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9: 1

임진 사월 십 오일 술시. 지금으로 말하면 오후 열 시쯤 일륜 명월이 돌산도위로 솟다 오른 지 얼망되지 아니하여서 어떠한 배일척이 쌍횃불을 들고 좌수영으로 들어왔다. 햇불을 드는 것은 경보를 가지고 온다는 뜻이었다.

이전에 보지 못하던 쌍횃불 든 배는 좌수영의 군사들과 백성들을 놀라게 함이 적지 아니하였다. 그렇지 아니하여도 일본 병정이 온다는 풍설이 많이 돌아 다니던 때여서 백성들의 마음이 조마조마하던 때이므로 어리석고 당파 싸움에만 분주하던 정부에서 아무리 민심을 위무한다 하더라도 그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아니 하고 무슨 큰 변이 발뒤굼치에 따라 오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이 쌍횃불 든 수상한 배는 좌수영 순라선(巡邏船)에게 붙들려 잠시 수험을 받고 곧 굴장에 들어 닿았다. 이날은 국기일이어서 수사 이순신은 죄기를 페하여 전라 관찰사 이광(李珖)에게 편지 답장을 쓰고 또 군부에 대한 보고를 지어 역자(驛子)를 떠나 보내기에 골몰하였다. 그러다가 저녁을 먹고 나서 이상하게 산란한 심서를 가지고 바다에 오르는 달을 바라보고 거닐 때에 수직 군관이 경상 우도 수군 절도사 원균의 관(關)을 바쳤다.

수사는 곧 동헌으로 불러 들여 경상 우수사의 관을 열어 보았다.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오늘 사시(오전 열 시쯤)에 가덕진(加德鎭)첨절제사(僉節制使)전 응린(田應麟)과 천성보 만호(天城堡萬戶) 황정(黃挺) 등의 급보를 접하건댄. 매봉 봉수 감고(연대감고) 서건(徐建) 등이 나와 고하기를. 사월 십 삼일신시(오후 다섯 시쯤에 왜선 여러 ) 십척. 대개 소견에 구십여 척이 경상 좌도 싸리섬을 지나 부산포(釜山浦)를 향하여 나오더라 하기로 첨사 전응린은 방략대로 부산 대대포 우 요격장(右繞激獎)의 군선으로써 정제하여 바다에 내려 변을 기다린다.』

운운한 것이다.

세견선(歲遣船 해마다 장사하러 오는 배)인지도 모르거니와. 구십여 척이나 다수가 나온다는 것은 그 연유를 알 수 없고. 또 연속하여 나오다고 하니 심상치 아니한 듯하다고 생각하고 수사는 곧 우후 이 몽귀(李夢龜)를 불러서 일변 좌수영 각군에 신칙하여 방비와 망보기를 엄히 하여 주양로 대변하기로 하고 또 소속 각진 각포에 말과 배를 놓아 군사와 병선을 정돈하여 강구 대변(江口待變 병선들을 언제나 떠날 수 있도록 항구 밖에 내어 놓고 무슨 일이 생기기를 기다린다는 뜻)하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수사 자신은. 첫째로 이 뜻으로 장계를 꾸미고 관찰사. 병마 절도가. 우도 수군절도사에 이문을 지어 말을 태워서 띄웠다.

그러나 이 일이 다 끝나기도 전에 경상 우도수군 절도사 원균으로부터 둘째 관이 왔다. 신시(먼저 관은 사시였다)에 가덕진 첨절제사의 치보(급보)를 보건댄.

왜선일백 오십여 척이 해운대오 부산포로 향하고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인제는 세견선 아닌 것은 확실하다. 세견선이면 고작 많아야 삼십척. 그렇지 아니하면 이십 척을 넘는 일이 적다. 그런데 구십척. 일백 오십척이라 하면 이것은 필시 심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이날 밤을 근심 중에 보내고 이튿날인 사월 십 육일 아침 진시(오전 여덟 시쯤)에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김수(金賥)의 관이 왔다.

『이달 십 삼일에 왜선 사백여 척이 부산포 월편에 왔었다.』

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