가 다루기에는 숨이 벅차 는 것 같았다. 바람은 이 때문에 약간 초조하였다. 바람은 원효에게 더 눌리기 전에 요석공주 일을 해결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보아하니 대사는 선선한 대장부시니, 애, 둘러 말할 것 없 이 똑바로 말하겠소."

바람은 이렇게 화두를 돌렸다.

"무슨 말이오? 해보시오."

원효는 입술에 묻은 시설을 다 핥아먹고 입맛을 다시었다.

그 감이 매우 달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무슨 말이나 들어 볼 테니 나를 감을 좀더 주시오. 그 감 이 장히 맛이 좋소."

하고 원효는 침을 삼켰다.

"얘, 감 더 내다 드려라."

바람은 이렇게 시녀에게 명하였다.

"그래 무슨 말이오?"

이번에는 원효가 재촉하였다. 바람이 한다는 말도 재미있 을 것 같았다.

"말씀 아니해도 짐작하실 것 같소마는 요석공주와 아사가 를 나를 주시오."

바람은 이렇게 말을 끊었다.

"거 못하겠는데."

원효는 서슴지 않고 거절하였다.

바람의 낯색이 별안간 변하였다.

"어째서 못 한단 말요?"

얼마 후에야 바람이 입을 열었다.

"내가 금생을 최후생으로 하려다가 성불하기를 물리고까지 세세생생에 부부가 되자 하고 맺은 언약을 변할 수가 있나?

거 안 될 말이지. 그렇지 않소?"

"안 되오?"

"안 되지."

원효는 새로 내온 감을 집어서 맛나게 먹는다.

"대사가 죽으면 공주가 과부가 되지?"

바람은 이렇게 물었다.

"남편이 죽으면 과부지."

원효는 감씨를 뱉는다.

"그러면 내가 원효를 죽여 볼까?"

바람은 싱그레 웃는다. 그 웃음에 무서운 의지력이 보였다.

전신이 한번 비틀리는 것과 같았다. 바람의 속에 있던 살벌 하고 잔인한 기운이 꿈틀거리는 것이었다.

"이녁이 나를 죽이더라도 공주와 아사가는 이녁의 것은 안 될걸."

원효는 또 감 한 개를 들었다.

"어째서?"

바람은 눈을 흡떠서 원효를 노렸다.

"손이 안 닿으니까."

원효는 일변 감을 씹고, 일변 씨를 뱉어서 손에 모은다.

피리는 원효가 저 감씨로 또 무슨 무서운 조화를 부리지나 않나 하고 겁을 집어먹는다.

"손이 안 닿아?"

바람은 고개를 쑥 뽑고 몸을 뒤로 젖힌다.

"안 닿지."

"어째서?"

"한편은 너무 높고, 한편은 너무 낮으니까."

"누가 높고, 누가 낮단 말야?"

바람의 어성이 커진다.

"공주와 아사가는 하늘 위에 있고, 이녁은 저 지옥 밑에 있 는 아귀니까. 공주나 아사가의 발앞에 꿇어엎디어 살려 줍 소사 하고 빌어야지. 필경은 그렇게 될 거야. 공주와 아사가 의 무량한 자비심이 지금도 가련한 탐욕중생 바람을 불 속 에 뛰어들려는 어린 자식 모양으로 불쌍히 여길 터이니까.

옆에 저를 건져내려는 은인이 있는 줄을 모르고 되지도 아 니할 악한 계략을 생각하고 있으니 가련한 일이지. 이녁은 나를 유인한 줄로 아는 모양이오마는 내가 이녁에게 유인받 을 사람인가. 지옥에 들어가는 도적의 무리를 건지러 온 불 보살의 사자인 줄을 알아야 해."

원효의 말이 끝나자 바람은,

"이바라."

하고 호령하였다.

"네 그 기름 가마가 끓느냐. 이 허황한 소리 하는 중놈을 기름가마에 통으로 삶아라. 뼈다귀가 물씬물씬하도록 삶아 라. 세상에 흰소리, 거짓말하는 놈이 많아서 백성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만일 끓는 기름 가마에 들어가 앉아서도 여전히 허황한 소리를 하나 보자."

이 말에 문밖에 지켜 섰던 창검 든 군사들이 대들었다. 그 러나 감히 원효에게 손을 대지 못하고 머뭇머뭇하였다.

"네 이 중놈을 기름 가마로 끌어가지 못하느냐."

하고 바람은 발을 구르며 호령하였다.

"어서 일어나!"

하고 한 군사가 덤벼들어서 원효의 팔을 잡아끌었다.

원효는 군사가 팔을 끄는 대로 끌려 일어나면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소리 높이 불렀다. 그 우렁찬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흥. 어디 네 관세음보살이 기름 가마에 얼음을 얼리나 보 자. 기름 가마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나오면 나도 네 제자가 되마."

