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 · 이광수

Chapter 3: 파계

원효는 왕이 보내신 물건이 너무 많고 화려함을 첫째로 두 려워하였다. 사중 대중이 부러워하고, 또 심상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원효는 붓을 들어서,

"道人貪. 是行者羞恥. 出家富. 是君子所笑."

라고 써서 보였다.

원효는 위로서 보내신 물건을 사중에 골고루 나누고 나서 가는 베옷 한 벌과, 증과, 다식 등 먹을 것을 싸 가지고 나 섰다.

"시님, 어디 가십니까."

심상이 물었다.

"대안시님헌테 간다."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걸 다 대안시님을 갖다 드립니까."

심상은 아까와하는 모양이었다.

"간심( 心)을 버려라."

원효는 심상을 노려보았다.

"간심이 아닙니다. 대안시님이 그것을 받으시면 대안시님이 간심을 발하신 것이 되겠습니다."

심상은 이렇게 변명하면서 장삼을 떼어 입었다.

"너는 어디로 가느냐."

"노시님 모시고 갑니다."

"너는 올 것 없다. 내 혼자 다녀오마."

하고 원효는 심상이 따라오는 것을 원치 아니하였다.

"왜 그러십니까. 평생에 어디를 가시나 데리고 가셨는데, 오늘따라 소동을 떼로 가십니까."

심상의 말에는 슬픈 빛이 있었다. 심상은 스승을 사모하는 정이 간절하였다. 십년을 하루같이 스승으로 모신 정도 깊 었다.

"가자. 너도 가자."

하고 원효는 마침내 심상을 데리고 나섰다.

날은 더웠다. 지난 이삼 일 비에 불은 시냇물 소리가 골짜 기에 찼다. 나뭇잎들은 오월 볕에 빛났다. 새소리가 끊일 새 가 없었다.

나을신궁이 한창 푸른 녹음 속에 바라보였다. 나을신궁의 정전은 칠백여 년이 된 건물이었다. 제이대 남해차차웅(南解 次次雄) 왕이 건국 시조인 박 혁거세를 제사하기 위하여서 짓고 그 누이 아로(阿老)를 두어 주제(主祭)를 삼았다. 그러 므로 이 건물은 옛날 그대로 초가집이어서 해마다 봄이면 영을 갈았다.

제 이십 이대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이 자리에 신궁을 조 영하고 역대 왕과 검님과 천신지기(天神地祇)를 제사하였다.

신궁에는 공주 한 분이 주제가 되고 육부(六部)에서 각각 한 사람씩 인물 좋은 처녀를 고라서 신관을 삼고 그 밖에 거문고치 한쌍, 가얏고치 한쌍, 주라치 한쌍, 춤치 네쌍, 노 래치 네쌍이 있었다.

봄 이월, 가을 팔월에 큰 제사가 있고 그 밖에 나라에 무 슨 일이 있을 때면 임시로 제사를 드리고 또 제주를 통하여 서 신탁(神託)을 받았다. 이월의 대제는 남자의 경기가 있고 팔월의 대제에는 여자의 길쌈내기가 있다. 남자 경기에는 활쏘기, 말타기, 칼쓰기, 노래부르기 같은 것이 있었고 또 그림이나 음악이나 잘하는 것은 모두 신궁에 바쳤다. 솔거 의 마지(말 그림)도 있었고, 옥보고며 우륵의 금곡 중에도 신께 바치는 것이 많았다.

불교가 성하게 됨으로부터 신궁에 대한 정성이 약간 쇠하 였으나 그래도 늙은 사람들과 또 특별히 신궁을 존중하는 사람들의 정성은 여전하였다.

원효도 열 여섯 살에 신궁 대제의 무술경기에 참여하여서 상을 받았다.

원효는 나을신궁을 바라볼 때에 오늘따라 옛 생각이 났다.

원효는 불현듯 어린적 생각이 나서 발을 신궁 쪽으로 향하 였다. 여러 백년 묵은 늙은 느티나무와 소나무와 잣나무와 느릅나무들은 그 썩고 우므러진 모양이 대단히 늙은 사람과 같아서 신기로움이 있었다. 그늘진 길에는 파란 이끼가 앉 았다. 더할 수 없이 고요한 경계다. 아무 소리도 없다.

원효가 처음 이 신궁에 오기는 열 두 살에 그 조부 적대공 (赤大公)을 따라서였다. 문노 문하에서 국선도(國仙道)를 배 우려고 서라벌에 처음 왔을 때였다.

원효의 조부 적대공은 원효를 위하여서 마지를 신궁에 올 렸다. 고향인 압량군에서 원효가 처음으로 활 쏘아 잡은 사 슴의 포와, 꿀을 넣은 시루떡과 술과 밤과 대추와 감과 이 러한 제물을 바치고 신녀(神女)들이 음악을 아뢰이고 춤을 추고 빌어 주었다. 대단히 큰 북을 울리던 것과 신녀들이 오색옷을 입고 춤추던 아름다움을 지금도 원효는 기억한다.

신궁 경내에는 문이나 벽에 수없이 마지가 붙어 있었다.

신께 말을 바친다는 뜻이다.

원효가 바친 마지는 아마 신전 안에 아직도 걸려 있을는지 도 모른다.

삼신전(三神殿)이 맨 뒤에 있고 다음에 시조묘(始祖廟), 그 다음에 역대 왕의 영을 모신 종묘가 있고 그 밖에도 산신, 수신 등 각색 귀신을 제사하는 신당(神堂)이 여러 채가 있었 다. 모두 고요하였다.

남산 꼭대기에는 선왕당(仙王堂)이 있었다. 화랑들은 신궁 에 참배하고는 선왕당에 참배하였다. 기도는 선왕당에서 하 였다. 선왕당에는 수염 허연 노인이 학, 범을 옆에 놓은 탱 을 모셨다. 고구려와 백제도 마찬가지였다.

원효는,

"마하반야바라미."

하고 신전을 향하여서 합장하였다.

늙은 신녀가 누른 옷에 붉은 띠를 띠고 신전에서 나왔다.

얼굴에 주름이 많이 잡히고 하얀 머리에는 검은 다루를 들 여서 뒤에 늘였다. 빙그레 웃는 화평한 얼굴이었다. 그는 열 섯살부터 이 신궁에서 늙은 사람이었다. 아침마다 목욕재계 하고 신을 모시는 일로 일생을 바친 이였다.

이 늙은이 뒤에 젊은 신녀 둘이 방울 달린 큰 부채로 반쯤 차면하고 따랐다. 그들은 잠깐 눈을 들어서 원효를 보았으 나 눈을 폭 내리깔고 하얀 버선 신은 발을 소리없이 옮겨서 저쪽 복도로 스러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다시 종용하였다.

원효는 돌아가신 조부와 아버지 담나나마(談捺乃末)와 어머 니 사라부인을 생각하였다.

조부는 키가 훨적 크고 머리털이 붉었다. 그래서 적대공이 라고 불렀고 잉피공(仍皮公)이라고 불렀다. 아버지 담나는 나마벼슬에 올랐으나 인물로는 적대공이 더욱 유명하였다.

원효의 어머니는 원효를 낳고는 돌아갔다. 그래서 원효는 그 어머니의 얼굴을 모른다.

원효의 어머니는 별이 날아 품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원효 를 배었다고 한다. 원효의 어머니가 만삭이 되어서 그 남편 과 함께 선왕께 기도를 드리고 돌아오다가 불들[佛等乙村] 왕밤나무 밑에 이르러 배가 아프매 창황히 남편의 옷을 나 뭇가지에 걸어서 장막을 삼고 그 속에서 원효를 낳으니 아 직 해뜨기 전이었다. 좋은 아기를 순산하여지라, 그 아기가 오래 살고 큰사람 되어지라, 산 위에 있는 선왕당에 새벽기 도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어머니는 죽었다. 때는 진평왕 삼십 구년 정축이었다. 원효는 어려서 쇠털[誓幢, 新幢]이라 고 불렀다. 그 머리카락과 솜털이 조부를 반쯤 닮아서 누르 스름한 까닭이었다. 자란 뒤에 원효라고 한 것도 첫새벽에 낳았다는 뜻이었다. 원효가 난 지 얼마 아니 하여서 그 아 버지 담나나마는 낭비성 싸움에 전몰하였다. 그러고 그 조 부 적대공의 손에 길린 것이었다.

평생에 대면도 못한 어머니를, 어린 원효는 무척 그리워하 고 슬퍼하였다. 그래서,

'어머니가 어디로 가셨나? 지금 어디 계신가.'

하고 이것이 알고 싶었다. 전생 인연도 인연이지마는 원효 가 불교에 들어간 동기가 여기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다 가 아버지가 전몰하고, 또 원효가 십 칠세 되던 해에 조부 도 병몰하매 원효는 곧 출가하기를 결심하고 그 집을 절을 만들어 초개사(初開寺)라 하고, 또 그 어머니가 원효를 낳고 돌아가고 무덤도 있는 왕밤나무 곁에 절을 지어서 사라사 (娑羅寺)라 하니 다 그 부모의 명복을 빌고자 함이었다. 특 히 첫아들을 낳고 젖도 못 물려 보고 돌아간 어머니의 명복 을 빎이 간절하였다.

원효의 눈앞에는 삼십 삼년의 지나간 일생이 떠 나왔다.

고요하고 옛빛이 농후한 신궁 경내는 이러한 추억을 자아내 는 것 같았다.

원효의 지금까지는 세상에서 이르는 바 고적한 일생이었 다. 조상부보하고 혈혈단신인 원효였다.

"天諸佛諸佛. 莊嚴寂滅呂. 於多劫海. 捨慾苦行. 衆生衆生.

輪廻火宅門. 於無量世. 貪慾佛捨."

라 하여 원효는 불도를 닦는 것으로 큰 원을 삼은 것이었 다. 화엄경을 읽으매 원효는 환희심을 얻었다. 더구나 십지 품의 십대원은 곧 원효 자신의 원이었다. 이 십대원이야말 로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는 길이었다.

일, 모든 부처님네를 다 모시고 공양하리라는 대원, 이, 모든 부처님네가 설하신 법을 다 받아 순종하고 지키 리라 하는 대원, 삼, 모든 부처님네가 성도(成道)하시와 대법륜을 전하실 때 에 으뜸으로 그 법을 받는 자가 되리라 하는 대원, 사, 모든 보살들이 행하여 얻은 법을 다 행하여 얻어서 모 든 중생을 교화하리라 하는 대원, 오, 삼계육도의 일체중생을 불도에 들게 하리라 하는 대원, 육, 시방에 있는 무소무량한 일체 세계의 생김생김을 눈앞 에 보아 알리라 하는 대원, 칠, 모든 불토(佛土)는 한 불토에 들고 한 불토는 모든 불 토에 청정구족하게 하리라 하는 대원, 팔, 일체 보살이 동심동학하여서 보살행을 구족케 하리라 하는 대원, 구, 나를 보는 자는 반드시 불법을 열게 하리라 하는 대원, 십, 일체 세계에서 성불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하리라 하는 대원, 이라 하는데 이르러서 원효는 소리를 치고 춤을 추었 다.

"發如是大願. 廣大如法界. 究意如虛空. 盡未來際. 盡一切劫.

得佛道事. 求大智慧. 大神通等. 無有休息."

을 노래로 부르고,

"중생이 다함 없네 중생이 다할진대 내 원도 다하리라.

중생이 다함 없네 중생이 안 다하매 내 원도 안 다하리라."

(衆生不可盡. 若衆生盡. 我願乃盡. 衆生不可盡. 衆生不盡.

我願不可盡) 원효는 이 대원을 원으로 하고 오늘까지 살아 왔고, 이 법 을 가르치는 화엄경을 세상 사람에게 널리 알리려고 화엄경 소를 써 왔다.

그러나 화엄경을 끝내는 때에 승만왕이 승하하시고는 이제 야말로 원효가 가장 많이 감동을 받은 십지품에 들어갈 것 이언마는 승만왕의 사십구일재가 가까워오도록 아직 붓을 들 생각이 없이 오늘까지 왔다. 심상이, 원효가 웬일인가 하 고 근심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뜻이 변한 것이 아니나 힘이 없다.'

원효는 이러한 한탄을 수없이 하였다.

'승만왕을 건지지 못하였다.'

하는 자책이 가슴에 못이 된 것이었다.

'신력의 가피(神力加被).'

원효는 아직 그러한 신비한 것에 대하여서 신심이 부족하 였다.

"諸佛智慧. 甚深無量. 其智慧門. 雖解難入."

"唯佛興佛. 乃能究盡諸法實相."

