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 · 이광수

Chapter 6: 방랑

가상아를 떠난 원효는 정처없이 걸었다. 이른바 거랑방이 생활이다. 이른바 거랑빙아란 '가라'라고도 하고 '가사'라고 도 하여 바람이란 말에서 온 것이요, 방이란 곧 방아 또는 바가로 방아신을 섬기는 사람이란 뜻이다. 방이 또는 바가 라면 선비라는 말과 비슷하여서 대접하는 말이다.

화랑들이 공부를 마치면 거랑방이가 되어서 명산대천으로 돌아다닌다. 이것은 좋은 스승과 벗을 찾는 뜻도 있고 인정 풍속을 살피는 뜻도 있고 또 흉악한 사람이나 짐승을 만나 서 담력과 무예를 닦는 뜻도 있고, 웅대하거나 아름다운 자 연 풍경을 보아서 느낌을 기르는 뜻도 있고, 또 이름있는 당에 가서 기도를 하는 뜻도 있다. 이것저것 합하여서 남아 의 금도를 늘리고 또 파겁을 하자는 것이 목적이지마는 그 밖에도 청년 남아가 정처없이 유랑하는 것은 모험욕과 호기 심을 만족시키는 유쾌한 일이었다.

신라에 이름있는 사람들은 대개 젊어서 거랑방이 생활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거랑방이 중에는 이러한 목적 이외의 목적을 가진 자도 있었다. 혹은 먹을 것이 없어서 얻어먹으러 다니는 자 도 있고, 혹은 고향에서 무슨 죄를 저지르고 피신하여 다니 는 자도 있고, 혹은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고 원수의 중적을 찾아다니는 자도 있고, 혹은 도적들이 거랑방이 행색을 하 고 다니는 자도 있었다.

좀더 놀라운 거랑방이는 고구려와 백제의 염탐군들이었다.

그들은 거랑방이 모양을 하고 신라 각지로 돌아다니면서 신 라의 지리와 방비와 민정을 염탐하였다. 이와 반대로 신라 의 염탐군이 고구려와 백제로 가는 것도 물론이다. 춘추도 젊어서 고구려로 숨어 들어가다가 말 사투리로 신라 사람인 것이 발각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거랑방이라면 본래는 수도하는 선비나 장수이기 때 문에 신라 사람들은 거랑방이를 우대하였다. 동네마다 세사 가 넉넉한 집에서는 사랑문을 열어놓고 누가 오든지 한번 수작을 붙여 보아서 공부가 있는 사람이면 손님으로 대우하 여서 먹이고 재우고 또 노자까지도 주어 보내었다. 이렇게 사랑문을 열어놓는 것을 집의 자랑으로 여겼다.

사랑이란 이렇게 손님을 위하여서 있는 것이었다. 손님이 란 결코 제 친척이라든지 본래부터 아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친척이나 아는 사람밖에 대접할 줄 모르는 것은 상놈으로 수치로 여겼다. 누구나 내 문전에 오는 이는 다 손님이었다.

이 모양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편, 즉 주인으로 보면 손님 을 대접하는 것은 인생의 낙인 동시에 큰 공부였다. 아무리 못난 나그네라도 한두 가지 배울 것과 들을 말은 가지고 왔 다. 만일 몇 십 명에 하나나 몇 백 명에 하나라도 큰 인물 을 만나면 이것은 일생에 큰 복이다. 그러한 사람 가운데는 도학이 높은 이도 있고, 학식이 많은 이도 있고, 또 장차 대 신, 대장이 될 사람도 있는 것이다. 사랑에서 하룻밤을 잘 대접하는 인연으로 장래에 무슨 큰 복이 돌아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주인은 사랑에 앉아서 앞길을 바라본다. 앞길과 사랑 사이 에는 필시 수양버들이나 돌매나무가 차면 모양으로 늘어섰 을 것이다. 그 그늘로 하루 종일 사람이 지나다닌다. 말이나 가마를 탄 귀인도 지날 것이요, 짐을 지고 소바리를 끄는 가난한 사람도 지날 것이다. 그러나 유시호 큰 방갓을 쓰고 소매 넓은 방아라를 입고 봇짐을 넌지시 지고 지팡이를 끄 는 거랑방이도 지나갈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 지나가면 사 랑에 앉은 주인의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다.

'필시 범상치 아니한 사람이다.'

하고 고개를 늘여서 그 사람의 행동을 살필 것이다.

그 나그네는 필시 나무 그늘에 서서 부채를 부치면서 동네 를 들여다볼 것이다. 그가 정말 학식이 있는 방아라면 이 동네의 판국을 먼저 살필 것이다. 주룡(主龍)이 어떻고 청룡 (靑龍), 백호(白虎)가 어떻고 수구(水口)가 어떻고 안산이 어 떻고 향작이 어떻고, 이 모양으로 그 동네의 판국을 살펴서 이 동네에 인물이 날까 말까를 점칠 것이다. 산을 사랑하는 이 땅의 백성은 알 수 없는 옛날로부터 산과 물의 생김생김 으로 땅의 운수를 보는 것이 발달된 것이었다.

길게 뻗친 산맥이 우뚝 솟고 뚝 끊치며 앞으로 큰 강이 휘 임하게 돌고 큰 들이 열리면 이것은 이른바 천부금탐으로 수백만 인이 수천년 번창할 만한 큰 터다. 만일 바다가 가 까우면 더욱 좋고 흙빛이 검지 아니하면 더욱 좋다.

이러한 터로 말하면 한 나라에도 하나나 둘밖에 못 되지마 는 한 동네가 될 만한 터도 규모는 작을지언정 배포는 마찬 가지다. 좌향은 남향이 좋고, 서북이 막히고 동남이 터진 것 이 좋고, 화강석(花崗石) 있는 데가 물이 좋고 곡식과 과일 이 맛있고, 산이 험하면 못쓰고, 터전은 평탄해야 쓰고, 흙 은 조강하면서도 물은 있어야 쓰고, 물 나가는 데가 환히 보이면 못쓰고, 골짜기가 통일이 못 되고 어지러우면 인심 이 침착하지 못하고 판국밖의 산이 넘보면 사람들의 마음이 들뜨고, 동북방, 북방, 서북방은 신을 모시는 데요, 서남방을 더럽게 하면 못쓰고, 이런 것이 다 조상 적부터 내려오는 동네터, 집터를 보는 법이다.

나무 그늘에 선 나그네가 동네의 산세와 수세를 살핀 뒤에 는 인기를 살핀다. 인기란 거기 사는 사람들의 기상이다.

길이 넉찍하고 집들이 터전이 넓고 굵직굵직하면 인기가 힘이 있는 것이요, 비록 초가집이라도 게딱지 같으면 그 속 에 사는 사람은 보잘것이 없다.

다음에는 개와 닭과 소와 말을 본다. 개, 도야지, 닭, 소, 말, 고양이, 이것은 이 땅 백성이 알지 못하는 옛날부터 같 이 살아온 동무다. 아마 아세아 대륙의 훨씬 북쪽으로부터 남으로 남으로 옮아오는 동안에 언제나 데리고 온 동무다.

개는 강아지, 즉 햇님의 것이라 하여, 도야지와 닭은 달님의 것이라 하여, 소는 수신의 것이라 하여, 말은 또다시 일신의 것이라 하여서 서로 정들게 서로 도우며 살아온 것이다.

도, 개, 걸, 윷, 모는 도야지, 개, 가라사, 즉 날짐승과 소와 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짐승들의 번성하는 동네면 인기가 왕성한 동네다. 이밖에 동네에 같이 사는 동무로는 까마귀, 까치, 참새, 구렁이, 족제비, 고양이, 쥐가 있다. 아마 파리와 모기도 예부터의 미움받이 동무일 것이다.

나그네가 드샐 곳을 찾은 때면 닭이 홰를 치며 저녁을 알 릴 것이요, 까막 까치도 닭의 소리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 일 것이다.

이때에 바가지를 동이에 넣어 옆에 끼고 우물로 물 길러 나오는 처녀나 아낙네가 인물이 단정하고 몸피가 좋고, 그 뒤를 따르는 벌거숭이 아기들이 눈이 어글어글하고 콧마루 가 우뚝하고 울음소리가 우렁차면 이 동네는 필시 번성하는 동네다. 만일 살진 송아지와 망아지가 소리를 지르고 날뛰 면 더할 수 없이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는 동네일 것이다.

이런 동네면 물도 맛있고 밥도 맛있고 장도 달 것이다. 필 시 된장에는 구더기가 없고, 아궁이에는 불이 잘 들여 개목 이 타는 냄새가 아니 날 것이다. 술도 시지 아니하고 빛이 매 눈딸 같을 것이요, 누룩에는 황금빛 옷이 입혀질 것이다.

나그네는 어슬렁어슬렁 동네로 들어와 사랑문 열어 놓은 집을 찾을 것이다.

그는 대문을 쓱 들어서며,

"여보아라."

하고 호기 있게 부를 것이다.

이때에 방아머리한 사내아이가 내달아 손님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땅바닥에 짚고,

"어디서 오신 뉘시온지."

하고 물을 것이다.

"지나가던 나그넬러니 하룻밤 드새고나 가자고 댁 문전에 섰읍니다고 사뢰어라."

"방이 누추하나 상관 아니하시거든 듭시사고 여쭈어라."

이리하여서 나그네는 사랑에 오르는 것이다.

세숫물과 발 씻을 물이 나오고, 나그네가 보에 쌌던 새옷 을 내어 입을 만한 때에 주인이 나와서 수인사를 하고 혹은 차가 나오고 혹은 술상이 나오고 이러하는 동안에 주객은 서로 저편의 인물을 살피는 것이다.

밤이 되면 이야기판이 벌어지고, 혹은 음악과 소리가 나오 고, 만일 주객이 뜻이 맞으면 첫닭이 올 때까지 이야기가 끊어지지 아니하는 것이다.

거랑방이는 세상 소식을 많이 알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 이 아는 까닭이었다.

사랑문을 열어 놓고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이 백성이 가장 낙으로 아는 일이었다. 잘 산다는 것은 잘 위하고 손님을 잘 대접하는 일이었다.

양식이고 과일이고 무엇이든지 반드시 세 가지 그릇에 갈 라 담았다. 하나는 신께, 하나는 손님을 위하여, 그리고 하 나는 식구들이 먹는 것이었다. 손님을 신의 다음가게 존중 하였다.

내 집을 찾아오는 나그네는 다 신이시거나 그렇지 아니하 면 신이 보내신 사자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 나그네가 드는 때로부터 떠나는 때까지는 이 집에서는 제삿 날이었다. 집안에서는 새옷을 갈아입고 모든 부정을 기하였 다. 그리고 집에 있는 모든 맛난 것을 대접하고 집안 사람 들끼리 말도 조심하였다.

만일 손님에 대하여서 흉을 보거나 험구를 하면 큰 버력이 내릴 것으로 알았다.

아이들이 울다가도, '손님 오셨다'하면 울음을 그쳤다.

홍역을 작은 손님이라고 하고 마마를 큰손님이라고 하고 별성마마라고 한다. 이것도 눈에 아니 보이는 신이 찾아와 서 머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이 계시다가 고이 떠나소사."

이것이 식구들의 소원이었다. 식구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서 티끌만한 부정도 없으려고 애를 썼다. 부부는 동침 을 아니할뿐더러 그러한 생각만 먹어도 손님을 노여우시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마치 찰찰 넘는 물그릇을 들고 걸음 을 걷는 사람 모양으로 조심조심하였다.

금줄을 늘이고 대문을 지치는 모양으로 마음에다가도 금줄 을 늘이고 대문을 지치는 것이었다. 솥에서 밥이 잦는 소리 나 아궁이에서 불이 타는 모양도 무심히 지나칠 수가 없었 다. 소중한 아들이나 딸에게 크나큰 손님이 찾아와서 머무 시는 것이다. 마마뿐 아니라 무슨 병이나 그렇게 생각하였 다.

까치 소리, 까마귀 소리는 더우기나 유심하게 들어서 그 곳에서 손님의 뜻을 찾아보려 하였다.

"닭이 서서 졸았다."

"족제비가 아슬랑아슬랑 마당으로 지나갔다."

이런 것은 다 꿈자리와 아울러서 손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재료가 되었다. 늙은 할머니는 많은 자식과 오랜 경험으로 그 곳에서 길흉을 판단하여서 여러 가지 신사(神事)를 행하 는 것이었다.

산 사람 손님께 대한 것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손님 하나 를 잘못 대접해 보내면 언제 무슨 동티가 날는지 모른다.

그러나 손님을 환영하는 것은 다만 이러한 두려움에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천성이었다.

'손님, 나그네' 이것은 그들에게 심히 아름답고 반갑고 무 한한 흥취를 주는 말이었다.

원효는 이러한 속에 거랑방이로 나선 것이었다. 그의 허리 에는 여전히 호로 여덟을 차고 바가지 넷은 짐에 달고 뒤웅 박 하나는 손에 들었다. 호로 여덟은 가나다라마바사아다.

이것은 여덟 신장의 이름인 동시에 이 백성이 살아온 역사 다. 그리고 모든 음악의 기조다. 옥타브다. 악기를 건드린다 는 것은 가나다라한다는 말이다. 건들거린다, 건들먹거린다 는 것은 가나다라, 가나다라마 가락에 맞춘다는 것이다.

짐에 단 바가지 넷은 밥 그릇, 물 그릇, 반찬 그릇, 국 그 릇이다. 큰 것, 작은 것, 더 작은 것, 제일 작은 것을 포개면 하나와 같이 된다. 손에 든 뒤웅박은 목탁 대신이다.

길을 가다가 끼니때가 되면 원효는 세존께서 탁발하시던 법을 본받아서 어느 동네에 들어가 큰 집이라고 고르지 아 니하고, 작은 집이라도 빼어 놓지 아니하고 골고루 찾는다.

딱, 딱, 딱, 뒤웅박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

하고 염불을 부른다. 열 말을 불러도 주인이 나오지 아니 하면 다음 집으로 가서 또 그와 같이 한다.

