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신은 함대를 둘로 갈라 가덕(가덕). 천성(천성). 좌도 몰운대 (左道沒雲臺) 등지를 좌우 양편으로 수사하였으나 적선의 그림자도 없었다. 그 지방 사람들에게 물으면 이곳저곳에 집을 잡고 웅거하던 적선들이 그동안 자기네 주사가 연전 연패하는 소식을 듣고는 모두 부산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그놈들 다 달아났소.』
하고. 녹도 만호 정운은 들먹거리는 팔을 둘 곳이 없는 듯이 멀어 가는 목운대를 바라보고 뽐내었다.
초저녁에 거제 온천도 송진개(溫川島 松津개)에서 밤을 지내고 이튿날 유월 팔일에 창원(昌原) 땅인 마산포(馬山浦). 안골포(安骨浦).제포(薺浦).
웅천(熊川) 등지에 탐망선을 보내어 적군의 종적을 엄탐케 하고. 본진은 창원 시루섬 남포( )바다에 옮겨서 탐방선들의 회보를 기다렸다.
저녁때에 탐망선들이 다 돌아 왔으나 적군의 종적을 보지 못하였다는 보고뿐이었다.
도로 송진개에 돌아 와 그날 밤을 지내고 이튿날인 유월 초구일 조조에 배를 띄워 고므내( ) 앞바다에 진을 치고 한번 더 소선들을 가덕(加德).
천성(天城). 안꼬래(安꼬래) 등지에 보내어 적의 종적을 엄탐케 하였으나 그림자도 없다는 보고뿐이었다.
『이제는 어찌할꼬? 적의 수군의 소굴인 부산을 칠까 또는 고만하고 파진할까?』
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정운(鄭運). 어 영담(魚泳潭)같이 기운찬 장수들은 이 길로 가서 부산의 적의 소굴을 무찌르자고 주장하였으나. 순신의 이유는 이러하였다. 첫째로 지난 오륙일간 거의 하루도 쉬일 사이 없이 큰 싸움을 하여서양식도 진하였거니와. 사졸이 피곤하고 그뿐더러 사졸 중에는 죽은 자도 있고 상한 자도 적지 아니하니. 이렇게 피곤한 군사를 가지고 오래 준비하여 가만히 쉬고 있는 적과 싸우는 것은 병가의 이른바 이아지로 적피지일( ) 이라 백 번 패함이 있고 한번 이김이 없다는 것이요. 둘째는 양산(梁山)을 가려면 낙동강이 좁아서 배 하나를 용납할둥 말 둥한데. 적선은 미리부터 험한 자리를 잡고 웅거하였으니. 내가 싸우려 하면 저가 나오지 아니할 것이요.
싸우지 못하고 물러 오면 도리어 나의 약함만 보일 것이니. 육지로부터 함께 치는 군사가 없이는 수군으로는 도저히 양산의 적군을 칠 도리가 없고. 또 만일 양산의 적을 그냥 두고 부산으로 향하면 부산의 적군과 양산의 적군이 서로 응하여 타도의 객병이 앞뒤로 적의 엄습을 받게 될 것이니. 이것은 만전지계가 아니요. 셋째로 또 전라 좌병사이 과에 의하건대 서울을 점령한 적병의 조선(漕船 세납쌀 싣고 다니는 나랏배)을 빼앗아 타고 서강으로부터 호남을 향하여 내려 온다 하였으니. 경기도. 충청도에도 수군이 있거던 어느새에 조선을 빼앗길 리는 만무하지마는 의외지변도 없으란 법은 없으니. 그것도 생각하지 아니할 수는 없은즉 아직 가덕(加德)이서에 있는 적을 소멸하고는 이번의 싸움을 거두자는 것이었다. 또 순신은 말하기를. 이번 싸움을 거두자는 것이 삼천명은 넘을 것이요. 또 살아 나서 육지로 도망한 적병들이 우리 주사의 위엄이 어떠한 것을 말하였을 듯하니. 필시 적병이 겁을 내어 가벼이 가덕이편을 엇보지 못할 것인즉. 아직 돌아 가 죽은 군사를 치료하고 군사와 군량을 더욱 준비하여 다시 적의 소굴을 소탕할 준비를 하자고 하였다.
이리하여 유월 초열흘날에 메주목 앞바다에서 파진하고 전라도 우수사 이억기와 경상도 우수사 원균이 각각 제 고장으로 돌아갔다.
원균은 물에 빠져 죽은 적병의 머리 이백여 급을 순신에게서 허락받아 얻어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거제도 우수영으로 돌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