"非思量分別之所能解."—이상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

이러한 구절을 생각하면서도 원효는 결국 사량 분별을 가 지고 불법을 알고 불법을 살하려 하는 것이었다. 화엄경소 라는 것도 결국 사량 분별, 즉 이치를 따지는 것이 아니냐.

큰 바다의 물을 됫박으로 되려는 것이 아니냐.

"是法不可示. 言訶相寂滅."

"諸法寂滅相. 不可以言宣."—이상 법화경.

그러할진대 화엄경 자신도 결국은 말이 아니냐. 말로 설명 못할 법을 또 말로 해석하려는 것이 부질없는 것 같았다.

"信爲道佛功德母."

"除諸菩薩衆. 信力堅固者."

오직 신력으로만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력이란 무엇인가.'

"諸佛子. 若衆生. 厚集善根. 修諸善行. 善集助道法. 供養諸 佛. 集諸淸白法. 爲善知識所護. 入深廣心. 信樂大法. 心多向 慈悲. 好求佛智慧. 如是衆生. 乃能發阿 多羅三 三菩提心."— 화엄경 십지품.

원효는 문득 이 대문을 생각하였다.

'심광심(深廣心), 심광심!'

하고 원효는 눈을 번쩍 떴다.

'깊고 넓은 마음. 이 마음을 얻어야 불도를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음은 책을 보아서 얻을 것이 아니요, 생각해서 얻을 것이 아니다. 선근, 선행, 공양제불, 선지식.'

'행(行)이다, 행!'

원효는 대안을 생각하였다.

행이라는 생각에 새로운 광명을 얻을 듯하였으나 또한 지 금까지 걸어온 길이 헛길인 듯도 싶어 앞이 막막하기도 하 였다.

"가자."

하고 원효는 심상을 재촉하여 가지고 신궁에서 나왔다.

원효는 신궁문을 나섰다가 이만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 삼 신의 가피인 듯도 싶어 다시 돌아 들어가 감사하는 절을 하 였다.

전에 대안대사를 만났던 굴에 가 보았으나 거기는 아무 형 적도 없었다.

"아마 밥 얻으러 나가셨나 보오."

심상은 이렇게 말하였으나 원효가 보매 굴 언저리에는 어 제 오늘 사람이 다닌 자취가 없었다.

"윗굴에 가 보자."

"윗굴이 어디오?"

"너구리가 와서 들었다는 그 굴 말이야."

"그 굴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모르지마는 이 근처에 있겠지. 어디 찾아보자."

원효와 심상은 풀을 헤치고 굴을 찾아다녔다.

풀에는 아직도 이슬이 있고 향기를 발하였다. 지나간 비에 땅이 무르고 여기저기 샘이 솟았다.

"어딘가."

이 모양으로 산속으로 헤맬 적에 어디선지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대안대사 음성 아닙니까."

심상도 귀를 기울였다.

"오,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악아 울지 마라."

이렇게 아기를 달래는 소리가 들렸다.

"웬일일까."

하고 원효는 소리나는 곳을 찾아갔다.

과연 대안대사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놀랐다.

대안대사는 굴앞 풀 위에 너구리 새끼 아홉 마리를 놓고 아기 달래는 소리를 하면서 칡뿌리를 먹이느라고 애를 쓰고 있었다. 아직 눈도 아니 뜬 너구리 새끼들은 주둥이를 내어 두르며 깽깽하고 울었다. 얼른 보아도 젖을 찾는 모양이었 다.

원효는 합장하고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에,

"시님, 이게 웬일이십니까."

하고 물었다.

대안은 "대안, 대안"하고 웃을 경황도 없었다.

"이것들이 어미를 잃고 이 모양야. 배가 고파 이 모양이오.

칡뿌리를 먹이려니 아직도 먹을 줄을 모르고 이렇게 울기만 하오."

대안은 이렇게 말하면서 칡뿌리를 씹어서는 새끼의 입에 넣어주나 입을 오물오물할 뿐이요, 받아먹는 것 같지 아니 하였다.

"어미 아비도 어디 갔습니까."

원효는 굴을 들여다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새끼 먹일 것을 찾느라고 나갔다가 무엇헌테 잡혀서 죽은 모양이오. 그저께 밤에 하도 비가 많이 쏟아지길래 여기를 왔더나 이렇게 새끼들만 있단 말요. 아무리 기다려도 어미 아비는 아니 돌아온단 말야. 필시 여우헌테 먹혔거나 사람 헌테 잡힌 모양야. 그러니 먹일 것이 있소. 칡뿌리를 씹어 주건만 잘 안 먹어. 젖을 먹을 때가 아니오? 아직 이렇게 눈도 안 떴어."

새끼들은 주둥이로 서로서로의 가슴 밑을 찾았다.

"시님, 마침 잘 오셨소. 이애들을 좀 지켜 주시오. 소승이 가서 젖을 좀 얻어오리다. 저희끼리만 두고 가면 또 무엇헌 테 먹힐는지 몰라서."

대안은 이렇게 말하고는 방울과 지팡이를 들고 나섰다.

"소승도 가서 젖을 얻어오리까."

심상이 원효에게 물었다.

"그래라. 남는 젖을 얻어오너라."

원효는 혼자서 너구리 새끼 아홉 마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미를 잃고 이틀이나 굶주린 어린 너구리들은 기운이 없 었다. 그중에도 한두 놈은 갱신을 못하고 있었다. 졸리는 것 모양으로 고개가 자꾸 숙어졌다. 그러면 애써서 그 고개를 들려고 하였다. 다른 새끼가 제 몸을 타고 넘어도 아무 저 항이 없었다.

원효는 그 두 마리를 손에 들었다. 몸은 따뜻하나 전신이 파르르 떨렸다.

"죽으려나 보다."

원효는 중얼거렸다.

"세상에 나는 듯 마는 듯 굶어죽는구나."

원효는 그중에도 심한 너구리 새끼를 안고 물을 찾아서 손 에 물을 떠서 입에 대어 주었다. 두어 번 니얌니얌 임을 움 직이고는 고만 죽고 말았다.

원효는 작은 시체를 가지고 굴로 돌아왔다. 다른 새끼들은 아직도 주둥이를 서로서로의 몸에 대고 비비고 있었다.

원효는 나뭇잎을 따서 깔고 그 위에 작은 시체를 놓고 그 리고는 또 나뭇잎으로 그것을 덮었다. 대안대사가 돌아오기 를 기다리자는 것이었다.

원효는 시체의 앞에 합장하고 아미타불을 염하였다. 업보 인 육체를 떠난 생명은 다 같은 마음 하나다. 그러나 이 불 쌍한 너구리 새끼는 벌써 또 한 내생의 윤회에 든 것이다.

"나무아미타불."

원효는 이 염불 공덕을 죽은 너구리에게 회향하였다. 만일 원효가 지금까지에 쌓은 모든 선근과 공덕을 다 회향하여서 건져내일 수만 있다고 하면 원효는 그것을 아깝게 생각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원효는 승만여왕 때에 벌써 제가 어떻 게나 공덕이 없음을 느꼈다.

그러나 한 중생의 업보를 다른 중생이 가로맡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심은 자야 거두어라"하는 것이 법계의 인과다.

오직 불보살의 대원력만이 능히 중생의 업보의 줄을 끊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이 마음문을 열고 불보살의 대원력을 받아들이 지 아니하면 불보살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다.

"鈍根樂小法. 貪着於生死. 於諸無量佛. 不行深妙道."

(둔한 무리 작은 것을 좋아하여 나고 죽는 일을 좋아라 하여 무량하신 부처님네 만나도 깊고 묘한 도를 향치 아니하여.) 이 때문에 중생이 끝없이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다. 이제 여기 죽은 너구리 새끼도 나고 죽는 작은 법을 탐하여서 이 렇게 나고 죽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 아니다.

원효는 죽은 너구리에게 들리느라고 법화경 방편품게(法華 經 方便品偈)를 소리 높이 읽었다.

"我知此衆生. 未曾修善本堅. 着於五慾. 癡愛故生惱. 輪廻六 趣中. 備受諸苦毒. 受胎之微形. 世世常增長. 薄德少福人. 衆 苦所逼迫. ………深着虛妄法. 堅受不可捨. 我慢自矜高. 諂曲 心不實. 於千萬億劫. 不聞佛名字. 亦不聞諸法. 如是人難度.

……… 諸法徒本來. 常自寂滅相. 佛子行道己. 來世得作佛.

………一稱南無佛. 皆己成佛道."

이렇게 큰소리로 외우고 있을 때에,

"시님 경 읽으시오?"

하고 대안이 병에 젖을 얻어 가지고 왔다.

"새끼 너구리 한 마리가 그동안에 죽었습니다."

"너구리가 법화경을 알아듣소?"

하고 대안은 빙그레 웃었다.

"너구리는 무슨 경을 알아듣습니까."

원효가 이렇게 대안에게 말하였다.

"내 너구리 새끼가 알아들을 경을 읽을게 시님 들어 보시 오."

하고 대안은 바리에 젖을 따르더니 너구리 하나를 들어 안 고,

"오 그렇지, 악아 젖 먹어라. 자, 자, 머. 네 어미 젖만 못 하겠지만, 자 머."

너구리 새끼는 짭짭짭짭 젖을 빨아들였다. 젖꼭지가 아니 기 때문에 먹기가 힘이 들었으나 그래도 먹었다.

"오, 너는 인제 그만 먹고, 네 동생들도 먹어야지."

하고 대안은 젖먹은 새끼를 풀 위에 따로 놓고 다음에는 또 한 마리를 들어 젖을 먹였다.

너구리 새끼가 젖을 먹는 것을 보며 대안은 벙글벙글 얼굴 이 온통 웃음이 되었다. "악아, 머, 더 먹지" 이 모양으로 중 얼거리면서 차례차례 젖을 먹여서는 차례차례 풀 위에 내려 놓았다. 젖을 먹은 새끼들은 더 먹고 싶은 듯이 입을 냠냠 하다가 만족한 듯이 잠이 들었다.

이 모양으로 일곱 마리는 젖을 먹었으나 한 마리는 젖을 입에 대어주어도 먹지 못하였다. 배 고파서 너무 쇠약한 것 이었다. 먹을 기운도 없어진 것이었다.

대안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스러지고 슬픈 빛이 돌았다. 그 리고는 젖 한 모금을 제 입에 머금어서 새끼 너구리의 입을 벌리고 흘려넣어 주었다. 그래도 그 젖은 수르르 입에서 흘 러나올 뿐이었다.

"어. 나무아미타불."

대안은 그 새끼를 먼저 죽은 제 동생의 곁에 놓았다. 그리 고는 병에 남았던 젖을 다른 그릇에 조금 따라서 두 시체 앞에 놓았다. 그리고는 두 시체를 한번 만져 보았다.

일곱은 잠이 들고 둘은 죽었다.

대안은 두 시체의 앞에 젖을 따라놓고 굵은 눈물을 떨어뜨 렸다.

원효는 놀랐다. 대안의 눈에도 눈물이 남았는가. 그러나 대 안의 눈물은 무연(無緣)의 눈물이었다. 제게 인연 있는 이만 을 위하여서 흘리는 중생의 눈물과는 달랐다. 원효는 '대비' 라는 말뜻을 비로소 안 것 같았다. 대비의 눈으로 세간을 바라볼 때에 눈물이 비오듯 아니할 수가 있으랴.

"시님."

하고 대안은 눈물을 거두고 풀 위에 앉으며,

"시님. 내 송경(誦經)은 이러하오."

하고 하핫하핫 웃었다.

"시님의 송경은 너구리 새끼가 알아들었겠습니까."

원효는 이렇게 물었다.

"배고플 때에 먹여 주는 걸 몰라?"

대안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배고플 때에 먹여 주는 것으로 무슨 법을 설하셨습니까."

"자비."

대안은 이렇게 말하고 원효를 노려보았다. 대안에게는 위 엄이 있었다. 익살스러운 중이 아니었다.

"시체 앞에 저렇게 젖을 따라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 까."

"먹이고 싶은 마음."

대안의 얼굴은 다소 부드럽게 변하였다.

"그렇습니다. 시님은 지금 자비법문을 설하셨습니다."

원효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시여시(如是如是). 그러나 동냥중 대안이 설하였다 하지 마오. 비로자나불이 설하신 것이오."

대안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일여래(大日如來)는 무엇을 지금 설하시오?"

원효는 이런 말을 물었다.

대안은 푸른 하늘에 높이 솟은 해를 바라보고 합장한 뒤 에,

"제불 세존이 설하시는 무량법문이 모두 자비일문이어니와 대일여래는 평등보시(平等布施) 법문을 설하시나 보오. 시님 도 빛을 받고 소승도 빛을 받고 이 너구리 새끼들도 빛을 받고 저 풀과 나무들도 같은 빛을 받지 아니하오. 이것을 일러서 평등보시법문이라고 하오. 법계가 온통 대일여래의 한 자비심인(慈悲心印)이란 말요."