이 모양으로 원효는 여섯 집을 찾는다. 육바라밀(六波羅蜜) 을 생각하는 것이다. 여섯 집을 돌아서 얻어지는 것을 먹고 더 돌지는 아니한다. 만일 여섯 집을 돌아도 밥이 얻어지지 아니하면 그 끼는 굶을 작정이다.

원효는 애초에 목적한 대로 고향에 돌아가 예전에 살던 터 (지금은 절이다)와 분묘를 돌아보았다. 십여 년 전에 떠난 뒤로는 마음 고향에 온 것이다. 원효는 아는 사람을 더러 만났으나 그들은 원효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원효가 천하에 소문이 나고 나랏님의 스승이 되었다고 들은 그들은 이 거 랑방이가 원효라고 생각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수염이 자 라는 대로 내버려 두어서 일년 전에 보던 사람도 알아볼 수 가 없을 지경이었다. 또 원효도 아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행 색을 드러내고 싶지 아니하여서 방갓을 깊이 쓰고 얼굴을 남에게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모든 것을 파탈한 몸이라 하더라도 고향은 정다왔다. 자기가 자라난 집과 동네는 반가왔다. 자기를 낳 고는 곧 돌아가셨다는 어머니의 산소 앞에서는 원효도 눈물 을 아니 흘릴 수가 없었다.

새벽에 상아당에 다녀오던 길에 밤나무 밑에서 자기를 낳 고는 몸에 지녔던 아버지의 옷으로 휘장을 쳤다는 것이 견 딜 수 없이 원효로 하여금 그 어머니를 그립게 하였다. 그 한 가지 사실에서 원효는 그 어머니의 아내로서의 마음, 어 머니로서의 마음을 살필 수가 있었다.

그것은 퍽도 깊은 인연이면서도 퍽도 짧은 인연이었다. 원 효는 첫아들인 동시에 외아들이었다. 그 어머니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아들 원효를 낳아 놓고는 곧 세상을 떠나고 만 것 이었다.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들에게 젖꼭지 한번도 못 물려 보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원효는 사람의 이목에 띄일 것을 꺼려서 다 저문 뒤에 그 어머니의 산소를 찾았다. 그리고,

"바바!"

하고 불렀다. 어머니라는 신라 말이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유한일 것이라고 원효가 생각한 것이다.

원효는 수없이,

"바바, 바바!"

하고 불렀다. 실컷 어머니가 원하던 소리를 들리자는 것이 다.

그러나 무덤에서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벌써 삼십 사년이 다. 사람이 죽어서 삼십 사년이면 해골도 남았을둥 말둥 하 다.

어머니에게는 벌써 아들 원효가 부르는 소리를 들을 귀가 없다.

"어머니는 지금 어디 계신가."

원효는 어머니가 지금 있는 곳을 내다보려는 듯이 눈을 들 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첫가을 별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바바, 지금 어디 계시오."

원효는 애가 탐을 느꼈다.

어머니가 계신 곳을 알기 곧 할 양이면 그곳이 하늘 꼭대 기나 땅밑이라도 따라가고야 말 것 같았다.

원효의 나던 날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이다. 그것은 무척 슬픈 이별이다. 모자간에 피차에 얼굴 모습도 모른다. 음성 도 모른다. 그러나 영원한 시간 중에 어디서 만나더라도 필 시 서로 알아볼 것 같았다. 알아보고말고. 그렇게 깊은 인연 이요, 그렇게도 깊은 정이어든. 만나자 떠났기 때문에 그 은 정이 더욱 깊은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나를 낳으시려고 세상에 오셨었다. 나를 낳으시 매 곧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는 당신의 목숨을 나를 낳으 시기에 희생하였다.'

이렇게 생각하면 더욱 어머니가 그리웠고 가엾기도 하였 다.

"바바, 바바."

원효는 또 몇 번 소리를 높여서 불렀다.

원효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할 길이 없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모습은 의희하게 생각이 나지 마는 어머니는 생각할 길이 없었다.

원효는 돌아가신 승만여왕을 뵈올 때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와 같으리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제 그 어머니 의 산소 앞에서도 승만여왕을 생각하였다. 승만여왕과 어머 니를 하나로 보고 원효는 한숨을 지었다.

세존께서도 나시는 날 그 어머니를 여의셨다.

'나도 성불하는 최후생에 이 어머니의 아들로 나리라.'

원효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밖에 그 어머니의 은혜를 갚 을 길이 없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무덤 앞에 선 원효는 문득 요석공주를 생각하였 다. 요석공주가 만일 아기를 배었으면 그의 운명이 또 원효 의 어머니와 같지 아니할까 하였다.

원효는 중이 되면서부터 스스로 인생의 모든 인연을 끊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무시(無始)로부터 내려오는 윤회의 사슬 을 완전히 끊어 버린 것으로 생각하였고, 다시는 아무러한 인연도 짓지 아니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스스로 아무것에도 물들지도 아니하고[無梁], 걸리지도 아니하는[無碍] 보살로 생각하였다. 선연(善緣)이나 악연(惡緣)이나 다시는 맺지 아 니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이제 생각하면 원효는 벌써 다생의 업보에 졌다.

요석공주와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었고, 만일 그가 아이 를 낳는다 하면 그것은 더구나 끊을 수 없는 인연이 된다.

원효는 얽히고 설킨 인연의 동아줄이 자기를 끌어당김을 느 꼈다.

"무애!"

원효는 스스로 코웃음을 하였다. 승만여왕이나, 지금은 어 디가 있는지 모르는 심상이나 또 아사가나 다 지나가 버린 바람결은 아니었다. 요석공주는 더구나 말할 것도 없다. 그 들은 깊고 얕은 정도의 차는 있을지언정 원효의 마음에 뿌 리를 박고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다만 잊히지 않는다는 것 만은 아니다. 원효의 피와 골수에 그 뿌리가 닿은 것이었다.

더구나 살을 마주대인 요석공주는 원효가 어디를 가거나 원 효를 따랐다. 마치 그림자와 같아서 떼려도 뗄 수가 없었다.

원효는 남녀의 연이란 것이 어떻게나 무서운 것임을 요석공 주 사건에서 비로소 알았다.

'물에 있을 때에는 젖어도 나오면 그만이다'하는 연꽃의 비 유는 많이 듣고 많이 말한 것이지마는 원효는 제 마음이 결 코 연꽃이 아님을 깨달았다. 한번 물이 묻으면 좀처럼 마르 지 아니하는 솜과 같은 마음임을 알았다.

요석궁 대문을 나설 때에 원효는 바람 지나간 자리라고 스 스로 믿었으나 웬걸, 그렇지 아니하였다.

'아아, 무서운 것은 인연의 힘이다. 그중에도 남녀의 인연 이다.'

원효는 앙아당 위에서 이렇게 자탄하였다. 며칠 절식을 하 여서 모든 욕망과 모든 기억이 다 사라지는 자리에서도 요 석공주의 일은 도리어 더 뚜렷이 살아나왔다. 원효는 이것 이 자기를 아비지옥까지라도 끌고 가고야 말 끊을 수 없는 쇠사슬이라고 한탄하였다.

만일 요석공주의 일에 데인 무서운 교훈이 없었던들 원효 는 아사가의 사랑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아사가는 신선 하고 순진하고 그리고도 열정적이어서 그의 열정의 불길은 원효의 뼈속까지 파고들었다. 어떤 때에는 원효의 팔이 저 절로 아사가를 향하여서 벌어지려고도 하였다.

원효는 저를 원망하고 제 마음이 단련되지 못하였음을 성 화하였다. 원효는 스스로 이구(離垢) 행자라고 생각하였다.

아직 나는 자유자재한 자는 아니다. 억지로 억지로 저를 이 기어 나가며 조금씩 조금씩 때를 벗으려는 행자에 불과하다 고 생각하였다.

'이치로는 깨달은 듯하건마는 마음이 말을 아니 듣는다.'

원효는 이렇게 자탄하였다.

'젖지 아니하고 물들지 아니하는 원효.'

이것이 되려면 많은 수련이 필요한 것을 느낀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원효는 엄청난 자존심이 푹 줄어들어서 제가 몇 푼어치 아니 됨을 느꼈다.

원효는 어머니의 산소를 어두움 속에 다시 바라보았다.

"어머니, 이 자식은 아직 어머니를 제도해 드릴 힘이 없습 니다. 저를 제도하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남을 제도합니까.

어머니, 이 자식의 나이가 벌써 사십을 바라봅니다. 그러하 건만 아직 저를 건지지 못하였습니다."

원효는 턱에 자란 수염을 쓸어 보았다.

"어머니, 세상이 이 자식을 원효대사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자식은 남의 스승이 될 사람이 아직 못 되었습니다. 다 시 어머니 산소를 찾을 때에는 반드시 정말 원효대사가 되 겠습니다."

원효는 어머니 앞에 선 어린 아들의 마음이 되었다.

원효는 어머니를 위하여서 염불 천번을 부르고 산소에서 물러왔다.

원효는 자기가 이렇게 풀이 죽은 것이 파계 때문인 것을 알았다. 왕자와 같이 패기가 만만하던 자기가 한번 요석궁 일이 있음으로부터 몸을 감출 곳이 없는 것 같았다.

'계를 깨뜨리는 것새가 날개를 잘리는 것과 같다.'

원효는 스스로 이렇게 한탄하였다.

계를 깨뜨리기 전에는 어디를 향하나 누구를 대하나 부끄 러운 적이 없었다. 하늘을 향하여서도 고개를 높이 들 수가 있었고 별들을 향하여서도 그 속에 사는 무변 중생이 다 자 기를 우러러보고 자기에게서 구원의 가르침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때의 자기는 가슴을 떡 벌리고,

'오냐.'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별을 바라보기가 부끄러웠 다. 별들은 이제는 모두 자기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제는 네게서는 바랄 것이 없어.'

하고 별들은 실망하였다.

모든 중생이 다 그러하다. 계행이 온전하였을 때에 원효의 몸에서는 빛을 발하여서 중생이 모두 그 빛 속에서 편안함 을 얻었으나 계를 깨뜨린 원효는 벌써 빛이 아니요, 꺼먼 기왓장이다. 아무도 그것을 돌보는 이가 없었다.

원효는 그 어머니 산소 앞에 섰을 때에 그 산속에 있는 모 든 귀신들이 자기에게 손가락질하고 비웃는 것을 느꼈다.

'파계승, 파계. 히히.'

하는 것이었다.

'우리와 무엇이 달라. 우리나 마찬가지다.'

귀신들이나 개나 뱀이나 버러지나 모두 원효를 저의 동류 로 보았다.

'옳은 말이오. 당신네와 다를 것이 없어. 욕심으로 움직이 는 다 같은 중생.'

원효도 이렇게 자백하고 면목이 없어서 고개를 숙이지 아 니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네게 바친 공양을 도로 내어놓아라.'

한 중생은 원효에게 이렇게 요구하였다.

원효는 '원효대사'라 하여 여러 중생의 융숭한 대접을 많이 받았다. 그중에도 승만여왕, 심상, 요석공주, 아사가 같은 이 들, 그 밖에도 원효가 모르는 동안에 받은 여러 중생의 대 접.

원효는 이 모든 중생의 공양을 헛받았다. 못 받을 공양을 받은 것이다. 보살인 줄 알고 그들은 원효를 공양한 것이었 으나 무엇이냐, 원효는 한 파계승이 아니냐.

'아아. 나는 못 받을 대접을 받았다. 그것은 내가 중생의 복을 도적질한 것이다.'

원효는 가슴이 아팠다.

원효는 걸음을 멈추고 길바닥에 꿇어엎드렸다.

"세존하, 세존하."

원효는 세존을 수없이 부르며 울었다. 얼굴을 땅바닥에 비 비며 울었다.

기승한 원효는 철난 이후로는 울어 본 일이 없었다. 그는 소리를 내어 걸걸하게 웃기를 잘하였으나 운 일은 없었다.

원효는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쏟았다.

원효가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새벽달이 올라오고 부엉이와 소쩍새가 울고 있었다. 가을 밤 바람이 산들산들하였다. 산 그림자가 칠같이 검고 풀잎에는 이슬이 달빛에 반짝거렸다.

원효는 고향 사람을 만날 것이 두려워서 일어나 빨리빨리 걸었다. 가을 벌레 소리가 어디까지든지 원효를 따랐다.

달빛을 따라서 밤길을 떠난 기러기 소리가 들렸다.

기러기는 가랑아다. 바람의 아들이다. 남북 몇 만리 떼를 지어 여름을 찾아다니며 제 날개로 날고 제 입으로 주워먹 는다. 남에게 의지하지 아니한다. 웅대한 그 행로, 걸걸한 그 기상, 원효는 기러기가 부러웠다.

기러기는 한 스승의 지도에 복종한다. 그 스승이 이끄는 대로 어디나 가고, 그 스승은 상하 사방을 살펴서 바른길을 찾고, 쉴 자리를 찾고, 떠날 시각을 정한다. 그의 끼룩하는 한 소리에 그의 제자요, 부하들은 먹던 것을 버리고 자던 잠을 깨어서 행렬을 지어서 나선다. 그들의 행색은 보살의 행색이었다.

원효는 제가 남을 거느리는 자도 못 되고 따르는 자도 못 된 것을 한탄하였다.

"세존하, 세존하."

원효는 다시금 세존을 불렀다.

원효는 일찍 두타행이란 것을 자기가 실행하리라고 생각한 일은 없었다. 그런 것은 대승보살행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애행이야말로 자기에게 합당한 것이라고 생각하 였다. 천지간에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거칠 것이 없 었다.

"내 평생에 어느 중생을 속인 일이 없고 해친 일이 없으니 아귀들 속에 가든지 범이나 뱀 속에를 가더라도 두려울 바 가 없고, 내 나를 위하여 아무 욕심도 없으니 아무도 나를 시기하고 미워할 이가 없을 것이요, 내 모든 중생을 자비심 으로 건지려 하니 아무나 나를 반가와하고 내게 의지할 것 이다."

