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사람이 반 넘어 개 흙투성이가 되어서 겨우 임진강에 다다랐다. 강물은 비에 불어서 흐린 물결이 소리를 치며 달려갔다. 그것은 실로 처참한 경치였다.
천신 만고로 왕은 배에 올랐다. 따르는 신하들도 반신은 물에 담그며 배에 오르고 부녀들은 마치 송장 모양으로 정신없이 남자들에 안기기도 하고 끌리기도 하며 배에 올랐다. 이 판에 하나도 떠내려 간 사람이 없는 것이 믿을 수 없이 이상한 일이었다. 왕은 작은 배의 뱃전을 꽉 붙들고.
『수상과 좌상은 어디 갔나?』
하고. 마치 잃어 버린 의지할 사람을 찾는 듯이 이 산해와 류성룡을 불렀다.
두 사람이 왕의 곁에 가매 왕은 한 손에 이 산해를 한 손에 류 성룡을 팍 붙들었다. 두 사람은 왕이 가장 신임하는 신하였다. 이것을 보고 창황중에도 서인(西人)들은 동인인 이 산해와 류 성룡을 밉게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 도승지 이 항복(李恒福)만은 그렇지도 아니하나. 이조 판서 유홍(兪泓)과 찬성 최홍원(최홍원)은 이산해. 류 성룡을 아무러한 기회에라도 한번 골리려는 생각을 임진강 비를 맞으면서도 떼어 놓지 아니하였다.
이럭저럭 강은 건너 왔다. 그러나 이 어두운 그믐밤에 비까지 내리니 지척을 분별할 수 없었다. 어디가 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유 성룍은 도승청(渡丞廳)에 불을 놓기를 명하였다. 도승청이란 임진강 나루를 맡은 도승이라는 벼승하치의 관정이다. 비가 오건마는 이 묵은 큰 집에는 불이 붙어 강북까지도 환히 비치어서 길을 찾을수가 있었다. 이것은 대단히 좋은 묘책이라고 모두 칭찬하였다. 왜 그런고 하면. 이 도승청에 불을 놓기 때문에 쫓겨가는 길을 찾은 것도 고마운 일이어니와. 적병이 뒤를 따를 때에 떼를 모을 재목을 없이 한 것도 좋은 일이었다.
초경에 동파역(東坡轢)에 다다르니 거기는 파주 목사(波州牧使) 허진(許晋).
장단 부사(長端府使)구 효연(具孝淵)이 지대 차사원(支待差使員)으로 이곳에 있어서 왕이 하루 먹을 음식을 갖추어 음식을 갖추어 가지고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굶고 길을 걸은 호위인(扈偉人)들은 역사에 들자 음식 냄새를 맡더니 문득 미친 사람같이 날뛰어서 부엌으로 달려들어 주먹 다짐으로 서로 빼앗아 먹고 상감 자실 것과 점잖은 대관들 먹을 것이라고는 한 알갱이도 남기지 아니하였다. 입에 밥풀을 발라 가지고 한 주먹이라도 더 먹겠다고 아우성하는 꼴은 과연 아귀인 듯하였다.
『조곰도 안 남았나?』
하고 배고픈 왕은 수상을 향하여 물었다. 이 산해와 류성룡은 왕의 이 말에 낙루하고 궁녀들은 통곡하였다.
『왜들 우느냐?』
하고 왕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왕과 대관들은 이 밤을 굴어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파주목사 허진은 왕에게 져녁밥 못 드린 죄를 두려워 하면 도망하고.
상감이 잡숫기도 전에 먼저 다 먹어 버린 호위하는 군사들은 먹고 나서야 죄 지은 줄을 알고 에라 빌어 먹을 것. 따라 가면 별수가 있느냐. 경칠 것 밖에 남은 것이 있느냐 하고 밤 동안에 다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이튿날인 오월 초하루에 왕과 그 일행이 길을 떠나서 개서으로 향하려 하나.
서울서 데리고 온 군사와 나중에 경기 감사 권징이 데리고 온 이졸들도 말을 훔쳐들 타고 하나 없이 달아나서 호위할 사람이 있나. 손발 잘린 사람들 모양으로 우두커니 동파역에 앉아서 행여나 누가 오나 하고 기다리기를 저녁때까지 하였다.
『그냥 걸어서 떠나지?』
하고 왕은 적병이 따라 올 것이 두려워서 재촉하나 일리를 못 걸어 본 왕이나 왕비나. 늙은 재상들이 걸음을 걷자는 것은 망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