이 말에 원효가,

"여시여시."

하였다. 이윽고 원효는 다시,

"그러나 제불보살의 자비도 다 부질없는 것이 아닙니까."

하고 대안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너구리 새끼 젖 얻어먹이는 것과 같지요. 하핫하 핫."

대안은 오늘 처음으로 소리를 내어서 웃었다.

큰 솔개미 두 마리가 둥둥 떠돌았다.

풀 위에 자고 있는 너구리 새끼들을 본 모양이었다.

대안은 깜짝 놀라는 듯이 새끼 일곱 마리를 굴속에 집어넣 고 시체 둘만을 남겨 놓았다.

"시님. 상두군이 왔으니 우리는 비킵시다."

대안은 원효의 소매를 끌었다. 원효는 대안이 끄는 대로 수십 보나 걸어가서 나무 그늘에 몸을 감추고 섰다.

솔개미 두 마리는 오르락내리락 한동안 떠돌았다. 그러다 가 그중에 한 마리가 공중에서 돌 떨어지듯이 내려와서 날 갯죽지로 땅을 딱 때리는 소리가 나더니 시체 하나를 물고 올라 떴다.

다른 한 마리는 거기 놀란 것처럼 잠깐 날개를 놀려 높이 뜨더니 아깟놈보다 더한 속도로 내려와서 다른 시체를 물고 올라갔다. 실로 질풍 신뢰였다.

두 솔개미가 날아간 뒤에는 다시 천지가 고요하였다.

대안은 원효를 바라보고 빙그레 웃었다.

원효도 같은 웃음으로 대답하였다.

문득 대안은 소리를 높여,

"나무아미타불."

하고 염불을 하였다.

원효도 따라서 염불을 하고 싶었으나 입에서 소리가 나오 지 아니하였다. 도리어 전에 못 보던 일을 너무 많이 본 것 과 같아서 머리가 띵하고 졸리는 것 같았다.

오월이 다 가고 유월이 되었다.

대안이 기르던 너구리들도 저희끼리 나가 돌아다니게 되었 다. 처음 얼마 동안은 저녁이면 반드시 돌아와서 대안의 무 릎에도 기어오르고 누워 있으면 가슴에도 기어오르더니 차 차 차차 하나씩 둘씩 나가서는 아니 돌아오는 놈이 생겼다.

그때에는 너구리는 벌써 어른이었다.

그중에 두 놈만이 오래도록 밤이면 대안의 굴을 찾아와서 잤다.

"어, 너희들은 왜 안 가느냐."

대안은 이렇게 말하며 너구리와 가댁질을 하였다.

"오, 날더러 나가라는 말이로구나. 너희가 이 집을 차지하 겠단 말야. 그래라."

하고 대안은 깔던 거적도 너구리에게 주어 버리고 그 굴을 떠났다.

"잘들 살아라. 악한 일 하지 말고, 착한 일 하고 제 뜻을 맑혀라."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이렇게 부르고는 대안은 굴을 떠났다.

대안이 나을신궁 앞에 다다랐을 때에 원효가 문수사로서 내려오는 것과 서로 만났다.

"원효시님. 대안 대안."

"시님, 다 저문 때에 어디를 가시오."

원효가 물었다.

"집은 애들 주고 떠났소. 늙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 다 비편 할 게야. 그래서 저희들끼리 잘 살라고 나왔소이다. 하핫하 핫."

대안은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면 시님은 어디로 가시오."

하고 묻는 말에 대안은,

"으하하핫. 무변법계가 다 내 집이 아니오? 시님이야말로 다 저물어서 어디로 가시는 길요?"

"소승은 시님을 찾아오는 길입니다."

"그러시오? 그럼 우리 놀러 갑시다."

대안은 좋은 동무를 만난 장난군이 모양으로 벙글벙글하였 다.

"어디로 갑니까."

"합리 저녁은 나만 따라오시오. 좋은 것을 보여 드리오리 다. 시님께서 화장세계(華藏世界)에만 계셨으니 삼악도 구경 도 좀 해보시오."

"삼악도라니 어딥니까."

원효는 우습기보다도 놀래었다. 대안의 태도가 하도 엄숙 하기 때문이었다.

"삼악도는 시님이 모르시리다. 밤낮에 미워하고 성내고 슬 퍼하고 원망하니 가슴에 기름 가마 끓는 데가 지옥이라는 데요. 모가지는 바늘만하고 배는 독만하여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고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마르니 이것을 일러 아귀 의 세계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정신은 몽롱하여 인과 를 보지 못하고 식색재명일(食色財名逸)의 오욕만 따라 서로 으르고 물고 할퀴니 축생세계라 하는 데가 아니오? 우리네 인간이 육도의 중간에 있으니 선도와 악도의 갈랫길에 서서 천상계 축생계 간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육도윤회가 아니오?"

대안은 걸어가면서 이렇게 지껄였다.

"글세, 육도가 그런 것인 줄은 압니다마는 지금 삼악도로 가신다니 어디냐 말입니다."

원효는 너푼거리는 대안의 뒷덜미 백발을 보면서 말하였 다.

"그야 당처즉시(當處卽是)라, 우리 있는 곳이 곧 거기겠지 요마는, 아따 나만 따라오시오. 하핫하핫."

절에서 저녁 쇠북 소리가 울렸다.

대안과 원효는 쇠북 소리를 듣고 잠깐 걸음을 멈추고 합장 하였다. 쇠북 소리가 위로는 아가니타천(阿迦貳 天), 아래 로는 아비지옥(阿鼻地獄─無間地獄)에까지 울려서 중생의 수 고와 번뇌가 끊어지기를 염하는 것이었다.

이십 팔점 저녁 쇠북 소리에 유월 초생 실눈썹만한 달이 서형산 위에 걸렸다.

"원컨댄 중생의 마음속에 보리심(菩提心)도 저 새달과 같이 자라서 고해를 벗어나게 하소서."

대안은 이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그런데 원효시님, 저 쇠북 소리가 번뇌를 끊으라는 소린데 도리어 저 쇠북 소리 나기를 기다려서 번뇌를 발하는 중생 도 많단 말요. 우리도 오늘 밤은 그러한 중생이 된단 말요.

언제는 안 그랬으랴마는 하핫하핫."

대안은 원효를 끌고 흥륜사 모퉁이를 돌아 느릅다리를 건 너 서로 서로 갔다.

아리냇가에는 서늘한 저녁 바람을 쏘이는 사람들이 왕래하 고 그중에는 술 취해 활개를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술 취한 사람들은 큰길이 좁아라 하고 활개를 내어두르고 비틀거렸다. "이놈, 이놈"하고 누구를 불러서 호령도 하고 엉엉 우는 소리로 원망도 하였다.

요석궁 앞을 지나서 서쪽으로 가다가 다시 서남쪽으로 꺾 으면 거기는 저자가 있었다. 백제, 고구려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 당나라의 물건을 파는 주비전이 늘어 있었다. 이 저자 에서 좀더 서남으로 가면 두버들이라는 골목으로서 술집과 계집집과 노름판이 있는 데다. 시골서 올라온 장사아치며 다른 나라 장사아치이며 이곳 활량들도 와서 노는 곳이다.

"징동당동 닐니리."

풍악 소리와 노래 소리가 길에 가득 찼다. 술집에는 높다 란 장대에 길다란 파란 등을 달고 계집집에는 붉은 등을 달 았다. 어두움 속에서 푸른 등 붉은 등이 흔들리고 "니누나누

"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풀어지게 하였다.

어깨를 비기고 오고가는 사람들은 다 취하여서 관을 비뚜 름히 쓰고 옷자락을 풀어헤친 사람들이었다.

대안은 으쓱으쓱 우쭐우쭐 어깨춤을 추면서,

"오, 시님도 좀 어울리시오."

하고 원효의 소매를 잡아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근엄한 생활을 하여 온 원효는 이러한 곳 에 발을 들여놓은 것만 해도 마음이 놓이지 아니하였다.

길로 지나가면서 대안은 기웃기웃 이집저집 들여다보았다.

등불을 단 대문을 쓰윽 들어서면 뜰이 있고 뜰을 들어서면 조그마한 연못과 석가산과 화초가 있고, 하얗게 회를 바른 담에는 그림을 그린 것이 촛불에 어른어른하였다. 방들에는 발을 늘였으나 그 속에서 먹고 마시고 노는 양이 보였다.

"저게 다 어떤 사람들인지 아시오?"

이렇게 대안이 원효를 보고 물었다.

"모릅니다."

원효는 정직하게 대답하였다.

"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오. 시님도 저것을 보면 놀아 보고 싶지 않소?"

대안은 싱긋 웃었다.

"소승은 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원효는 못마땅한 뜻을 보였다.

"허. 원효시님이 아직 터지지를 못하였군. 관세음보살님이 어떻다고 하셨소. 종종제악취 지옥귀축생(種種諸惡趣 地獄鬼 畜生)에 무찰불현신(無刹不現身)이라고 아니 하셨소? 시님은 보살만을 제도하시려오? 지금 우리가 보는 바가 아까 말한 삼악도요. 지옥, 아귀, 축생, 우리도 잠시 아귀 축생이 되어 봅시다. 이리 오시오."

하고 대안은 또 다른 집으로 간다. 거기는 푸른 등과 붉은 등을 대문 좌우에 달았다. 술과 계집이 다 있다는 뜻이다.

대안은,

"자 들어갑시다."

하고 원효의 소매를 끌었다.

"소승은 아직 그만한 도력이 없습니다."

하고 원효를 소매를 뿌리쳤다.

"무슨 도력이 없으시오?"

"육취(六趣) 중으로 자유자재로 다닐 만한 신통력을 못 얻 었습니다. 물에 들어가도 물이 아니 묻고, 불에 들어가도 불 이 아니 붙는 그러한 도력이 없습니다."

"아난존자(阿難尊者)와 마찬가지로군. 하핫하핫."

대안은 하늘을 우러러서 크게 웃는다. 대안이 웃는 소리에 발이 들리면서 분홍 옷을 입은 젊은 계집 하나가 내다본다.

"누구시오? 거기 손님 오셨소?"

은방울을 굴리는 듯한 소리다.

"지나가던 중일러니 하룻밤 놀고 가려고 들어왔소."

대안이 문 앞으로 가까이 가며 이렇게 말하였다.

"아따, 누구시라고 대안시님 아니시오?"

계집은 반가운 듯이 발을 높이 들었다.

"대안시님은 대안시님이오마는 젊으신 시님을 한 분 모시 고 왔소."

하고 대안이 돌아서서 원효를 가리키니 계집이 한 손을 들 어서 불빛을 가리우고 뜰을 바라본다. 검은 머리, 흰 얼굴, 날씬한 몸매, 분홍 옷, 자주 깃, 주홍 띠, 그리고 고개를 기 울이고 불을 등지고 선 모양이 퍽 사람을 고혹하였다.

"아이, 들어오십시오."

이것은 계집이 원효를 향하여서 하는 소리다.

"왜 거기 그렇게 장승처럼 서 계시오? 좀 들어오십시오. 창 녀의 집이라고 꺼리시는 듯 싶습니다마는 자비는 평등이 아 닙니까. 이런 계집도 제도를 하셔야 아니합니까."

계집은 신발을 신고 내려와서 원효의 소매를 붙들었다.

"아이, 왜 자꾸만 외면을 하십니까. 서라벌 장안에 원효시 님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승만여왕마마께서 그처럼 사모하셔도 까딱없으셨다는 원효시님이시오. 천하에 미인이 시라는 요석공주마마께서 일편단심 정성을 들이셔서 지어 보내신 스무 새 베옷을 보신 체 못 보신 체 상좌에게 내어 주셨다는 소문을 안 들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아이, 시님 도 왜 자꾸만 외면을 하십니까. 보살변화 시현세간 비애위 본 단이자비 영피사애 가제탐욕 이입생사(菩薩變化. 示現世 間. 非愛爲本. 但以慈悲. 令彼捨愛. 假諸貪慾. 而入生死)라고 아니 하셨습니까. 이몸 같은 죄 많은 중생을 건져 주시는 것이 보살행이 아닙니까. 애어동사(愛語同事)라고 아니 합니 까. 자 이리 들어오셔요. 원효시님이 내 문전에를 오시다니.