원효는 이렇게 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중생의 절 과 공양을 받는 것은 중생의 복전(福田)이 되기 위한 것이라 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원효는 그러한 원효가 아니었다. 아무쪼록 중생의 공양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 중생이 내어버리는 헝 겊으로 몸을 가리우고 중생이 아까와 아니하는 것으로 배를 채워야 한다, 그리고 보시할 재(財)도, 법(法)도 가진 것이 없는 원효는 몸으로 힘으로 중생을 도울 길밖에 없는 것이 다, 원효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두타행."

원효는 두타행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꼈다.

원효는 어느 동네에나 들어가는 대로 도와드릴 것이 없느 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원효를 수상한 거랑방이로 알아서 잘 믿지 아니하는 이가 많았으나 그 중에는 곡식을 져들여 달라는 사람도 있고, 가랫줄을 당기어 달라는 사람도 있었 다. 그리고는 밥을 얻어먹었다. 그 밥은 대단히 맛이 있었 다.

원효가 단샘이고개[甘泉峴]를 넘은 것은 구월도 거의 다 지내어서였다. 살랑살랑하던 날이 다시 더워져서 석양볕이 따가왔다.

원효는 고개를 넘어서 동네에 들어갔다. 그 동네는 외양으 로 보기에도 무척 가난한 동네였었다. 산골짜구니에 매어달 리듯이 열 댓집이나 드문드문 붙어 있었고, 영은 썩어서 지 붕에 여기저기 흠이 생기고 박덩굴, 호박덩굴이 오른 집도 몇이 되지 아니하였다. 길에는 풀이 나고 가을에 길닦이도 아니한 모양이어서 장마에 무너진 곳이 그대로 있었다. 그 렇게 음침한 동네였다.

원효는 어슬렁어슬렁 동네로 들어가나 닭, 개소리도 없었 다.

"동네가 다 비었나?"

하고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니 그래도 몇 집에서는 연기가 올랐다.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배가 훌쭉하고 비리먹어 털 아 다 빠진 개 한 마리가 꼬리를 늘이고 원효를 향하고 왔 다. 그는 의외에 사람을 만난 듯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으나 짖으려고도 아니하였다. 그 버리먹은 개가 이 동네 정령인 것 같았다.

'어느 집이나 하나 찾아보아야.'

하고 원효는 첫집 문전에 섰다.

원효는 뒤웅박 목탁을 딱딱딱딱 두들기고 염불을 하였다.

"듣그럽다."

하는 늙은이의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분명히 앓는 사 람의 소리였으나 소리에는 몸서리칠 만한 독기가 있었다.

그래도 원효는 여전히 염불을 불렀다.

"누구 저 중놈을 때려 쫓지 않느냐."

하는 늙은이의 소리가 떨었다. 웬 부인 하나가 달려나오며,

"나오 거랑방이가 남 앓는 집에 와서 까마귀 소리를 하고 있어."

하고 바가지에 들고 나온 쉬지근한 뜨물을 원효의 얼굴을 향하여 끼얹었다.

원효는 피하려고도 아니하고 그 물을 맞았다.

"그래도 안 가. 아 그래도 안 가네. 그래도 안 가면 똥바가 지를 씌울걸."

하고 그 여편네가 서둘렀다.

원효는 다음 집 문전에 서서 또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하였다.

이번에는 어떤 늙은이가 지팡이를 짚고 체머리를 흔들면서 나왔다.

"당신이 잘못 들어왔소. 이 동네에는 염병이 들어서 집집이 송장이 썩어 가는데 동냥을 줄 집이 어디 있소. 저기 저 고 개를 넘어가면 단샘이라고 큰 동네가 있으니 거기나 가 보 오. 아이고 방아라, 방아라."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들어가 버린다. 그래도 그 노인의 말은 부드러웠다.

원효는 여러 동네에서 푸대접도 많이 받았지마는 이런 동 네는 처음이라고 생각하였다.

원효는 셋째 집에서도,

"듣그럽다. 사람이 지금 목숨을 모으고 있는 판에 동냥이 무슨 동냥이냐. 염병이나 묻혀 가거라."

하는 젊은 여인의 악담을 들었다.

넷째 집 문전에서는 아무리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하여 도 도무지 인기척이 없었다. 굶은 개 한 마리가 마당에 누 워서 짖을 기운도 없는 듯이 눈을 번히 떴다가는 도로 감을 뿐이었다.

원효는 이 집에서도 모두 앓아 누웠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다 죽었는가 하고 마당으로 들어서서,

"이보아라."

하고 크게 불렀다.

"그 누구요?"

하고 소리가 모깃소리만큼 들렸다. 그것은 남자의 소리인 지 여자의 소리인지도 구별할 수가 없었다.

원효는 기침을 하고 방문을 열고 고개를 디밀었다. 컴컴한 방에 아무것도 보이지는 아니하고 무슨 냄새만이 코를 받쳤 다.

눈을 크게 뜨고 한참이나 들여다보고서야 비로소 그 방에 사람이 셋이 드러누워 있는 것을 알았다.

원효는 방안에 들어섰다.

"여보시오."

하고 불러 보았다. 어느 사람이 대답할 사람인지를 모르는 것이었다.

"거 누구요?"

하는 것은 맨 아랫목에 누운 사람이었다. 그는 분명히 남 자였다.

"지나가던 사람이오마는 대관절 어찌된 일이오?"

원효는 이렇게 물었다.

"나도 모르겠소. 처음에는 내가 앓았는데 나는 아직도 이렇 게 목숨이 붙어 있고, 그다음에는 아들이 앓았는데 죽었는 지 살았는지 알 수 없소. 저 건넌방 문을 좀 열어 보아 주 오. 며느리도 어젯저녁에 미음을 한 술 끓여다 주고는 소식 이 없으니 죽었나 살았나 좀 보아 주오. 이게 마누란데 아 까까지 헛소리를 하더니 잠이 들었나 원. 그다음에 누운 게 딸이오. 죽었나 살았나 좀 보아 주오."

그는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이렇게 원효를 보고 설명하였 다.

원효는 마누라라는 사람의 머리를 만져 보았다. 싸늘하다.

팔목을 만져 보았다. 맥이 없다.

원효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그 다음에 누운 딸이란 사람을 만져 보았다. 머리가 불이었다. 분명히 살아 있는 것이었다.

원효는 주인이 말한 대로 건넌방에를 들어가 보았다. 젊은 사나이는 금방 숨이 넘어갈 듯이 톱질을 하고 있었고 만져 보아도 알아보는 것 같지 아니하였다. 배설물을 그냥 치우 지 아니하여서 악취가 코를 받쳤다. 그런데 기막힌 것은 그 곁에 젖먹이가 누워 있었다. 그는 살아 있으나 기진한 모양 이어서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그러기로 며느리는 어디 갔을까.'

원효는 방에서 나와서 휘둘러보았다. 달리는 방이 없었다.

원효는 부엌문을 열어 보았다. 부엌 바닥에 허연 것이 있 었다.

원효는 부엌에 들어가 그 허연 것을 만져 보았다. 그것은 분명히 사람이었다. 몸이 더우니 죽지는 아니한 것이다. 필 경 먹을 것을 끓이려고 부엌에 내려왔다가 쓰러져서 인사불 성이 된 모양이었다.

원효는 며느리를 안아다가 남편 옆에 누이고 곧 솥에 물을 끓였다. 그래서 우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먹였다. 숟가락 으로 떠 넣으면 입을 벌려서 받아먹었다. 젖먹이도 넓죽넓 죽 받아먹었다. 그런데 금방 원효에게 설명을 하던 노인이 그동안에 정신을 잃어버려서 물을 입에 넣어도 주르르 흘릴 뿐이었다. 그는 다른 식구들 걱정으로 해서 정신을 잃지 아 니하고 있다가 어떤 사람이 와서 돌아보는 것을 보고는 맥 이 풀려 버린 것이었다.

원효는 그 주인 노인이 지금 마지막 숨을 쉬고 있는 것을 알았다. 전신에서는 구슬땀이 흘렀다.

윗목에 누운 딸이 헛소리를 하고 건넌방에서는 젊은 사람 이 영각을 하였다. 그러나 원효는 죽는 사람만을 지키고 있 을 수가 없어서 산 사람을 위하여 미음을 끓이고 있었다.

그래도 쥐는 있었다. 어두운 부엌 구석에서 소리를 하고 돌아다니고 아궁이에서 오르는 불빛에서 두 눈이 반짝하는 수도 있었다. 개는 부엌문에 턱을 걸고 있었다. 퍽으나 시장 한 모양이었다. 원효도 배가 고팠으나 무엇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건넌방 젊은 사람은 지금 고비를 넘기는 모양이어서 연방 소리를 질렀다.

미음 솥에서는 김이 오르고 끓는 소리가 났다.

딸과 며느리는 미음을 좀 먹었으나 젊은 사람은 "발치에 있는 화로를 치워라, 저기 선 저 도적놈을 쫓아내어라"하고 호령만 하고 아무 것도 먹으려 들지 아니하였다.

그 밤에 영감도 운명하였다. 원효는 뒤꼍에 구덩이 둘을 파고 영감, 마누라를 내다 묻었다.

그러나 젊은 사람 셋은 살아났다. 꼭 죽을 줄 알았던 젊은 사내는 차차 돌려서 정신을 차렸고 며느리도 그리 중하게 앓지 아니하고 살아났다.

맨 먼저 일어난 것은 딸이었다. 그는 열 여섯 살 된 처녀 였다. 그러나 아직도 먹을 것을 끓이고 오줌똥을 받아내는 것은 원효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리에 없는 것을 보고 딸은 놀라는 모 양이었으나 묻지도 아니하였다. 며느리도 일어났다. 미음을 먹고 목숨을 부지한 젖먹이는 마르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죽 지는 아니하였다.

딸과 며느리가 마당에 내려서는 것을 보고 원효는 슬며시 그 집을 떠났다. 열 이틀 만에였다.

날씨가 살랑살랑 추워졌다. 원효는 옷은 더러워지고 또 추 웠다. 여러 날 잘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한 원효는 몸이 제몸 같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원효는 평생 처음으로 중생 을 도와준 것이 기뻤다. 설사 그 무서운 병이 제게 옮아서 길가에 쓰러져 죽더라도 세상에 왔던 보람을 비로소 한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할수록 자기의 지나간 생활이 어떻게 공허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 집 식구들은 병으로 정신 못 차리고 있을 때에 들어온 원효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는 말없이 물과 미음을 끓여 주 고 먹여 주고 더러운 것을 쳐 주고 늘 자기네가 누운 자리 가 깨끗하고 마르게 하여 주었다. 그들이 차차 정신이 나게 되어서도 원효더러,

"당신이 누구시오?"

이렇게 묻는 일이 없었다. 그것은 그렇게 묻기가 어마어마 하기 때문이었다.

언제 눈을 떠보아도 그는 옆에 있었고, 목이 마르다고 생 각만 하여도 그는 숟가락으로 물을 떠 넣어주었다. 젖먹이 를 안아 재우고 그를 먹여 주었다.

그들은 이것이 사람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필시 무슨 신장님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하기 때문에 감히 묻지 못하 였다. 또 그러하기 때문에 마음놓고 그의 구원을 받았다. 더 구나 그가 온다간다 말도 없이 스러진 것을 볼 때에 더욱 그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원효는 이 날에 이 동네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 는 시체를 묻어 주고 병구완을 하여 주고, 이 동네에 앓는 사람이 끊어지기를 기다려서 이 동네를 떠났다. 그가 이 동 네를 떠나던 날은 첫눈이 내리던 날이요, 그가 마지막으로 도와준 집은 뜨물 벼락을 맞은 집이었다. 원효에게 뜨물을 뒤집어씌운 그 아낙네의 집의 식구가 온통 병들어 누워서 원효의 구완을 받은 것이었다.

원효가 동네를 떠나는 날에 건강을 회복한 사람들은 동구 밖까지 전송을 나왔다.

"이 다음에는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주라."

는 말을 남기고 훨훨 걸었다.

원효는 피골이 상접하도록 바짝 말랐다. 그러나 그의 얼굴 과 눈에는 청수한 기운이 있었다. 그것은 모든 욕심을 떠난 보살의 빛이었다. 그러나 원효는 몸이 피곤함을 느꼈다. 어 디서 잠시 쉬고 싶었다.

원효는 감천사(甘泉寺)라는 절을 찾아갔다. 감천사는 선덕 여왕 적에 지은 절로 유명한 원광법사도 일시 주석(駐錫)한 일이 있는 절이다.

원효는 감천사에서 불목하니의 직분을 얻었다. 원효가 단 샘이 동네에서 병구완하는 두 달에 밥짓기 , 미음, 죽쑤기를 배운 것이 여기서 이용된 것이다. 원효는 말없이 밥을 짓고 마당을 쓸고 있었다. 이십여 명 중이 있었으나 아무도 그가 원효인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쇠똥아, 쇠똥아 하고 원효 를 불렀다.

원효는 밥을 잘 짓는다고 칭찬을 받았다.

원래 중의 집 생활에는 직분에 높고 낮은 것이 없는 것이 다. 조실 노스님과 제자의 계급은 있지마는 밥을 짓는 것이 나 살림을 하는 것이나 다 평등한 직분이어서 서로 번을 갈 아 가면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에서 중을 대접하게 되 매 어느덧 절에도 계급이 생겨서 중의 지위가 정해지게 되 었다. 밥짓는 중은 언제나 밥짓는 중이요, 심부름하는 중은 언제나 심부름하는 중이었다. 약간 공부가 있거나 절에 소 임이나 지낸 중은 밥짓기, 빨래하기, 소제하기, 짐지기 같은 일은 제가 하지 아니하고 남을 시켰다.

그러므로 불목을 지키는 원효는 가장 천한 구실이었다. 아 무도 원효의 얼굴을 바로 바라보는 이도 없었다. 원효를 옆 에 두고도 중들은 체면없는, 실없는 소리들을 하였다. 마치 원효 같은 것은 사람 값에 치지 않는 것 같았다.

