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일일에 명나라 요동도 사사 진무( ) 임 세록 이는 (林世祿) 조선의 일본군의 형편을 살피러 왔다. 왕은 그를 대동관(大同관)에서 접견하고 적병의 흉포함과 나라의 흥망이 경각에 달렸으니 명 나라에서 곧 구원을 보내어 주기를 간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임세록은 가다 부다 하는 말을 하지 아니하였으나 그 말하는 눈치를 보건대 조선조정 말을 믿지 아니하는 모양이었다. 임 세록의 이 태도는 왕과 및 대관들의 마음을 극도로 불안하게 하였다.
이에 왕은 명장의 맘을 돌리기 위하여 얼마 전에 파직하였던 전 영의정 류성룡으로 하여금 당장(명 나라 사람을 당인. 명나라 군사를 당병. 명 나라를 당장이라고 부른다)을 접대하는 일을 맡겼다. 비록 평소에 류 성룡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자라도 이 일에는 류 성룡을 반대할자가 없었다.
류 성룡은 당장 임 세록에게 조선의 현상과 왜정을 간곡하게 설명하였다.
임 세록은.
『왜병이 부산에 왔단 말을 들은 지 며칠이 안되어서 국왕이 경성을 버리고.
또 며칠이 안되어서 개성을 버리고. 또 며칠이 안되어서 왜병이 벌써 평양에 왔다고 하니 어찌 그렇 수가 있소? 아무리 왜병이 갑작스럽게 났다기로소니 이럴수야 있소? 또 조선에도 사람도 있고 군사도 있으려든 이렇게 빨리 적병을 끌어 들이는 수야 있소?』
하는 임 세록의 말 속에는 조선이 왜병을 인도하여 명 나라를 침범하려는 불측한 뜻을 가졌다는 소문(명 나라에는 그때에 이러한 소문이 떠돌았다)을 믿는 듯한 기미를 머금었다.
류 성룡은 글력으로 조선이 왜와 통한 사실이 없는 것을 변명하였다. 그리고 왜병이 대동강 저편에 와 있는 것이 사실이란 것을 실지로 보이기 위하여 류 성룡은 임 세록을 데리고 연광정(연광정)에 올라 경치와 형세를 가리키며 설명하였다. 일굴 수상이던 늙은이가 일개 젊은 외국 군관에게 호의를 얻으려고 애쓰는 양은 눈물겨운 일이었다. 임 세록은 당장인 것을 자세하고 가끔 류 성룡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언사와 행동을 하였으나 아무도 감히 탄하지는 못하였다.
류 성룡이 바야흐로 인 세록에 세 평양의 형세를 설명할 때에 마침 까만 왜병 하나가 강쪽 수풀 속으로 번뜻번뜻 보이더니 이윽고 이삼인이 뒤이어 나와서 혹은 앉고 혹은 서고. 그 한가한 모양이 마치 길을 가다가 쉬는 것과 닽았다.
성룡이 세록을 보고 손으로 강 저쪽을 가리키며.
『옳지. 나왔소. 저게 왜병 척후요.』
하였다.
세록이 연광정 기둥에 기대어 성룡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며.
『거 어찌 왜병이 그리 적소?』
하고. 성룡의 말을 믿지 아니하는 빛을 보인다. 성룡은.
『아니요. 왜가 본래 교사해서 대병이 뒤에 올 때에는 반드시 앞에 정탐을 보내는 법인데. 정탐은 언제나 이삼인에 불과하는 법이요. 만일 몇 명 안된다고 마음을 놓았다가는 반드시 적의 꾀에 빠지는 것이요.』
하고. 사실대로 정성껏 설명하였으나 세록은 말같지 아니한 소리라는 듯이 픽 웃고.
『그렇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임 세록은 돌아가서 회보할 길이 바쁘다고 평양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임 세록이 떠난 뒤에 왕과 여러 대관들은 성룡을 보고.
『어떻게 되었소? 당장이 의심이 풀려서 갔소? 구원병이 곧 올 모양이요?』
하고. 조바심을 하고 물었다.
『우리 나라에 대한 의심이 매우 깊은 모양이요.』
하는 성룡의 말은 왕 이하 여러 대관의 가슴에 큰 못을 박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