얘, 차 들여라. 우리 집에 귀한 손님이 오셨다. 상감마마께 오서 금옥으로 꾸민 자단수레로 모시려도 아니 오실 원효시 님이 오셨구나. 어서 차 달이고 다담상 차려라. 시님 자 들 어오셔요. 그렇게 외면만 마셔요. 물에 드셔도 젖지 아니하 시고 불에 드셔도 타지 아니하시는 보살님이 아니십니까.

이몸이 설사 마등가(摩登伽)라 하더라도 아난존자께서 이미 한번 치르신 일이시니 시님이 다시 빠지실 리야 있습니까.

아이 이를 어찌하나. 원효대사께서 내 문전에를 왕림하시다 니."

원효는 평생에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안이란 것이 무슨 악마의 변화(變化)여서 자기를 마굴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였다. 원효는 계집에게 밀려 방 으로 들어가면서 대안을 돌아보았다. 대안은 싱글벙글하고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계집의 머리와 몸에서는 향내가 났다. 촛불 빛에 보니 계 집은 더욱 아름다웠다.

원효는 계집이 앉히는 자리에 앉았다. 백제 화문석에 당나 라 모란 무늬 보료를 깔았다.

왕 희지(王羲之)의 난정(蘭亭) 족자가 걸린 것도 놀랍거니 와 흑단 서안 위에 남화경(南華經)과 도 연명(陶淵明)의 시 집이 놓인 것이 더욱 놀라왔다.

원효는 의상과 함께 당나라에 갈 때에 호구(虎丘)에서 선묘 라는 여자의 방에 들어갔던 것을 생각하였다. 선묘는 그곳 청신사 서 문경(徐文卿)의 딸로 글을 잘 알고 불교를 잘 믿 는 처녀였다. 그 아버지는 일찍 죽고 어머니를 모시고 종용 하게 수도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원효와 의상은 그 집에 삼사 일 관대를 받았었다.

그 선묘의 방에 비길 만하게 이 계집의 방은 화려한 중에 높은 취미를 보였다. 어디를 보아도 창녀의 음탕한 빛은 보 이지 아니하였다.

계집이 고구려 청자 향로에 백단향을 피워 향연이 오를 때 에 계집은 마치 모든 번뇌를 다 해탈한 처녀와 같이 맑게 보였다.

원효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다담상이 나왔다. 상을 들고 나온 계집종도 상전과 다름없 는 깨끗한 차림을 하였고 그 몸가짐이 모두 법도에 맞았다.

종은 상을 놓고는 대안과 원효의 앞에 오체투지의 예를 하 고 나갔다.

계집은 차를 따라서 대안과 원효에게 권하고 나서야 새삼 스럽게 원효에게 절을 하면서,

"높으신 법사께서 이렇게 왕림하시오니, 봉필(蓬 )에 생광 이옵니다. 일석상대(一席相對)도 다생(多生)의 연이라 하였 사오니 이몸 같은 계집도 전생 어느 생에는 두 분 법사님을 모신 적이 있는가 하옵니다."

계집은 이렇게 얌전하게 인사 말씀을 아뢰인다.

"시님은 모르시리다."

하고 대안이 차를 마시고 나서 원효에게 설명하였다.

"주인은 삼모(三毛)라고 당대 해동에 으뜸이오. 유신공이 불러도 아니 듣고 지금은 상감이시지마는 금상께서 춘추공 이라고 일컬으실 시절에 여러 번 불러도 아니 움직인 삼모 요. 옛날 진흥대왕 시절에 남모(南毛) 준정(俊貞)이라는 두 미인이 있지 아니하였소? 당대 풍류랑 호걸 남자가 모두 이 두 미인에 반해서 하핫하핫. (그때에 준정이 남모를 질투해 서 죽였었다) 그런데 이 주인은 삼모라고 이약 춘추공, 유신 공으로도 범접을 못한단 말요. 이제 화엄종주 원효와 동냥 중 대안이 삼모랑을 사모해서 이번에는 우리 둘이 질투로 피를 흘린다면 한번 볼만한 일야, 하핫하핫."

대안은 집이 떠나가라 하고 웃는다.

대안의 말에 원효도 실소하였다.

"술을 나외리까."

삼모가 대안을 보았다.

"술을 나외어야 하지. 오늘은 원효시님을 삼악도 구경을 시 켜 드리는 날이니 삼악도에는 술을 타고야 들어가는 거야.

안 그런가, 삼모. 술이 취해야만 불보살의 가피력이 몸에서 떨어져서 몸이 저절로 지옥으로 데굴데굴 굴러들어가는 것 이어든. 말짱한 정신으로는 아무도 삼악도에 못 들어가는 것이야. 그러매 세존께서 부질없이 "술 먹지 말아라"하는 계 를 내리신 것이어든, 하핫하핫."

술이 나왔다. 고기 안주도 나왔다. 원효는 고기를 안 먹었 다. 삼모는 고기 한 점을 집어서 원효에게 권하며,

"고기도 한 점 잡수시오."

하였다.

"아직도 고기가 고기로 보이니 안 먹겠소."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면 고기가 나무껍질로 보일 때까지 술을 잡수시오."

삼모는 이렇게 원효에게 술을 권하였다.

"도인이 술이 취하신 양이 보고 싶소."

삼모는 이런 소리도 하였다.

"삼모."

대안은 싱글싱글 웃으며 이렇게 불렀다.

"왜 부르십니까."

"어디, 오늘 원효시님을 파계를 시켜 보라."

"파계는 벌써 하신 것을."

"무슨 파계?"

"술을 잡수셨으니."

"아니, 비구 이백 오십계(比丘二百五十戒)를 몽땅 깨뜨리시 게 해보겠느냐 말야."

"들으니 계란 가락지와 같다 하오니, 둥근 것이 한 끝이 깨 어지면 다 깨어진 것인가 하오."

삼모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안은 눈을 크게 뜨며,

"원효시님. 자 어떻소?"

하고 원효를 바라본다.

원효도 술잔을 든 채로 놀란 표정을 하였다.

"시님, 어서 그 술 잡숫고 이몸에게도 손수 한 잔 따라 주 시오."

삼모는 원효의 소매를 당기었다. 원효는 잔을 들어 마시고 삼모의 말대로 한 잔을 삼모에게 주었다.

삼모는 원효의 손에서 술잔을 받아들면서,

"시님. 어찌하시려오? 손을 들어서 술집만 가리켜 주어도 오백생에 손 없는 중생이 된다거든, 하물며 법사의 몸으로 젊은 계집에게 술을 따라 주시면 그 업보를 어찌하시려오?"

하고 원효를 노려보았다.

원효는 비로소 껄껄 웃으면서,

"미인에게 술을 권하였으면 그만한 업보는 당연하지."

하고 대안을 보았다.

삼모는 원효의 말에 술잔을 놓고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삼모가 고개를 들어 원효가 준 잔을 마시고 나서 원효에게 그 잔을 올리며,

"만일 이몸이 시님을 못 잊어하면 스님은 어찌하시렵니까."

하고 원효의 몸에 제 몸을 기대었다.

"달아나지."

원효는 또 웃었다.

"어디로?"

"남산으로."

"그래도 따라가면?"

"돌아오지."

"어디로?"

"삼모의 집으로."

"정말이오?"

"사문이 거짓말 있나."

"그러면 달아나시지도 말고 돌아오시지도 말고 오늘 밤 여 기서 주무셔요."

삼모는 간절한 정을 보였다.

"그러지."

원효는 선선히 대답하였다.

"삼모는 대안을 바라보며,

"노시님도 들으셨습니다. 지금 원효시님이 이몸에게 주신 약속을."

하고 다졌다.

"듣고말고. 제불보살이 모두 증명이 되신걸."

대안은 유쾌한 듯이 이렇게 말하였다.

다시 술이 나오고 삼모의 노래와 춤이 나왔다. 대안도 춤 을 추고 원효도 춤을 추었다.

"제석천궁(帝釋天宮)에 우리가 너무 오래 머물렀소. 시님, 이제 술도 어지간히 취했으니 삼악도로 갑시다."

문득 대안이 이렇게 말을 내었다. 원효도 일어나려 하였다.

삼모는 취한 눈 위에 원망하는 뜻을 품고 원효를 보며 원 효의 장삼 소매를 부여잡았다.

"사문도 거짓말을 하시오. 오늘 밤을 여기서 지내신다고 아 니하셨소? 못 가시오 대안시님 혼자 가시오. 원효시님은 오 늘 밤은 내 것이오. 대안시님도 아기 어머니한테로 가시면 서, 누가 모르는 줄 아시오. 아기를 낳으시고는 젖이 없어서 젖을 얻으러 다니신단 말을 누가 모르는 사람이 있는 줄 아 시오. 나도 아기를 낳으면 원효시님이 돌아다니면서 젖을 빌어다가 먹여 주시려든 어디를 가시오. 못 가시리다."

삼모는 화끈화끈하는 얼굴을 원효의 가슴에 대고 부볐다.

"하핫하핫. 원효시님 큰일났소."

대안은 앞서서 뜰에 내려서서 이렇게 웃었다.

"삼모. 우리가 벌써 몇 아승지겁을 같이 살지 않았소."

원효는 이렇게 삼모에게 말하였다.

"언제, 언제?"

삼모는 대들었다.

"지금까지. 이 찰나까지 인제는 서로 떠날 때야. 만난 자는 떠나오."

원효의 이 말에 삼모는 부여잡았던 원효의 소매를 놓고 물 러섰다.

삼모의 집을 나서서 밤거리를 걸으며 대안은 원효에게 하 는 말이,

"어떠시오? 삼모를 보고 마음이 좀 동하셨소?"

원효의 대답,

"별로 동하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면 시님은 아직 삼악도에 들어가기에 멀었소, 하핫하 핫. 그렇지마는 곁에 내가 없고 젊으신데 단둘이만 있으면 또 좀 다르지. 아난존자도 누구 하나 데리고 둘이 갔다면 마등가에게 그 봉변은 아니 하였을 것이오. 그러매로 밥 동 냥을 다녀도 혼자는 다니지 말라는 거야, 하핫하핫."

대안은 혼자 떠들고 혼자 웃었다.

길에는 취태와 추태도 많았다. 원효와 대안에게 덤비어들 어서 시비를 거는 주정군도 있었다. 그러나 대안이,

"앗핫핫하, 앗핫핫하."

하고 웃으면 시비를 걸던 자도 멀거니 바라보다가는 같이 소리를 내어서 웃고 지나가 버렸다.

끄대기를 마주 바꾸어 잡고 씨근씨근 싸우는 양도 보고, 술취한 여편네가,

"이놈아 죽여라 죽여, 동네방네 다 듣소. 이놈이, 이놈이."

하고 매무새가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사내에게 머리를 꺼들려서 얻어맞는 꼴도 보았다.

대안이,

"아, 큰일났군. 이 부인네 오늘 밤을 못 넘기겠군.

하는 말에 때리던 사내가 깜짝 놀라서 머리채를 놓았다.

"아핫핫하. 잘 살지, 잘 살아. 있다가 죽을 것을 아핫하."

하고 대안이 웃으니 싸우던 사람들도 잠잠해 버렸다.

"띄잉 띄잉 띄잉……."

자정의 열 두소리가 울렸다.

대안은 멈칫 서서 합장한 뒤에,

"시님, 어디로 가시려오? 인제는 나와 놀던 귀신들도 제 굴 로 돌아갈 때가 되었는데."

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였다.

"시님은 어디로 가시려오?"

원효는 문수사가 먼 것을 생각하였다.

"이몸이야 아무데서나 눈만 감으면 자지요마는 시님은 그 러실 수 없지 않소? 오늘은 비도 올 것 같지 아니하니, 이 몸은 뒷산에라도 올라가서 잘라오."

하고 대안은 어두운 골목으로 스러지고 말았다.

원효는 대안이 스러진 방향을 이윽히 바라보았으나 아무 소식도 없었다. 오직 서형산의 민틋한 산 모양이 밤빛에 어 렴풋이 바라보일 뿐이었다.

원효는 대안이 터덜거리고 인가 없는 곳으로 가서 아마 무 덤 틈바구니에 누워 잘 모양을 상상하고 원효 자신에게는 그러한 자유가 없음을 느꼈다.

원효는 혼자서 느릅다리를 향하고 걸었다.

밤중 거리를 혼자 걸으니 불현듯 적적함을 느꼈다. 삼모의 집 광경이 눈앞에 나올 때에 문득 삼모의 아나한 모습이 그 리운 듯도 하였다.

"어, 술이 취했군."

원효는 스스로 변명하는 모양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대안의 말과 같이 둘이 있을 때와 혼자 있을 때와 달랐다.

"아마 대안대사의 법력인가 보다."

