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23: 3

『군사는 다 어찌 되었느냐?』

하고. 순변사 이 일은 더욱 노발이 충관하였다.

『군사 없는 것은 상주만이 아니요. 영남 각 읍에 군사라고 있는 것은 더러는 대구로 가옵고. 더러는 상사또 내려 오시기를 기다리다 못하여 흩어져 산으로 달아나옵고. 어느 고을에 가든지 남은 백성이라고는 늙은이나 병신뿐이오니 상주에 군사 없는 것이 소인의 죄가 아니요.』

하고. 판관 권 길은 굴지 않고 말하였다. 권 길의 말은 사실이었다.

진관제 가(鎭官制) 페하고 각읍 군사가 도원수부(都元帥府)에 속하게 된 뒤로는 도원수부에서 주장이 내려 오기 전에는 각읍 군사는 무장지졸이 되엇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산 동래가 적군에게 함몰되었다는 기별을 듣고 영남 각읍에서는 소속 군사를 혹은 백. 혹은 이백씩 모아 놓고 기다렸으니 십여 일이 되어도 장수는 오지 아니하니 부득이 더러는 대구 감영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새로 난 순변사이 일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이 일이가 서울서 군사가 모집되지 아니하여서 삼일을 지체하는 동안에 다 흩어져 피난을 가고 만 것이었다. 그때 군사 제도로 말하면 오늘날 징병 제도와 같아서 남자로 낫 정년에 달하면 누구나 양반이나 상놈을 물론하고 국족까지도 군사가 되는 제도였지만. 이백년 태평으로 내려 오는 동안에 제도가 해이해져서 양반의 자식.

돈 있는 자의 자식은 거짓 병신도 되고 늙은 부모의 외아들로 호적을 고치기도 하여 군사에 빠지고 오직 미천한 사람만이 군사가 되었던 것이다. 비록 권 길의 말이 옳지마는 군사가 흩어진 책임을 이일에게 들리는 것이 괘씸해서 이일은.

『판관을 내어 베이라.』

하고. 호령을 하였다. 군노들은 판관 권 길에게 달려들었다. 권 길은 잠간 할말이 있다 하고 이 일에게.

『소인이 죽기는 아깝지 아니하오마는 소인마저 죽으면 상사또는 군사 한 명 없이 무엇으로 적군을 막으시려오? 소인도 오래 국은을 받았으나 만일을 갚지 못하고 죽는 것이 한이 되오. 오늘 밤만 소인을 살려 두시면 천명 군사 하나는 모아 보리다. 그러거든 내일 아침에 소인을 죽이셔도 늦지 아니하오.』

하였다. 이 일은 권 길의 말을 좇지 아니할 수 없었다. 권 길은 이날 밤에 상주의 육방 관속을 총출동을 시켜서 인근 사십리 이내에서 모두 구백명의 군사를 모집하였다.

군사라야 아무 조련도 받아 보지 못한 농부들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아직도 기운이 다 죽지 아니하여 서울서 큰 장수가 왔단 말을 듣고 모여 든 것이었다.

이 일은 상주에서 달아나고 남은 기생을 셋이나 한꺼번에 수청을 들여 밤을 새우고 아침 늦게야 벌겋게 된 눈을 가지고 일어났다.

권 길은 새벽부터 대령하고 있다가 이 일이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곧 구백여 명의 군사 명부를 드렸다.

낮이 지난 뒤에야 이 일은 갑주에 위의를 갖추고 취병장에 나와서 신모군을 검열하고 부하를 시켜 그들에게 활 쏘기와 칼 쓰기 창 쓰기며. 법대로 지퇴하는 방법을 조련하기를 명령하고. 판관 권 길을 불러 이렇게 군사가 있으면서도 미리 모아서 조련하지 아니한 것을 책망하고 공사 태만한 죄로 장 팔십에 처하였다.

이것이 목사 김해의 책임일지언정 판관 권 길의 책임은 아니었다. 이 일의 이 처분을 보고 권 길이하로 다순변사의 밝지 못함을 원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