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29: 1

왕이 서울을 버리고 달아난 사월 이십 구일 밤.전라좌도 수군 절도사 이순신은 부하 제장을 파리강이라는 높은 정자에 모았다. 여기 출석한 장수는.

수사 우후(水使虞侯)이 몽귀(李夢龜) 순천 부사(順天府使) 권준(權俊) 방답 첨사(防踏僉使) 이순신(李純信)) 낙안 군수(樂安郡守) 신호(申浩) 홍양 현감(洪陽縣監) 배홍립(裵洪立) 광양 현감(光陽縣監) 어영담(魚泳潭) 보성군수(寶珹郡수) 김득광(金得光) 녹도 만호(鹿島萬戶) 정운(鄭運) 훈련 봉사(訓鍊奉事)나 대용(羅大用) 사도 첨사(蛇渡僉使) 김완(金浣) 여도 권관(呂島權官) 김인영(金仁英) 좌수영 군관급제(左水營軍官及第) 배 응록(裵鷹祿) 좌수영군과(左水營軍官) 이언량(李彦良) 좌수영진무(左水營鎭撫) 이언호(李彦浩) 군관(軍官) 송한련(宋漢連) 군관(軍官) 송희립(宋希立) 등 십 칠 명이었다.

수사 이순신이 정면 호상(교의)에 좌정하고 제장이 관등 따라 차례로 좌우로 늘어 앉았다. 이 순신이 이 회의를 모은 것은 경상 우도 수군 절도사(慶尙右道水軍節道使)원균(元均)의 청병장을 받은 까닭이었다.

이 순신은 부산. 동래 함락의 경보를 들은 이래로 부하 제장을 좌수영에 모아 가지고 서울에서 무슨 명령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곧 강구 대변(江口待變)이란 것이었다. 그러나 독자가 이미 아시다시피 서울에서는 일찍 수군이란 것을 염두에도 두어 본 일이 없고. 오직 신 입과 이 일 두 사람만 믿고 있다가 이일이 상주에서 패하여 달아나고 신입이 충주에서 패하여 죽으니. 그만 서울을 버리고 비 온는 밤중에 울며 불며. 엎더지며 자빠지며 임진강(臨津江) 서쪽으로 도망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이 순신이 사월 십 육일 이래로 거의 날마다 올리는 장제도 조정이라는 곳에서는 휴지통에 들어 갈 뿐이었다.

이래서 강구 대변을 하고 있는 지 반 달이 넘어도 조정이라는 곳에서는 아무 명령이 없어서 헛되이 세월을 보낼 때에. 원균의 청병장을 가지고 율포 만호(栗浦萬戶) 이 영남(李英男)이 이순신에게로 온 것이었다.

이 영남의 보고에 의하면. 경상 우수사 원균은 바다에 뜬 조선 사람의 어선을 보고 적군이 오는가 하여 황겁하여 전선 이백여 척과 많은 병기. 군량을 다 물에 잠겨 버리고 수군 만여 명을 흩어 버리고 자기 혼자 배 한척을 타고 옥포 만호(玉浦萬戶) 이 운룡(李雲龍). 영등포 만호(永登浦萬戶) 우치적(寓致績)을 데리고 도망하여 남해현(南海縣) 앞바다까지 와서는 육지에 올라가 도망하려 하는 것을 옥포 만호 이운룡이.

『달아나다니 안될 말이요. 사또가 나라에 중한 부탁을 받았으니. 죽더라도 맡은 지경 안에서 죽을 것이지 육지에 올라 도망하다니 말이 되오. 이곳은 전라.

충청도로가는 인후니. 이곳을 잃으면 양호(兩澔)가 위태할 것이요. 이제 경상 우도 군사를 다 잃었다마는 아직도 모으려면 모을 것이요. 또 전라도 수군을 청병해 올 수도 있는 것이니. 사또가 육지에 올라 도망하는 것은 옳지 아니하오.』

하고 굳세게 주장하는 판에 원균은 이운룡이가 무서워 달아나지도 못하고 그의 말대로 율포 만호 이 영남을 이순신에게로 보낸 것이었다.

이 순신은 원균의 청병장을 받아 그것을 토의할 차로 이렇게 군사 회의를 모은 것이다. 나아가자는 명령 하나면 그만일 듯도 하지마는. 이때 인심이 모두 나아가 싸우기를 싫어하는 때이므로 이 순신은 부하 제장 자신들로 하여금 나아가 싸우자는 여론을 일으키게 하자는 계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