하고 원효는 픽 웃었다. 대안과 같이 있을 때에는 삼모가 몸에 기대어도 까딱없더니, 어두운 길에 혼자 되니 삼모의 모양이 이상한 힘을 가지고 원효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 이었다.

"응, 내가 취했어, 취했는걸."

하면서 원효는 정신을 바짝 차리노라고 눈을 크게 뜨고 하 늘을 바라보았다. 큰별, 잔별들이 대단히 빛을 발하였다.

"다리가 허둥허둥하는걸."

원효는 아리내에 다다랐다. 냇가에 버드나무들이 거뭇거뭇 한 모양을 보였다. 소리없이 흐르는 물에 별 그림자가 비치 어 흔들렸다.

원효는 다리를 반이나 건너서 난간에 기대어서 섰다. 서늘 한 바람이 불어왔다.

원효는 대안이 잠들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서형산 쪽을 바라보았다. 대안이 덩실덩실 춤을 추던 양을 생각하였다.

그는 전혀 아무 거리끼임이 없는 듯이 춤을 추었다. 삼모의 거문고에 맞추어서 아주 익숙하고 수월하게 추었다. 삼모의 거문고 소리가 귀에 쟁쟁하였다. 그 소리는 다리 밑에 부딪 치는 물소리와 하나가 되고 말았다.

문득 불빛 하나가 원효의 눈에 띄었다.

"요석궁이다."

원효는 불빛 새는 데로 눈을 달렸다.

원효의 눈에는 요석궁에 혼자 잠 못 이루고 앉았는 요석공 주가 보이는 듯하였다. 또 승만여왕을 모시고 있는 아유다 로도 보였다.

"어, 내가 취했군."

하고 원효는 또 한번 고개를 흔들고는 난간에서 떠나서 걸 었다. 걸음을 걸으나 몸은 허공에 뜬 것 같아서 정신이 진 정되지를 아니하였다. 마치 어디로 갈 바를 모르는 혼과 같 았다.

이때에 뒤로서 누가,

"거 누구?"

하는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문 원효."

원효는 돌아서며 힘있게 대답하였다.

"원효사마시오?"

하고 합장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에는 어떤 관인이었다.

원효는 의아하면서,

"누구시오?"

하고 관인을 향하서 물었다. 관인은 공손이 이렇게 말하였 다.

"이몸은 요석궁 대사(瑤石宮大舍)옵거니와 칙명 받자와 여 기 대령하였소. 초저녁에 대사마마 느릅다리 건너셨다는 말 씀 들으시옵고 상감마마 분부하시기를 이몸네 이곳에 대령 하였다가 대사사마 회로에 요석궁으로 모시라 하시옵시오.

이몸네 이경부터 다릿목에서 넌지시 기다리옵더니 대사사마 이리 오심 뵈옵고도 누구신지 확적히 몰라서 대사사마 하시 는 양 뵈옵고 있었소. 여기 타실 것 등대하였으니 오르시 오."

말이 떨어지자 거시(두 사람이 마주 들게 된 타는 것)가 원 효의 앞에 놓였다.

"어 부질없는 말이오."

하고 원효는 짐짓 더욱 취태를 보이며,

"말이 안 되는 것이, 상감마마께오서 군국만기를 살피시기 에도 바쁘셔서 소의한식을 하시거든 이몸 같은 주정뱅이 사 문을 무슨 일이 있어서 부르신단 말요. 또 설사 부르실 일 이 있기로니 아닌밤중에 길목을 지켜서 부르실 리가 있소.

괜히시리 술취한 사람을 기롱 마오."

하고 돌아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걸음을 옮기며,

"어, 금년에 또 병란이 있을 모양이로군. 심성(心星)이 유난 히 붉은 데다가 또 화성이 심성에 가까웁다. 어 취하는군."

하고 헛트림을 하며 비틀비틀 걸었다.

관인은 빨리 걸어와서 원효의 앞을 가로막으며,

"대사사마, 못 가십니다."

하고 합장하였다.

"어이하니 못 간단 말요. 우리 임금님의 길을 내 발로 걸어 가는데 막기는 누가 막는단 말요?"

원효는 이렇게 뽐내었다.

"어서 이리 오르시오."

하고 관인은 또 거시를 원효의 앞에 옮겨놓았다.

"어, 아니 탄달밖에. 성한 내 발로 마음대로 걷지 아니하고 타기는 왜 탄단 말요. 어서 이녁네 갈 길을 가시오. 산승은 산승이 갈 길을 가겠소."

"못 가시오. 위로서 분부 지엄하시와 아무리 하여서라도 원 효사마를 오늘 밤 요석궁으로 모시라 하였소. 사정을 말씀 하오면 오늘 아침 한불손 유신공께서 대사사마를 찾아 문수 사에 가셨다가 대사사마께서 대안대사사마를 찾아 행차하셨 다 하므로 남산을 두루 찾았으나 못 찾사옵고 해진 뒤에야 대사사마께오서 대안사마와 두 분이 이 다리 건너셨다는 줄 아시고 이몸 무리 여시서 지키고 있었으니 아무리 하여서라 도 모셔 가겠소. 만일 대사사마 놓쳐 보내오면 이몸네 목이 내일 이맘때까지 붙어 있을까 싶지 아니하오."

"아무리 하여서라도 나를 데려간다?"

"그러하오, 아무리 하여서라도."

"목이 붙어 있기가 어렵다?"

"그러하오, 이 목이."

하고 관인은 손으로 목을 가리키며 웃는 양하여 이가 히끗 드러났다.

원효는 크게 소리를 내어서 웃으며,

"하핫하핫. 그 목이 떨어지는 양이 우스울 거야. 내일 어느 시각에 떨어지는지 시각을 좀 알려 주오. 나 구경 좀 하게."

"큰일날 말씀 마시오. 이 모가지가 이래보여도 어떻게나 소 중한 모가진데 그러시오. 소중하신 요석공주를 모시고 요석 궁을 지키는 모가지오."

관인은 또 한번 목덜미를 만졌다.

원효는 손을 내밀어,

"어디 그 소중한 모가지 좀 만져 봅시다. 잘 떨어지겠나, 아니 떨어지겠나."

하고 목을 꼭 누른다.

대사는 "아이고"하고 펄썩 주저앉는다.

원효는 장사였다.

"그 어디 모가지 떨어질 새 있소?"

하고 원효는 관인을 다시 목을 들어 일으키면서,

"그 기운 가지고 어디 나를 붙들어 가겠소? 어디 나하고 기운내기 해보아서 내가 지면 붙들려 가고 내가 이기면 안 붙들겨 간다고. 자 다들 덤비어."

하고 원효는 빈주먹으로 버티고 섰다. 원효대사가 화랑시 절에 나을신궁에서 칼재주를 겨루어 장원을 하였다는 것은 아는 이는 안다.

관인과 부하 육칠 인은 무론 칼과 창을 가지고 있었다.

"빈주먹으로 말씀요? 장기로 말씀요?"

그중에 건장한 군사 하나가 나섰다. 그도 원효의 행사가 괘씸도 하거니와 또 심심풀이도 되리라고 생각한 까닭이었 다.

"무엇으로나. 하나씩 하나씩도 좋고 여럿이 한목 덤비어도 좋고, 출가한 사람이라 살생은 아니할 터이니 그걸랑 염려 말고."

원효는 선선하게 이렇게 말하였다. 실상 원효는 웬일인지 모르게 유쾌하였다.

건장한 군사가 썩 나서며,

"대사사마는 칼이 없으시니 우리가 피를 흘릴 염려는 없소 마는 대사사마를 상하여서 피가 나게 하면 이몸네 목 달아 나고 또 법사 피내인 죄로 혼까지 지옥에 가게 되니 그것이 걱정이오."

하였다.

"응. 그도 그럴듯한 걱정이오마는."

하고 원효는 가사 장삼을 벗어 난간에 걸고 나서,

"자 이만하면 염려 없소. 청루에 가서 계집 끼고 술 고기 막 먹고 취해서 오는 파계승 하나 죽였다고 지옥 갈 리 없 고, 도리어 파계승 죽인 공덕으로 왕생극락할는지 모르지, 하하핫하."

하고 웃었다.

"그렇거든 어디."

하고 육칠 명이 일제히 칼과 창을 가지고 원효에게 덤비어 들었다.

군사들은 처음에 농담삼아서 재주를 아꼈으나, 원효가 슬 쩍슬쩍 걸음을 걷는 듯이 춤을 추는 듯이 칼과 창을 피하는 것을 보고는 차차 있는 힘을 다하여서 원효를 엄습하였다.

그러나 다들 허공만 찔렀다.

"어, 이 재주 가지고야 어디 백제 고구려를 치겠나. 요석궁 에서 거미줄이나 치기 알맞군."

하고 원효는 슬쩍슬쩍 몸을 비키면서 군사들을 기롱하였 다.

군사들의 두목인 관인 대사는 일이 어떻게 되나 하고 옆에 서 보고만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찌 하면 원효를 요석궁으 로 끌어갈까 하고 그 계교만 생각하고 있었다.

군사들은 여러 합 싸움에 숨이 차고 땀이 비오듯 하였다.

원효는 그중에 한 군사의 목덜미를 집어서 홱 냇물로 던졌 다. 연해서 셋을 던졌다.

"땀들이 흘렀으니 시원하게 목욕이나 하오."

하고 어느 틈에 또 하나를 던졌다.

나머지 셋은 칼을 던지고 땅에 엎드렸다.

원효는 개천에 빠져서 절벅거리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웃 었다.

이 기회를 타서 대사는 원효의 몸에 올가미를 씌웠다.

"원효사마, 용서하시오. 아무리 하여서라도 대사사마를 모 셔가지 못하면 이몸들의 목이 달아나오."

하고 애원하였다.

땅에 엎드렸던 군사들도 일제히 원효에게 대어들어서 원효 를 묶어서 거시에 태우려 하였다.

세 사람이 몸에 붙은 기회를 기다려서 원효는 "응"하고 한 마디 힘을 쓰니 결박된 줄이 끊어졌다. 그러니 관인들이 "아 차"하는 동안에 원효는 대사 하나만을 남겨놓고 다른 군사 를 다 물에 집어넣고 나중에 자신도 물에 뛰어들었다.

"어 시원해, 어 시원해."

원효는 이렇게 소리를 하면서 먼저 빠진 사람들을 따라다 니며 물을 끼얹었다. 군사들도 유쾌해져서 물싸움을 시작하 였다. 혼자 애가 타는 것은 대사였다. 도저히 힘으로 원효를 요석궁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 꾀를 생각하여 내었다. 관인은 원효의 뒤를 따 라서 물에 뛰어들어 원효와 물싸움을 하는 척 원효의 옷을 잡아 찢었다. 원효는 흥에 겨워서 옷이 찢기는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두 번, 세 번 대사는 원효의 옷을 잡아 찢었다.

원효는 등과 볼기짝이 나 나오도록 옷이 가리가리 찢겼다.

이리하여서 원효를 요석궁으로 끌어들이기에 성공하였다.

"옷이나 갈아입고 가셔야지."

대사는 이렇게 말하고 웃었다.

요석궁에 끌려들어간 원효는 목욕하는 방으로 안내를 받았 다. 백제 푸른 돌 욕분(浴盆)에는 더운 물이 철철 넘고 있었 다. 그리고 바닥은 남산 흰 옥돌로 깔았다.

원효는 욕분에 몸을 담그고 기분이 상쾌하여 졸고 있을 때 에 새벽 종소리가 들렸다.

한 소리, 두 소리. 원효는 스물 네 소리를 세었다. 네 소리 는 조느라고 못 들은 것이었다.

원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술도 다 깨었다. 지난밤 한 밤 일이 수천겁이나 오랜 동안 같았다. 삼모의 집 일, 느릅다리 에서 일어난 일, 모두 다 한바탕 장난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올 일을 생각하면 그 역시 한바탕 장난일 것이었다.

"환몽(幻夢)이다, 환몽이다."

원효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계집종 둘이 들어와서 원효의 등을 밀고 팔다리를 씻는다.

원효는 죽은 사람 모양으로 종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 다.

"또한 장난이다."

하고 원효는 빙그레 웃었다. 목욕을 마치고 새옷을 갈아입 었다. 신라의 자라인 삼십승 포였다. 이것은 왕족이 아니면 못 입는 것이었다. 이 옷이 오늘을 위하여서 요석공주가 손 수 지은 것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원효는 시비가 이끄는 대로 여러 복도를 지나서 한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는 쌍학을 수놓은 이불과 쌍봉, 쌍란, 쌍원앙 을 수놓은 긴 베개가 있고 요석공주가 혼자 촛불 밑에 앉아 있었다.

