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87: 5

『둥............』

하는 북소이에 한산도 속바다에 숨어서 기다리던 배들은 일제히 돛을 감았다.

이 영담의 선봉대가 대섬에서 얼마 머지 아니한 곳에 다다랐을 때에는 칠십여 척의 적의 함대는 꼬리를 물고 그 뒤를 따랐다.

순신이 또 한번 북을 울리니 일성 방포가 뒤미쳐 물 속으로부터 솟아 나는 듯이 한바다에 쑥 나섰다.

적의 함대는 불의에 큰 함대가 앞을 막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래어 허둥지둥하여 행렬이 어지러웠다.

이편의 함대는 들입(入)자 모양으로 학익진(학의 날개와 같은 진형)을 벌여 적의 함대를 안아 싸고 노를 빨리 저어 지현자(지현자). 승자(승자)각양 총통을 놓으니 선봉으로 오던 적선 세 척이 깨어져 배에 탔던 적병이 하나 남기지 아니하고 물에 빠져 깨어진 배의 널쪽을 붙들고 부르짖었다.

이것을 보고 적선은 기운이 꺾이어 뱃머리를 돌려 오던 길로 도로 도망하려 하였으나 경작간에 난데 없는 수십척의 배가 고성쪽으로부터 내달아 서까래 같은 화전과 각양 총통과 활을 쏘고. 이것을 피하여 뱃머리를 거제쪽으로 돌리니 소쿠리도 그늘로서 또 난데 없는 수십척의 배가 나타나 역시 서까래 같은 화전을 쏘니적의 함대는 삼면으로 우리 함대에게 싸이어 화전을 맞아 돛에 불이 댕기어 황혼의 하늘에 염염히 타오르니 마치 수없는 불기둥과 같아서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불빛이 되었다. 적의 함대는 완전히 통제를 잃어 행렬이 무너지어 하나씩 둘씩 저마다 갈팡질팡 도망할 길을 찾을 때에 우리 군사는 기운이 백배하여 다투어 나아가 갈팡질팡하는 적선을 잡았다.

타고. 깨어지고. 남은 적선 십여 척이 한산도 앞바다를 빠져 도망하려 하였으나 미륵도에서부터 한산도 끝까지 수백의 불이 앞을 가로막았으니 이것도 필시 이 순신의 병선이리라 하여 거기 다시 뱃머리를 돌려 대섬을 향하고 돌아왔다. 이때에 순신은 짐짓 대섬 앞바다를 비우고 멀리 적선을 애워 싸니 길을 잃은 적선은 한산도 속 바다를 외양으로 터진 바다인 줄만 알고 그리로 도망하여 들어갔다.

얼마를 가서 이것이 막다른 골목인 줄을 알고 이 십척의 병선 중에는 장수 협판 좌위문(脇坂左衛門)과 진와 재마윤(眞외在馬允)의 탄 배도 있어서 그들은 용감하게 십척의 적선으로 최후의 대항을 하였다.

그 좁은 한산도 속바다에서 일대 격전이 일어나 포향. 불빛이 하늘에 닿았다.

그러나 마침내 십척 중에 아홉 척은 불타고 혹은 깨어지고. 오직 진와의 배 한척만이 남아 도망하여 진와와 및 그 부하 장졸이 섬으로 올랐으나 그 나머지 장졸은 협판 주장 이하로 다 속 바다의 귀신이 되었다.

진와가 부하 장졸 백여 명을 데리고 물에 오르매 조선군사는 그 배를 불살라 벼렸다. 진와는 길에 올라 자기가 탔던 배가 불붙는 것과 바다 가운데 반쯤 잠긴 자기편 배들이 아직 번쩍번쩍 차마 꺼지지 못하는 듯한 불길을 내임을 보고 문득 자기만 목숨을 보전하여 도망한 것이 부끄러운 생각이 나서 동을 향하여 자기의 임금과 조상의 영을 부르며 통곡하고 그 자리에서 칼을 빼어 배를 갈라 죽었다. 따르던 장졸 중에 이십여 명이나 주장의 뒤를 따라 배를 갈라 죽고 그 나머지는 혹시나 도망할 길이 있나 하고 초생달도 다 넘어간 캄캄한 밤에 수풀 속으로 헤매었다.

이튿날 아침에 도망한 적병의 종적을 수색하던 조선 군사들이 진와 이하 이십여 명이 배를 갈라 죽은 자리를 발견하고 순신에게 보고하매 순신은 땅을 파고 그 시체들을 묻고 술을 부어 적의 충혼을 위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