하고 바람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며,

"이바라. 네, 요석공주 불러라. 원효대사를 기름 가마에 삶 으니 나와 보라고 일러라. 그 평생에 잊지 못하는 원효대사 가 기름 가마에 볶기는 냄새라도 실컷 맡으라고 일러라. 어 디 부처가 이기나 앙아사마가 이기나 한번 겨루어 보자."

바람은 이렇게 말하며 후원에 있는 앙아당으로 갔다. 몸종 한 계집아이가 바람의 뒤를 따르고 한 계집아이는 요석공주 처소로 갔다.

바람은 앙아당 문을 열었다. 문에는 푸른 칠을 하고 기둥 은 붉고 서까래에는 물결 무늬로 단청을 하고 벽과 천정에 는 모두 그림이 그려 있었다. 동편 벽에는 푸른 용(미리), 서편 벽에는 흰 범, 천정 북쪽에는 검을 거북, 남쪽에는 붉 은 방아(새)를 그리고 북벽에는 물동이를 앞에 놓은 아름다 운 여신의 탱이 걸렸다. 이이가 아신, 즉 허공신이다. 신의 곁에는 맑은 샘이 솟는 우물이 있었다.

여신은 천지만물을 낳는다는 뜻이요, 샘은 여신의 덕을 상 징한 것으로 역시 끝없이 물이 나오서 만물을 먹여살린다는 뜻이요, 동이는 그 둥글한 것이 만물이 나기 전의 허공을 가리키고 그 속에 그득 담은 물은 신의 작용을 표한 것이 다.

바람을 모시는 몸종은 소반에 정화수를 떠올렸다.

바람은 손수 물그릇을 신의 앞에 놓고 세 번 절하였다.

"이기게 하소서. 원효를 이기고 부처를 이기게 하소서. 이 기고 나면 옹근 소를 잡아 통으로 제물로 바치오리다. 그러 하오나 만일 오늘 원효를 이기지 못하오면 신당을 불사르오 리다."

이런 축원을 하면서 바람은 손바닥이 뜨겁도록 빌었다.

바람은 부시를 쳤다. 반달 모양으로 생긴 부시가 부싯돌에 맞아 날카로운 소리를 내이며 다홍빛 불꽃을 날렸다. 그러 나 웬일인지 부싯깃에 불이 잘 댕기지를 아니하였다. 부싯 깃은 깊은 산에 나는 수리치라는 풀잎을 말려서 비벼서 보 드라운 솜 모양으로 만든 것에다가 수릿날 정오에 뜯은 약 쑥 노란 연한 잎을 비벼서 섞은 것이다.

불꽃만 튀고 부싯깃에 불이 댕기지 아니하는 것을 바람은 초조하게 생각하였다. 부싯깃에 불이 잘 댕기고, 그 불이 기 름에 결은 종이 심지에 옮겨붙고 다시 그 불이 닭 개소리 아니 듣고 늙은 소나무의 관솔에 옮겨 붙어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으로 소원이 성취되는 것을 점치는 것이다.

'부싯깃이 누구를 채었나.'

바람은 속으로 걱정하면서도 입으로 말을 하지 못하였다.

바람의 등골이 오싹오싹하였다. 머리카락이 소끗소끗하였다.

"웬일일까."

하고 바람은 여신상을 바라보았다. 여신은 무엇을 깊이 생 각하는 듯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두 손을 읍하는 듯이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머리에 칼이 입하더라도 눈도 깜짝하지 아니하던 바람이 다. 사람을 파리 죽이듯 하던 바람이 아니냐. 미운 사람을 죽일 때에는 술을 마셔 가며 이루 말할 수 없는 악형도 하 던 바람이다. 그런데 어째서 오싹오싹 몸에 소름이 끼칠까.

요석공주와 아사가를 볼 때에도 바람은 이와 같은 경험을 하였다. 그것은 정욕에 못이기어서 끼치던 소름이었다. 그러 나 지금 것은 무서움의 소름이었다.

바람의 부시를 치는 손이 떨려서 말을 잘 듣지 아니하였 다. 부시가 날카로운 뿌중다리에 잘 바로 맞지를 아니하였 다.

"어, 이거 웬일일까."

바람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바람의 눈앞에 기름 가마에 들어앉은 원효가 보였다. 원효 는 끓는 기름 속에 태연히 앉아서,

"어, 이거 차서 쓰겠느냐. 어서 통장작을 더 집어넣어라."

하고 호통을 치는 것 같았다.

'그럴 수야 있나. 제 아무리 도승이기로 기름 가마에 들어 가기만 하면야 담박에 데치는 낙지 모양으로 익어 버리고야 말 것이다. 아니다, 기름 가마 앞에 서면 항복을 하고야 말 것이다.'