원효는 잘 쉴 수가 있었다. 밥도 잘 먹고 마음도 편안하였 다. 설거지를 다 해 치우고 판도방에 들어가 목침을 베고 누우면 잠이 달았다.

판도방에는 지나가는 동냥중이나 거랑방이나 짐군들이 들 어갔다. 그들에게는 끊임없는 이야기가 있고 웃음이 있었다.

잡소리도 하였다. 그들은 인생의 최하층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잃어버릴 체면이 없었다. 아무런 소리를 하여도 망 신될 것이 없었다.

그들은 자다가 고린내나는 발가락을 남의 입에 넣기도 하 고 유시호 누더기를 훔쳐 가지고 밤중에 달아나는 자도 있 으나 한바탕 욕지거리를 하고 나면 또 쿨쿨 잠이 들었다.

발가락을 입에 넣거나 코에 대고 방구를 뀌거나 심하면 손 가락으로 똥구멍을 우벼서 입에 스쳐 주더라도 그것이 그렇 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한 개 쥐어박고 왁자지껄 한바탕 떠들고 나면 바람 지나간 자국과 같았다.

원효더러도 무슨 재주를 하라고 조를 때가 있었다. 그러면 원효는 뒤웅박을 놀렸다. 다들 잘한다고 웃고 떠들었다.

"보아허니,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떡허다가 불목하니가 되었소?"

원효에게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었다.

"어찌어찌하다가 그렇게 되었소."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원효는 감천사 부엌에서 편안히 한겨울을 날 수가 있었다.

부엌은 좀 우중충하였으나 넓었고 커다란 아궁이 불이 활활 타는 것을 들여다보고 앉았으면 정신이 황홀할 만큼 깨끗하 고 편안하였다. 큰 가마솥에 밥이 잦을 때쯤 하면 고소한 향기가 부엌에 찼다.

두 팔을 부르걷고 큰 동이에 밥을 푸노라면 지팡이를 끌고 부엌으로 오는 노장이 있었다. 그는 누룽지를 좋아하여서 원효더러 누룽지를 달라고 오는 것이었다.

이 노장은 원광법사가 이 절에 있을 적부터 있노라고 하였 다. 다른 중들은 이 노장이 누구인지 알려고도 아니하였다.

그렇게 이 노장은 있으나 없으나 한 노장이었다.

그는 부엌에 오면 밥을 푸는 동안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다. 그 이야기에 나오는 것을 주워모아서 생각하면 이 노장은 젊어서 전쟁에도 나가 보고, 또 이 절에 와서는 지 금 원효가 하는 모양으로 밥도 짓고 허드렛일도 한 모양이 다. 그렇게 이 절에 오래 있으면서도 무슨 소임 하나도 지 낸 일이 없었다. 누룽지에 맛을 붙인 것도 그가 불목하니를 할 때에 얻은 버릇인 듯하였다.

그래도 원효더러 스님이라고 하고 만나면 합장하고 허리를 굽히는 중이라고는 이 노장밖에 없었다. 이 노장을 방울스 님이라고 어린 중들이 불렀다. 키가 작고 다니는 모양이 동 글동글 굴러다니는 것 같다고 해서 별명이 된 모양이다. 목 소리도 무척 여무져서 새벽에 그가 염불을 부르면 쇳소리 같았다. 그래서 방울스님이라는지도 모른다고 원효는 생각 하였다. 방글방글 늘 웃는다고 해서 방울스님인지도 모른다.

"시님 내 방에 와 계시오."

방울스님은 가끔 원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비록 성명없 는 중이나 이 절에 오래 있는 늙은이라고 하여서 독성각(獨 聖閣) 지키는 방 하나를 이 늙은이에게 준 것이었다.

"소승이야 젊은놈이 어디서 자면 어떱니까."

원효는 이렇게 번번이 사양하였다.

원효가 큼직한 누룽지를 한 장 떠 주면 방울스님은 그것을 감추듯이 품에 넣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수없이 원효를 향하여서 절하고는 지척지척 제 처소 로 갔다.

원효는 방울스님과 대안대사를 비교해 보았다. 방울스님이 대안대사보다 한 반절 더 벗은 것같이 생각되었다. 대안대 사에게는 아직도 짓는 것이 좀 남은 것 같은데 방울스님은 아무 것도 짓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방울스님의 경계가 더 높고 깊은 것 같았다.

한번 원효는 저녁을 다 해치우고 나서 독성각에를 올라갔 다. 이날은 방울스님이 누룽지를 얻으러 내려오지 아니한 것이 궁금하기도 하였다. 독성각에 불이 빤하게 켜 있고 그 속에서 방울스님이 염불하는 소리가 들렸다. 독성각은 큰절 에서도 비탈 하나를 올라서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독성불공 이나 하러 오는 사람이 아니고는 하루에 한 사람도 오는 사 람이 없었다. 독성각, 칠성각, 산신당이 제일 외딴 곳이었다.

독성각에는 조그마한 소상이 있었다. 어깨가 꼬부라지고 한 무릎은 누이고 한 무릎은 세우고 한 손을 세워 무릎 위 에 얹고 한 손으로는 땅을 짚고 빙그레 웃는 노승의 모양이 다. 원효는 독성존자의 상이 방울스님 같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방울스님은 그 앞에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

"시님 오셨소?"

저녁 불사를 마친 방울스님은 독성각에서 나오면서 원효를 보고 반가와하였다. 그리고는 원효를 자기 방으로 인도하였 다. 방은 단간방이었으나 관음상을 모신 불탑 앞에 천정에 서 달린 옥등잔에 쌍심지 불이 구슬같이 빛나고 향내났다.

방 한편에 징과 북이 있고 다른 한편 벽에는 붙박이 화로 가 있어 새옹이 걸리고, 경상에는 금강경과 금강삼매경이 놓여 있었다.

방울스님은 가사 장삼을 입은 채로 경상을 앞에 놓고 앉았 다. 부엌에 누룽지를 얻으러 왔을 때와는 다른 위엄이 있었 다.

원효는 종이에 싸 가지고 온 누룽지를 내어서 방울스님 앞 에 놓으며,

"오늘 저녁에는 밥이 잘 눌었길래 긁어 놓고 기다렸는데, 왜 아니 오셨어요?"

하였다.

"이런 고마울 데가 있습니까."

하고 종이로 싼 것을 열어서 노르스름하게 눌은 밥을 보고 눈과 얼굴이 온통 웃음이 된다.

"이게면 또 내일 온종일 먹겠소. 이걸 마른입으로 먹어야 맛이 있을 텐데 원 이가 있어야지. 이가 이렇게 한 개도 아 니 남았구려. 그러니 이렇게 끓여서 먹지요."

하고 방울스님은 화로에 놓인 새옹 뚜껑을 열어 보인다.

그 속에는 노르스름한 것이 죽 모양으로 보글보글 끓고 있 었다.

방울스님은 뚜껑을 다시 덮어 놓으며,

"이렇게 끓여도 고소해. 인중상공(人中上供)이오, 이따금 마 른입으로도 조금씩 입에 떼어넣고 우물우물해 보지요. 그렇 지만 이가 없으니까 고 노긋노긋한 진미야 모르지. 허허."

하고 한바탕 웃고 나서,

"젊어서는 오후불식(午後不食)도 하였지만 늙으니까 자다가 도 헛헛증이 나요. 그래서 이렇게 새옹에 끓여 놓고는 시장 하면 한 숟갈씩 떠 먹지요. 그래도 맛이 좋아. 고마운 일이 지요."

방울스님은 이렇게 말하면서 원효가 가지고 온 누룽지를 한조각 떼어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하며 맛있게 침을 껄떡껄 떡 삼킨다. 그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맛있는 것을 만난 것과 같았다.

"시님 약주도 잡수셔요?"

원효는 이런 소리를 물었다.

"술?"

하고 방울스님은 씹던 입을 쉬고 고개를 가로 흔든 뒤에,

"술은 대안이 좋아하지."

하고 웃는다.

원효는 이이가 대안을 아는가 하고 놀랐다.

"시님. 대안대사를 아십니까."

"알구말구. 젊어서 같이 댕겼지요. 당나라에도 같이 댕겨오 고."

방울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원효는 자기의 안식이 부족함이 부끄러웠다. 방울스님이 범상한 늙은이가 아니라고는 생각하였지마는 그가 금강경을 읽고 당나라에를 다녀오고 대안대사와 친구이라고는 생각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저 천진난만 무식한 늙은이라고 알았던 것이다. 그러면 방울스님의 이 천진난만은 공부가 많이 든 천진난만이었던가.

"네, 그러셔요."

하고 원효는 자기가 신분을 숨기고 있는 것도 잊고,

"소승도 대안대사를 뵈온 적이 있습니다마는 대안대사가 본래 어떠한 사람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들은 적이 없습니 다."

하고 호기심이 그득한 눈으로 방울스님을 바라보았다.

"다 서로 아는 일을 말할 필요는 있나?"

방울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다 서로 알다니요. 무엇을 안단 말씀입니까."

원효는 겸허한 마음으로 물었다.

"피차에 다 같은 행색 아니오? 어머니 배에서 나오고, 오줌 똥 싸 뭉개고, 밥 먹으면 배 부르고, 술 먹으면 취하고, 계 집 보면 마음 동하고, 이러기를 몇 천만겁 해 내려온 중생 들이니 서로 말 않기로 누가 누구인지 모를 것은 있나, 서 로 다 아는 일이지. 하하하, 안 그렇소? 삼계 중생의 먹는 마음을 다 아시노라고 세존께서 말씀 아니하셨소? 세존께서 도 전생다생에 다 지네 모신 일이어든, 모든 중생의 마음 경계를. 다람쥐가 좋아하는 잣은 나도 좋아하고, 내가 좋아 하는 누룽지는 또 다람쥐도 좋아하고, 시님이야 화엄 강백 (華嚴講伯)이시니 나보다 잘 아시겠지요. 일체유심조(一切唯 心造)라."

"소승이 화엄 강백이라구요?"

원효는 놀라는 빛을 보였다.

"응, 아마 원효대살걸."

"과연 소승은 원효입니다. 그런데 시님께서는 어떻게 소승 이 원효인 줄을 아십니까."

"원효시님이 아직 도력이 부족하여서 내 눈을 가리울 힘이 없은 게지. 그렇지만 감천사 수십 명 중의 눈을 가리운 것 만 해도 시님의 도력이 어지간하시지. 그렇지만 시님이 아 직 신장의 눈은 못 가려. 어, 내가 또 부질없는 말을 했군."

"귀신의 눈에 안 뜨이는 법이 어떠합니까?"

원효는 이렇게 물었다.

"내 마음이 비면 아무의 눈에도 아니 뜨이지."

방울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 마음이 비이자면?"

"나를 없이해야지. 시님께 오욕(五慾)이야 남았겠소마는 아 직도 아만(我慢)이 남았는가 보아. 오욕을 떼셨으니 잡귀야 범접을 못하지마는 아만이 남았으니 신장의 눈에 띄어. 시 님이 아주 아만까지 버리시면 화엄 신앙도 시님의 종적을 못 찾소이다. 아만—내가 이만한데. 내가 중생을 건질 텐데 하는 마음이 아만야. 이것을 깨뜨리자고 세존께서 수보리에 게 금강경을 설하신 것이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응무 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以生其心)이라는 거요."

원효는 일어나서 방울스님께 절하였다. 방울스님은 앉은 대로 원효의 절을 받았다.

원효는 이로부터 밤마다 방울스님에게 금강경과 금강삼매 경을 듣고 또 선(禪)을 배웠다.

원효는 자기가 언제 귀신의 눈에 띄었는지 역력히 알 수가 있었다. 그 전은 말할 것도 없고 단샘이 동네를 떠날 때에,

'내가 좋은 일을 하였다.'

한 때에 분명히 귀신들은 자기를 보았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감천사에 들어온 뒤에 지위 높은 중들을 밥주 머니, 욕심꾸러기라고 보고 자기를 장하게 생각할 때에 감 천사에 있는 귀신들이 분명히 자기를 보고 웃었을 것이다.

그 밖에도 반성하면 반성할수록 귀신의 눈에 띄운 기회가 많이 있었다.

"법도 오히려 버려야 하려든 하물며 비법이랴(法尙應捨 何 況非法)."

"모든 것을 버리되 나까지 버려야 한다. 나의 뿌리를 남겨 두면 비만 맞으면 다시 오욕의 움이 돋아나올 것이다."

원효는 방울스님의 몸뚱이 밑에 나의 뿌리를 파고 나의 씨 를 불사르기를 힘썼다.

"시님 어렵습니다."

하루는 원효는 방울스님 앞에 이렇게 한탄하였다.

"어렵소?"

방울스님은 이렇게 빙그레 웃었다.

"소승은 평생에 어렵다는 말을 한 일이 없습니다마는 이것 만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죽기보다 어렵습니다."

원효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그야 죽기보다 어렵지. 이 몸뚱이 하나 죽이기야 쉽지마는 영겁의 윤회를 끊는 것은 불보살의 가지 없이는 어려운 일 이지요."

방울스님은 이런 말을 하였다.

사실 나의 뿌리를 뽑는 행은 앙아라당이의 절식 고행에도 비길 바가 아니었다.

나의 뿌리를 찾아 들어가면 진실로 끝간 데를 몰랐다. 원 효는 어려서 놀 때에 진솔이라는 모래판에 나는 풀뿌리를 찾던 것을 생각하였다. 그 모래를 파고 들어가면 들어갈수 록 그 머리카락 같은 뿌리가 점점 더 많이 가지를 채워서 열 가닥이 되고 백 가닥이 되어서 한량이 없었다.

그때에 어떤 아이가,

"진솔 뿌리는 염라대왕 머리에 박힌 것이라더라."

라는 말을 하였다.

원효는 나의 뿌리의 깊고 넌출진 것이 이러하다고 생각하 였다. 그런데 그중에서 실뿌리 하나만 남겨놓아도 또 새로 운 내가 생겨서 끝없는 윤회를 거듭하는 것이었다.

하루는 원효가 이런 말을 방울스님께 하였다. 나의 뿌리가 이렇게 빼기 어렵다는 말을 하였다.

