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하는 적병을 가만히 보고만 앉았단 말이요?』
하고 신 할(신할)은 얼굴이 주홍빛이 되어서도원수 김명원(金命元)에게 대들었다. 경기 감사 권징(權徵)도 신 할의 의견에 찬성하여.
『급격 물실이란 이런 것을 두고 이른 말이요. 도망하는 적병을 그대로 놓아 보내면 무슨 면목으로 성상을 대하오?』
하고 추격설을 주장하였다. 김명원은 원래 자기의 주장을 끝까지 우기어 내일 의지력이 없는 사람인 데다가 신할과 권징의 주장에 기가 질리어서 굳세게 막지를 못하고 다만.
『적병은 그렇게 쉽게 볼 것이 아니요.』
하고 입을 다물었다.
『대감을랑 여기 편안히 앉아 계시오. 소인은 적을 치러 가겠소.』
하고 신할은 한강의 패장 김명원을 비웃는 듯이 한번 흘겨 보고 자리를 차고 나왔다. 권징도 신할을 쫓아 나왔다.
신할은 도원수의 승낙도 없이 강변에 매어 둔 배들을 꺼내어 군사를 싣고 의기양양하게 임진강의 물결을 헤치며 건너 갔다. 도원수 김명원은 자기의 절제를 받지 않고 자행자지하는 두 장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큰일 났군. 저녁때가 다 못되어서 적병이 임진강을 건너 오겠군.』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도원수다. 신 할. 권징을 억지로 내려 누를 수도 있었고 또 군법을 시행하여 목을 베일 권력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우유 부단하는 성품과 한강의 패전이라는 허물은 그로 하여금 그러한 권력을 부릴 의지력을 잃게 하였다.
신할과 권징이 도원수 김명원의 막하게 있던 군사대부분을 제 마음대로 가지고 강을 건너가 바로 적병이 물러간 길을 추격하려고 먼지를 일으킬 때에.
한 응인(韓應寅)이 평안도 강변 정병 삼천명을 몰아서 임진강에 다다랐다.
응인은 김명원을 만나 왕이 자기에 준. 도원수의 절제를 받지 말라는 패를 내어 보이고 마치 도원수 김명원이 자기보다 자리가 낮은 사람이나 되는 듯이.
상관이 하관에게나 묻는 듯이 적병의 형세를 물었다.
왕이 한응인에게도원수인 자기의 절제를 받지 말라는 패를 준 것을 볼때에.
또 한 응인이 안 하게 무인하게 연치로나 관등으로나 그러할 수 없는 처지에 자기에게 심히 무례함을 볼 때에. 모욕감과 분노로 전신이 싸늘하게 식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김명원은 이 모든 모욕을 은익하지 아니치 못하였다.
김명원은 자기가 적병을 십여 일이나 임진강에서 막던 말과 적병이 오늘 돌연히 여막을 불사르고 군기와 군자를 다 싸싣고 임진강을 떠난 것은 결코 도망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무슨 계교가 있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신할과 권징이 자기의 말도 듣지 아니하고 자의로 월강하여 적을 추격한다는 말을 대강 하였다.
한응인은 김명원의 말을 듣고 신할이 앞서 간 것을 분하게 여겼다.
『내가 경성을 회복하거든 대감은 천천히 뒤따라 오시오.』
하고 한 응인은 저편에 군사 싣고 건너 간 배들을 부르고 자기가 거느린 군사더러 곧 도강하기를 제촉하였다.
평안도 군사 중에서 나이 지긋한 군사 한 사람이 응인의 앞에 나서며.
『안전께 아뢰오. 군사가 먼 길을 걸어 와서 다리가 앞은 데다가 아직 밥도 먹지 아니하옵고. 또 기계도 정비하지 아니하옵고. 그뿐 아니라 후군도 아직 다 들어서지 아니 하였을 뿐더러. 적의 정위도 아직 알 수 없사온즉 오늘 하루를 여기서 군사를 쉬면서 척후를 놓아 적성을 알아 본 연후에 명일 형세를 보아 전진함이 옳을까 하오.』
하고 아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