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라. 우도 주사가 아직 안 보이느냐?』
하고. 전선에 앉은 순신은 탐보군에게 물었다.
『아직 오는 배가 안 보이오.』
하는 것은 타보군의 대답이었다. 순신이 전라 우사사 이억기(李億祺)에게 속히 좌수영에서 만나자고 기별한 지가 벌써 닷새가 되는 까닭이었다. 오월 이십 구일! 적선이 사천. 곤양 등지에 횡항하므로 경상 우수사 원균이 적을 피하여 배를 남해 노량(南海露粱)에 옮겼다는 경보가 원균에게서 왔다. 남해 노량진이면 경상 우도와 전라 좌도의 바로 접경이다. 이제는 더 지체할 수가 없었다.
『행선하라!』
하고. 순신은 전함대에 영을 내렸다. 일시에 돛이 달리고 노가 움직였다. 전라 우도 주사가 오기를 기다릴 사이도 없이 순신이 직접 거느린 전선 이십삼척만을 거느리고 노량진을 향하여 떠났다.
순신의 함대가 오는 것을 보고. 원균은 하동(河東)편 노량진 산 그늘 속에 숨었다가 배 세 척을 끌고 나와 순신을 맞았다.
『적선이 어디 있소?』
하는 순신의 물음에 원균은 꼭 어디 있다고는 대답을 못하고 다만 손가락으로 노량 동쪽을 가리켰다. 함대가 노량진 목을 통과하매. 곤양(昆陽) 쪽으로부터 사천(泗川)을 향하고 가는 듯한 적선 중선 한 척을 발견하였다. 그 중선은 바다 가운데를 나서는 것을 무서워하는 듯이 바닷가로 붙어서 살살 피하였다.
『적선이야!』
하는 소리가 장졸들의 입에서 나왔다.
『따라 잡아라!』
하는 순신의 명령이 내렸다. 전부장 방답 첨사 이순신(李純信). 남해 현령 기 효근(奇孝謹) 등이 북을 울리고 기를 두르며 노를 저어 따라 가고 다른 배들은 중류에 떠서 사천을 향하였다. 적선은 마침내 붙잡히게 되어 물에 배를 닿이고 군사들은 내려서 달아나고 배만 내어 버렸다. 이 배를 깨뜨려 불살랐다.
『이번에도 일수가 좋다.』
하고. 장졸들이 기뻐 뛰었다. 순신은 적병이 결코 우습게 볼 수 없음을 말하고 교만 하지 말기를 경계하였다.
창선도(昌善島). 사량도(蛇粱島) 등 크고 작은 무수한 섬들을 띄워 놓은 남해.
고성 간의 바다 사량 바다는 호수와 같이 아름답고 고요하다. 잘 맑은 여름날의 고요한 바다로 소리 없이 미끌어져 가는 배들 그것이 싸움외 살기를 머금은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적병이야!』
하고. 척후선에서 누런 기를 둘렀다. 과연 바라보니. 사천 선창에 굼틀굼틀 철판이나 달아난 험한 산 밑으로 사백여 명이나 될 듯한 적병이 기다랗게 장사진(긴 뱀과 같은 진형)을 벌이고 진에는 붉은 기와 흰 기를 많이 꽂이 현란하기 그지없고. 진 안에 제일 높은 봉우리에는 따로 장막을 치고 그리고 군사들이 분주히 왕래하는 것을 보니 장수의 지휘를 듣는 듯하며. 선창에는 누각처럼 생긴 배 십 이척이 바닷가에 매여 있고 진 친 데 있는 장수 같은 자가 칼을 내둘려 교만한 양을 보인다.
이편 장졸이 분개하여 활을 쏘나 살이 저편까지 및 지를 못하고 또 달려 들어가 불지르려 하나 주수가 벌써 썰물이 되어 판옥선이 들어 갈 수가 없었다.
『뱃머리를 돌려라.』
하고. 순신이 영을 내렸다. 순신의 함대는 바다를 향하고 일제히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