그때에 방울스님은,

"나의 뿌리가 그렇게 깊다고 보는 그 마음을 떼어 버리지.

그것이 허망의 근본이 아닐까."

이런 말을 하였다. 원효는 이 말에 눈이 열림을 깨달았다.

원효는 마치 엊어버렸던 것을 생각해 내는 모양으로 무릎 을 치고 화엄경 노사나불품의 보현살의 게(華嚴經盧舍那佛 品普賢菩薩偈)를 외웠다.

"저 부처나라 꼭대기의 헤아릴 수 없는 세계는 지워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하지마는 생하는 것도 아니요, 멸하는 것 도 아니라. 비컨댄 모든 나무에 꽃과 잎이 피고 지듯이 이 같이 모든 부처나라의 짓고 헐음도 그러하니라. 가지가지 나무에 가지가지 열매 열 듯이 가지가지 나라에 가지가지 중생이 있어라. 씨가 다른지라 열매 같지 아니하도다. 행업 (行業)이 가지가지매 나라도 가지가지러라. 마치 여의보주가 마음대로 무슨 빛이나 내임과도 같아라. 모든 망상(妄想)을 버리면 청정한 나라만을 보리라. 마치 공중에 구름이 용왕 의 힘으로 나타나듯이 부처님 원력으로 모든 불찰(佛刹)이 일도다. 마치 재주 있는 요술쟁이가 여러 가지 재주를 부리 듯이 이같이 중생의 업(業)으로 불찰이 헤아릴 수 없도다.

그림의 상을 보고 화공의 조작인 줄 알 듯이 부처나라를 보 면 마음이란 화공의 그림일 줄 알라. 중생의 마음이 같지 아니하매 가지가지 망상을 일으키나니 이같이 모든 불찰도 모두 다 허깨비 같으니라."

원효는 자기가 보는 세계가 자기의 행업으로 나타남이란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러나 나의 뿌리가 깊고 깊어 끊기 어렵다는 것도 결국은 내 심행(心行)에서 오는 망상이 다.

모든 망상을 끊는 원효의 앞에 나타난 세계는 정히,

"或有七寶刹. 平正住莊嚴.

淸淨業力起. 微妙善安穩.

彼佛刹土中. 唯有人天趣.

功德果成就. 常受諸快樂."

의 아름다운 나라였다.

원효는 기쁨에 넘쳐서 옆에 있는 북채로 둥둥 북을 두드리 고 또 일어나서 춤을 추었다.

원효가 춤을 추는 동안 방울스님은 징, 북을 울렸다. 그러 다가 방울스님도 일어나서 춤을 추었다.

한바탕 두 사람이 어우러져 춤을 춘 뒤에 방울스님은,

"猶如千月出. 虛空靡不照.

離垢坐道場. 光明亦如是."

의 게를 읊었다. 원효는 거기 화하여서,

"一一衆生故. 苦行無量劫.

不滅生死難. 能爲大導師."

하고 일체공덕승수미산운불(一切功德勝須彌山雲佛)의 게를 읊었다.

방울스님은,

"좋다. 좋다."

하고 원효의 뜻을 칭찬하고 말을 이어,

"盡盧舍那. 本願底故.

普賢身相. 猶如虛空.

依於如如. 不依佛國.

現身無量. 普應衆生."

이라고 불렀다. 노사나불의 본원을 밑까지 다 알고 행하였 으니 보현보살의 몸 허공과 같아서 여여에 의지할지언정 불 국에 의지하지 아니하여 무량한 몸을 나타내어 널리 중생의 부름에 응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방울스님이 원효를 격려하 는 뜻이다.

무량겁 해에 보살이 쉬임없이 도를 닦는 것은 저를 위함이 아니라 중생을 고에서 건지기 위함이다. 그러면서 나는 중 생을 건진다 하는 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아상 (我相)이요, 인상(人相)이요, 중생상(衆生相)이요, 수자상(壽 者相)이다. 이 모든 상을 떠나는 것이 부처라는 것이다. (離 一切諸相. 是名諸佛) 원효는 전과 같이 조석에 밥을 짓고 물을 길었다. 그리고 방울스님은 지척지척 누룽지를 얻으러 지팡이를 끌고 내려 왔다.

감천사에는 봄이 와서 진달래와 복숭아가 피었다.

하루는 저녁때에 방울스님이 누룽지를 얻으려 내려왔다.

"시님, 우스운 일이 있소."

하고 방울스님은 벙글벙글 웃었다. 넓은 부엌에는 다른 사 람은 오지 아니하였다.

"무슨 일이오?"

원효는 주걱으로 솥에서 밥을 푸면서 물었다. 고소한 밥의 향기가 진동하였다.

"지금 오다가 들으니, 여기 학인들이 시님의 대승기신론소 를 배웁디다. 되긴 되었소. 원효시님이 지어 주신 밥을 먹고 원효시님이 지으신 대승기신론소를 배우니 되기는 되지 않 소?"

하고 방울스님은 유쾌하게 웃었다.

원효도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이런 때에 또 귀신의 눈에 띄지 아니할까 하고 조심하였다.

원효는 한가는 틈을 타서 강당 앞에 가서 엿들었다.

기신론 작가인 마명(馬鳴) 보살 이야기 끝에 원효대사 평이 났다.

"원효대사도 보살 화생(化生)이야."

이런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원효대사는 생이지지(生而知之)로 무사자통(無師自通)한 이래."

이런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원효대사가 보살 화신이면 요석공주 때문에 파계는 왜 해."

이렇게 원효를 공격하는 이도 있었다.

"그게 다 방편이겠지."

이렇게 원효를 변호하는 이도 있었다.

"미인과 같이 자는 방편이면 해롭지 아니한 방편인데."

하고 모두들 웃었다. 아마 학인들끼리만 모여앉은 모양이 었다.

원효는 쓴웃음을 웃었다. 그리고 엿듣던 자리에서 물러나 려고 할 즈음에 한 학인이 문을 열고 나오다가 원효와 마주 쳤다.

"왜 여기 섰어?"

그 학인은 원효를 노려보았다.

"시님네 토론하시는 것 좀 엿들었습니다."

하고 원효는 공손히 뜰에 내려섰다.

"그래 무슨 말을 엿들었어?"

그 학인은 원효를 기롱하려 들었다.

"원효 험구하시는 것을 엿들었습니다."

"하하, 그래 공양주가 원효대사를 아나?"

학인은 흥미가 동하는 모양이었다. 다른 학인들도 두 사람 의 대화에 재미를 붙여서 툇마루에 부르르 나왔다.

"원효란 중이 요석공주하고 자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은 들었지요."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래, 원효대사가 요석공주하고 잔 것이 잘한 일이냐 잘못 한 일이냐 말야."

다른 학인이 이렇게 원효에게 물었다.

"글쎄요. 잘못했다고 생각하기로 원효대사도 중질 그만두고 거랑방이질 다니지요. 그렇지만 시님네 같으면 어찌하시겠 소?"

원효는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학인들은 서로 돌아보았다.

"어, 그 맹랑한 손이로군."

한 학인이 이렇게 원효를 노려보고 방으로 들어갔다. 원효 의 말이 이상한 무게로 학인들의 정수리를 때린 것이다. 봉 변한 듯이 생각한 것이었다. 도인의 말은 무심코 하는 한마 디에도 사람을 누르는 힘이 있는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귀 신도 도인의 일언일동에 눌리는 것이다. 그것은 제 욕심에 서 나온 것이 아니요, 자비심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월 십 오일은 세존께서 사라 쌍수 밑에서 열반하신 날이 었다. 십 이월 십 오일이 성도하신 날이었다. 십 이월 십 오 일의 성도하신 날과 같이 이 날에 감천사에서는 열반재를 올리고 열반경의 법문이 있었다.

학인들은 오늘로서 동안거(冬安居)가 해제가 된다고 기뻐하 였으나 원효는 떡을 하느라고 무척 바빴다.

마을에서 선남선녀도 많이 모여왔다.

청명을 앞으로 며칠 아니 남긴 날씨는 무척 온화하였고 하 루건너 실비가 왔다.

열반재를 마치고 원효는 감천사를 떠나기로 하였다.

"덕분에 소승이 한겨울을 편안히 났습니다."

하곡 원효는 사중에 골고루 다니면서 하직인사를 하였다.

"어디로 가나?"

이렇게 물어 주는 이도 있었다.

"어디 정처 있습니까."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갈데 없으면 여기 더 있지."

이렇게 만루해 주는 이도 있었다.

평상시에는 본체만체하던 사람들도 떠난다는 말을 듣고는 섭섭한 뜻을 표해 주었다. 원효는 그것이 기뻤다.

"참 일을 잘했는데."

하고 원효의 공로를 칭찬해 주는 이도 있었다.

원효는 누룽지를 많이 싸 가지고 독성각에 올라갔다.

방울스님을 북을 울리며 염불을 하고 있었다.

원효는 염불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사 장삼을 입고 징, 북을 울리고 앉았는 방울스님은 전 혀 허공인 것 같았다. 그의 몸에서는 아무 냄새도 아니 날 것 같았다.

더구나 그 염불 소리는 맑았다. 모든 욕심을 떠난 소리였 다. 그 소리는 온 법계에 가득 찰 것 같았다. 오직 중생을 위하여 부르는 염불이었다. 고해 화택에서 오욕 번뇌의 불 에 타며 허덕이는 중생이 이 소리를 들으면 당장 청량(淸凉) 을 얻을 것 같았다.

아무 거드름도 변화도 없는 평담한 소리언마는 그 소리는 하늘 꼭대기까지 아비지옥 밑바닥까지 울려 가서 그곳에 있 는 중생의 괴로움을 식혀 줄 소리였다.

원효 자신도 몸이 극락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형용할 수 없는 안온함을 느꼈다.

둥, 괭하는 징, 북소리도 예사로운 소리가 아니었다. 원효 자신이 두들기면 그러한 소리가 날 것 같지 아니하였다. 북 채로 북을 치는 것이 아니라, 방울스님의 법신(法身)으로 북 을 치는 것이었다. 염불 소리와 징, 북소리는 한데 어우러져 서 둘이 아니었다. 그것을 울리는 방울스님의 몸도 한데 어 우러졌다. 원효는 자기가 이 동네, 저 동네로 돌아다니며 부 르던 염불 소리를 돌려 생각하여 보았다. 그것은 원효가 목 구멍으로 부른 소리요, 법신으로 부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심지어 원효의 염불에는 거드럭거리는 장난 기운조차 있지 아니하였던가.

원효도 무론 장난으로 염불을 한 것은 아니요, 지성으로 하노라고는 한 것이었다. 그렇지마는 방울스님의 염불과 비 길 때에 자기의 소리는 한 희롱이요, 취담이요, 아무 힘도 없는 것 같았다. 그 소리가 중생의 귀에 들어가서 듣는 이 의 혼을 움직여 보리심을 발하게 할 힘이 있을 리가 없는 것 같았다.

원효는 한숨을 쉬었다.

'금과 흙이다!'

원효는 속으로 이렇게 한탄하였다. 자기는 흙으로 만든 그 릇인 것 같았다.

대안대사의 염불에도 이러한 힘은 없는 것 같았다. 마음에 모든 때를 벗은 사람은 아름다운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 이요, 높은 것 중에 가장 높은 것이다.

"猶如千日出. 虛空靡不照.

離垢坐道場. 光明亦如是."

원효는 비로소 부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동안에 무궁한 세월이 흘러간 것과도 같았다.

염불 소리와 북소리가 끊어지고 방울스님은 일어나서 절을 하였다.

"世尊我一心. 歸命蓋十方. 無碍光如來. 願生安樂國."

하는 용수보살의 게를 읊으면서 절을 하였다. 두 팔을 높 이 들어 공중에 원을 그렸다가 합장하고는 절하고, 이렇게 하기를 열 번이나 한 뒤에 고개를 돌려서 문 밖에 섰는 원 효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소승 지금 떠납니다."

원효는 다른 말은 없이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누룽지 봉지를 방에 들여놓으며,

"시님께 누룽지를 공양하기도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이번에 는 잘 눌어서 많이 가져왔습니다."

방울스님은 합장을 하여서 고맙다는 뜻을 표하였다.

원효는 감발을 한 몸이라 방에 올라가지는 아니하고 문 밖 에 선 채로 깊이 허리를 굽혔다.

방울스님은 뜰까지 나와서 원효와 작별하였으나 피차에 말 은 없었다.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말이 없어도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이생에서는 마지막 작별일 것이다. 원효가 다 시 감천사에 올 일도 없고, 방울스님이 감천사 밖에를 나올 일도 있을 것 같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작별을 이 두 사람 사이에도 몇 억만번 하였는지 모른다. 인연이 남으 면 또 만나는 것이다. 수없는 반복이다. 요다음에는 아미타 불의 안락국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끝없는 보살행 중에는 안락국에도 한번은 갈 것이다. 그러나 '一一衆生故. 苦行無 量劫. 不滅生死難'하는 행자로는 이 신라 나라에도 금후 몇 번을 더 올는지도 모르고, 또 지옥과 아귀, 축생도에도 몇 번 갈는지 모른다. 그러한 길에 서로 만나고 또 서로 만날 것이다.

이 세상에 바늘 하나 세울 만한 것도 중생을 위하여서 목 숨을 아니 버린 데가 없는 것이 보살의 행색이다. 보살의 눈에는 모든 중생은 다 평등이다. 어느 중생에 대하여서도 사랑하는 외아들의 심경을 가진다. 어느 중생 하나를 건지 기 위하여서도 목숨을 아니 아낀다. 천번이고 만번이고 그 중생을 건질 때까지 죽고 또 죽는다. 이것이 보살의 대자비 심이다. 이 모양으로 무변중생을 다 건지는 날이 보살의 행 이 완성하는 날이다. 범부는 이런 말을 들을 때에는 입을 딱 벌린다. 그러나 보살은 이런 일에도 진력이 아니 나는 것이다.

원효는 터불터불 절 동구를 향하고 걸었다. 이때에,

"원효대사, 원효대사."