바람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부시를 쳤다.

찍하고 수없는 불꽃이 튀었다.

부싯깃에 불이 붙었다. 약쑥의 노란 연기가 향기와 함께 올랐다.

"됐다!"

바람의 얼굴에는 기쁨이 돌았다.

바람은 기름종이 심지를 부싯깃 불에 대고 불었다. 노르스 름한 불이 일어났다. 바람은 관솔개비를 들어 심지의 불을 옮겼다. 관솔이 향기를 발하며 불이 댕겼다.

무엇에 갇혔다가 놓여난 나비 모양으로 관솔불이 춤을 추 었다.

바람은 기뻤다.

그러나 불길한 일이 생겼다. 그것은 종이심지 불이 손에서 무릎에 떨어져서 바람의 옷이 타오른 것이다. 그것은 끄노 라다가 한 손에 들었던 관솔불에 바람의 수염이 탔다.

누린내가 났다.

"응 응."

하고 바람은 관솔불을 내던졌다. 불은 꺼지고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는 것이 무서웠다.

바람은 당에서 뛰어나왔다.

"틀렸다. 틀렸다."

하고 바람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시녀는 어쩔 줄을 모르고 펄썩 땅에 주저앉았다.

"왜 주저앉아?"

하고 바람은 시녀의 옆구리를 발길로 차서 거꾸러뜨렸다.

바람의 발길에 채인 시녀는 고꾸라져서 일어나지 못하였 다. 바람은 개미 하나를 발로 밟은 것과 같이 그런 것은 거 뜰떠보지도 아니하고 기름 가마 있는 곳으로 걸었다.

바람의 마음은 폭풍우를 만나 바다와 같이 설레었다. 부싯 불이 말을 안 듣던 것이나, 옷이 타고 수염이 탄 것이나 모 두 불길하고 불쾌하였다. 앙아신이 저를 버린 것인가, 제 명 수(命數)가 진한 것인가, 이러한 흉한 생각이 어두움 속에 번개 모양으로 번득번득 떠돌았다.

"그러기로 내가."

하고 바람은 이를 갈아 본다.

'신이 나를 버려? 버리겠거든 버려. 내가 내 힘으로 해볼 걸. 내 힘으로 원효를 처치해 버릴걸. 기름 가마에서 아니 죽거든 독사 굴에 넣지. 독사에게 물려서 몸이 깍짓동같이 부어서 뒈지게. 독사 굴에서도 안 죽거든 불로 태워 버리지.

장작더미에 올려앉히고 불을 질러 놓으면 그래도 안 죽을 까. 그래도 안 죽거든 내 칼로, 한 칼로—.'

바람은 허둥지둥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러한 생각이 모두 일순간이다.

날은 흐렸다. 늦은 봄 첫여름의 졸릴 듯한 날씨다.

늙은 홰나무에서 까마귀가 짖었다. 이 홰나무는 몇 백 년 이 묵은지 모르는 나무로 그 비인 속에는 큰 구렁이가 들어 있다고 한다. 나무에는 왼새끼를 늘이고 서리화(종이를 어석 어석 베인 것)를 달고 신으로 위하는 나무다. 옛날에 이 나 무가 벼락을 맞어서 한편은 부러지고 그 부러진 자국은 꺼 멓게 탄 대로 있다.

이 홰나무에서 우는 까마귀는 거기 붙은 신의 사자라고 믿 는다. 바람은 그 까마귀 소리를 세어 보았다.

"셋, 셋, 넷."

"넷, 셋, 넷."

바람은 늘 하던 모양으로 발을 잠깐 멈추고 까마귀 소리 수효로 점을 쳐 보았다. 그러나 정신이 산란하여서 괘(卦)가 잘 서지 아니하였다.

'하늘과 땅은 관곽이 되고, 해와 달은 등불이 되고, 까막까 치는 조객이 되고, 파리와 구더기가 상두군이 되어—.'

바람은 남화경 말을 생각하였다.

"으응, 또 불길한 생각."

하고 바람은 발을 구르며 걸었다. 이것도 일순간이었다.

이때에 요석공주와 아사가와 사사마와 세 사람이 시녀에게 끌려서 걸어오고 있었다.

"원효대사를 기름 가마에 삶으니 와 보라 하시오."

하는 시녀의 말을 들은 요석공주와 아사가는 처음에는 까 무라칠 듯이 놀랐다. 그러나 사사마는,

"염려 마시오. 원효대사가 도적의 손에 죽을 어른이 아니 오!"

하고 힘있게 하는 말에 두 여자는 정신을 수습하여서 일이 어떻게 되나 하고 시녀를 따라나섰다.

"아기는 네게 맡긴다."

