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31: 3

순천 부사 권준은 잧빛이 희고 몸이 뚱뚱하고 귀인다운 풍도가 있어서 천생 뱃사공같이 생긴 광양 현감 어영담과는 딴 종류 사람인 듯하였다.

『그렇지 못한 연유가 있소. 첫째로 경상 좌우도 수군은 전국 다른 각도 수군을 합한 것보다도 많소. 그런데 경상 좌우도 수군을 가지고도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함몰이 되었거든. 우리 전라 좌도의 고단한 형세를 가지고 간다 하더라도 승산이 만무하니. 승산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더러 한갓 세상의 치소만 받을 것이요. 그뿐 아니라. 우리 호남이 가만히 지경을 지키고만 있으면 적군도 우리의 실력을 헤이릴 길이 없어서 용이하게 호남을 침범할 생각을 두지 못하려니와. 만일 걷불리 덤비다가는 도리어 적의 침노를 쉽게 받을 것이요. 그러니까 가만히 지경을 지키는 것이 상책이겠고. 또 아직 조정에서 아무러한 분부가 없으니. 분부 없이 동병하는 것은 법에 금하는 바요.

어느 모으로 보든지 경상 우수사의 청병을 듣는 것은 옳지 아니한가 하오.』

하고. 자기의 웅변에 취한 군부사는 찬성을 구하는 듯이 만조를 둘러 보았다.

여러 수령들은 많이 순천 부사의 말에 찬성인 듯이고개를 끄덕끄덕하여 부사의 눈에 대답하였다. 잠시 말이 없었다. 서울에서 도망하는 왕에게 뿌리는 비는 천리를 격한 좌수영에도 뿌렸다. 이때는 정히 서울 대궐 안에서는 울고 불고 도망할 의론이 한창이었다.

『아니오!』

하고 한편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났다. 보니. 그는 본영군관 송희립(宋希立)리었다. 희립은 나이 오십이나 된 사람으로 지체가 낮기 때문에 일생에 벼슬은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렇더라도 일편 충심은 가시지 아니하여 매양 흉중에 불평을 품은 사람이다. 이마에는 뜻과 같이 되지 아니하는 인생의 풍파에 부대낀 자국이 역력히 새기어 있었다. 키가 크고 이마와 관골이 내어 밀어서 그 범상치 아니한 기우가 녹도 만호 정운과 방불하였다. 희립은 앞가슴을 떡 벌리고 성긋성긋한 수염을 숭글거리면서.

『순천 영감의 말씀이 옳지 아니하오.』

하고. 첫마디로 순천 부사 권준의 말에 반대하는 단정을 내렸다. 순천 부사는 그것이 일개 군관인 송희립인 것을 보고. 크게 욕을 보는 듯하는 분노를 깨달았다.

『제까짓 놈이. 괘씸하게.』

하고 권준은 희립을 노려보았다. 희립은 그런 것은 본 체도 아니 하고.

『옳지 아니한 연유를 아뢰리다. 영남이나 호남이나 한가지로 우리나라 땅이니. 우리가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 영남이 적군의 손에 들었다 하거든 가만히 앉았을수 없음이 하나요. 또 호남을 지킨다 하나. 영남과 호남이 실날 같은 바다 하나. 강 하나로 접하였으니 영남을 지키지 못하고 호남을 지키려 함은. 마치 문을 지키지 못하고 방을 지키려 함이나 다름이 없음이 둘이요, 또 조정의 분부가 없으시다 하거니와. 지금 중로에 적병이 편만하여 서울 길이 어찌 된지 알 수 없으며. 또 조정에 찬무리가 모두 당과 싸움과 제 세력만 아는 무리들이 올 뿐 더러. 더러 또 수군을 알기를 없는 듯이 하옵고. 또 설사 조정의 분부가 안 계시다 하더라도 적병이 당전하면 선참후계하는 것이 병가의 법인가 하오. 용병지법이 신속함으로써 귀함을 삼는 것이니. 사또께서는 아까 녹도 말씀대로 이 밤으로 행선하시도록 분부 계시기를 바라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