원효는 방에 들어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공주는 원효를 보고 일어나서 읍하고 선다. 백작약 일곱 송이를 꽃병에 꽂 아 놓은 것으로 보아서 원효는 이 뜻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공주는 자기를 구리선녀로 자처하고 원효를 선혜선인으로 비겨서 세세생생에 부부 되기를 청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촛불이 춤을 추고 창 밖으로서는 벌레 소리가 울려 왔다.

이윽고 공주가 고개를 들어,

"앉으시오. 오늘은 법사로 여쭌 것이 아니오. 백의로 오시 게 한 것입니다. 이몸의 십년 소원을 이루 주시오."

하고 눈물을 떨어뜨렸다. 아무리 십년 동안 먹은 마음이라 하더라도 입을 열어 말하기가 힘들기도 하려니와 또 무섭기 도 하였다.

원효는 제 몸에 입은 옷이 중의 옷이 아니요, 속인의 옷인 것을 다시금 보고 공주가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공주도 목 꺾어 한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공주는 다로(茶爐)에 끓는 다부(茶釜)에서 대국으로 물을 떠서 차를 만들어 원효에게 권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새벽 쇠북 스무 여덟 소리가 다 끝나도록 원효사마께서 아니 오시면 이 칼로 이몸의 목숨을 끊기로 마음먹고 있었 소."

공주는 금장식한 몸칼을 몸에서 꺼낸다. 고구려 도장(刀匠) 이 만든 칼이다.(이때에는 상류계급에서는 남녀간에 몸칼을 지니고 있었다. 공주의 형 고조다가 남편 품석의 뒤를 따라 죽은 것도 이 몸칼로였다.) 원효는 말이 없었다.

"승만마마께오서 살아 계오실 때에 이몸을 보시고 원효사 마 못잊어 사모하시는 말씀을 하실 때에는 이몸은 질투로 몸이 떨렸소. 만일 원효사마가 승만마마의 뜻을 들으시기만 하면 이몸은 칼이나 독약으로 두 분의 목숨을 끊으리라 하 였소. 그러다가 승만마마 승하하심을 보고 이몸은 겉으로는 울고 속으로는 기뻐하였소."

원효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하고 말없이 공주의 말을 들을 뿐이었다.

공주는 띄엄띄엄 말을 계속하였다.

"이몸은 옥야경(玉野經)을 읽어서 이 마음을 죽이려 하였으 나 원효사마 생각하는 원 이루지 못하고는 아무리 하여도 성불할 것 같지 아니하였소."

공주의 눈은 번쩍번쩍 빛을 발하였다. 공주는 또 말한다.

"이몸이 지나 오월에 모란꽃과 베옷을 분황사로 보낼 때에 야 얼마나 마음이 간절하였겠소. 만일 이 뜻 못 이루면, 늙 어 가는 모란꽃이 지기 전에 이 원을 못 이루면 마지막 모 란꽃을 원효사마께 보내고 죽어 버리려 하였소. 여기 이 꽃 병에 일곱 송이 꽃을 꽂기가 몇 번이던가."

공주는 소매를 들어서 눈물을 씻는다.

"그러나 아바마마께오서 아무리 하여서라도 이몸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 하시오매 백작약이 피도록 살아 있었소. 저 이불과 베개에 저렇게 수를 놓으면서—한 실밥 한 실밥에 원 효사마를 생각하면서."

공주의 숨소리가 높아 간다.

"이몸도 원효사마 평생 한 베개 위에 모시리라고는 생각하 지 아니하오. 원효사마는 천하의 대법사, 이몸 혼자 차지할 어른이 아닌 줄 잘 아오. 그러나 아마 여러 백천만생의 인 연인 양하여 잊을 수도 참을 수도 없는 이 원이오. 이것도 탐욕이오? 이것도 우치요? 이것도 악업이오? 악업이라도 그 만이요, 무간지옥업이라도 좋으니 이 원을 이루어 주시오. — 단 하루만이라도. 뜰에 저 벌레 소리 그치는 동안 저 촛불 이 다 닳을 동안이라도."

공주는 제 두 손을 비틀었다.

그래도 원효는 말이 없었다.

"원효사마는 이몸을 음탕한 계집이라고 생각하시오? 나라 를 위하여서 그 명복을 빌고 정절을 지킬 몸이 다른 남자에 게 뜻을 두는 것을 음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책망 하신다면 그 책망도 달게 받사오리다. 그러나 거진 부자가 동시에 전몰하고 그 집을 이어서 분묘를 지킬 자손이 없고, 이몸도 죽으면 무주고혼이 되오. 다행히 갸륵하신 이의 씨 를 받는다면, 거진의 집 분묘에도 향화가 아니 끊어지고 나 라에도 큰사람 한 분을 길러 바칠 것 같소. 원효사마 이 가 슴이."

하고 공주는 손을 들어 제 가슴에 대며,

"이 가슴의 젖이 반드시 우리나라에 큰일할 사람을 먹일 것 같소."

하고 말을 끊고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맑은 눈으로 엄연하게 원효를 바라보며,

"원효사마. 이몸이 비록 불민하나 사마를 따라 세세생생에 닦느라면 사마께서 성불하신 최후생(最後生)에 이몸도 야수 다라(耶輸陀羅)가 되어 사마의 입으로서 일체중생 희견여래 (一切衆生 喜見如來)의 기(記)를 받자오리다."

하고 공주는 말을 끊었다.

이로부터 사흘 후였다.

새벽에 원효가 잠을 깨었을 때에는 벌써 옆에 요석공주는 없었다. 베개 위에 공주의 머리 자국에서 그윽한 향기가 날 뿐이었다.

원효가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공주가 관음경을 외우는 소 리가 들렸다.

"若有人. 設慾求男. 禮拜供養. 觀世音菩薩. 便生福德. 智慧 之男. 設慾求女. 便生端正. 有相之女. 宿植德本. 衆人愛敬. 無 盡意. 觀世音菩薩. 有如是力. 若有衆生. 恭敬禮拜. 觀世音菩 薩. 福不唐損. 是故衆生. 皆應受持. 觀世音菩薩名號."

여기까지 들리고는 소리가 끊어졌다. 필시 공주가 내불당 (內佛堂)에 관음공양을 하는 모양이었다.

원효가 공주와 자리를 같이한 것은 사흘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에 원효는 공주의 위인을 잘 알 수가 있었다.

공주는 새벽이면 원효보도 먼저 일어나서 관음공양을 잡숫 고는 원효가 먹을 것을 손수 만들었다. 일체 육붙이를 쓰지 아니하고 정갈한 소찬을 만들었다. 비록 잠자리는 같이하더 라도 공주가 원효를 대하는 것은 법사에게 대한 예였다. 원 효가 농담을 하더라도 공주는 엄숙하게 대답하였다.

첫날 아침에 원효가 늦잠을 잘 때에는 공주는 뜰에 서서 나뭇가지에 와서 우는 새를 쫓고 있었다. 새소리에 원효가 잠을 깨기를 두려워함이었다.

그가 특히 관음경을 외우는 까닭이 아들을 구하는 것임을 원효는 묻지 아니하여도 알았다. 원효도 공주가 덕 있는 아 들을 낳기를 바랐다.

공주는 원효에게 대하여서 소중히 여기고도 두려워하는 태 도였다. 원효에게 무슨 말을 할 때에는 반드시 앉음앉음을 고쳐 왼편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원효가 청하면 가얏고도 타고 노래도 불렀다. 그러나 그것 이 끝나면 원효의 앞에서 물러나가서 원효가 찾기를 기다렸 다.

공주는 자기 말과 같이 옥야경, 승만경, 금광명경(金光明 經)으로 몸과 마음을 닦았다. 원효를 남편으로 모시더라도 책잡힘이 없고자, 부족함이 없고자, 법도에 어그러짐이 없고 자 십년 수행을 한 것이다.

원효가 이것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나는 여자의 사랑이한 것이 무엇인 줄을 처음 알았소."

원효는 공주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처럼 원효는 공주 를 경복하였다.

"이몸으로 해서 파계를 하신 것을 후회하시지 아니하시 오?"

첫날 공주는 원효에게 이렇게 물었다. 원효는 웃으며,

"한 권 경을 읽겠소."

하였다.

원효가 후회 아니하는 것이 너무도 기뻐서 공주는 눈물을 흘렀다.

둘째 날 아침에 공주는,

"이틀 동안 지내신 것이 어떠하시오?"

하고 또 물었다. 원효는 또 웃으며,

"이만하면 이대로 일겁은 살고 싶소."

하였다. 옛날 세존께서 아난을 데리시고 고개를 넘으시다 가, 고개 위에 아난이 깔아 드리는 옷을 깔고 앉으시와 베 나레스의 경치를 바라보시고,

"이만하면 일겁은 여기서 살고 싶다."

하신 것을 비긴 것이었다.

"일겁만 사시고 싶다 하시니 설어라. 이몸은 원효사마 모시 고 이대로 무량아승지겁이라도 살고 싶소."

공주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다 실상 없는 몽환인 것을."

원효는 이렇게 말하였다.

"몽환이라도 아름다운 몽환, 즐거운 몽한이 아니오."

"우뢰와 같고 번개와 같고 물거품과 같이 금방 있다 스러 질 몽환인 것을."

"번개같이 스러질 몽환이면 스러지기 전에 즐깁시다. 몽환 이나마 나 즐거운 것을. 이끼 쓴 기왓장에서도 빛이 나고 벌레 소리도 개구리 소리도 즐거운 것을. 저 보아요, 보기 숭한 두꺼비도 배암도 다 아름답게 귀엽게 보이는 것을. 제 행무상이란 말도 다 거짓말인 것 같소. 원효사마 모신 이 기쁨이 스러질 리 있으리. 임 사모하는, 이 금빛 나는 사랑 이 가실 리가 있으리. 원효사마 그렇다 하시오. 무상이 아니 요, 상이라 하시오."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는 일을 무슨 힘으로 막소. 깰 꿈을 아니 깰 수는 있나."

"안 되오, 안 되오. 이몸이 원효사마를 포로로 잡아오듯이 인연의 흐름을, 생사의 바다를 이몸의 사랑으로 막아서 못 흐르게 하리다."

하고 공주는 느껴울었다.

공주는 원효와의 인연이 길지 못한 인연인 줄을 잘 안다.

원효는 자기의 품에서 늙을 사람이 아닌 줄도 안다. 공주는 잠이 들었다가도 소스라쳐 놀라서 잠을 깨어서는 옆에 누운 원효를 찾아본다. 그렇게 미덥고 힘있는 의지인 원효, 옆에 원효의 몸이 있는 것을 알고는 비로소 안심한다.

"아직 내 곁에 계시다."

공주는 이렇게 한숨을 쉰다. 공주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 원효가 스러질 것만 같았다.

"이 밤이 새기까지만, 이 초가 닳기까지만."

이라고 한 것을 공주는 후회한다.

그런데 조만간 보내어야 할 원효였다. 가는 원효를 붙잡을 수 없는 공주였다.

"아들 하나만 점지 받았으면."

이래서 공주는 더욱 아들을 원하였다.

뱃속에 아기를 배고 있는 동안 낳아서 기르는 동안, 원효 를 닮은 아들 하나만 있으면 원효를 떠나서도 살 것 같았 다. 그리고 그 아들을 썩 잘 길러서 큰사람이 되거든 원효 의 기쁨을 받을 것도 같았다.

이래서 공주는 새벽이면 일어나서 찬물에 목욕하고 내불당 에 들어 지성으로 관음공양을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공주 의 정경을 생각하매 원효의 닦은 마음에도 은애(恩愛)의 실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이만하면 일겁은 살고 싶다."

한 제 말을 생각할 때에 원효는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은 애의 실이 시시각각으로 겹겹이 몸에 감기고 있음을 느꼈 다. 이것이 하루 이틀 덧감기고 덧감기면, 이몸이 움직일 수 없이 그 은애의 줄이 끄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을 것 같 았다.

"물도 안 묻고 불도 안 붙는 법사의 몸이 아니시오?"

하던 삼모의 말을 원효는 기억한다. 그러나 원효는 제 몸 이 은애의 물에 젖고 불에 붙는 것 같았다. 제 몸은 아직 육도를 두루 돌아도 먼지 하나 묻지 않는 그러한 보살의 몸 은 아니었다. 공주의 몸의 부드러움과 향기를 무심히 볼 힘 이 없었다. 고기를 씹되 나무껍질과 다름이 없고 미인을 안 되 시체와 다름이 없을 평등의 경계에 도달치 못한 것 같았 다.

공주의 관음경 외우는 소리는 솔밭에 부는 바람 소리가 아 니다. 정열로 끓는 가슴에서 북받쳐오르는 소리였다.