공주는 이렇게 설총을 유모에게 부탁하였다. 그는 다시 설 총을 만나보지 못할 줄로 마음에 정한 것이었다.

요석공주는 만일 원효가 죽는 양을 보면 따라 죽을 것을 결심하였다. 칼은 다 빼앗기고 없으나 공주는 칼 없이 목숨 을 끊는 법을 여러 가지로 생각하였다.

아사가는 아사가대로 만일 제 몸을 희생하여서 원효대사를 건질 길이 있으면 건지고 만일 그렇지 못하면 원효대사의 뒤를 따르리라고 결심하였다.

사사마도 또 사사마대로 원효를 건져내일 궁리를 하고 있 었다. 손에 장기는 없으나 몸에 있는 힘을 재주를 다하여 보고 그래도 원효를 못 건지면 바람을 죽여 원효의 원수를 갚으리라고 결심하였다.

이 모양으로 세 사람은 저마다 제 결심을 가지고 시녀의 뒤를 따르던 것이다.

"아, 요석공주."

바람은 요석공주의 앞을 막아섰다. 요석공주는 대답은 없 이 정색하고 바람은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불이 뿜는 것 같았다.

바람은 또 등줄기가 오싹함을 느꼈다. 바람은 억지로 태연 한 태도를 수습하여서,

"흥, 오늘은 요석공주가 과부가 되는 날이오. 그 키 큰 중 놈을 기름 가마에 졸일 터이니 냄새나 맡으라고 불렀소."

하고 조롱하는 웃음을 소리를 내어서 웃었다.

요석공주는 바람의 독을 뿜는 눈에 몸서리를 쳤다.

"지내 보아야 아오."

사사마가 공주와 아사가의 앞에 나서며 소리쳤다.

이 말에 걸음을 옮기던 바람이 우뚝 섰다.

"무엇을 지내 보아야 알아?"

"악이 이기나 선이 이기나."

하고 사사마는 바람을 노려보았다. 사사마가 제가 아직 이 도적을 누를 힘이 없는 것이 슬프고 분하였다. 그러나 만일 의 경우에는 바람의 멱살을 물고 늘어져서라도 원효대사의 원수를 갚으리라, 하고 바람의 모가지를 바라보았다.

"어린 놈이 어른을 몰라보고."

바람은 사사마를 향하여 눈을 흘기며 허리에 찬 칼자루에 손을 대었다.

"이놈. 한마디만 더 버릇없는 주둥이를 놀려 보아라. 한칼 에 네놈을 두 쪽에 내일 터이니."

사사마는 바람의 위협에 굴하지 아니하였다.

"칼을 빼려거든 내 칼을 내게 주오. 커다란 어른이 칼을 가 지고 맨주먹밖에 없는 어린아이와 싸운대서야 모양이 숭업 지 않소?"

"그래. 네 칼을 주면 나하고 겨루어 볼 테냐."

바람은 빙그레 웃었다.

"내 칼을 주오. 내 칼은 충신의 칼이라 강한 적을 죽을지언 정 한낱 도적의 더러운 피를 바르기는 아깝지마는 겨룰 테 면 한번 겨루어 봅시다."

사사마의 침착하고도 담대한 이 말에 바람의 눈썹이 씰룩 하고 위로 올랐다.

"허, 고놈 맹랑하다."

하고 바람은 걷기를 시작한다.

"왜 가오? 여보, 왜 가오?"

사사마는 바람을 불렀다.

그래도 바람은 못 들은 체하였다. 바람은 속으로는 사사마 같은 아이를 처음 본다고 하였다. 원효나 사사마나 다 세상 에 드문 사람이라고 바람도 인정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바 람의 부도 그러한 호걸과는 유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 였다.

바람은 제가 잘난 사람인 것을 자신한다. 왕의 아들이라는 자랑이 있을뿐더러 누구나 제 앞에 오면 다 심복하거나 그 렇지 아니하면 무서워서 떨었다. 극히 담대한 자면 발악을 하였다. 그러나 원효의 무리는 심복도 아니하고 떨지도 아 니하고, 또는 발악도 아니하고, 도리어 저를 낮추보고 불쌍 히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한 태도가 바람을 못견디게 하였 다.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듯한 그 눈들이 싫고 무섭기까지 하였다.

"내가 왕의 아들인데, 왕이 될 사람인데."

하면 더욱 불쾌하였다.

그렇게 사사마의 눈이 무서웠다. 만일 사사마에게 그 칼을 주고 겨룬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이 바람은 압기가 됨을 느 꼈다.

"그것이 무슨 힘일까. 어린 사사마까지도 계집애 아사가에 게까지 범치 못할 기품을 주는 것이 무슨 힘일까?"

바람은 그 힘이 무서웠다.

