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83: 1

왕이 평양을 버리고 의주로 몽진한 뒤에 소서행장(小西行長)은 평양에 웅거하여 군사를 쉬며 일본 수군이 이 순신의 수군을 깨뜨리고 평안도 바다로 들어오기를 고대하였다.그리하여서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의주를 엄습하여 조선 왕을 사로 잡고 완전히 조선을 손에 넣으려 한 것이다.

풍신수길(豊臣秀吉)은 원정군이 육전에 연승하는 보고를 듣고 만족하였으나 그와 반대로 수전에서 연패하는 보고를 듣고는 심히 노하고 화를 내었다. 조선의 제해권을 잡지 아니하고는 도저히 군사를 끌고 명나라에 들어 갈 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에 풍신수길은 협판안치(脇坂安治)로 주장을 삼고 협판 좌위문(脇坂左衛門) . 도변칠우위문(칠遇위문)으로 아장을 삼아 새로 일대 합대를 조직하여 기어코 이순신의 함대르 섬멸할 것을 명하였다. 이번 수군으로 말하면 조선의 바다를 지배하기 위함보다도 이 순신에게 대한 원수를 갚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었다. 수군이 연전 연패한 것은 일본 민심에도 극도의 불안을 주었고. 따라서 새로 일본 전토를 지배하는 자리에 오른 풍 태합(豊太閤 - 태합이란 벼슬을 붙여서 풍신수길을 부르는 이름)의 융륭하던 위신이 깜임도 적지 아니하였다.

일본으로부터 새로 대 수군이 부산에 건너 왔다는 정보가 전라 좌수영에 도달한 것은 유월 말이었다. 이 순신은 반드시 이런 일이 있을 줄을 짐작하였던 터이라 곧 전라 좌도의 각관. 각진의 수군에 강구대변(江口待變) - 오늘날 말로 대기(待機)하라는 영을 내리고 일변 수로와 육로와 아울러 사자를 보내어 전라 우도 수군 절도사 이억기(李億祺)와 경상 우도 수군 절도사 원균(元均)에게 이관(李關)하여 칠월 칠일을 기약하여 노량진(노량진)에 모여 제 삼차로 적의 수군을 칠 것을 약속하였다.

칠월 칠일을 기다리는 동안에. 혹은 가덕(가덕)에 전선 십여 척이 나왔다 하고 혹은 거제(巨濟) 근해에 적선 삼십여 척이 떴다는 정보가 답지할 뿐 아니라.

금산포(錦山浦- 남해의 남단)에까지 출몰하는 것을 바로 좌수영의 탐보선이 발견하게 되었다.

이 순신은 왕이 서울을 떠난 것. 임진강에 패한 것까지 들었고 평양을 지키리라는 소문까지도 들었다. 그러나 평양을 버린 것이라든지 왕이 의주로 쫓겨 가서 압록강 건너편에서 명 나라 군사의 구원이 오기를 기다리고 앉았다는 기별까지는 아직 듣지 못하였다. 종묘 사직의 위패도 잊어 버리고 도망하는 판에 일개 변방 작은 장수인 이 순신에게까지 그러한 기별을 할 정신이 조정에는 없었고. 또 설사 할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할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이 순신은 이러한 패보를 들을 때마다 서향히여 통곡하였다. 이렇게도 조선에 사람이 없는가. 이렇게도 조선사람은 못난 백성인가를 한탄하였다. 그는 어떤 때에는 술이 취하여 홀로 비분을 잊으려 하였다.

조선 칠도가 다 적병의 손에 들어 가고 온전하게 남은 것은 오직 전라도 하나뿐이다. 이 전라도 하나마저 적의 손에 들어 가면 조선의 강토는 한 치도 못하는 셈이다. 이에 순신은 결심하였다. 죽기로써 전라도를 지키고 적의 수군이 전라도 앞바다를 지나지 못하게 하자고.

『순신이 죽지 아니하고 적병의 발이 한걸음도 전라도에 들지 못하리라.』

하고. 칼을 짚고 하늘에 맹세하였다.

이런 때에 일본의 새 수군이 경상도 바다를 횡행한 것이었다. 팔도 강산에 살아 있는 이 순신 하나뿐이었다. 강산이 오직 그 하나를 믿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