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 내도(見乃도)에서 밤을 지내고 이튿날인 칠월 구일에. 가덕(加德)의 안골포(安骨浦)로 향하는 적선 사십여 척이 와 닿았다는 타망군의 보고가 있었다.
이 보고를 받고 순신은 곧 억기(億祺)와 균(均)을 불러 이 사십척의 적선을 깨뜨릴 방책을 의논하였다 그러나 이날은 벌써 날이 다 저물고 또 거슬러 오는 바람이 크게 불어 도저히 싸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거제 땅 온천도(溫川島)에서 밤을 지냈다.
이튿날 칠월 초십일 새벽에 온천도를 떠났다. 순신은 전라 우도 수군 절도사 이억기에게 이곳을 떠나지 말고 가덕(加德)쪽으로 진을 치고 기다리다가 접전이 되거든 숨어서 달려오라고 약속하고. 순신이 몸소 주사를 거느리고 학인진으로 안골포를 향하였다. 경상 우도 수군절도사 운 균도 대소 수십 척의 배를 거느리고 순신의 뒤를 따랐다.
안골포에 다다라 바라보니 선창에는 적의 대선 이십일척. 중선 오척. 소선 육척이 정박하였는데. 그중에 삼층 집을 지은 대선 한 척과 이층 집을 지은 대선 두 척이 있어 밖을 향하고 포구에 떠 있고. 다른 배들은 비늘 달리듯 포구 안에서 있었다.
안골포는 지세가 협착하고 또 물이 얕고 조수가 빠지면 건둥이 되는 곳이어서 도저히 판옥 대선을 가지고 자유로 출입할 수는 없을 곳이었다.
순신은 배를 보내어 적선을 난바다로 끌어내려고 재삼 유인하였으나 그저께 한산도 큰 싸움에 겁을 집어먹은 적의 수군은 포구 밖에 나오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아마도 불여의하면 육지에 내려 달아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순신은 부득이 제장으로 하여금 번갈아 포구 안에 들어 가 치고는 물러나고 치고는 물러나는 전술을 쓰기도 하였다.
혹은 다섯 척씩 혹은 열 척과 몸 가벼운 배와 거북선을 놓아 삼층선과 이층선을 엄습하여 천. 지. 현자 각양 총통과 장편전을 빗발같이 퍼부으니 삼층선과 이층선의 적병이 하나씩 둘씩 거의 다 죽어 없어질 만하면 적은 적선이 다른 적병을 실어다가 보충하고 시체는 싣고 나가고. 이러하기를 몇 차례를 하였다. 접전이 되는 것을 보고 이 억기의 함대가 약속대로 달려 와서 합세하여 싸움은 더욱 격렬하였다.
거북선이 좌충 우돌하는 바람에 적의 중선 소선은 부딪히기가 무섭게 부서지고 대선들도 감히 대들지를 못하였다. 오직 삼층선과 이층선은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어서 대항하는 모양이었다. 왜 그런고 하면. 몸이 무거워 육지 가까이 들어 갈 수는 없고 또 순신의 주사가 포구 입을 막았으니 바다 밖으로 도망해 나올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 삼층선 이층선은 심히 견고하여 여간 총통을 맞아도 까딱 없었다. 그래서 적은 이 세 층루선을 근거로 하여 순신군과 대항하려는 것이었고. 또 이편의 전술로 보더라도 누선을 깨뜨리는 것이 오늘 싸움의 중심이었다.
이렇게 싸우기를 날이 저물도록 계속하니 층각선 세척에 사람을 갈아 실은 것이 몇 십 번인지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이러는 동안에 적의 대선. 중선.
소선이 혹은 거북선에 부딪히어 깨어지고 혹은 화전에 불이 타. 사십여 척 중에서 남은 것이 층각선 아울러 십척이 되고 적군도 태반이나 죽고 말았다.
그래도 적군은 마지막 한사람까지도 죽고야 말려는 듯이 층각선에 갈아 들어 총과 활을 쏘았다.
마침내 삼층집 지은 배가 화전에 맞아 불이 댕기고 이어 이층선도 불이 붙었다. 탄환에 벌의 집 모양으로 수없이 구멍이 뚫리고 또 싸움이 격멸하고 사람은 부족하여 미처 바닷물로 배를 적시지 못하여서 마침내 달은 자작 모양으로 불이 타오르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