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신의대함대가 새벽의 물을 헤치고 한산도 앞바다에 다다랐을 때에는 소쿠리도 위로 붉은 해가 솟아 올라서 팔십여 척이 전선의 돛에는 일시에 불이 붙은 듯하였다. 그러나 함대가 견 내 도를 바라볼 때에는 순식간에 팔십여 척 전선이 그림자를 감추고 오직 판목선 육척이 고단하게 북으로 견 내 도를 향하여 미끄러질 뿐이었다. 다른 배들은 순신의 명령대로 정한 부서를 따라 각각 산 그늘과 섬 그늘에 숨고 순신은 주력 함대 오십여 척을 한산도 대석 뒤 포구에 숨기고 자기만 이삼척 배를 거느리고 마치 선유하는 사람 모양으로 앞바다로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
해가 올라오자 마치 햇발을 따라 온 듯이 바람이 불기를 시작하였다. 아직 그리 큰 바람은 아니나 장차 큰 놀로 변할 듯한 살기를 띤 바람이었다. 이 바람을 따라 거울과 같은 한산도 바다에는 가는 물결이 지기를 지작 하고 보리밥 한솥 지을 때 한때를 지나서는 꿈틀꿈틀 굵은 물렬이 일어났다.
광양 현감 어영담(漁泳潭)이 거느린 선봉대는 적함이 정박하여 있다는 견 내 도를 향하여 살같이 달렸다. 때마침 어지간히 세게 부는 서남풍에 돛이 찢어질 듯이 바람을 품었다. 거제도의 산들이 줄달음하듯이 오른손 편으로 달아났다.
한산도 앞에서 하회를 기다리는 수신은 뱃머리에 나서서 북으로 견 내 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이 반 넘어 썰도록 어영담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을 보고 순신은 적에 마음이 초초하였다. 순신의 계획은 썰물에 적함을 한산도 바다로 끌어 넣어 싸우는 동안 저녁 밀물을 맞아 적으로 하여금 의 양으로 달아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결코 견 내 도에서는 적함과 싸우지 말고 만일 적이 따르거든 달아나 돌아 오라고 일렀지마는 혹시나 솟아 오르는 기운을 억제하기가 어려워 싸우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근심하였다.
어젯밤 군사회의를 할 때로부터 견 내 도로 따라 가서 싸우기를 주장하던 원균은 순신의 계교를 비웃었다. 병목같은 견 내도 좁은 목에 몰아 넣고 싸우지 아니하고 호호한 것이다. 날이 늦도록 선봉대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원균은 자기의 선견지명을 자랑하여 순신에게.
『지금이라도 견 내 도로 따라 갑시다. 그까짓 적이 무엇이 무서워서 못 간단 말이요.』
『전선 오십 척만 소장을 빌려 주시면 해지기 전에 그 놈들을 깡그리 잡아 오리다.』
하고 빈정대었다. 그는 마치 영등포에서 싸우지도 않고 그 많은 전선과 군기와 수군을 버리고 도망한 것은 자기가 아니요. 딴 사람인 것 같이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순신은 말 없이 머리를 흔들어 원균의 말이 옳지 아니한다는 뜻을 표하였다.
견내 도와 같이 풀과 암초가 많은 곳은 지키기에 편하나 치기에 맞지 못함과 또 설사 견 내도에서 싸워서 적이 진다 하더라도 적은 배를 버리고 물으로 올라가 달아날 것이니 결국 싸워 이긴다 하더라도 적병에 인명의 손해는 적을 것이요. 또 이편의 전선도 혹은 풀에 올라 앉고 혹은 암초에 부딪쳐 손해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여도 원균은 잘 듣지 아니하였다.
이윽고 견 내 도로부터 달려 오는 배가 보였다. 주먹만 하다가 사람만 하여지고 마침 썰물을 타서 삽시간ㅇ 그것이 어영담이 거느린 배인 것이 판명되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고 다 있었다.
은은히 포성이 들이는 것은 일변 싸우며 일변 달아나는 것을 표함이었다.
아니다 다를까. 조선배들의 뒤를 따라 마치 수효를 모를 듯한 검은 돛 단적선이 기러기떼 모양으로 요란히 방포하고 따라 오는 것이 보였다.
순신은 손수 한 소리 높이 북을 울렸다. 한산도 속 바다에 숨어 있는 전선에게 출동을 명령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