바람은 그 힘을 제 힘으로 눌러 보려 하였으나 되지 아니 하였다. 요석공주를 잡아온 뒤로 여러 가지로 달래어도 보 고 울러도 보고 하였으나 도무지 흔들림이 없었다. 원망이 라도 하였으면 좋았으나 원망조차 없었다. 그런 것이 바람 을 한없이 초조하게 만들었다. 바람으로 하여금 제 힘에 대 한 자신을 잃게 한 것이었다.

'오늘은 끝장을 내는 날이다. 내가 지나 제가 지나 끝을 보 는 날이다.'

바람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힘있게 발을 옮겨놓았다.

이때에 피리가 마주왔다.

"어찌 되었나?"

바람은 피리에게 물었다.

"원효가 아주 말을 잘 듣소."

피리는 이렇게 말하면서 뒤에 오는 요석공주 일행을 힐끗 보았다. 아사가를 보매 피리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떻게 말을 잘 들어? 항복을 한 대?"

바람은 눈을 크게 떴다.

"항복이오? 원효가 누구에게 항복할 사람이오?"

피리는 바람의 불탄 옷과 한편 귀퉁이가 타 없어진 수염을 보고 흠칫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저 수염이 웬일이시오?"

피리는 소리를 쳤다. 수염 한편이 이지러지니 얼굴이 온통 찌그러진 것 같았다.

"아, 또 저 옷도."

하고 피리는 구멍이 뚫어진 바람의 웃옷 앞자락을 보았다.

피리는 바람의 꼴이 창피함을 보고 슬펐다.

"아니, 항복이 아니면 무엇으로 원효가 말을 잘 듣는단 말 인가?"

바람은 수염이나 옷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모양을 보였다.

"결박을 지라니까 결박을 지고요."

피리는 한숨을 쉬었다.

"결박을 지라? 아니, 달려들어서 결박을 지우지 못하고 본 인에게 빌어서 결박을 지운단 말야?"

바람은 피리를 노려보았다.

피리는 기막힌 듯이 코를 울리며,

"말 맙시오. 제가 지려 들지 아니하면 원효 결박 지울 사람 이 어디 있는 줄 아시오? 군사들이 덤비어들다가 원효의 지 팡이에서 불이 펄펄 일어나니까 다 뒤로 물러서고 말았소."

하고 웃는다.

요석공주 일행이 서너 걸음 뒤에 따른다.

"그놈의 지팡이를 못 분질러 버려?"

바람은 숨이 씨근거린다.

"우물을 치면 물이 불이 되는 지팡이오. 누가 그 지팡이를 건드린단 말요?"

"허, 끝날야 끝날. 그래 원효가 지금 어디 있어?"

바람은 아무리 하여서라도 원효를 기름 가마에 넣고야 말 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게 하면서 주먹을 불끈 쥔다.

"기름 가마 곁에 가 섰소."

"날치기 못하게 꼭 결박을 지웠지?"

"손발을 꼭 비끌어매었소."

"사람들은 다 모았나?"

"두목들은 다 모았소."

바람은 고개를 돌려서 요석공주 일행을 한번 힐끗 보고,

"냉큼 들어서 기름 가마에 집어넣지. 제 아무리 원효기로 몸뚱이가 쇠나 돌이 아닌 연에 끓는 기름 가마에 들어가면 죽지 별수 있나."

하고 빨리 걷는다.

"글세, 뜻대로 될지 모르겠소."

피리는 바람의 뒤를 따른다.

"무엇이 뜻대로 안 되어? 이 사람아."

바람이 피리를 돌아본다.

"하도 원효가 태연하니까 말씀이오. 나도 원효가 어떻게 하 나 하고 바라보고 있다가 하도 원효가 까딱도 아니하니까 무시무시해서 나왔소."

"에익. 묶어 놓은 사람이 무서워?"

"가 보시오마는 모두들 무르팍 마디를 떡떡 마주치고 있소.

무슨 큰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그 불 붙은 지팡이가 공중 으로 날아와서 무슨 큰 변괴를 내일 것만 같아서. 암만 불 이 붙어도 제 몸은 타지 않고 고대로 있는 지팡이오."

하고 피리는 몸이 오싹하는 모양을 보인다.

바람도 그 말이 듣기가 싫었다. 부싯불이 안 일어나던 것, 옷과 수염이 탄 것, 홰나무 위에서 울던 까마귀—이런 것이 모두 바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였다. 그러나 바람은 한번 이 를 갈았다.

'제가 죽나 내가 죽나.'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면서 서쪽 일각문을 나간다.

기름 가마가 있는 곳은 서편 수풀 속에 있는 큰 집이다.

창고와 방앗간을 겸하고 그 한편 끝에 큰 가마가 하나 걸려 있다. 이것은 소 한 마리를 잡아서 통으로 삶는 큰 가마다.

