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투른 일본말식 한문으로 쓰였다. 그것은 중현소가 지은 것이다.
이것을 조선말로 번역하면 이러하다. - 두 번째 글을 올리나이다 『 . 이제 올린 글에 화친하자는 말을 한 것을 귀국에서 믿지 아니하심은 그럴듯한 일이로소이다. 우리 군사. 만리 풍파의 어려움과 강산의 험함을 지나 곧 서울에 들어 왔거늘 이제 연고 없이 화친하려 하니 귀국에서 믿지 아니하심이 또한 그럴듯한 일이로소이다. 신(적은 글자로)이 귀국을 위하여 그 연유를 설명 하리이다. 우리 전하 길을 빌어 대명국을 치려 하시매 비록 제장이 명을 받자와 이곳에 왔으나. 이로부터 또 수천리를 지나 대명국에 들어 가고자 아니하니. 이러므로 먼저 귀국과 화친하고 그런 후에 귀국의 한 말씀을 빌어 대명국과 화친하려 함이로소이다. 귀국도 한 말씀으로써 대명국으로 하여금 일본과 화친케 하시면 세 나라가 다 평안하리니 이에서 더한 양책이 없는가 하나이다. 제장의 고생을 면하고 만민을 소생케 하시면 세 나라가 다 평안하리니 이에서 더한 양책이 없는가 하나이다. 제장의 고생을 면하고 만민을 소생케 하자 하는 것은 우리 모든 장수들의 뜻이로소이다. 전하도 귀국고 절교하기를 원치 아니하시나 귀국이 이웃 나라 사귀는 도리를 잃어 우리 군사를 막으므로 우리도 싸움을 할 뿐이로소이다. 신(적은 글자로 )이 공로 없이 귀국의 큰 벼슬을 받자오니 어찌 큰 은혜를 잊사오리까? 나라 명을 받자와 모든 장수의 앞장을 서는 것은 참으로 어찌할 수 없는 연고로소이다. 이제 간담을 기울여 누누이 아뢰오니 족하를 살피소서. 오히려 믿지 아니하시거든 그 또한 가하나이다. 의지와 행장 두 사람이 한 종이에 쓴 편지를 올리나이다. 자애하심 빌고 이만 올리나이다. 자애하심 빌고 이만 올리나이다.』
이 편지 속에 전하라고 한 것은 태합(太閤) 풍신수길(豊臣秀吉)이다. 풍신수길이 외아들을 죽여 버린 홧김에 명나라를 치려는 생각을 내어 모든 장수가 부득이 온 것이지마는 명나라에까지 싸우러 갈 생각은 없으니 조선에 거명 나라에 잘 말해서 풍신수길의 마음을 풀어 주게 하면 자연 싸움이 없어지리란 것이요. 또 평 조신(平調信)이 조선의 높은 벼슬을 받았다 함은 작년인 신묘년에 그가 조선에 사신으로 왔을 때에 조선에서 가선 대부(嘉善大夫)를 주었음을 기리킨 것이었다.
대동강상의 강화 담판이 파열이 되매 그날 저녁으로 일본군은 평양성 총공격의 결심을 한 듯하였다. 전에는 그렇게 빛을 보이지 아니하던 일본군 수천 명이 강 동쪽 언덕 위에 진을 치고 위엄을 보였다. 그들의 찬란한 깃 발과 번쩍거리는 검빛이 석양에 비치어 여름 구름의 뱃경과 아울러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였다.
대동강상의 강화 담판의 파열과 그날 석양의 적병의 시위는 왕이하 조선의 조정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평양을 버릴 것은 이미 결정되었다.』
유월 십 일일 미명에 왕은 영의정 최홍원(崔興嫄). 우의정 유흥(兪泓). 전 대신정철(鄭澈) 등을 데리고 소리 없이 칠성문을 빠져 쫓기는 길을 나섰다.
이렇게 몰래 떠나는 뜻은 백성들을 무서워함이었다. 바로 그저께 백성들을 향하여 몸소 평양을 지킬 것을 서약하지 아니하였는가. 이제 도망군이 길을 떠나면서 첫 번째로는 백성들을 대할 면목이 없었던 것이었다. 따르는 신하들 중에도 가장 백성을 두려워한 이는 정 철과 유 홍이었다.
매전은 북도를 향하여 그저께 저녁에 도망군의 길을 떠나고 이제 세자를 데리고 초조한 도망의 길을 떠나는 왕의 눈에는 눈물이 있었다. 왕의 일행은 철옹성(鐵甕城)이라고 일컫는 영변(寧邊)으로 향하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