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76: 21

두 배에 탄 사람이 파차에 잠깐 주저한 것은 어느 편이 어느 편 배에 오를까 함을 정치 못함이었다.

평조신과 중 현소의 일행은 마침내 이덕형(李德馨)으 배에 올랐다. 이 덕형은 평조신과 현소의 낯을 알았다. 작년에 그들이 대마도주 평의지(平義智 == )의 사신으로 왔을 때에도 이 덕형은 그를 접대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덕형과 조신은 왜학 통사를 통하여 마치 전장에서 만난 적국 사람들이 아닌 듯이 웃고 피차에 인사를 하였다 현소가 먼저 말을 내었다.

『두 나라가 간패로 서로 대하게 된 것은 참으로 중원에 조공하려는 것 밖에 없는데 귀국이 그것을 허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일이 이에 이른 것이요.

지금이라도 귀국이 일본에 중원에 조공할 길만 빌려 주면 무사할 것이요.』

하였다. 덕형은.

『황조(皇朝 == 명 나라)에 조공을 청하려면 공손히 할 길이 있을 터인데 왜 이름 없는 군사를 끌고 이웃 나라를 침노하오? 만일 진실로 황조에 조공할 길을 트기를 원하거던 곧 군사를 거두고 다시 오오.』

하고 준질히 책망하였다. 조신은 성내는 빛도 없이.

『귀국에서 일본의 청을 들어 중원에 가는 길을 빌린다면 곧 군사를 거두겠으나 그 허락을 받기 전에는 거둘수 없소.』

하였다. 이모양으로 덕형과 조신과는 서로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여 타협점을 발견할 길이 없었다.

조신은 임진강(臨津江)에서도 군사만 물리길 빌리기를 허락하겠다는 조선측의 말에 속았노라 하고. 덕형은 군사를 물린다기에 믿었더니 도리어 복병을 하고 있다가 이편 군사를 역습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여 서로 약속을 저버린 것을 책하였다. 이리하여 피차에 어성은 높아 가고 감정은 흥분되어 조신은 마침내.

『지금 뒤에 삼십만 대병이 있고 또 십만 명수군이 전라도. 충청도를 돌아 평안도로 올 터이니 그리 되면 다시 용서가 없을 것이요. 귀국 왕을 사로잡아 항서를 씌우는 자리에서 대감도 다시 만납시다.』

하고 호기를 부렸다.

덕형은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이제 며칠이 아니하여 『천병(天兵== 명나라 군병) 백만이 올 터이니 그때에 후회하지 말라.』

하였다. 이러고 조신과 현소는 자기네 배로 돌아가고 덕형도 연광정(연광정)으로 돌아 왔다. 연광정에 앉아서 하회를 기다리던 윤두수(尹斗壽). 류 성룡(柳成龍) 이하 여러 사람들은 강중에서 이덕형과 평 조신의 높은 어성을 가끔 들었다. 이렇게 유월 십일의 대동강상의 강화 담판은 파열이 되었다.

이 기회에. 오월 십 육일 임진강(臨津江)에서 소서행장(小西行長)이 평 조신(平調信 == )을 시켜 조선 조정에 보낸 편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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