큰 아궁이에는 통장작이 활활 타서 침침한 속에 그림자가 어른어른하고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십 명 구실(두목)이 모두 칼을 차고 둘러서고 졸개들이 손발을 묶인 원효를 에워싸고 서 있었다.

바람이 오는 것을 보고 두목들은 일제히 칼을 빼어서 칼끝 으로 땅을 가리켜 경의를 표한다.

바람은 칼끝으로 하늘을 가리켜서 이에 대답한다. 나는 너 희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그리고는 바람의 눈은 기름 가마 에서 서너 걸 떨어져서 손을 뒷짐을 지고 두 발목을 베 헝 겊으로 얽매여서 군사 네 사람이 지키고 섰는 원효에게로 간다.

원효는 거의 무표정에 가까웁도록 침착하게 서 있었다. 그 눈은 바람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바람은 원효의 눈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 눈을 견딜 수 없는 힘으로 내려눌렀다. 바람은 그 눈에 지지 아니하려 고 있는 힘을 다하였으나 눈은 서리맞은 나뭇잎 모양으로 풀이 없었다.

바람은 그것을 감추려고 한번 껄껄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고요한 수풀 속에 울릴 때에 바람은 제 소리가 제 소리 같 지 아니하여서 몸에 소름이 끼쳤다.

"까욱 까욱 까욱."

하고 또 까마귀가 짖었다.

구름이 터지며 햇빛이 흘렀다. 모두 무시무시한 광경이었 다.

"그래, 원효대사. 이래도 항복을 아니할 터이야?"

바람은 기운을 내려고 소리를 가다듬었다. 그의 한편 이지 러진 수염이 움직였다.

원효의 얼굴에는 웃음이 뜨는 것 같았으나 그것도 곧 사라 지고 말은 없었다.

"지금이라도 살려 달라고만 하면 살려 줄 테야. 요석공주와 아사가를 내게 준다고 다짐만 쓰면 살려 줄 테야."

바람은 칼끝으로 원효를 가리켰다. 그래도 원효는 대답이 없었다.

이때에 요석공주와 아사가와 사사마가 왔다. 요석공주가 앞서고 다음에 아사가가 서고 사사마가 뒤를 따랐다. 사사 마의 눈에는 정기가 가득하였다. 죽기를 결심한 눈이었다.

비록 이 자리에 번뜩이는 칼들이 모두 내 몸에 모여들더라 도 반드시 스승의 원수를 갚고야 만다는 결심이었다.

요석공주는 칼을 빼어 들고 둘러선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도 아니하는 듯이 천천히 걸어오다가 원효의 모양이 보이는 곳에서 우뚝 섰다. 공주는 몸이 공중에 솟을 듯하다가 푹 쓰러질 듯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에 곧 진정하여서 원효 를 바라보았다.

원효가 죽는 것을 보면 다음 순간에 저도 따라 죽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자리를 잡았다.

아사가는 공주와 달라서 원효를 보자 곧 무릎을 꿇고 합장 하였다. 그러고는 일어나기를 잊어버린 듯이 그대로 눈으로 원효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사마도 아사가와 같이 하였다. 사사마는 곧 뛰어가서 원 효를 묶은 숙마바를 이빨로 물어 끊고 싶었으나 원효의 부 드러운 눈이—빙그레 웃음까지 띤 눈이 제게 향한 것을 볼 때에는 사사마의 단단히 맺혔던 독한 마음이 스르르 풀리 고,

'가만히 스님을 따르오리라.'

하는 생각이 났다.

"자, 마지막이야."

하고 바람은 원효와 요석공주를 돌아보며,

"원효대사, 이것이 마지막이야. 항복을 하면 살고, 아니하 면 죽는 거란 말이다. 신라왕의 말씀은 다시 거두어들일 법 이 있더라도 내 말은 한번 떨어지면 하늘의 힘으로도 돌릴 수 없단 말이다. 요석공주와 아사가를 내게 바치겠느냐 아 니 하겠느냐, 다짐을 쓰란 말이다. 이바라, 네 지필묵 가져 오고 원효대사 결박끌러서 이리 끌어내어라."

원효의 결박이 끌러졌다.

서안과 지필묵이 나왔다. 군사가 서안 위에 종이를 펴고 붓을 원효에게 주었다.

모든 사람의 눈은 원효의 손으로 옮았다. 공주와 아사가는 침을 삼키고 있었다.

원효는 붓을 들어서 벼루에 이리 굴려 저리 굴려 먹을 흠 씬 먹였다.

원효는 붓을 들어 선 채로 종이에 임하다가 다시 붓을 놓 으며,

"자리를 가져오너라."

하였다.

"자리를 가져오너라."

바람이 원효의 청대로 명하였다. 졸개가 돗자리를 갖다가 땅에 깔았다.

