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은 선봉대로 조총대 수십 명으로 하여금 관군의 전렬을 엄습하게 하고 진을 좌우익으로 나누어 관군을 포위할 형헤르 보였다.
이 일은 곧 영을 내려 군사고 하여금 활을 쏘게 하였으나 한두 나절 밖에 활쏘기를 배우지 못한 군사들의 화살은 멀리도 가지 못하고 견양한 대로도 가지 못하고 함부로 날랐다. 이것을 본 일본 군사들은 이거 웬 떡이냐 하는 듯이 조총을 놓으며 몰려 들어왔다. 그래서 앞줄에서 싸우던 군사 수십 명이 순식간에 총을 맞아 넘어졌다. 순변사 이 일은 이 모양을 보고 말을 채쳐 뒤러 달렸다.
『사또. 어디로 가시오?』
하고 윤 섬. 박호 등이 따라서니 이 일은 뒤로 돌아 볼 사이 없이.
『자네들고 따라 오게. 따라 와.』
하고 그 좋은 백달마의 강철 같은 말굽으로 안개같이 먼지를 찼다.
『이놈이 일아!』
하고 윤 섬이 이 일의 등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네놈이 받은 국은이 망극하거든 이제 싸우지도 않고 달아나면 무슨 면목으로 돌아 가 주상께 뵈오려느냐. 남아가 이때를 당하여 한번 죽으면 고만이지 도망이 말이 되느냐. 다들 나를 따라라.』
하고. 말을 채쳐 적군을 향하여 달려갔다. 군사들 중에는 윤 섬을 따라서는 이도 있었으나. 하늘같이 믿었던 대장 이 일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는 대부분이 활과 칼을 던지고 달아났다. 윤 섬도 죽고. 판관 권 길도 죽고. 변기(邊璣)의 종사관 이 경(李慶)도 싸워 죽었다.
일본 군사들이 이 일의 뒤를 따르니 이 일이 황굽하여 자기가 이 일인 것을 숨기기 위하여 마상에 앉은 대로 갑주를 벗어 버리고. 나중에는 탔던 말까지도 내어 버리고. 그래도 급하게 되니 입었던 옷을 벗고 촌가의 바자에 빨아 널었던 헌 잠방이 하나를 훔쳐 입고 머리를 풀어 산발을 하고 엎어지며 자빠지며 산속.
수풀 속으로 도망하여 밤중에 새재를 넘어 이튿날 아침에 충주(忠州)에 들어 가도순변사(都巡邊使) 신입(申砬)의 진에 들었다. 이때에 도순변사 신 입은 열도 병마 삼찬여를 거느리고 흐기 당당하게 충주에 내려와 충주성 북단월역(丹月曆)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 일과 변기가 패하여 도망해 온 것은 선봉을 삼아 공을 세워 죄를 속하기로 하고 종사관 전 의 주 목사 김 여물. 조방잔 충주 목사(忠州牧師)등 여러 장수가 있었다.
일본군이 금명간에 조령을 넘어 온다 하면 어떻게 막을까 하는 데 대하여 두 가지로 의론이 갈렸다. 하나는 도순변사 신 입의 주장이니. 일본 군사가 조령을 넘어 충주 평야에 들어오기를 기다려서 기병으로 이를 깨뜨리면 반드시 이기리라는 것이요. 또 하나는 종사관 김여물. 조방장 이 종장 등의 주장이니.
관군은 적고 적군은 많은즉. 마땅히 새재를 지켜 군사를 수풀 속에 숨기고 깃발과 연기를 많이 보여 적으로 하여금 관군이 얼마나 되는지를 의심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 입은 김 여물과 이 종장 등 수뇌부를 데리고 새재의 형세를 살피기까지 하였으나 자기의 주자을 고집하여 새재를 버리고 단월역에 본진을 두고 적군이 충주 평야에 들어오기를 기다려서 싸우기로 하였다. 주장이 하는 일이니 김여물이나 이 종장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