"念念勿生疑. 觀世音淨聖. 於苦惱死厄. 能爲作依古.

具一切功德. 慈眼視衆生. 福聚海無量. 是故應頂禮."

공주의 소리는 낭랑하였다. 낭랑하면서도 애원성이었다. 해 탈한 소리는 아니요, 생사에 집탁한 소리였다. "시고응정례"

가 수없이 반복되는 것은 공주가 수없이 절을 함이었다. 아 마 원효가 병 없이 오래 살기를 빌면서, 좋은 아들이 점지 되기를 빌면서.

원효는 이 날은 요석궁을 떠날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공주 의 음성이 더욱 가여웠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원교는 공주가 달여 주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화병에 꽂힌 작약이 두어 이파리 떨어졌다.

원효는 빙그레 웃었다.

공주는 떨어진 작약잎을 들어서 아까운 듯이 붙었던 자리 에 붙여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한번 떨어진 자리에 도로 붙으려 하지 아니하고 다시 떨어졌다.

공주는 눈을 들어서 원효를 보았다.

"나는 오늘 떠나겠소."

원효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일겁은 계시마더니."

공주는 한숨을 쉬었다.

"벌써 몇 겁이나 지났소."

"일겁만 더 늘일 수는 없으시오?"

공주는 약간 낯을 붉혔다.

"떨어진 꽃잎과 같지."

원효도 고개를 숙였다. 원효는 사랑하는 이 떠나는 괴로움 (愛別離苦)이란 것을 처음으로 맛보는 것 같았다.

"이제 가시면 언제 오시오?"

공주의 눈은 젖었다. 공주도 제가 이러하리라고는 생각지 아니하였다.

"운수종적(雲水 跡)을 기약할 수가 있소? 그러나 세세생생 의 맹약은 잊지 아니하리다."

원효는 이렇게 말하였다.

"금생에는 이것이 마지막이오리까. 이몸 가지고는 다시 뵈 옵지 못하오리이까."

공주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그럴 것도 없으나 생사지연(生死之緣)을 구태여 더 늘릴 것도 없다고 생각하오. 공주는 잘 오관(五觀)을 닦으시오.

어머니로 아기를 기르는 것이 오관을 닦는 길이오."

원효는 이렇게 말할 때에 문득 자기가 번뇌를 벗고 다시 법사의 자리에 오름을 느꼈다.

공주는 원효의 말에 눈물을 씻고 앉음앉음을 고치고서,

"이몸이 어미는 되오리까."

하고 물었다.

원효는 지필을 당기어,

"念念勿生疑."

라는 관음경[法華普門品]게의 구를 썼다.

"고마우셔라."

공주는 원효가 쓴 종이를 머리 위에 받들었다.

"이몸이 관세음보살님 은혜로 어미만 되오면 지극한 정성 을 다하와서 아기를 기르오리다. 심중에 원효사마를 항상 그리옵고 그 아기가 원효사마와 같이 되도록 정성을 다하오 리이다. 그러나 이몸의 정성이 그만하올지……."

하고 공주는 눈앞에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하신 상호(相好) 를 그리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공주가 그린 관세음보살의 모양이 원효와 하나가 되었다.

원효는 이미 자기를 품에 안던 육신 가진 남자가 아니요, 청정법신(淸淨法身)인 듯하였다.

공주는 이러한 어른을 남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무한 히 고마웠다. 모두 관세음보살님의 덕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감사와 사랑으로 빛나는 공주의 눈에는 인간에서 보기 어려운 빛이 있었다. 원효는 그 눈에서 또 새로운 경 한 권을 읽었다.

원효는 이렇게 공주에게 말하였다.

"정성으로 보면 자녀를 구하는 어머니 정성보다 더 큰 정 성이 어디 있겠소. 아까 새벽에 관음경 외우시던 정성을 그 냥 가지고 계시면 반드시 소원대로 되오리다."

"고마우셔라. 이 가슴에 그 아기를 안고 이 젖을 먹이는 날 이면 얼마나 기쁠까. 이 소원을 성취하면 더 원할 것은 없 을 것 같소. 정말 그런 날이 올까. 아니, 이몸은 믿사오리다.

염념물생의(念念勿生疑)—의심을 아니하오리다. 황송해라, 부 처님 말씀을 의심하다니."

공주의 얼굴에는 감사하는 빛에 환희의 빛이 보였다.

"공주는 이몸보다 덕이 높으시니 반드시 이몸보다 나은 아 들을 낳으시리다."

"황송하여라."

"공주가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시는 모양은 지금보다 더욱 아름답고 거룩하시리라고 생각하오.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 을 먹일 때에는 짐승도 자비의 빛을 발하는 것이어든, 관세 음보살의 자비행을 닦으신 공주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시는 양은 사바세계에서 볼 수 없는 자비사(慈悲相)일 것을 믿소.

관음상에도 아기 안으신 관음상이 있거니와 중생계의 자비 상은 어머니에게 나타나는 것이오. 어머니의 자비심, 이몸을 낳으신 어머니는 산길에서 이몸을 낳으시고 이몸을 싸시느 라고 당신의 옷을 벗어서 그 빌미로 돌아가셨다 하오. 이몸 을 살리시느라고 당신 몸을 버린 것이오. 저를 버리는 마음 —이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니 이것을 자비라 이르는 것이오.

기뻐하는 자식을 보는 어머니 마음이 자(慈), 괴로워하는 자 식을 보는 어머니 마음이 비(悲), 외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중에 가장 간절하므로 최애일자지(最愛一子地)라고 하거니 와 삼계중생을 모두 최애일자리로 골고루 자하고 비하는 것 을 부처님네의 대자대비라 일컬었소. 공주는 지금 복중에 최애일자지를 닦으시오. 터럭끝만한 잡념, 악심이 들어올 틈 이 없도록 끊임없는 염불로 마음을 막으시오. 이것이 공주 의 보살행인가 하오."

원효가 말을 그치매 공주는 일어나서 오체투지로 원효에게 절을 하였다. 원효는 앉은 대로 공주의 절을 받았다. 공주가 법사에게 드린 절의 공덕을 감손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공주는 세 번 절하고 앉으며 품에는 몸칼서 내어 서릿발 같은 칼날을 빼어 들고,

"이칼로 이몸의 심중에 일어나는 모든 잡념과 악심을 베이 오리다. 복중에 든 아기를 보리(菩提)와 함께 오매에 지키오 리다."

하고 맹세하였다.

이렇게 하고 나니 공주는 이별의 단장하는 슬픔이 스러지 고 비길 떼 없는 환희심을 발하였다.

원효는 길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것은 삼 일 동안 입었던 화려한 옷을 벗고 아리내에 빠져서 적신 옷을 다시 갈아입 는 것이다. 그 옷은 공주가 손수 깨끗이 빨아서 정하게 말 려서 손질한 것이었다.

원효가 가사, 장삼을 다 입은 뒤에 공주는 새로 차와 다식 을 원효에게 받들었다. 송화다식, 깨다식, 인삼정과, 귤병 등 이었다.

다로에 물 끓는 소리가 방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화병의 작약이 또 흩어졌다. 만나자 떠나는 시각이 가까움 을 말하는 것 같았다.

동산에서 꾀꼬리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풀향기를 실어왔 다.

공주는 원효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어먹은 마음이 흔들릴 듯 금시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이 정성을 깨뜨리는 잡념, 악심인 것 같아서 공주는 몸칼을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공주는 원효에게 무엇을 주고 싶었으나 원효는 아무것도 받을 것 같지 아니하였다. 재물을 받을 리도 없고 옷을 받 을 리도 없을 것 같았다.

"차나 한 잔 더. 이 다식 하나 더."

이렇게나 권할 수밖에 없었다. 주고는 싶으면서 주지 못하 는 마음도 괴로웠다.

원효도 차리기는 다 차리고도 곧 일어서기가 어려웠다. 원 효는 공주가 권하는 대로 몇 잔이고 차를 받아먹고, 몇 점 이고 다식을 받아먹었다.

그러나 떠날 길은 언제나 떠나야만 한다. 원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주도 따라서 일어났다. 원효가 신을 신고 디딤돌을 내려 선 때에 공주는 울음이 터지려 하였으나, 십년 전 남편 거 진을 전쟁에 보낼 때를 생각하여서 힘써 억제하였다. 원효 도 전쟁에 나가는 것이 아니냐. 법계 중생계를 통한 대전쟁 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요마한 은애의 줄로 대장부를 속박 하여서는 아니되는 것이라 하였다.

공주는 중문까지 나와서 합장하여 원효를 보내었다.

원효는 좌우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대문을 향하고 뚜벅뚜벅 걸었다.

이때에 원효를 붙들어 왔던 대사가 내달아, 원효의 길을 막았다.

"원효사마, 어디를 가시오?"

"산으로 가오."

"왜 그 좋은 연분에 백년해로를 아니하시고 이렇게 총총히 떠나시오?"

"공주께서 그만 가라고 하여서 가오."

"이몸을 기롱하시오? 공주마마 정경을 이 앞으로 어떻게나 뵈오라고 가시오. 이제 가시면 언제나 원효사마를 뵈올지."

"요석궁대사 지옥 가는 날 만납시다."

"무서운 말씀도 하시오. 이몸이 왜 지옥에를 가오?"

"도 닦는 중 유인하여 파계시켰으니, 이녁이 지옥에 아니 가면 누가 가겠소. 파계한 중과 파계시킨 대사와 지옥길에 만나서 삼도천(三塗川)에서 또 한번 물싸움이나 합시다. 그 때까지 잘 있으오."

하고 원효는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대사는 뒷걸음을 쳐서 원효를 막으면서 정색하고,

"지금까지 한 말씀은 다 실없음이나, 이몸이 원효사마께 간 청할 일이 있소."

하고 애원하는 듯이 합장하였다.

"무슨 간청이오? 벼슬자리 오르기가 원이어든 나라에 여쭐 것이요, 술이나 고기가 원이어든 공주마마께 아뢰일 것이지 이몸에게 무슨 간청이오?"

원효는 껄껄 웃었다.

"이몸을 그런 사람으로만 아시오? 그러한 청 같으면야 하 필 원효사마께 하오리까. 이몸의 청은 그러한 청이 아니라 원효사마의 제자가 되고 싶다는 청이오."

"원효의 제자? 파계승에게서 무엇을 배운단 말이오. 주색의 길에는 아마 이녁이 스승이 되려든, 하핫하핫."

"그런 것이 아니오. 지난날 밤에 뵈오니 원효사마 검술이 비범하시오. 그때에 혼자서 빈손으로 칼 든 사람 일곱을 당 하시되 그 일곱을 마치 어린애 다루듯 하시니, 이몸도 칼을 배우기 수십 년이 되오나 아직 그런 재주를 못 보았소. 상 감마마께오서 공주를 소중히 여기시와서 요석궁을 지키는 사인과 군사들은 다 무예에 능한 사람을 골라 두셨소. 이몸 도 백인지상은 된다고 남들이 허하는 터에, 그날 밤 이몸의 부하 일곱 명이 원효사마께 그 꼴을 당하니 면목없어 이 자 리에 있을 수가 없소. 나라 녹을 먹고 제구실을 못하면 그 것이 죄가 아니오리까. 그러하오니 이몸에게 한번 무예를 가르쳐 주시오."

대사의 말은 심히 간절하였다. 원효는 물끄러미 대사를 바 라보고 섰더니,

"어디 칼을 한번 써 보시오."

하고 대사의 허리에 찬 칼을 본다. 대사가 칼을 빼어 든다.

이 동안 접때에 느릅다리에 있던 군사들도 모여온다.

원효는 대사의 앞에 선 채로,

"어디 그 칼로 이몸을 엄습해 보시오."

하고 대사를 본다. 노려보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유화한 눈이나 대사는 그 눈을 보매 칼 든 손이 한번 떨린다.

'이상한 눈이다.'

대사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러나 제 재주에 큰 자신을 가 지면서, 칼로 원효의 정면을 범한다.

원효는 두 손을 옆구리에 늘인 채로 걸음 걷듯, 춤추듯 슬 쩍슬쩍 대사의 칼을 피한다. 이리하기를 서너 합 하더니,

"어지간히 칼 쓰는 법을 아시오."

하고 원효가 우뚝 선다. 대사도 선다.

"칼 쓰는 법을 안다고 하시나 맨손으로 막으시는 원효사마 를 못 당하니 이 재주를 가지고 무엇하겠소?"

"이녁만 못한 사람과 싸우면 이기지 않소?"

원효의 이 말에 대사를 제하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웃는 다.

