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95: 1

한산도(閑山島)와 안골포(安骨浦)싸움에 적은 완전히 조선 제해권을 잡으려는 뜻을 버리지 아니하면 아니 되게 되었다. 도저히 이 순신의 수군과 겨눌 수는 없다고 단념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게 되었다. 그 때문에 평양에 웅거한 소서행장의 군사도 더 나아가지 못하게 되어. 이를테면 일본군은 반편이 된 셈이었다. 류 성룡의 말에. 만일 한산도의 승전이 없었던들 전라. 충청 . 황해.

평안 여러 도까지 적군의 손에 들어가고. 그뿐더러 나아가서는 명 나라의 천진가지도 위태하였으리라는 것은 옳은 말이었다.

육전에서 백전백승하여 소향에 무적하던 자기의 군사가 수전에서 아홉 전 싸워 아홉 번 패한 것을 들은 풍신수길의 노함은 여간이 아니었다. 그가 일본 수군이 패하는 이유를 알아 올리라는 엄명한 때에 그에게 달한 보고는.

『일본 수군은 배 수효는 많으나 배가 약하며. 이 순신의 거북선에 부딪히면 곧 부서지고 또 이 . 순신이 지세와 조류를 잘 알아 그것을 이용하므로 객병으로는 그 모략을 대항할 수 없다.』하는 것이었다.

이때 풍신수길은 저선에 건너 와 있는 수군에게 명하여 아무리 조선 사람이 싸움을 돋구더라도 결코 응전하지 말고 부산 근해에 모여 지키고만 있으라고 하고 한편으로 조선에 당쟁이 있는 것을 이용하여 이 순신을 모함하여 없이 할 도리를 할 것을 가등청정(加藤淸正)에게 엄명하였다.

그러나 부산에 모여 있던 풍신수길의 수군은 가끔 가덕(加德) . 거제(巨濟) 등지로 출몰하여 민가를 요란하기를 마지아니하였다.

이때에는 육지에 있던 일본 군대도 한산도 패전에 공포를 느끼어 대부분이 부산. 울진. 김해 등지로 모여 들기를 시작하여 성을 쌓고. 집을 짓고. 오래 둥거하여 때를 기다릴 준비를 하였다.

이러한 정보를 들을 때에 수신은 심히 분개하여 수륙으로 합공 못하는 것을 분하게 여겼다. 순신은 전라도 순찰사 이광(李光)에게 말하였으나 이 광은 용인(龍仁)서 패한 이래로 겁을 집어먹어 싸울 뜻이 없고. 그뿐 아니라 용인에서 죽을 쑨 이 광을 군사와 백성이 다시 신임을 아니 하였다. 할 수 없이 조정에 청하였으나 조정에서는 명 나라 구원병을 기다리는 것과 동인 서인의 당파싸움(불과 수십 명 되는 무리가) 밖에 다른 생각이 없고. 또 설사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대군을 발하여 육상의 적을 칠 힘도 없었다.

이에 순신은 경상 우도 순찰사 김수(金수)에게 청하여 수군은 순신 자기가 담당할 것이니 물에 있어서 적이 도망할 길을 막아 적병의 책원지인 부산을 무찌르자고 하였다.

원래 김 수는 지난 사월에 적병이 부산. 동래. 김해를 순식간에 함락시킬 때에 겁을 집어먹고 진주(晋州)성을 버리고 달아난 위인이었다. 순신의 이 청을 들으매 자신은 없으나 못한다 하기도 어려워 구월 초하루를 기약하여 부산의 적진을 수륙으로 협공하기를 약속하였다.

이에 순신은 전라 우도 수군 절도사(全羅右道水軍節度使)이억기(李漁期). 경상 우도 수군 절도사(慶尙右道水軍節度使))원균(元均)과 서로 약속하고 팔월 초하루에 전라 좌우도 전선 합하여 칠십 사척과 협선 구십 이척 도합 일백 육십척(그동안에 순신은 오십여 척의 병선을 지은 것이었다)을 거느리고 전라 좌수여 앞에 결진하고 있었다. 이때에 경상 우도 순찰사 김수 (金수)로부터 관문이 왔으니. 하였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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