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이렇게 백성에게 약속하였으니 싫더라도 평양을 지키는 모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좌의정 윤두수(尹斗壽)로 수성 대장(守城大將)을 삼아 도원수 김명원(金命元). 순찰사 이원익(李元翼)을 거느려 평양을 지키게 하였다.
이렇게 장수가 부족한 판에 포망에 패랭이 쓰고 짚신 감발에 거지 모양을 차린 순변사 이 일(李鎰)이 부하 오륙인을 거느리고 평양에 들어 왔다. 그는 상주(尙州)에서 적병에게 패하여 벌거벗고 머리를 풀고 도망하여 충주(忠州) 신입(申砬)에게로 갔다가 신 입이 충주 탄금대에서 죽고 군이 흩어지매. 강원도.
함경도. 황해도를 산속으로 숨어 천신만고로 평양까지 온 것이었다. 그는 충주 패보를 서울에 보낸 원훈이었고. 충주 패보는 오월 그믐날 왕으로 하여금 서울을 떠나게 한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이었다.
패군장인 순변사 이 일(李鎰)이 거지 꼴을 하고 평양에 오매. 원체 장수가 귀하던 터이라 그의 패군의 죄를 논하는 이가 없고 도리어 환영하였다. 적병이 황해도를 지났다는 말을 듣고 인심이 더욱 불안하던 이때에 비록 패군지장이라 하더라도 이 일같이 이름 있는 장수를 얻은 것이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일의 그처럼 초라한 꼴과 초췌한 얼굴을 보고 류 성룡.
『이곳 사람들이 자네를 크게 믿는데 이처럼 모양이 초췌해서야 뭇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가 있나.』
하고. 자기의 행리를 뒤져서 남철의 한 벌을 내어 입히니 다른 대관들도 혹은 총립을 주고 혹은 체영을 주어 일습을 갈아 입고 나니 면목이 일신하였다.
그러나 신을 벗어주는 이가 없어서 짚신을 신은 것을 보고 류 성룡이.
『비단옷에 짚세기가 잘 아니 어울리는 걸.』
하고 웃으니. 좌우가 다 대소하였다. 이렇게 쫓기는 생활에 의외의 웃음판이 벌어졌을 때에 황해도로 타보 갔던 벽동 토병(碧憧土兵)임 욱경(任旭景)이 달려 와 적병이 벌써 황해도 봉산(鳳山)에 돌아 왔단 말을 보하였다.
『봉산이란 아직 멀었지?』
하고 일좌가 눈이 둥그레 해였다.
류성룡은 수성 대장인 좌의정 윤두수(尹斗壽)를 보고.
『적병이 봉산에 왔으면. 척후는 벌써 강건너 와 있을 것이요. 특별히 영귀루(영귀루) 아래서 강이 두 갈래로 갈려서 얕은 여울이 되어서 길만 알면 걸어 건널 수가 있을 것이니까 만일 되어서 길만 알면 걸어 건널 수가 있을 것이니까 만일 적이 우리 사람 향도를 얻어서 몰래 건너 와서 갑자기 엄습하면 성이 위태할 것이요 마침 이 . 순변사가 왔으니 곧 보내어 여울을 지키게 하여서 불측지변을 막는 것이 어떠하오?』하였다.
윤두수는.
『대감 말이 옳소.』
하고. 곧 이 일더러.
『그러면 자네가 곧 가서 여울목을 지키도록 하게.』
하였다.
『무어 어느새에 그놈이 올라구요.』
하고. 이 일은 여전히 적병을 우습게 보는 어조였다. 류 성룡은 대단히 못마땅한 듯이 양미간을 찌푸리고 이 일을 한번 흘겨 보았다. 그는 이 일이 상주에서 패한 것이나. 신 입이 충주에서 패한 것이나. 「척후(斥候)」라는 것을 모르는 때문인 줄을 안 까닭이었다.
이 일은 류 성룡이 못마땅해하는 눈치를 보고.
『가라시면 곧 영귀루 아가한테로 가겠읍니다마는. 소인 혼자서야 지킬 수가 있소. 소인이 데리고 온 군사라고 열이 다 못 되니 군사를 주시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