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동네에 사람을 보내어 보았으나 반 이상은 나 피난을 가버리고. 설사 남아 있는 백성들이 있댔자 왕과 대관들이 저꼴이라면「잘쿠산이」할 뿐이요.
누구 하나 나서서 그들의 괴로움을 덜어 주려는 이는 없었다.
웬 농부 하나는 관인을 보고 꾸짖었다.
『잘들 호강했지. 저희들이 우리 위해 한 일이 무에야? 저희들이 생전에 누구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해보았던가.』
『밭을 한 이랑 갈았나. 논에 풀 한 대를 뽑아 보았나. 백성들의 등을 긁고.
나라를 망해 놓은 것 밖에 한 일이 무에냐 말야. 무슨 낯에 누구더러 오라 가라.......』
백성을 짓발하러 갔던 관인은 겁이 나서 동파역으로 돌아 와 웬 농부 하나가 꾸짖던 말을 일동(왕까지도 한방에 앉은 일동이다)에 보고하였다. 모두 말 없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반나절이 되어서 황해 감사(黃海監司) 조 인득(趙仁得)이 본도 병마를 거느리고 왔는데. 서흥 부사(壻興府使)남의(南義)가 군사 수백인과말 오륙십 필을 가지고 먼저 왔다. 왕과 일행이 재생의 기쁨을 맛보았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왕은 초췌한 얼굴에 다시 살아 난 웃음을 띄우고 친히 남의의 손을 잡고 그 충성을 칭찬하였다.
『자. 떠나자.』
이만하면 왕의 행차의 부끄러울 것이 없었다. 일행 중에 누구가 우선 아까 버릇 없는 말을 한 늙은 농부를 잡아다가 물고를 내이고 가자고 하였으나. 지금 그러할 사이가 있느냐 하여 파의가 되었다.
일행이 떠나려 할 때에 사약(사약) 최 언준(崔彦俊)이 가 나서며.
『궁중인이 어제도 종일 못 먹고 오늘도 종일 못 얻어먹었으니. 어떻게 길을 가오? 어디서 쌀을 좀 얻어다가 요기나 하고 가야겠소.』
하였다.
이말에 잠시 배고픈 줄도 잊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배가 고파져서 사지에 기운이 빠져서 땅 속으로 찾아 들어가는 듯하였다.
황해도 군사들이 가진 군량 대소미 섞인 쌀 두어 말을 얻어서 일지도 아니하고 밥을 지어 우선 궁인들만 요기를 시켜 가지고 길을 떠나 오시쯤 하여 초현참(招賢站)에 다다르니. 거기는 황해 감사 조 인득이 백관들은 서울을 떠나서 쫓기는 길을 나선 후로 비로소 밥을 얻어 먹었다. 모래가 반이나 섞이고 밑은 타고 위는 설어 단 냄새가 나는 밥. 게다가 구더기가 둥둥 뜨는 된장국.
그러나 이것도 서울서 머던 고량진미보다 맛이 좋았다 저녁때에 개성에 다 달라서 왕은 남문 밖 공서에 들고 따라 가는 백관들도 각각 이웃 민가에 숙소를 정하였다. 길에서 비를 맞고 밥을 굶고 말 탄 자는 꽁무니가 아프고 걸은자는 발이 부풀어 쥐죽은 듯하던 작자들도 개성 같은 큰 도시에 표안히 자리를 잡고 보니. 새로 기운들이 나서 저녁 밥상을 물리기가 바쁘게 동인.
서인에 당파 싸움을 벌리기 시적하였다. 벽제관과 임진강에서도 무슨 생각이 났던지 달아나지 아니하고 따라왔던 몇 개 대간이라는 무리들이 기세가 당당하게 영의정 이 산해를 탄핵하였다. 그 이유는. 영의정이 국사를 그릇하기 때문에 나라가 적의 고초를 당한다는 것이었다. 아아. 그들은 서울서 개성까지 오는 동안에 저 배 고프고 제 다리 아픈 책임을 영의정 이 산해라는 동인 늙은이에게 풀려 한 것이다. 그들은 이 산해라는 동인 늙은이에게 풀려 한 것이다. 그들은 이 산해보다도 류 성룡을 더 미워하였지마는 한꺼번에 둘을 맞히려는 것은 전술상 불리한 줄을 알기 때문에 우선 이 산해를 건 것이었다.
그러나 왕은 듣지 아니하였다.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한 늙은이를 잘 자리를 잡는 길로 파직한다는 것은 보통 인정으로 못할 일이었다. 왕에게는 이 인정이란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