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양으로 서울이 함락되니. 왕이 또 쫓기는 길을 떠날 것은 물론이지마는 왕은 갈 데로 간다 하더라도 군략상 임진강을 지키기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번 한강의 요해를 잃어 버리면. 다음에 지킬 것은 임진강이다.
만일 임진강에서도 적병을 막지 못한다하면. 그다음에 버티어 볼 데는 대동강을 앞둔 평양 밖에는 없다. 그리고 만일 평양까지 잃어버린다 하면. 이쫓기는 무리들은 마침내 명 나라 황제에게 살려 줍소사 하고 빌고 붙든지. 그렇지 아니하면 처자와 신주를 끌고 압록강을 건너. 그리고 좋아하던 명나라에 내부(內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나.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셋 밖에 있느냐.
그것은 비둔한 몸뚱이와 처자와 그리하고 신주가 아니냐. 강산과 동족은 그들을 먹이기에 필요한 모이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무려나 임진강을 지키는 것은 필요하였다. 경성을 점령한 적군은 반드시 왕을 사로잡으려고 승승 장구하여 임진강을 건널 것이다.
경성 함락의 경보를 듣고 대관의 무리는 왕을 모시고 또 개성을 떠났다.
대관들 중에는 함경도로 가자는 자가 많았으나 류 성룡이 반대하였다. 함경도로 가자는 대관들의 동기는 아무 다른 계책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만 자기네 식구들을 먼저 함경도로 보냈으니까 그것을 만나 보자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함경도로 갔다가 만일 거기도 적병이 들어오면 다시는 쫓겨 갈 데가 없다는 이유로 평양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평양에 갔다가는 다시 의주로 도망할 수도 있고 의주서도 못배기게 되면. 평생 소원인 명 나라로 도망할 수 있는 까닭이었다. 류 성룡이 속으로 믿는 것은 명 나라 청병이요. 이 항복의 무리가 믿는 것은 바로 명 나라로 도망하는 것이었다.
어찌나 급하였던지 개성을 떠날 때에 종묘 신주를 잊고 떠났다.
보산역(寶山驛)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어떤 종실 한 사람의 머리 속에 종묘 신주를 개성 목청전(穆淸殿)에 내어 버리고 왔다는 생각이 나서 울고불고 왕께 아뢰었다. 그래서 밤으로 개성에 달려 가서 종묘 신주를 봉환하였다.
평산(平山). 봉산(鳳山). 황주(黃州). 중화(中和) 등을 지나서 이렛만에 왕의 일행이 대동강을 건너 평양에 들어갔다.
이렇게 왕이 평양으로 읆고 전략으로 임진강을 지키는 것을 주장 삼았다.
그러나 임진강을 지키는 데도 무슨 일정한 방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는 적병의 수효가 얼마요. 병기가 어떠한 것이니 싸워야겠다 하는 것을 생각할 위인은. 왕의 좌우에 있는 대관이란 무리들 주에는 하나도 없었다. 있다 하면 류 성룡이라고나 할까. 그들은 일생에 계획이라든지 주장이라든지를 가져 본 일이 없는 무리다. 그들은 자기 일개의. 기껏행 자기의 조그마한 당파의 이익. 그것도 목전의 이욕을 위하여 고식적으로 준동할 뿐이었다. 그 준동도 적당한 길을 밟아서 정정 당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과 음모와 음해의 비열한 수단으로 하였다. 그중에 그래도 나라를 안중에 두는 이는 류 성룡 하나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류 성룡은 미움을 받았다. 닭의 무리에 끼인 학은 닭들의 배척을 아니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임진강을 지키는 데도 이 무리들의 하는 일은 그들의 성격(이것은 조선 민족의 성격은 아니다. 조선 민족 중에는 이 순신 같은 사라도 있지 아니하냐)을 유감없이 폭로시킨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어떤 모양으로 임진강을 지키려 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