"방석을 가져오너라."

원효는 다시 명하였다. 원효의 명대로 방석을 가져왔다.

"양치 물과 손 씻을 물을 올려라."

원효는 다시 명하였다. 명대로 물이 왔다. 원효는 양치하고 손을 씻었다.

양치하고 손을 씻은 후에 원효는 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가만히 눈을 내리감았다.

바람과 일동은 원효가 하는 양을 보고 있었다. 원효는 다 시 눈을 떴다.

"향과 향로를 올려라."

하고 원효는 뉘게 명하는지 모르게 명하였다.

말이 떨어지자 난데없는 청자 향로와 향합이 공중으로서 내려와 서안에 놓였다.

바람과 일동은 실색하여서 한걸음 물러섰다.

"나무관세음보살."

하는 소리가 올랐다. 요석공주와 아사가가 감격하여서 부 르는 것이었다. 그 소리가 차차 높아져서 골에 차고 온 공 중에 차는 것 같았다.

원효는 손을 들어서 향합을 열고 말향을 집어 향로에 넣었 다. 푸른 향연이 용 모양으로 올랐다.

원효는 입을 크게 벌려,

"아—."

하고 소리를 내었다. '제법본불생'(諸法本不生)의 '지'(地)자 진언이다. 마음에 있는 모든 번뇌를 뱉어버리는 진언이다.

나고 살고 죽는 것이 모두 허깨비요, 본래 있는 것이 아니 라는 법문에 들어가는 진언이다. 다음에 원효는,

"비—."

하고 불렀다. 길게 불렀다. '수'(水)자 진언이다. '본성이언 설'(本性離言說)이다. 땅에 있으면 물이 되어 샘이 되고 내 가 되고 바다가 되고, 하늘에 오르면 안개가 되고 구름이 되고, 다시 그것이 이슬이 되고 비가 되고 서리와 눈과 우 박이 되어 내리고, 더우면 눈에 안보이는 김이 되고, 추우면 단단한 얼음이 되어 어느 것이 그 본성인지 알 수 없으니 사람도 그와 같아서 아침에 선인이 되고 저녁에 악인이 되 고 금시에 기뻐하고 웃다가 또 금시에 슬퍼하고 울고, 중생 의 목숨을 끊는 손이 곧 신명 앞에 분향하는 손이 되는 것 이다. 같은 마음이 자비심이 되고 탐욕도 되고 사랑도 되고 미움도 된다는 것을 아는 법문에 드는 진언이다. 원효는 다 음에,

"라—."

를 불렀다. 그 소리는 맑고도 힘이 있었다. 이것은 '화'(火) 자 진언이다. '청정무렴구'(淸淨無梁垢)의 진언이다. 천지는 본래 청정한 것이다. 중생의 마음도 본래 청정한 것이다. 불 이 깨끗함과 같이 깨끗한 것이다. 본래 청정한 법계가 더러 워짐은 중생의 무명(無明)의 때가 묻기 때문이다. 악업의 때 다. 어리석어서 하는 망녕이다. 허망이란 것이다.

다음에 원효는 심히 우렁찬 소리로,

"훔."

을 불렀다. '풍'(風)자 진언이다. '인업등허공'(因業等虛空)이 란 진언이다. 중생이 하는 모든 일이 다 허공에 그림을 그 림과 같으나 그러면서도 인과응보는 어그러짐이 없다는 것 을 아는 법문이다.

원효는 마음이 편안하였다. 땅과 같이 든든하고 물과 같이 자유자재하여 걸림이 없고, 불과 같이 깨끗하고 허공과 같 이 거칠 데가 없었다. 원효는 평생에 처음 경험하는 청정한 경지를 보았다.

"생사열반유여영몽'(生死涅槃猶如映夢)의 경지요, '해탈청정 보전'(解脫淸淨寶殿)에 오른 경지다.

원효는 죽음을 앞에 놓고서야 비로소 이러한 경지를 경험 한 것이다. 원효는 지금 자기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 것도 다 잊었다. 오직 법계에 가득한 불법을 볼 따름이었다. 원효 는 저도 모르게,

"시방삼세일체제불, 제존보살마하살, 마하반야바라미(三方 三世一切諸佛, 諸尊菩薩摩訶薩, 摩訶般若波羅蜜)."

하고 합장하였다.

'모두 불언이다.'

원효는 부처님의 은혜를 뼈속까지 깊이깊이 느꼈다. 무상 도(無上道)의 고마움을 속속들이 맛보았다.

원효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떠올랐다. 법열(法悅)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원효는 제불보살도 모두 공화(空華)의 난 기난멸(難起萬滅)임을 보았다.

'공공적적(空空寂寂)이다. 적멸(寂滅)이다.'

