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신이 바다에서 적의 수군과 싸워서 연전연승하는 동안에 왕과 및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어찌하였나. 장차 한산도(閑山島)의 큰 해전을 말하기 전에 그동안 왕이 쫓겨 가던 이야기를 하자.
사월 삼십일. 전라 우도 수군 절도사 영 앞에 이 순신 막하의 수군이 진을 치고 장차 전선을 향하여 출동하려고 파리강의 대회의를 하던 날 순변사 이 일(李鎰)의 상주(尙州) 패군 장계를 보고 비 오는 밤에 왕이 서울을 버리고 비를 맞으며 돈의문을 나서서 서쪽으로 서쪽으로 쫓겨 가는 지향없는 길을 떠났다는 것은 벌써 말하였다. 바길을 걸어 박석 고개(고개)에 이르니 날이 새었다. 고개에 올라 서서 장안을 돌아보니 화광이 충천하였는데 니것은 백성들과 군사들이 원망의 초점이던 남대문 안 창고에 불을 놓은 것이었다.
반석 고개를 넘어 돌다리(돌다리)에 이르니 다시 비가 오기 시작하였다. 경기 감사 권징(權徵)이 군사 수십인을 데리고 따라 왔다. 이때에는 수인이라는 것도 적지 아니한 것이었다. 모두 슬몃슬몃 달아나는 판에 적지 아니한 기쁨이 되고 의지가 되었다.
벽제관(碧蹄館)에 이르러서는 비가 퍼붓는 듯하여 도저히 더 갈 수가 없었다.
『잠간 비를 거어 가심이 어떠하올지?』
하고 웃소매와 수염에까지 물이 줄줄 흐르는 영의정 이산해(李山海)가 왕께 아뢰었다. 왕도 입은 옷이 온통 살에 달라 붙었다.
『그렇게 지체해서 되겠소?』
하면서도 왕도 떨리는 사지를 진정치 못하여 벽제역(碧蹄轢)에 들어 갔다.
그러나 역에는 역승(역승)도 역졸도다 달아나고 오직 눈꼽 낀 노파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죽기를 무섭게 여기지 아니하는 사람은 이 노파뿐인 듯하였다. 노파는 왕이 어느 양반인지도 모르는 듯이 말 없이 바에 앉아서 이 이상 행인 일행을 그리 흥미도 없는 듯이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왕은 잠시 들어 앉았으나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를 아니하여 곧 가자고 재촉하였다. 일행은 또 이곳을 떠났다. 말들도 밤새 먹지도 못하고 달려 와서 고개만 내어 두르고 굽으로 땅을 팔 뿐이요. 잘 가려고 하지 아니하였다. 왕을 따르는 귀족. 고관들도 혹은 발이 부르렀다고 하고 복통이 난다고 하여 일행에서 떨어져서 서울로 돌아 가기를 원하였다. 그들은 서울에 남겨 두고 온 좋은 집과 풍성한 먹을 것과 아름다운 처첩을 생각하였다. 따뜻한 술과 몸 보하던 약을 먹을 생각을 하면 껄렁껄렁하게 되어 쫓겨 나는 왕을 따라 이 찬 비를 맞고 가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었다. 또 실상 말 하나도 얻어 타지 못한 군졸들은 발이 부르트고 다리가 나무때기 같이 되었다 걸을래야 걸을 수가 없는 자도 있었다.
종묘 위패를 몰아 태운 가마 하나가 앞을 서고 그 다음에 말을 탄 왕이 서고 다음에 영의정 이 산해(李山海).좌의정 류성룡(柳成龍)등. 종친들이 서고 중간에 왕비 기타 종실 부인들과 . 몇 개 궁녀들이 혹은 타고 혹은 긷고. 그 뒤를 이러 금관자. 옥관자들이 섰다. 얼마 가다가 뒤를 돌아 보면 몇 명이 떨어지고 또 얼마를 가다가 뒤를 돌아 보면 또 몇 명이 떨어지고 또 얼마를 가다가 뒤를 돌아 보면 또 몇 명이 떨어지고 또 얼마를 가다가 뒤를 돌아 보면 또 몇 명이 떨어졌다. 심지어 시종(侍從)이니 대간(臺諫)이니 하는 자글까지도 많이 떨어져 버리고. 일행의 사람 수효는 갈수록 줄었다. 마치 양식 준비 없는 앞길을 위하여 일행을 주리는 것 같았다.
혜음령(혜음령)에를 올라 갈 때에 빗방울이 굵기가 우박과 같은 것이 때마침 부는 서풍에 왕 이하로 일행의 면상을 사정 없이 두들겨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약한 말을 탄 궁녀들은 옷자락을 머리에 써서 빗방울의 아픔을 막으면서 소리를 내어서 통곡하였다. 날이 저물었다. 내려 두드리는 빗발 사이로 호호탕탕한 임진강(臨津江)이 번득거렸다.
『저 강만 건너면야.』
하고 왕이나 신하나 이 강을 건너는 것이 큰 피난이나 되는 것같이 생각하였다. 그러나 잔뜩 물을 먹은 강 언덕의 흙은 결코 일행을 환영하지 아니하였다. 무론 땅에는 말 발굽이 쑥쑥 들어 가고 단단한 땅은 얼음판과 같이 미끄러워서 말들은 무릎을 꿇고 사람들은 나자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