대사는 땅바닥에 꿇어엎디었다. 대사가 느릅다리에서 원효 에게 덤비지 아니한 것은 부하들 소시에 혹시나 창피를 당 할까 두려워 그러한 것이었으나 두고두고 원효와 한번 겨루 어 보기를 벼른 것이었다. 설마 빈손을 든 원효야, 하였던 것이 지금 시험한 결과로 보아 제 재주가 어림없음을 느낀 것이었다. 제일 못 당할 것이 원효의 눈이었다. 그 눈을 보 면 대사의 칼이 힘을 잃는 것 같았다.

"살려 줍소사."

대사는 이마를 땅바닥에 대고 이렇게 말하였다.

"염려 마오. 그것은 예사요. 이녁이 이몸을 시기하여서 한 번 이몸에 피를 내어 보리라 하는 것도 인정에 예사지마는 이후에는 그런 마음 버리고 충의(忠義)의 사람이 되시오."

원효는 대사의 눈에서 대사의 마음을 읽은 것이었다. 대사 는 원효가 공주와 운우의 낙을 맺은 것을 미워한 것이었다.

마치 제 것을 원효에게 빼앗긴 듯한 분노를 느낀 것이었다.

"그러면 살려 주십니까."

대사는 엎드린 채, 고개만을 들어서 원효를 우러러보았다.

"출가한 사람은 살생을 싫어하니까."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미 자비심을 발하시와서 이몸을 살려 주시거든 검술의 비결을 일러 주시오. 비록 일시 불측한 생각을 내었지마는 본심은 충의를 숭상하오. 반드시 옳은 곳에 쓰기를 맹세하 오니 칼의 비결을 가르쳐 주시오."

대사는 간절히 말하였다. 그 얼굴에는 정성이 보였다.

이 말에 대사의 부하들도 상관보다 한 줄 떨어져서 차례차 례 꿇어앉았다.

원효는 잠시 합장하고 섰더니 입을 열어서 이렇게 말하였 다.

"칼은 마음이라 마음 쓰는 법으로 칼을 쓰면 틀림없소. 사 람이 마음을 쓰는 법이 무엇무엇이오?"

"임금께 충성하고."

대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또."

"어버이께 효도하고."

"또."

"벗에게 미쁘고."

"또."

"싸울 때에 물러가지 말고."

"또."

"죽이되 죽일 자를 죽이는 것이오."

"옳소. 칼 쓰는 비결도 그것이오. 충의를 위하여서 싸우는 자리에 서거든, 죽일 자를 대하거든 물러남이 없어. 이것이 비결이오. 충의, 필살(必殺), 필사(必死). 임금님 위하여 이놈 을 꼭 죽여야 한다, 내 목숨을 안 돌아본다, 이것이오. 적만 죽이고 나는 살겠다 하여서는 적도 못 죽이고 나도 못 살기 가 십상팔구요. 내가 죽을 것을 결정할 때에 적은 반드시 죽는 것이오. 이것이 필살 필사라는 것이야. 또 필사즉생(必 死則生)이라는 비결이야."

일동은 말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선인의 곁에는 선신(善神)이 호위하 고 악인의 곁에는 원혼들이 따르는 것이오. 그러므로 충의 의 칼에는 선신의 가지(加持)가 있어서 공을 도우매 재주 없 는 칼이 능히 재주 많은 칼을 이기는 것이야. 이 비결을 알 면 천하 무적의 검객이 될 것이오. 어디 이제 한번 칼을 시 험해 보시오."

원효는 이렇게 말을 마치었다.

원효의 말에 대사가 벌떡 일어나서 칼을 빼어들었다. 그러 나 한번 원효를 바라보고는 도로 칼을 집에 꽂았다.

원효는 고개를 끄덕하였다. 대사는 오체투지로 원효에게 절하였다.

"제자의 예로 보이오."

"오."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고 미소하였다.

원효가 나간 뒤에 사인이 대사에게 물었다.

"아까 대사께서 칼을 빼어들었다가 도로 집에 꽂은 것은 무슨 뜻이며, 또 원효사마가 그를 보시고 끄덕끄덕하신 것 은 무슨 뜻이오?"

대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몸이 칼을 빼어들고 보니 칼을 쓸 자리가 아니라, 그러 므로 칼을 도로 집에 꽂은 것이오. 칼을 쓰지 아니할 자리 를 아는 것이 칼의 비결을 아는 표라 하여 원효사마께서 고 개를 끄덕끄덕하시니 이것이 인가(忍可)니라."

요석궁 문을 나선 원효는 어디로 갈 바를 몰랐다.

'서로 갈까, 동으로 갈까.'

원효는 길바닥에 서서 망설였다. 사흘 전과는 천지가 온통 변한 것 같았다.

원효는 "나는 청정한 사문이다"하는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 다. 길로 다니는 남녀들과 다름이 없는 중생의 몸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마치 자유자재로 훨훨 날아다니던 몸이 날 개를 잘리워서 땅에 떨어진 것 같았다. 몸에는 천근 무게가 달린 것 같았다.

"破戒爲他禮田. 如折翼鳥. 負龜翔空."이라고 후일에 원효가 후생에게 경계한 것이 이때에 느낀 바였다.

원효는 대안대사나 찾아보리라 하고 동으로 향하여서 걸음 을 옮겼다.

느릅다리에 다다랐다. 난간에 지혀서 아리내의 물을 굽어 보았다. 제 그림자가 물 속에 있는 것을 보고 원효는 고개 를 돌렸다. 그것은 사문 원효가 아니요, 수염난 한 사내였 다. 계집을 보면 탐심을 내는 한 수컷이었다.

"파계승, 파계승."

하는 소리가 수없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파계승"이란 어떻게나 부끄러운 소린가. 세상에 파계승처럼 천한 것이 또 어디 있으랴. 지금 원효의 귀에 들리는,

"파계승, 파계승."

하는 소리는 어디서 누가 부르는 소리일까.

그러나 법계에 찬 모든 중생이 함께 부르는 소리다. 사문 원효가 파계하였다는 소문은 무량세계(無量世界)에 널리 알 려진 것이다. 위로는 유정(有頂)으로부터 아래로는 무간지옥 에 이르기까지 사문 원효가 파계하였다는 소문이 들린 것이 다. 그래서 제불보살은 슬퍼하시고 무변중생의 고를 벗을 날이 멀어진 것을 운 것이다.

다리로는 남녀 노소가 끊임없이 지나갔다. 그들은 모두 파 계한 중의 몸에서 나는 비린내를 피하여서 외면하는 것 같 았다. 사람들이 다 지나가기 전에는 원효는 고개를 들고 걸 음을 걸을 뜻이 없었다.

원효는 사람들의 얼굴을 피하여서 고개를 산쪽으로 돌렸 다.

"요석궁이다."

원효의 눈에는 요석궁의 회칠한 담과 우렁한 지붕이 보였 다. 정원의 나무들도 보였다.

원효는 자기가 요석공주와 한자리에 누운 양을 본다. 원효 는 파계하던 순간을 본다. 원효는 이 원치 아니하는 광경의 기억을 떨어 버리려고 고개를 숙이고 걷기를 시작한다. 그 러나 요석공주의 부드러운 살, 향기로운 입김, 그러한 것이 한사코 원효를 따랐다.

영원히 뗄 수 없는 기억이다. 세세생생에 만나고, 만나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아니하면 아니 될 맹세가 아니냐.

원효는 어디를 걸었는지 모르게 걸었다. 그러나 원효는 장 차 어디로 도망하려 하는가. 도망할 곳 없는 원효였다.

"효시님, 효시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원효는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대안이었다.

대안은 여전히 누더기를 걸치고 새끼 띠를 두르고 걸망을 지고 지팡이와 요령을 들고 원효를 따라왔다. 아이들이,

"대안, 대안."

하고 대안대사의 흉내를 내며 대안의 뒤를 따랐다.

대안은 원효를 보고 싱글벙글 웃으며,

"잘 만났소. 그동안 어디를 가셨었소. 심상이 날마다 나한 테를 와서 스님을 찾습디다. 자 갑시다. 저기 좋은 구경이 났어."

하고 손을 뒤로 흔들어 원효를 부르면서 앞을 선다.

"대안사마, 무슨 구경요? 우리도 가오?"

하고 아이들도 대어선다.

"암, 가지. 좋은 구경이야. 무슨 구경인고 하니 재줏군 셋 이서 바가지탈을 쓰고 뒤웅박 조리박을 놀리는데 아주 우스 꽝스럽게 썩 잘 놀린단 말야, 하핫하핫."

하고 대안은 어서 보고 싶어서 성큼성큼 뛴다. 대안이 뛰 는 대로 요령은 딸랑딸랑하고 누더기는 너풀너풀한다.

황룡사 골목 어구 세 길 어우름에 사람이 많이 둘러섰다.

아이들, 늙은이들, 아이를 업은 늙은이들, 또 젊은 사람들, 중들, 군사들, 장꾼들.

대안은 원효와 아이들을 끌고 사람들 틈을 뚫고 잘 보이는 자리에 들어섰다.

과연 세 사람이 흉물스러운 바가지탈을 쓰고 허리에 조롱 박을 일여덟 개씩이나 주렁주렁 둘러 달고 손에는 커다란 뒤웅박 하나씩을 들고 그것을 서로 저편을 맞힐 듯이 겨냥 하고 던지면 저편에서도 마주던져서 그 뒤웅박들이 공중에 서 마주쳐서 따드락딱 소리를 내고는 서로 튀어나는 것이 다. 그러면 재줏군은 얼른 몸을 놀려서 저마다 제 뒤웅박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서는 번개같이 다른 사람을 향하고 던지는 것이다.

뒤웅박에는 채색으로 어룽어룽하게 사람의 얼굴을 사면에 그려서 웃는 놈 성난 놈 열 두놈이 공중에서 넘노는 것 같 았다.

재줏군들이 흥이 높을수록 뒤웅박들은 더욱 높이 더욱 재 우 뚜드락딱하고 마주쳤다.

"잘한다!"

"얼씨구나."

하고 능청스럽게 어릿광대 노릇을 하는 이도 있고, 또 피 리와 날라리로 군악 장단을 부는 이도 있었다.

구경군중으로부터 베 자투리들이 날아들어왔다. 그러면 재 줏군들은 그 베 자투리로 머리도 감고 북두도 조르고 한 끝 을 입에 물기도 하고 갖은 재주와 갖은 익살을 다 부렸다.

"하핫하핫."

하고 대안이 크게 웃는 소리도 들렸다.

원효도 가슴에 뭉클하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실컷 웃 었다. 아이들은 두 손으로 턱을 고이고 정신없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재줏군들은 우쭐우쭐, 덩실덩실, 어깨춤 엉덩춤을 추어 가 면서 뒤웅박을 놀렸다.

해는 중천에 높이 올랐다. 그것도 뒤웅박인 것 같았다. 구 경군의 머리들도 뒤웅박인 것 같았다. 수없는 눈망울들이 공중에 넘노는 뒤웅박을 따라서 굴렀다.

재줏군의 모가지에서 땀이 흘렀다. 구경군들의 이마에서도 땀이 흘렀다.

"휘유."

하고 재줏군들은 뒤웅박을 거두었다. 뒤웅박에 그려진 흉 물스러운 얼굴들도 땀을 흘리는 듯하였다.

재줏군들은 탈을 벗고 낯의 땀을 씻고 냉수를 마셨다.

구경군들은 그제야 제 정신을 찾아서 제제금 저 갈 데로 흩어져 버렸다.

대안은 원효를 보고,

"시님 어떠시오?"

하고 유심하게 물었다.

"대단히 재미있습니다."

원효는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눈은 그 재줏군들을 보고 있 었다. 탈을 벗고 울긋불긋한 옷을 벗어 버린 그들은 예사 사람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흉물스러움도 익살도 없고 그 들의 어깨와 엉덩이에는 으쓱으쓱 덩실덩실하는 춤도 없었 다. 오늘 놀음에 번 것이 얼마, 여기를 마치고는 어디로 갈 까, 하는 궁리와 배고픔과 더위와 목마름이 있었다.

원효는 무엇을 깨달은 것도 같고, 또 무엇을 잃은 것도 같 아서 한숨을 쉬었다.

"心如工畵師.

라 하는 화엄경 구절을 생각하였다. 원효 자신도 탈춤을 추고 뒤웅박을 놀리고 있고, 대안도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 러함을 보았다. 신라, 백제, 고구려, 당나라가 모두 탈을 쓰 고 뒤웅박을 놀리고 있는 것 같이 생각하였다. 원효의 몸에 걸친 장삼이나 대안의 몸이 너풀거리는 누더기나 모두 재줏 군의 익살만 같이 보여서 원효는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