공간과 시간이 일시에 다 타버리고 말았다. 오직 환할 뿐 이다. 억지로 이름을 지으면 각원명(覺圓明)이다.

원효의 얼굴에는 다시 웃음이 떠돌았다. 적멸의 경계에서 다시 중생세계로 돌아나오는 것이었다.

원효는 눈앞에 바람과 여러 도적들과 요석공주와 아사가와 나무들과 이런 것을 보았다. 그것들이 모두 갓난아기와 같 이 불완전하면서도 귀여움을 느꼈다. 최애일자지의 자비심 이다.

원효는 청정보전에서 나와서 중생 속에 들어가 중생과 같 이 고생하고 슬퍼하고 기뻐할 충동을 느낀다. 모든 중생을 위로하고 그들과 동무가 되고 그들의 의지가 되고 그들의 빛이 되고 길이 되어야 할 것을 느낀다. 모든 중생을 다 건 져서 하나도 남김이 없이 되기 전에는 성불 아니하리라던 법장비구(法藏比丘)의 맹세의 심경을 맛본다.

원효는 붓을 들었다.

"菩薩變化. 示現世間. 非愛爲本. 但以慈悲. 令彼捨愛. 假諸 貪慾. 而入生死."

보살이 사람을 모을 가지고 세상에 나타나는 것은 애욕으 로 그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비심으로 중생으로 하여 금 애욕을 버리게 하려고 모든 탐욕의 모양을 빌어 나고 죽 는 중생이 됨이니라.

이렇게 쓰고 원효가 붓을 던질 때에 향합에 남은 향이 저 절로 타서 향기가 법계에 차고 원효의 몸에서는 환하게 빛 을 발하였다.

바람은 눈을 스르르 감고 고개를 점점 숙이더니 원효의 앞 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느껴운다.

다른 도적들도 일제히 칼을 던지고 무릎을 꿇는다.

요석공주도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려 울었다. 아사가도 사 사마도 그러하였다.

오직 피리만이 영문을 모르는 듯이 눈을 휘휘 두르고 서 있었다.

이럭저럭 타던 기름 가마의 불이 꺼지고 고붓이 나며 끓던 기름 가마가 조용하였다.

그로부터 며칠을 지나서였다. 신라 서울에는 원효대사가 도적의 두목 바람을 제사로 만들어 가지고 들어온다는 소문 이 났다.

마침 사월 파일, 온 장안이 관불회로 집집에 등을 달고 아 이어른이 모두 새옷을 입고 거리에 가득 찬 날, 원효가 서 울 거리에 내렸다. 바람과 오십 명 도적 두목과 요석공주, 아사가, 사사마 등을 데리고 오는 것이다.

원효가 요석공주와 유모에게 업힌 설총과 아사가를 데리고 앞을 서고 사사마가 칼을 차고 바람 이하 오십 명 도적의 두목을 숙마바로 손과 허리를 묶어서 그 끈을 사사마가 잡 고 끌었다.

수백 명 거지떼가 의명의 인솔을 받아서 원효를 맞아서 모 두 절하고 뒤를 따랐다.

대각간 유신이 부인 지조공주와 함께 나와 원효를 맞고 수 없는 백성들이 이 광경을 보려고 길가에 도열하였다.

유신은 원효의 앞에 와서 말을 내리고 지조공주도 가마에 서 내려서 형 요석공주와 만났다.

원효는 길에 무릎을 꿇은 바람과 오십 명 도적 두목을 가 리켜,

"이 사람들이 전날 죄를 뉘우치고 나라 법대로 벌을 받는 다고 자진하여 결박을 지고 왔소."

하고 또 사사마와 아사가가 충신 장춘랑의 후손인 것을 말 하였다.

유신은 바람과 오십 명 두목을 향하여,

"너의 죄 만번 죽어 마땅하거니와 원효대사의 제도를 받았 다는 뜻 들으시고 상감마마 분부하시기를 이로부터 나라에 충성하기를 맹세할진댄 모든 죄를 용서하실뿐더러 각각 재 주 따라 나라 일에 씁신다 하셨으니 그리 알아라."

하고 어명을 전달하였다.

바람과 일동은 머리를 조아렸다.

바람은 왕자의 대우를 받아 서당장군(誓幢將軍)이 되고 다 른 두목들도 각각 군직을 받게 되었다. 이로부터 몇 해 뒤 에 신라가 백제를 칠 때에 황산(黃山) 싸움에 용감히 싸운 장수들이 이들이요, 또 죽기를 무릅쓰고 백제와 고구려의 국정을 염탐한 것이 거지떼들이었다.

원효는 산간에 숨어서 도를 닦고 제자들을 가르치고 요석 공주와 아사가는 평생에 원효를 따르는 비구니가 되었다.

—끝—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