하고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원효는 고개를 돌렸다.

방울스님이 큰방 앞 축대 위에서 손을 허기고 있었다. 원효 는 빨리 걸어서 방울스님 곁으로 갔다.

"이 책을 드린다는 것을 잊었소."

하고 퍼렁 보에 싼 책을 원효에게 주었다.

"금강삼매경이오, 시님께 이 책을 전하는 것이 옳을 것 같 아."

방울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받자옵니다."

하고 원효는 그 책을 두 손을 받들어 수그린 머리 위에 높 이 들었다.

원효대사라고 방울스님이 부르는 소리에 학인들이 몰려나 와서 얼빠진 사람들 모양으로 방울스님과 원효를 보고 있었 다.

원효는 방울스님께 또 한 번 절하고, 곁에 둘러선 학인들 과 다른 중들께도 또 한번 하직인사를 하고 동구를 향하고 나갔다.

"노장님, 지금 원효대사라고 부르신 이가 누구오니까."

한 학인이 방울스님께 물었다.

"지금 저기 가는 저 시님이 원효대사요. 시님네들이 겨우내 원효대사가 지어 주시는 공양을 잡수셨으니 다들 성불하시 겠소."

하고 방울스님이 웃었다.

겨우내 부엌에서 밥짓던 중이 원효대사란 말을 들은 중들 은 놀랐다. 그중에도 강당문 밖에서 원효를 기롱한 두 중은 더욱 놀랍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하였으나, 그보다도 천하에 이름이 높은 선지식을 옆에 두고 몰라본 것이 분하였다.

"노장님 정말이오?"

원효더러 "어, 그 맹랑한 손이로군"하던 학인이 방울스님께 물었다. 그의 이름은 의명(義明)이었다.

"무엇이 정말이냐 말이오?"

"지금 그 시님이 분명 원효대사요?"

"그렇다니까. 시님네가 공부하시는 대승기신론소를 지으신 원효대사요."

방울스님은 이렇게 대답하고 웃었다.

"노장님은 그이가 원효대산 줄 어떻게 아셨소?"

"날 누룽지를 잘 주길래 원효대산 줄 알았소."

방울스님은 웃었다.

의명은 곧 짐을 꾸려 지고 원효의 뒤를 따라서 떠났다. 어 디를 가느냐는 동무의 말에는,

"원효대사 따라가오."

하고 뒤도 아니 돌아보고 대답을 던졌다.

의명은 거기서 이십 리나 걸어서 강가에서 나룻배를 기다 리고 있는 원효를 만났다.

의명은 봄철 축축한 강변 흙에 엎드려서 원효의 앞에 절하 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인 채로,

"시님, 몰라뵈온 죄를 용서합시고 소승이 시님을 시봉하삽 기를 허하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원효는 의명을 붙들어 일으키며,

"허, 방울시님이 실없는 말씀을 하신 게로군."

하였다.

"오늘부터 소승은 시님을 시봉하겠습니다."

하는 의명의 눈에 눈물까지 있었다.

"나를 시봉하다니. 밥짓고 빨래하고 바느질할 줄 아오?"

원효는 농담삼아 물었다.

"그런 일을 해본 일은 없습니다."

의명은 정직하게 대답하였다.

"그러면 내가 시님을 시봉하게?"

원효는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강가에는 풀이 파릇파릇하고 흐린 물이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나룻배는 저편 언덕에 맨 채로 사공은 어디 가고 배만 물결을 따라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봄 보리 가는 농부가 있고 노고지리는 아직 소리를 아니하였 다.

의명은 원효의 허락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합장하고 서 있 었다.

"정처없이 또 구름같이 다니는 나를 따라오면 어찌하오. 그 나 그뿐인가, 감천사 독성각에 계신 방울스님이야말로 지금 동방에 으뜸 되시는 대덕이시오. 나를 따라오느니보다 방울 시님께 배우시오. 아마 그 시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배우 더라도 그 시님의 높은 도력을 다 배우지 못하리다."

원효는 이렇게 점잖게 의명을 개유하였다.

"소승이 감천사에 있기를 삼 년이나 하면서도 방울시님이 뉘신 줄을 몰라뵈었습니다. 그저 무식한 노장님이거니 하고 업수이 녀겼습니다. 시님께서 한겨울을 소승네 밥을 지으셔 도 사중에 아무도 시님 원효대사신 줄을 알아뵈온 이가 없 습니다. 그리고 버릇없는 소리를 함부로 하였습니다. 아까 독성각 노장님께 시님이 원효대사란 말씀을 듣고 처음에는 믿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임금의 스승이 되시고 천하에 이 름을 떨치신 원효대사가 소승네 밥을 지으시리라고는 꿈에 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원효대사시면 귀인의 모양을 차 리시고 걸어다니시지도 않으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 가 시님께서 정말 원효대사신 줄을 안 때에 소승은 전신에 피땀이 흐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시님의 뒤를 따 라왔습니다. 어디를 가시든지 죽기까지 시님의 뒤를 따르리 라 하였습니다."

의명은 이렇게 말하여 원효를 따를 뜻이 굳은 것을 힘있게 보였다.

의명은 자장율사의 배다른 아우로서 의안(義安)과 어머니 같은 형제였다. 의안은 장차 중으로서 효소왕(孝昭王)의 정 승이 될 사람이었다.

"형님께서 자장율사시면 왜 형님께 아니 배우고 시골로 돌 아다니오?"

원효가 이렇게 묻는 말에 의명은,

"소승은 자장율사가 마음에 싫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였다.

원효는 의명을 데리고 물을 따라서 내려갔다. 태백산에서 근원을 발한 물줄기를 따라서 내려가면 점점 낙동강 분류로 합하는 데로 가게 된다. 봄날은 길 걷기에 가장 좋은 때였 다. 아직 물 것도 아니 생겨서 잠자리도 편하였다. 산골에서 벌판으로 내려갈수록 봄은 더욱 깊었다.

원효는 풀뿌리와 풀잎도 먹고 한데에서도 자고 하였으나 의명은 싫어하지 아니하고 원효가 하는 대로 하였다. 원효 는 의명의 뜻이 어지간히 굳은 것을 보았다.

마침내 두 사람은 일선주(一善州)지경을 접어들어 냉산 도 리사(冷山桃李寺)에 다다랐다.

도리사는 모례(毛禮)의 집터다. 모례는 신라 사람 중에 첫 번 불교 신자였다. 눌지왕(訥祗王) 때에 묵호자(墨胡子)라는 중이 처음으로 신라에 들어와서 모례의 집에 머물었다고 한 다.

묵호자란 무론 그 중의 이름은 아닐 것이다. 검은 되놈이 라고 신라 사람이 그를 부른 별명인 것이다. 검은 되라면 무론 서역 사람일 것이다. 이때에는 중국에는 벌써 불교가 들어온 지 이백여 년 뒤라 하니 아마 중국에 왔던 서역 중 이 신라로 왔던 것이다. 옛날 기록을 보면 묵호자는 고구려 로부터서 왔다고 하였다. 아무려나 그는 도를 펴기 위하여 서 만리 타국에 홀로 온 것이다.

기록을 보면 묵호자가 고구려로부터서 신라의 일선군(一善 郡)에 이르니 그 고을 사람 모례가 땅을 파고 방을 만들어 서 숨겨 주었다. 그때에 마침 양(梁)나라에서 신라에 사신을 보내었는데 그가 가지고 온 예물 중에 향내나는 물건이 있 었다. 이때에 신라 조정에서는 그 향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엇에 쓰는 것인지도 몰라서 중사를 보내어 이것이 무엇인 지를 알아 올리라고 사방에 물었다. 그때에 묵호자가 이것 을 보고,

"이것은 향이라는 것이오. 이것을 태우면 향기가 나는 것이 니 정성을 신명께 달하게 하는 것이오. 신명이라 함은 삼보 (三寶)밖에 없으니 일왈 불타(佛陀)요, 이왈 달마(達摩)요, 삼왈 승가(僧伽)시라. 만일 이 향을 피우고 발원하면 반드시 영험이 있는 것이오."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때에 마침 공주가 병이 중하였다. 왕은 묵호자를 청하여 분향 기도하게 하였더니 공주의 병이 나았다. 왕이 크게 기 뻐하셔서 묵호자에게 상사를 대단히 후하게 하셨다.

묵호자는 모례의 집에 돌아와서 왕께서 받은 물건을 다 모 례에게 주어 그동안에 진 신세를 갚고,

"나는 갈 데가 있으니 그만 떠나오."

하고는 간 바를 몰랐다. 이것이 묵호자에 관한 기록 전부 다.

아마 얼굴이 검고 코와 눈이 다른 인도 사람으로서 혼자 타국에 숨어 들어오느라고 그 고생이 여간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모례가 움을 파고 그 속에 묵호자를 숨겨 준 것을 보더라도 묵호자의 신변이 대단히 위험하던 것을 짐작할 수 가 있다.

신라는(고구려와 백제도 그러하지마는) 신을 숭상하는 나라 다. 가장 높으신 아, 가, 나, 다, 라, 마, 바, 사, 팔 신을 위 시하여 이 팔 신에서 나온 여러 신을 숭배하던 나라다. 임 금의 일이란 신을 섬기고 백성으로 하여금 신을 잘 섬기게 하는 일이었다. 정치, 산업, 문화가 모두 이 신을 섬기는 것 을 중심으로 또는 목표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신라에 중국 사상이 들어오매 다소간 신에 대한 순일무잡한 생각이 어지 러워졌다 하더라도, 또 일면으로는 외래 사상에 대하여서 조상 적부터의 유신사상(唯神思想)을 옹호하려는 배타적 감 정이 강하게 일어났다. 신라가 불교에 대하여서 한 여러 가 지 일이 이것이었다.

묵호자가 다녀간 뒤에 아도(阿道)라는 이가 또 신라에 들어 왔다. 아도가 신라에 들어온 데 대하여서는 이러한 기록이 남아 있다.

"비처왕(毘處王) 때에 아도화상이라는 이가 사자 세 사람으 로 더불어 와서 머물러 경(經)과 율(律)을 외우니 왕왕 신수 봉행하는 자가 있었다."

또 고기(古記)에는 아도화상이 신라에 온 일을 이렇게 썼 다.

양나라 대통 원년(大通元年) 삼월 십 일일에 아도가 일선군 에 이르니 천지가 진동하였다. 아도대사는 왼손에 금고리 단석장(錫材)을 들고, 오른손에는 옥으로 만든 바리때를 들 고, 몸에는 안개 장삼을 입고, 입으로는 화전(花詮)을 부르 며 신자 모례의 집에 왔다.

모례가 나가 보고 깜짝 놀라며,

"접때에 고구려 중 정방(正方)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에 임금님과 신하들이 상서롭지 못한 것이 왔다고 하여서 죽였 고, 또 멸구자(滅垢 )라는 중이 고구려에서 왔을 때에도 전 같이 죽였는데 대사는 무엇하러 오셨소? 어서 문안에 들어 서오. 이술 사람 보리다."

이렇게 말하고 아도를 맞아들여 외딴방에 두고 정성으로 공양하였다.

때마침 오(吳)나라 사신이 신라에 와서 내물왕께 다섯 가지 향을 드리되 왕이 그것이 무엇에 쓰는 것인지 모르는지라 사자를 보내어 널리 전국 중에 물었다. 사자가 법사(아도)에 게 물으매 법사는 말하되 불에 태워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 이니라 하였다. 사자가 법사와 함께 서울에 오매 와이 법사 로 하여금 사신(오나라에서 온)을 만나게 하였더니 사신이 법사에게 예배하고 말하되,

"이 먼 나라에 높으신 대사께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하였다.

이것을 보고 왕은 불승을 공경할 것임을 아시고 조칙을 내 려 반행(頒行)하기를 허하셨다.

이렇게 고기에 적혀 있다. 이것으로 보면 아도는 순순히 사명을 달한 것 같지마는 고득상시사(高得相詩史)에는 아도 화상도 목베임을 당하였으나 신통력으로 모례의 집에 와서 숨었다 하였고, 또 다른 책에는 아도는 본래 고구려 사람으 로서 위(魏)나라에 들어가 현창(玄彰)의 문하에서 십 구년 동안 공부하여 가지고 돌아와 그 어머니 고도녕(高道寧)의 명으로 신라에 와서 대궐 서쪽 동네에 살며 미추왕(味鄒王) 께 불교를 행하기를 청하였으나 전에 없는 괴상한 일이라 하여 아도를 죽이려 하므로 속촌 모록(屬村毛祿)의 집에 물 러와 숨으니 지금 선주(善州)라. 삼 년 동안 해를 피하여 숨 어 있는 중에 성국공주(成國公主)가 병이 낫지 아니하여 사 방에 사람을 놓아 공주의 병 고칠 자를 구할새 아도대사가 거기 응하여 대궐에 들어가 그 병을 고쳤다. 왕이 크게 기 뻐하여 대사에게 소원을 물으니 대사는 천경리(天鏡里)에 절 을 지어 주시면 내 원이 족하다 하매 왕이 허하셨다. 그러 나 세론과 백성이 완고하여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예삿집 한 채로 절을 삼았으나 그 후 칠 년을 지나서야 비로소 중 되려는 사람이 생겨서 와서 법을 받았고 모록의 누이 사시 (史侍)도 중이 되어 삼천기(三川岐0에 절을 세우니 영흥사 (永興寺)다. 미추왕이 붕하시매 다음 왕이 믿지 아니하여 불 교를 폐하려 하므로 대사는 다시 속촌으로 돌아와 제 손으 로 무덤을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문을 닫고 죽으니 이리하 여서 불교가 신라에 행하지 못하였다가 궐 후 이백여 년 만 에야 원종(原宗)이 불교를 일으켰다.

이렇게 말하였다.

