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령장(五領將) 최 도전(崔道傳)이가 사로잡은 서울중접 사노 중남(私奴中男).사도 용이(私奴龍伊). 경상도 비안접 사노 영락(慶尙道比安接私奴 永樂)등은 말하되. 서울로부터 적병이 내려 오는 길에 용인(龍仁)에서 우리 군사 여러 만 명을 만나 오는 길에 용인(龍仁)에서 우기 군사 여러 만 명을 만나 접전하다가 우리 군사가 물러간 뒤에 김해(金海)로 내려 와서 대장이 글을 가지고 각진에 통문하는데 그 모양이 우리 나라 장수가 약속하는 것과 같았고. 그 글을 보고는 적장등이 손을 들어 서쪽을 가리키며 그러할 때마다 「전라도」라고 하며 혹은 칼을 빼어 무엇을 치는 형상을 하는 것이 마치 사람을 죽이는 모양을 하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용인서 우리 군사를 만났다는 것은 전라도 순찰사(全羅道巡察使) 이 광(李光)을 머리로 하는 전라.
충청 . 경상. 삼 순찰사 연합군을 가리킨 것이었다.
광양 현감(光陽縣監) 어영담(魚泳潭)이 사로잡은 경상도 인동현(慶尙道仁同縣)에 사는 우 근신(寓謹身)이라는 어린 사람이 말하기를.
『소인은 누이동생을 데리고 피난하러 산에 들어가 있다가 누이동생과 함께 적병에게 붙들려서 서울로 올라가서 누이는 적장에게 겁탈을 당하였소. 어느 날인지 날짜는 분명치 아니하나 그 적장에게 끌려 다시 내려 올 때 우리나라 군사와 서로 만나 접전을 져서 퇴병하고 셋째 날은 우리 나라 군사가 다 물러가서 줄곧 김해강을 내려 왔소. 김해강에서는 배를 탔는데 그 배들은 어디서 온 배인지 알 수 없었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간다는 말들을 수가 없으나 다만 손으로 서쪽으을 가리키니 필시 전라도로 가자는 말인 듯하였소.』
하고 접전하던 당일의 일에 관하여 근신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날 소인을 데리고 온 장수가 우리나라 군사를 많이 죽였소. 그러나 다른 장수들은 우리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칼을 두르고 날뛰다가 우리 군사가 이기게 되어 활을 쏘며 돌격을 하면 다들 겁을 내어 머뭇거리고 뒷걸음을 쳤소. 소인을 데리고 온 장수가 아무리 호령을 엄히 하여도 다들 무서워서 나서지를 못합데다.』하였다.
『그러면 너를 데리고 온 장수는 어찌되었어?』
하고 묻는 말에 우 근신은.
『화살에 맞아 죽었소.』하였고.
『적장과 함께 살던 네 누이는 어찌되었어?』
할 때에 근신은 눈물을 흘리며.
우리 나라 군사가 『 돌격해 오는 것을 보고 암만 해도 견디지 못할 줄로 알고는 그 장수가 허리에 찬 작은 칼을 빼어 주며 소인의 누이더러 배를 갈라 죽으라고 명하였소. 소인의 누이는 벌써 잉ㅊ태 중이었는데 적장이 주는 칼을 받아서 배는 가르지 아니하고 목을 찔러서 먼저 죽었소.』하였다.
다음에 웅천 현감(熊川縣監) 허 일(許일)의 소솔 동현기관(記官)주 귀생(朱貴生)은 말하되. 김해 부내(金海府內)에 사는 내수 사노(內需司奴) 이 수금(李水今)이 칠월 이일에 응천현에 있는 그 부모를 보러 웅천현에 와서 말하기를. 김해부 부처바위(바위) 선창에 와 있는 적의 수군들도 전라도 군사와 접전한다는 말을 논하더라 하며. 배마다 배방패 밖에다가 단단한 홰나무 쪽을 셋씩 덧붙여 견고하게 만들고 수군을 세 패에 갈라서 김해성 내외에 둔박케 하였다 하며. 하룻밤에는 바다에 뜬 고기잡이 불을 보고 전라도 수군이 온다고 하여 크게 놀래어 떠돌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동분서주하다가 얼마 후에야 진정하였다고 하였다. 에 이 공초를 다 믿을수는 없다. 하더라도 종합해 보면 적이 수군을 세 패(三패)에 나누어 전라도를 침범하려 하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과. 그 제 일운 칠십 삼척이 한산도에서 부서지고 제 이운 사십 이 척이 안골포에서 부서진 것은 상상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