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96: 2

김수의 관문의 뜻은.

우대로 갔던 적의 무리가 『낮에는 숨고 밤에는 길을 걸어 양산과 김해강 등지에 연속하여 내려 오는데. 짐을 많이 실은 것을 보니 필시 도망하여 돌아 오는 모양이라.』

하는 것이었다.

팔월 이십 사일에 순신은 전라 우수사 이억기(李億期). 조방장정 걸(丁傑)(얼마 아니하여 경기도 수군 절도사가 되어 행주(幸州) 싸움에 권율(權慄) 을 도운 사람)고 함께 백 육십 육척의 주사를 거느리고 전라도 좌수영을 떠나 제 사차 원정의 길을 나섰다.

그날은 남해 관음포(南海觀音浦)(이곳은 칠 년 후에 순신이 죽은 곳이다)에서 밤을 지내고 이십 오일에 사량바다( ) 에 이르러 경상 우도 수군 절도사 원균(員均)과 서로 만났다.

원균은 한산도에 상륙하여 굶어 죽게 된 사백명 적군을 놓아 버린 사람이다.

그가 한산도를 지키고 있을 때에 거제 바다에 적선이 보인다는 말을 듣고 무서워 달아났으므로 살아 남은 적병들은 나무를 찍어 떼를 모아 타고 거제도로 달아난 것이다.

순신은 원균을 만나 경상도 연해의 형세를 물었으나 그는 하나도 알지 못하였다. 혹시 아는 체하고 말하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취신할 것이 없었다.

더구나 그가 배를 바다에 놓아 조선 어선을 습격하여 재물을 빼앗을 뿐 더러 혹시는 우리 사람의 목을 베어 상투를 풀어 일본사람의 머리 모양으로 배코를 쳐서 적병을 잡은 듯이 수급을 모은다는 보고를 들은 순신은 더구나 원균을 믿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경상도 바다에서 싸우는 이상 원균을 참여시키지 아니할 수도 없었다. 원균은 전과 같이 뒤에 떨어져서 싸움 구경을 하다가 썰물에 떠내려 오는 적병의 시체(우리 군사의 시체까지도)를 잡아 목을 자르는 것으로 일을 삼을 줄 알면서도 아니 데리고 갈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이날은 지난 유월의 첫 번 승전한 전장인 당포(唐浦)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인 이십 육일에는 풍우가 대작하여 배질을 못하고 있다가 날이 저물게야.

웅천 제포(熊川濟浦)뒤 완포(浣浦)에 이르러 밤을 지냈다.

이십 팔일에 육지에 나갔던 염탐군이 돌아 와 아뢰기를. 고성(固城). 진해(鎭海).

창원(昌源) 등지에 유둔하던 적병이 이순신의 함대 온다는 말을 듣고 이달 이십 사오일 야간에 죄다 도망하여 배 맨 곳으로 가버렸다고 한다.

순신은 이날 조조에 배를 떼어 바로 양산(梁山).김해(金海)양강 어귀로 갔다.

우리 함대가 오는 것을 보고 백성들이 부모를 만난 듯이 기뻐하며 배를 타고 나와 만났다 그들은 제각기 . 적병에게 시달리던 이야기를 하였다. 그중에 창원(昌原) 땅 구곡포(仇谷浦)서 전복잡이 한다는 정 말석(丁末石)이라는 사람은 김해강에서 사흘 동안 사로잡혔다가 도망하여 나왔노라 하며. 이런 말을 보고하였다. - 김해강에 있던 적선이 이삼 일간에 떼를 지어 몰운대(沒雲臺)밖으로 황급히 도망하여 나가더라고. 그 분망통에 자기는 밤을 타서 도망해 왔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