이때는 고구려에는 소수림왕(小獸林王) 때에 순도(順道)가 들어오고, 백제에는 침류왕(枕流王) 때에 마라난타(摩羅難 陀)가 서역으로부터 들어와서 두 나라가 다 불교를 행하게 된 때다. 아도화상도 고구려에 있을 때에는 나라에서 흥복 사(興福寺)라는 큰 절을 지어 대사로 하여금 거처하게 하였 다 한다. 그러나 아도의 원하는 것은 편안하고 대접받은 일 이 아니요, 세상에 빛을 전하는 일이기 때문에 편한 것을 버리고 어려운 것을 취한 것이었다.

아도는 진승(秦僧)이라고도 하고, 혹은 천축(天竺) 사람이 라고도 하고, 혹은 고구려 사람으로 위에 들어갔다가 신라 에 돌아온 사람이라고도 하고, 또 혹은 대사의 어머니는 고 구려 사람이나 아버지는 위나라 사신으로 고구려에 왔던 굴 마(堀摩)라고도 한다.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으나 풍신 이 특이하고 신변을 잘 부리고 평생을 도 펴기에 바쳤으며 그가 설법을 할 때에는 하늘로서 꽃비가 내렸다고 한다. 아 무려나 아도는 내가 신라에 불도를 펴고야 만다 하고 몸을 바치고 맹세한 사람인 것에는 틀림이 없다.

아도가 간 뒤에 열 한 임금, 이백 년이나 지나서 법흥왕(法 興王─원종) 때에 비로소 국가로서 불교를 허하게 되었거니 와 그 때에도 이차돈(異次頓)이 목숨을 버리고야 비로소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신라에 불도를 펴기 위하여서 순교 한 이가 고구려 중 정방, 멸구자, 아도 세 사람과 이차돈과 아울러 네 사람이다.

원효가 도리사로 온 것은 이러한 선인들이 도를 위하여서 몸을 버린 자취를 돌아보아 첫째로는 자기의 뜻을 굳게 하 고, 둘째로는 의명과 아사가, 사사마의 뜻을 크고 굳게 하여 주려 함이었다.

도리사에서도 원효는 본명을 말하지 아니하였다. 의명더러 도 원효가 누구인 것을 발설 말라고 신칙하였다. 그것은 구 태여 숨으려 함이거나 또는 이름난 사람의 귀찮음을 피하려 함이 아니요, 대중에게 공경과 공양을 받음으로 뜻이 교만 하여지고 몸의 안일을 탐하게 될 것을 겁냄이었다.

원효는 도리사에서 며칠을 묵어 대중과 낯을 익힌 뒤에 절 에서 허가를 얻어 가지고 냉산 한 골짜구니에 조그마한 암 자를 짓기로 하였다.

원효는 톱과 도끼와 지게를 준비하여서 의명과 단둘이서 날마다 집터를 치고 재목을 찍어 나르고 돌과 흙을 져 날랐 다. 그러하는 동안에 하루에 한 번씩 마을에 밥을 빌러 내 려가고 또 큰 절에 재가 들면 거기서 얻은 음식으로 하루나 이틀 양식을 삼았다.

"시님, 이렇게 풀과 나무를 자르고 또 벌레를 죽이는 것은 살생이 아닙니까."

한번은 역사를 하다가 쉬는 동안에 의명이 이런 말을 물었 다. 집 한 채를 지으려면 나무도 많이 찍어야 하고, 풀뿌리 도 많이 파야 하고, 그러노라면 나무와 풀에 의지하여서 살 던 새와 버러지도 많이 의지를 잃게 될뿐더러 직접 죽는 일 도 많았다. 의명은 이것이 애처로왔던 것이다.

"왜 살생이 아니야."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런데 사문이 살생을 해도 좋습니까."

의명은 이렇게 물었다.

"사바세계가 살생 아니하고 살아갈 수 있는 세곈가."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면 사문과 속인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범부는 저를 위해서 남을 죽이고 보살은 중생을 건지기 위하여서 남을 죽이나니라. 석가세존의 발에 밟혀서 죽은 중생은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석가세존이 열반하시기 전에 도야지 고기를 잡수시지 않았나. 그러나 석가세존은 일찍 한 번도 살생하신 일이 없나니라."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찌해서 그것이 살생이 안 됩니까?"

"세존은 당신을 위하여서 사신 일이 없으시니."

원효의 이 말에 의명은,

"알았습니다.

하고 절하였다.

"그러면 살생유택(殺生有擇)이란 무엇입니까."

의명은 다시 물었다.

"그것은 세속 사람이 지킬 것이니라."

"보살은 살생이 없습니까."

"그렇다. 보살은 삼계 중생을 다 죽여도 살생이 아니니라.

자비니라."

"알았습니다."

하고 의명은 또 한번 절을 하였다.

또 어느 때에 의명은 원효에게,

"선(禪)이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달마존자(達磨尊者)가 중국에 온 것이 양무제(梁武帝) 때이 니 이때로부터 오륙십 년 전이라 백제와 신라에도 달마선법 이 들어오기 시작한 때였다. 지금까지는 진언(眞言)과 율 (律)이 가장 성하였고 일부 학승 간에 화엄법화가 숭상되었 으나 달마선법은 세상 일반에서는 아직 소문뿐이었다. 그래 서 의명도 이것을 원효에게 물은 것이다.

원효는 발앞에 흐르는 냇물을 가리키며,

"선이 이런 것이니라."

하였다.

산 시내는 지형을 따라서, 혹은 빠르게 혹은 더디게 혹은 소리를 내며 혹은 소리도 없이, 바위가 있으면 바위를 비추 이고 구름이 오면 구름을 비추이며 아무 조작도 없이 성급 함도 없고 쉬임도 없이 흐르고 있었다. 의명은 원효의 말뜻 을 알려고 언제까지나 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역사를 시작한 지 한달 남짓하여 원효의 암자가 낙성이 되 었다. 방이 삼 간, 가운데 마루는 크고 좌우 방은 작았다.

그리고 부엌 한 간이 붙어 있었다. 마당도 반듯이 다듬고 우물도 하나 얻었다.

집 옆으로는 꽤 큰 시내가 흘러서 비가 온 뒤면 방에서도 물소리가 들리고 비가 아니 와도 가까이 가면 물소리가 들 렸다. 냇가 벼랑 위에는 정자도 하나 지어 놓았다. 여기 앉 으면 달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암자에서 서쪽으로 높은 언 덕에 올라가면 먼 산과 먼 벌판이 바라보였다. 도리사 큰절 이 보이지는 아니하나 아침저녁에 종소리는 울려왔다.

집이 다 될 때쯤 하여서는 원효나 의명이나 목수의 솜씨가 많이 늘었다. 흙을 바르는 솜씨도 늘었다.

이 근방에 칡뿌리가 많은 것이 다행하여서 대안스님께 배 운 대로 원효는 칡뿌리를 먹었다. 그것을 그냥 씹어먹기도 하고 또 갈거나 으깨어서 먹기도 하였다.

단오 전 풀은 아무것을 먹어도 독이 없다고 한다. 산에는 먹을 풀이 많았다. 그러나 원효나 의명이 먹을 풀과 먹지 못하는 풀을 구별할 줄을 몰랐다.

한번은 지나가던 늙은 중 하나가 큰절에서 소식을 들었는 지 원효의 암자를 찾아왔다. 그 노승은 먹는 풀과 먹는 뿌 리를 잘 알았고, 또 그것을 맛있게 조리하는 법도 알았다.

칡뿌리로 녹말 만드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원효와 의명은 사흘 동안이나 이 노장을 따라서 산으로 다 니면서 봄철에 먹는 풀과 나무순과 뿌리를 배우고 또 많이 뜯어왔다.

여름에는 여름에 먹을 것이 있고, 가을에는 가을과 겨우내 먹을 것이 있다고 노장은 설명하였다. 도라지, 삽주, 더덕, 칡뿌리를 네 가지 뿌리라 하고 도토리, 밤, 잣, 개암을 네 가지 열매라 하고 송기(소나무 껍질), 누루지(느릅나무 껍 질)를 두 가지 껍질이라고 한다는 말도 가르쳐 주었다. 또 꿀을 따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여름에 병이 나서 고기를 먹어야 하겠거든 뱀을 잡아서 구워먹고, 겨울이면 토끼를 먹으란 말도 하였다.

"세존께서도 병난 사람은 고기를 먹여도 좋다고 하셨소."

노승은 이러한 말도 하였다.

이 노승은 평거에 늘 입을 우물우물하고 있었다. 진언을 염하거나 염불을 모시는 모양이었다.

이 노승이 다녀간 뒤로 원효의 암자 살림은 무척 풍성하였 다. 먹을 것이 많아진 것이다. 그중에 물푸레나무 백랍으로 초를 잡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은 더구나 고마운 일이었다.

물푸레나무에는 껍질에 뽀얀 가루 반죽 같은 것이 붙는다.

이것을 긁어모아서 초를 만드는 것이었다.

"낮에는 해가 있고 밤에는 달과 별이 있지마는 이런 것을 쓸 데도 있습니다."

노장은 백랍을 빚어서 초를 만들면서 이렇게 말하고 웃었 다.

또 밥을 빌어온 것이 쉬었거든 물에 여러 번 씻어서 냄새 가 없어진 뒤에 쑥을 두고 끓여먹으면 좋다는 법도 가르쳤 다. 또 나으리뿌리와 산약뿌리는 먹어도 좋지마는 남성(南 星)과 반하(半夏)는 먹으면 목이 붓는다는 말도 하였다.

이름을 물으면 노승은 번히 눈만 떠 보이고, 가는 곳을 물 으면 그는 발을 한번 굴렀다. 부득이한 것 외에는 말을 아 니하였다.

"시님. 그 노장님이 고구려 사람이 아닙니까. 사투리가 고 구려 사람 같습니다."

그 승이 골짜기로 스러진 뒤에 의명은 원효에게 이렇게 물 었다.

"그런지도 모르지."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원효는 그 노승의 국적 보다도 그의 수행안 정도와 심경을 생각하고 있었다. 원효 는 대안대사에서, 다음에는 방울스님에서, 또 이번에는 이름 없는 노승에서 불도의 한량없이 넓고 깊음을 느끼고 아울러 제 도력이 아직 어떻게나 유치한 것을 한탄하였다.

"의명아."

원효는 문득 이렇게 의명을 불렀다.

"예."

"너는 그 노장을 어떻게 생각하는고?"

"고구려 사람이라고 생각하오."

원효는 벼락 같은 소리로,

"가라!"

하고 의명에게 일갈하였다. '가라'는 정신차리라는 말이다.

의명은 송구하였다. 원효에게서 이런 큰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에는 웃고 농담도 하고 친구 같았다. 그러 나 이번 일갈은 무서웠다.

의명이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고 섰는 것을 보고 원효는,

"알았느냐."

하고 또 한번 소리를 질렀다.

"무슨 뜻이온지."

의명은 알아듣지 못하였다.

"가서 나무 한짐 해 오너라."

원효는 이렇게 명하였다.

의명은 지게를 지고 낫을 들고 산으로 올라갔다. 그 노장 이 고구려 사람이란 것이 무엇이 잘못일까 하였다.

저녁에 산으로부터 돌아와서 의명은 원효에게 절하였다.

"알았느냐."

원효의 말을 부드러웠다.

"예."

"어디 말해 보아라."

"소승이 아직 중이 못 되었습니다."

원효는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사월 파일에 원효는 이 암자에 무애암(無碍庵)이라는 현판 을 써 달았다. 그리고 제 손으로 향나무 부처 한 분을 새겨 서 불탑에 모셨다.

원효는 의명을 데리고 이 암자에서 한해를 났다. 의명은 더욱 원효를 공경하였다. 얼른 보기에 허랑한 듯한 원효대 사의 속에 있는 큰 빛을 본 것이다.

맨 처음 원효를 냉산 무애암으로 찾아온 것은 사사마였다.

그것은 유월 어느 비 쏟아지는 날이었다. 사사마는 비를 쪼 르르 맞고 무애암에를 와서 원효의 앞에 절하였다.

원효도 놀라면서,

"네 어찌 찾아왔느냐."

하고 반가와하였다. 사사마의 말은 이러하였다.

원효가 가상아를 떠나 뒤에 일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으매 사사마와 아사가는 기다리다 못하여서 그 조부에게 어찌할 까를 물으니 할아버지는,

"대사가 떠나실 때에 너희더러 무에라고 하시더냐."

하고 물었다.

"아직 집에서 늙으신 조부님과 어머님을 시봉하여라. 그것 이 불도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고 사사마가 대답한즉 조부는 또,

"언제 만난다는 기약은 말씀 아니하시더냐."

하고 손자와 손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때가 오면 만나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때가 오면."

하고 사상아 노인은 한참 침음하더니,

"그것은 너희더러 찾아오란 뜻이다."

하였다. 이때에는 벌써 앓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 이튿날 사사마의 조부는 사사마를 불러,

"네 오늘 길을 떠나거라. 어디를 가든지 네 스승을 찾아 라."

이렇게 명하였다. 그래서 사사마는 길을 떠났다.

"시님 계신 데를 찾거든 곧 돌아와. 나도 가게."

누이 아사가는 이렇게 사사마에게 부탁하였다.

사사마는 처음에는 원효가 가던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여서 간 데마다 원효의 모습을 말하고 이러이러한 사람을 못 보 았느냐고 물었다. 원효대사라고 찾지 아니한 까닭은 원효가 행색을 숨겼으리라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단샘에서 웬 사람을 만나서 물었더니 알겠지요. 그런 양반 이면 우리 동네에서 두 달이나 계시면서 죽을 사람을 많이 살려 주시고 가셨느니라고. 그런데 그 어른이 누구신지 성 명도 아니 일러 주시더라고. 대체 그 어른이 누구시냐고 되 려 묻겠지요. 그래서 그 어른이 원효대사니라고 제가 말하 였습니다."

사사마는 그때의 기쁨을 다시 일으키는 듯이 눈이 빛났다.

사사마는 말을 계속하였다.

"그리고는 감천사에 들러서 자세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는 사사마의 말에 원효는,

"거기서 방울시님이란 노장님 뵈었느냐."

하고 물었다. 원효는 이 말을 물을 때에 몸을 바르고 합장 하여서 스승에게 대한 예를 보였다.

