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33: 1

순신은 미리 예비하였던 술과 고기를 올리라 하여. 손수 잔을 들어 제장을 이받았다. 처음에는 나아가기를 원치 아니하던 장수들도 모두 감격하여 나아가 죽기로써 싸우기를 맹세하였다.

오월 초하룻날 경오. 병선이 전양(앞바다)에 모였다. 이날 날이 흐리나 비는 오지 아니하고 남풍이 대단히 불었다. 순신은 진해루(鎭海樓)에 올라 방답 첨사(防踏僉使) 이순신(李純信). 홍양 현감(洪陽縣監) 배흥립(裵興立). 녹도 만호(鹿島萬戶) 정 운(鄭運)을 불러 군사를 의논하였다. 순신은 그날 일기에 이 사람들 이름을 쓰고.

『(.) (다분격하여 몸을 생각지 아니하니. 가위의사로다).』

하고 썼다. 오월 이일 신미. 날이 맑았다. 군관(軍官) 송 한련(宋漢璉)이 남해(南海)를 염탐하고 다녀 와서 그 정형을 아뢰었다. 그날 일기에 이렇게 순신은 적었다.

『(............) (송 한련이 남해로서 돌아와 이르기를. 남해원과 메주목이 첨사와 상줏개. 굽은개. 평산개 등을 지키던 관원들이 적병 온다는 소문만 들으면 문득 도망하여 그 군기 등물이 다 흩어져 남음이 없다고 하니 놀랍구나).』

하고 또 그날 일기에.

『(.......... (낮에 배를 타고 바다에 나라가 진치고 제장으로 더불어 약속 명령이라는 뜻 하였다. 다 줄 겁게 나아가려는 뜻을 두건마는 낙안이 피하려는 뜻이 있는 듯하니 가탄이다.

그러나 군법이 있거니. 피하련들 제 어찌 피하랴).』

하고 적었다. 낙안이란 것은 군수 신호(申浩)를 가리킨 것이었다.

저녁때에 방답진. 첩입진(疊入鎭) 배 세 척이 들어 왔다.

오월 초 삼일 임신. 아침에 가는 비 오다. 중위장 방답 첨사 이순신을 불러.

내일 새벽에 떠나기로 약속하였다. 이날에 여도 수군(呂島水軍) 황 옥천(黃玉千)이가 도망하여 집에 가 숨은 것을 잦ㅂ아다가 목을 잘라 굴강에 효시하였다.

오월 사일 이른 새벽에 이 순신은 전라 좌도 수군을 거느리고 좌수영을 떠났다 이날 날은 맑고 바람은 . 잔잔한 서남풍이었다. 동천이 불그레할 때에 일성 방포를 군호로 대소 팔십 육척의 배가 일제히 돛을 달고 뱃머리를 동으로 향하여 남해 바다에 나섰다. 수군의 부서는 어떠한다?

경상도의 수로를 잘 알고 또 충성 있고 담력 있는 광양 현감(光陽縣監) 어영담(魚泳潭)으로 선봉장을 삼고 중위장 순천 부사 권준이 전라 관찰사 이광(李珖)의 부름으로 전주로 가버리매. 방답 첨사(防踏僉使) 이순신(李純信)과 가리포(加理浦僉使) 구 사직(具思稷)으로 중위장(中渭將)을 삼고. 낙안 군수(樂安郡守) 신호(申浩)로 좌부장(左部將)을 삼고. 보성군수(寶城郡守)김득광(金得光)으로 우부장(右部將)을 삼고. 녹도 만호 정운으로 후부장(後部將)을 삼고. 흥양 현감(興陽縣監) 배흥립(裵興立)으로 전부장을 삼고. 사도 첨사(蛇渡僉使) 김완(金浣)으로 우척후장(右斥候蔣)을 삼고. 여도 인가 아닌가를 확실히 알아 보게 하였다. 원균은 이순신의 앞에 이르매 목을 놓아 울며

『소인은 만사 무석한 죄인이요.』

하고. 이순신이 온 것을 백 번 사례하였다. 순신이 원균을 위로하여 병선 한 척을 주어 타게 하고. 새로 군복과 평복 일습을 주어 위의를 갖추게 하였다. 원균은 순신의 후의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영감은 재생지은인이요. 재생지은인이요.』

하고 수없이 사례하였다. 순신은 원균에게 수효와 있는 곳과 접전할 절차를 물었으나. 원균의 대답은 시원치 아니하였다. 대개 원균은 아직 눈으로 적선 구경을 해본 일도 없는 까닭이다.

적서이 얼마나 되며 어디 많이 있는지 그것을 알 까닭이 없었다.

이날에 도망하였던 남해 현령(南海縣令) 기효근(寄孝謹). 메주목 첨사(메주목僉使) 김 축(金軸) 등이 판옥선 한 척을 타고 오고. 사량 만호 이 여념(李汝拈). 소비포. 권관(所非浦權管) 이 영남(李英男) 등이 각각 협선을 타고 오고. 영등포 만호(永登浦萬戶) 우치적(禹致積 이 영등포는 거제에 있는 것).

지세포 만호(地世浦萬戶)한 백록(韓百祿). 옥포 만호(玉浦萬戶) 이 운룡(李雲龍)등 도 판옥선 두 척을 가지고 오고. 이 모양으로 이 순신의 함대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모여드는 장수들이 많았다. 이 순신은 조금도 이 도망한 장수들을 괄시하여 한산도(閑山島) 북쪽 노쿠리도를 지나 거제도(巨濟島) 송미포(松未浦) 앞바다에서 밤을 지내고 새벽에 일시에 배를 띄워 적선이유박한다는 천성(天城). 가덕(加德)을 향하여 가는 길에 오시나 되어 옥포(玉浦) 앞바다에 이르러 척후 장 사도 첨사(斥候獎蛇渡僉使) 김완(金玩). 여도 권관(呂島權官) 김인영(金仁英)의 척후선으로부터 마황기(魔黃旗)를 들어 신기 보변(神機報變)함이 있었다. 앞에 적선이 보인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