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의 말 한마디.
『우리나라에 대한 의심이 매우 깊은 모양이요.』
는 왕과 그를 따르는 무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평양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평양에 주저앉으려 한 것도 명 나라 구원병을 믿은 것이다. 이제 만일 명나라가 우리 나라를 의심한다 하면 나무에도 돌에도 붙일 곳이 없다고 이 무리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내 힘으로 해낸다는 생각은 이 무리의 마음속에는 나 본 일이 없고. 언제나 저는 가만히 앉고 남이 다 해 주기를 바라도록 대가리가 생신무리들이다.
『피난 가자. 산골짝으로 가서 목숨을 부지하자.』
하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소원이요. 정신 작용의 전체였다. 차차 꽁무니를 빼는 자가 생기고 왕의 마음도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이런 줄도 모르고 백성들은 왕이 평양을 지킨다는 성명을 듣고 다들 피난처로부터 성중으로 돌아 왔다. 그래서 평양 성중에는 빈 집이 없도록 사람이 찼다.
『상감님이 평양은 안 떠나신다.』
하는 말을 부로들은 가가호호에 돌아 다니며 개유하였다. 상감님이 평양을 안 떠난다는 것은 곧 죽기로써 평양을 지킨다는 말과 같았다.
그러나 당장 임 세록이 조선을 의심하였다는 말을 들은 대관의 무리들은 대동강 건너편에 적병의 그림자가 하나씩 둘씩 늘어가면 갈수록 겁이 나서 식불안 침불감 하였다.
이때까지에 전라 좌수 수군 절도사 이순신(李舜臣)이 거제도(巨濟島) 연해에서 여러 번 승전하였다는 장계가 오나 조정에서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류 성룡이 수군이 필요함을 누누이 말하였으나 아무도 귀를 기울이는 자가 없었다.
하루는 적병의 한 떼가 대동강 저편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이편 형편을 살피는 것이 보였다. 이것을 보고 적병의 총공격이 있을 줄 알고 왕은 은밀히 재신 노직(노직)을 시켜 종묘와 사직의 위패와 궁인을 보고 적병의 총공격이 있을 줄 알고 왕은 은밀히 재신 노직(노직)을 시켜 종묘와 사직의 위패와 궁인을 호위하여 칠성문으로 나가려 하였다. 이것을 본 평양 백성들은 손에 칼과 몽둥이를 들고 길을 막고 노직. 궁인 할 것 없이 함부로 두들겼다. 이 판에 종묘와 사직의 위패가 땅에 떨어져서 굴렀다.
백성들은 일행 중에 있는 노직이와 재신들을 가리키며.
『이놈들 평일에 국록을 도적해 먹고 이제 와서 나라를 망치고 백성을 속이니 너희같이 죽일 놈들이 또 어디 있단 말이냐.』
고 고함을 쳤다. 행궁 곁에도 백성들이 부녀와 어린 아이들까지 데리고 모여 들어서 모두 발을 구르고 입에 거품을 물며.
『평양을 안 지키고 달아나겠거든 무슨 까닭에 참땋게 피난 가 있는 우리들을 속여서 불러 들여다가 적병의 손에 어육이 되게 하고는 저희만 살겠다고 달아나? 이놈 간신놈들 나서라! 네놈들의 모가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가만히죽을 줄 알았더냐?』
하고 아우성을 하였다. 행궁 안에서는 백성들이 일어나 반란을 일으킨다 하여 처음에는 군사로 하여금 무찌르려 하였으나 군사들이 도리어 백성들에게 물리침을 당할 뿐더러. 더러는 도리어 백성들 편이되므로 정 철 이하 대관들은 행궁 안에 서서 낯빛이 흙빛이 되어 떨고만 있고. 왕도 어찌할 발를 모르고.
『성룡을 불러라. 성룡이 어디 갔느냐?』
하고 애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