"네. 큰절에서 어떤 시님이 원효대사 일을 알려거든 저 독 성각에 가서 방울시님을 만나뵈어라 하기로 가 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을 그 노시님 곁에서 잤습니다."

사사마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 노시님이 누룽지 잡수시더냐."

원효는 이렇게 물었다.

"누룽지 잡수시는 것은 못 뵈었습니다."

사사마는 누룽지가 무슨 뜻인가 하면서 이렇게 대답하였 다.

의명도 사사마에게 감천사 이야기를 여러 가지로 물었다.

사사마는 이삼 일 유숙한 뒤에 집으로 갔다. 조부께 원효 대사의 거처를 찾았다는 말를 보고하려 함이었다.

사사마는 조부에게 크게 칭찬을 받았다. 반년 동안에 혼자 정처없는 스승의 자취를 찾아서 만난 것이 장한 일이라고 대단히 기뻐하였다.

아사가와 사사마가 집을 떠나는 날 사상아 노인은 예복을 입어서 위의를 갖추고 신전에서 손녀와 손자를 이 나라를 건지기 위하여서 큰 스승에게 보낸다는 봉고제를 하였다.

아사가도 상아머리를 고쳐서 방아머리로 사내 모양으로 틀 고 남복을 입었다.

누이와 오라비는 형제 모양으로 조부 앞에 무릎을 꿇고 앉 아서 마지막 교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부는 늙었다. 오래 수도한 몸이라 눈이 별 같고 몸이 쇠 같지마는 그래도 주름과 백발은 숨길 수가 없었다. 더구나 아들은 전사하고 손자 손녀를 이제 또 정처없이 내어놓는 것은 조부로서는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평생에 몸과 집을 생각한 일이 없는 사상아였다.

오직 신라의 젊은 사람들을 훈련하여서 이 나라를 힘있게 하자 하는 생각밖에 없는 그였다. 칠십 평생에 그는 가상아 당의 스승으로 수천 명 청년 남녀를 가르쳤다. 그중에는 용 감하게 나라를 위하여서 싸워 죽은 자도 수백 명 되었고 지 금도 살아사 혹은 군인으로 혹은 관리로 혹은 스승으로 나 라를 위하여서 힘쓰고 있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 에 자기의 힘은 홍로점설(紅爐點雪)과 같은 것 같았다. 정말 저를 잇는 큰 인물이 좀처럼 가르쳐지지를 아니하였다. 대 개는 조그마한 도력을 얻어 가지고는 제 한몸의 부귀공명을 도모하는 무리가 되고 말았다.

그는 아들 형제를 두었었다. 큰아들은 뜻이 갸륵하여서 장 래를 기대하였으나 한산 싸움에 전사하고 작은아들은 지금 도 살아 있으나 한 집을 지켜 갈 만한 재목도 못 되었다.

그가 만년에 희망을 붙인 것은 손녀 아사가와 손자 사사마 였다. 아사가는 여자나 극히 총명하고 또 뜻이 높았다.

그래서 몸소 곁에 두고 여러 가지 고생을 시켜서 가르쳤 다. 그는 열 다섯 살에 벌써 가상아의 가사라(구실─두목)가 되어서 남을 지도할 힘이 있었다.

그보다 두 살 적은 사사마도 총명하고 도량이 큰 듯하였 다. 그래서 내 집을 빛내고 나라에 큰 힘이 될 자는 이 남 매라고 믿고 지극히 사랑하고 소망을 붙여 온 것이었다.

조부는 이윽고 두 소년 소녀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희 이제 떠나면 언제 집에 돌아오려느냐."

하는 것이 조부의 첫말이었다.

"일년에 한 번씩은 귀성할까 합니다."

사사마가 이렇게 아뢰었다. 아사가는 여자의 도리를 찾아 서 대답은 오라비에게 미루는 것이었다.

"안 돼!"

조부의 어성에는 노기조차 띠었다.

"안 되지. 십년이고 이십 년이고 도가 차기 전에는 집에 돌 아올 생각을 말아라. 설사 내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돌아올 것은 없어. 너희는 할아비도 잊고 도를 이루어 나라 에 큰 빛이 되는 것이 죽는 네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이 할아비에게나 효도인 줄 알렷다. 알아들었느냐."

이 말에 두 오누이는 눈물이 북받쳐 대답을 할 수가 없었 다. 그렇다고 손을 들어서 눈물을 씻을 수도 없고 또 외면 할 수도 없어서 눈물이 쏟아져서 두 무릎에 빗방울같이 떨 어지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조부도 한참 동안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는 눈이 쓰라 림을 느꼈다.

"이제 그만 눈물 거두어라."

얼마 있다가 조부는 이렇게 명하였다.

이 경우에 그들이 눈물 흘리는 것을 조부는 자연한 정이라 고 용인한 것이었다.

허락을 얻어서 아사가와 사사마는 소매를 들어 눈물을 씻 었다. 그러나 씻으면 씻을수록 새로운 눈물이 북받쳐올랐다.

할아버지는 그들에게는 가장 그리운 이였다. 평소에 근엄 하여 좀체로 웃는 모양도 아니 보이는 할아버지언마는 그러 한 속에도 깊은 사랑이 있는 것을 어린 적부터도 알고 있었 다. 일년에 한 번도 못 돌아오리라 하면 그들은 생전에 다 시 그리운 할아버지의 얼굴을 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눈물을 씻는 소매가 젖으면 그 젖은 소매가 더욱 설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났던 보람을 해야 한다. 해는 빛을 주시고 용은 비를 주시고 검님들도 다 직분이 있으셔.

너희들은 그만한 총명과 지조를 타고났으니 필시 무슨 큰일 을 하랍시는 방아신의 분부셔. 앞으로 우리나라에 크고 어 려운 일이 많을 것이다. 백제, 고구려와 싸움도 할 것이고 싸움이 오래 끌면 사람도 많이 죽으려니와 흉년도 질병도 올 것이요, 그리 되면 백성들이 마음이 어지러워지기가 쉬 워 까딱하면 나라에 큰일날는지도 몰라. 그러한 때에 나라 를 붙들고 백성들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도인의 직책이 야. 그러한 큰 직책을 감당하자면 큰 스승의 매를 맞으며 큰 공부가 있어야 해. 벼락이 머리에 떨어져도 까딱없고 부 귀가 오더라도 심상할 만한 공부가 있어야 해. 그런데 나는 그만한 스승이 못 되어. 내가 보매는 원효대사야말로 능히 너희를 두들겨서 금과 같은 사람을 만들 큰 스승인 듯싶으 니 너희들은 그 어른께 몸을 맡겨 버려라. 스승을 섬기는 법이 임금을 섬기는 법과 같아. 그러므로 임금과 스승과 어 버이는 일체라는 것이다. 그중에도 스승은 임금과 어버이 섬기는 법을 가르치시는 이니 그러므로 스승은 임금도 공경 하시는 바이다. 대개 임금을 섬기는 법이 목숨을 임금께 바 쳐 버리는 것이어니와 스승을 섬기는 법도 그와 같아서 스 승에게다가 목숨을 바쳐 버리는 것이다. 무슨 어려운 일을 시키시더라도 그대로 좇아가는 것이야. 그러니 일심으로 정 성으로 스승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이야. 일심이란 딴 생 각을 아니한단 말이요, 정성을 들인다는 것은 거짓이 없고 기임이 없이 언제까지나 힘쓴단 말이야. 알아들었니?"

"네."

두 오누이는 일제히 대답하였다.

"장하다, 그래야지."

하고 조부는 일어나 칼 함에서 도롱이 둘을 내어 아사가와 사사마에게 주었다. 칼의 길이는 두어 자밖에 아니 되나 오 동집에 금으로 반달을 놓고, 은으로 한 칼에는 멍에다물(오 리온)을, 한 칼에는 칠성을 놓고 숙녹피로 끈을 한 것이었 다. 숙녹피는 오랜 세월에 빛이 변하였다. 조부는,

"네 그 칼을 빼어 보아라."

하고 명하였다.

아사가와 사사마는 칼을 빼었다. 푸르스름한 몸에 가무스 름한 날이었다. 그러나 한번 공중에 들으매 푸른 무지개가 뻗치는 듯하였다.

조부는 입을 열었다.

"이 칼은 조부 서랑 장군께서 장군 이사부를 따라, 한번은 우산국을 칠 때에, 또 한번은 금관국을 칠 때에 세운 전공 으로 나라님께서 상사로 받자오신 것이다. 서랑 장군께서 모두 세 번 전공을 세우셔서 칼 셋을 상받으시고 넷째 번에 는 한산주 싸움에 전사하셨거니와 단잠성( 岑城) 싸움에 상 사받으신 칼은 네 아비가 지니고 출정하여 한산주에서 전사 하여 그 칼이 간 데를 모르거니와, 너희가 만일 고구려를 쳐서 멸하면 네 아비의 칼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칼 은 금으로 반달과 용을 아로새긴 것으로 진흥대왕께서 차시 던 보검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말한 뒤에 조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

"네 아비 장춘랑(長春郞)은 그 동지 파랑(罷郞)과 함께 단 둘이 밤에 적진중에 숨어들어가서 적의 장수를 베어서 위태 한 우리 군사를 건졌나니라. 네 아비는 충성 있는 장수더니 라. 적도 그 충용에 감복하여서 장춘랑, 파랑의 무덤을 만들 어 놓고 물러갔나니라."

이렇게 장춘랑의 말을 하였다.

장춘랑, 파랑은 한산 싸움에 신라군이 백제군의 포위를 당 하여서 전멸의 위기에 있는 것을 단신으로 적진중에 들어가 적장을 죽이고 전군을 구원한 사람으로 나중에 태종무열왕 이 그 공을 보아 두 사람을 위하여서 장의사(壯義寺)를 지어 서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장의사는 세검정에서 동북으로 고 개 하나 넘어가서 지금도 그 절터가 있다).

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아사가와 사사마는 한번 몸을 떨었 다.

조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 네 아비가 적장의 목을 베인 것이 그 칼일 것이다.

그 용을 아로새긴 칼일 것이다. 한번 쾌하게 그 칼을 썼으 니 여한이 없을 것이다. 네 아비가 칼을 잘 썼나니라. 몸을 솟아서 나는 참새를 베었더니라. 네 증조부님이 칼을 잘 쓰 시기로 이름이 높으셨거니와 항상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칼 쓰는 공부는 베고 싶은 것을 무엇이나 베게 되어야 한다고 하셨어. 공중에 나는 티끌을 쪼갤 만하여야 비로소 검객이 라고 하셨어. 또 이런 말씀도 하시더니라. 칼을 쓰는 사람은 먼저 제 욕심을 베기를 공부해야 한다고. 능히 제 목을 쌍 둥 자를 만하면 아무러한 적이라도 그 칼을 면치 못한다고 하셨어. 저를 먼저 베고야 적을 베느니라고. 저는 살고 적만 죽이려 하면 적은 살고 저는 죽나니라고. 너희들은 아직 이 말을 못 알아들을 것이다마는 이제 공부를 하노라면 알게 될 것이다. 들으니까 원효대사가 검술에도 명인이라더라. 나 의 뿌리를 뺀 사람이 무엇을 하면 명인이 아니겠느냐. 능히 만인을 죽이고 능히 만인을 살리는 재주를 배워 이루거든 할아비를 찾아오너라. 할아비가 그 전에 죽더라도 눈만은 뜨고 너희들이 어떻게 되나 보고 있을 것이다."

조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네 그 칼에 새긴 반달과 별을 보느냐. 네 마음이 참된 때 에는 달님 별님이 네 칼에 힘을 주시되 네 마음이 거짓될 때에는 정기를 아니 빌리시는 것이야. 유신 장군이 나라의 원수를 갚는다고 칼을 단에 놓고 빌 때에 별빛이 칼날까지 뻗었다는 것이야. 신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칼도 쇳 조각과 다름이 없어. 재주로 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신명의 주시는 힘으로 칼을 쓰는 것이야. 신명은 맑고 깨끗한 마음 을 즐겨하시나니라. 네 마음이 청정할 때에 신명이 네 마음 이 계시니라. 원효대사가 작히나 잘 가르치시랴마는 할아비 의 마지막 훈계로 알고 마음에 새겨 두어라."

하고 입을 다물었다.

아사가와 사사마는 조부의 말을 한마디 한마디 간에 새겼 다. 그 말속에 풍긴 어버이의 애정이 더욱 힘있게 두 어린 사람의 혼을 흔들었다.

"이제 가거라."

하고 조부의 명령에 아사가와 사사마가 일어나 조부의 앞 에 절하였다.

그때에 새로운 눈물이 쏟아졌다.

아사가와 사사마는 화랑으로 차렸다. 조부께 받은 칼을 차 고 바랑을 지고 나섰다. 조부는 대문 밖에 나와서 둘이 걸 어가는 것을 보고 있더니 곧 들어가고 말았다. 아사가와 사 사마는 조부가 들어가고 아니 보인 데를 향하여 울고 절하 였다.

이 모퉁이만 돌아서면 다시는 집이 아니 보일 굽이에 가서 아사가와 사사마는 뒤를 돌아보았다.

"불이야"

아사가는 놀라는 소리를 질렀다. 집에서 불이 타오르고 있 었다.

"할아버지!"

두 어린이는 땅에 엎드려서 울었다. 오누이는 조부의 뜻을 안 것이다. 인제 집이 없으니 집 생각을 말라는 뜻이다.

두 사람은 다시 집으로 달려가고 싶은 것을 참고 조부의 정성을 존중하여서 뒤도 아니 돌아보고 훨훨 걸었다.

"누나."

하고 얼마를 가다가 사사마가 누이를 불렀다.

"응."

"할아버지는 안 돌아가셨을까."

"안 돌아가실 것이다."

"어떻게 아오?"

"가상아당이는 어떡허고."

"그래. 할아버지는 가상아당으로 가실 거야. 거기서 돌아가 시는 날까지 사람을 가르치실 거야."

사사마는 마음이 놓였다.

날은 흐리건마는 찌는 듯 더웠다. 언제 큰 소나기가 쏟아 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