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궐 앞에 수만의 군중이 모이어.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오.』
하고 아우성을 하고. 종친과 대관들 중에도 궐문 밖에서 통곡하는 이가 있었다. 이때에 영부사(領府使) 김귀영(金貴榮 일찍 이 순신에게 서녀를 첩으로 주려던 병조판서)이 왕께 뵈옵고.
『대가가 서울을 떠나시다니 안될 말씀이요. 종사가 서울에 있으니 죽기로써 지킴이 가하오.』
하여. 분개한 눈으로 이 산해. 류 성룡의 무리를 노려보았다. 왕도 감동하여.
『종사가 이곳에 있거든 내가 어디로 가랴!』
하고. 서울을 떠나지 아니할 것을 단언하였다. 그리고 우의정 이양원(李陽元)으로 수성 대장(守城大將)을 하고. 이 진(李晋)으로 좌위장(左衛將)을 하고. 변 언수(邊彦琇)로 우위장을 하고. 박충간(朴忠侃)으로 경성 순검사(京城巡檢使)를 하여 경성의 성첩을 수리케 하고 김명원(金命元)르로 도원수(都元帥)를 삼아 한강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경성의 성첩이 삼만여 개인데 이것을 지킬 군사는 칠천명 밖에 못되고.
그것도 모두 오합지졸이어서 틈만 있으면 달아나려고 하였다. 관리들도 달아나고. 군사들도 달아나고. 낮 동안에 처자와 가산을 문 밖에 내어 감추었다가 해가 넘어 가면 슬몃슬몃 빠져서 혹은 모악재를 넘고. 혹은 무넘이를. 넘어서도와 북도로 피난의 길로 달아났다. 전 이조 판서 유홍(兪泓)은.
『메투리가 궁중에 소용이 없고 은금이 적을 막는 병기가 아니니 이런 것을 궁중에 사들여 도망할 차비를 하는 것은 망국지본이니. 모로미 굳게 도성을 지켜 군신이 죽기를 같이 하소서.』
하고 큰 소리를 하면서도 그 가족은 남보다 먼저 피난을 시켰다.
사월 이십 구일 저녁에. 해가 뉘였뉘엿 인왕산으로 넘어 갈 때에 동대문으로 전립 쓴 사람 셋이 말을 달려 들어 왔다.
『옳다! 신 장군한테서 첩보 가지고 오는 군관이다!』
하고 백성들이 길에 나아가 물었다.
우리는 신도순변사또의 『군관이러나. 사또는 이제 충주 탄금대에서 싸워 돌아가고 군사들도 거진 다 죽고. 살아 남은 군사들은 도망해 버리고 우리도 가까스로 몸을 빼어 안집 사람을 피난이나 시키려고 돌아 오는 길이요.』
하였다. 이말은 순식간에 장안에 퍼졌다. 왕은 충주의 패보를 듣고 통곡하였다.
그리고 버선발로 동상(東廂)에 나와 제신을 불러 계교를 물었다. 영의정 이 산해(李山海)가 여짭대.
『사세가 이러하오니 거가가 잠시 평양에 행하심이 옳을까 하오.』
하였다. 도승지 이 항복(李恒福)이 여 짭대.
『이때를 당하여 서편으로 명 나라에 향하여 회복을 도모할 수밖에 없소.』
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만 입을 다물도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도 도망하는 것 밖에 수가 없던 것이다. 이때에 장령(掌令) 권 협(權挾)이 긴급히 북주할 말이 있다. 하여 왕께 뵈옵고 바로 왕의 앞으로 가서 크게 소리를 질러.
『상감. 못 가시오. 경성을 지켜야 하오!』
하고 이마를 땅에 조아렸다. 류성룡이 손을 들어 권 협에게 물러가라는 뜻을 표하나. 권 협은.
『대감도 그런 소리를 하오? 그러면 경서을 버린단 말요?』
하고 더욱 분개하였다. 성룡은.
『협의 말이 심히 충성되어나 사세가 안 그럴 수 없소.』
하고 왕을 재촉하였다. 권 협은 머리를 섬돌레 두드려 피를 내며 통곡하나 조정은 듣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