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22: 2

순변사 이일. 도순변사 신 입을 적군이 오는 곳으로 파견한 조정과 서울 백성들은 날마다 첩보(싸움에 이겼다는 기별)오기만 기다렸다.

어 문경을 지나 사월 이십 이일에 경상도 상주목(尙州牧)에 도달하였다. 이 일이 상주에 온 까닭은 이러하다.

부산서 서울로 오는 데는 길이 셋이 있으니. 이것을 삼로하고 한다. 일찌기 대장 변협이.

『(...(되와 왜가 세 길 형세를 잘 아니 앞날 근심이 말할 수 없다.)』

고 한 「세 길」이란 것이 이것이었다. 과연 일본군은 삼로의 형세를 잘 알아서 군을 셋으로 갈라 제 일군은 소서행장(평행장 평이란 성은 그때 일본 장수는 누구나 일컫는 것이었다.)이 주장되고. 이군은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주장이 되고. 제 삼군은 혹전 장정(惑田長政)이 주장이 되었다. 그로매 rmfojt 이미아는 바와 같이 제일군인 소서행장의 군사는 사월 십 삼일에 부산에 상륙하여 부산. 동래.

양산. 밀양. 청도를 거쳐 지금 순변사이 일이가 막으려는 상주(尙州)로 향하니 이것이 가운데 길이요. 제 이군인 가등청정군은 사월 십 칠일에 부산에 상륙하여 왼편 길로 향하고. 제 삼군인 혹전 장정군은 사월 십구일에 안골포(安骨浦)에 내려 김해를 점령한 것이니. 이것이 오른편 길로 향한 것이다.

가운데 길이라 함은 부산에서 양산(梁山). 밀양(密陽)청도(淸道). 대구(大邱).

인동(仁同). 선산(善山)을 거쳐 상주(尙州). 문경(聞慶)을 지나 새재(새재)를 넘어서 서울로 오는 길이요. 왼편 길이라 함은 곧 경상 좌도의 길이라는 뜻이니.

부산에서 기장(機張). 울산(蔚山). 경주(慶州).영천(永川). 신녕(新寧). 의 홍(義홍 )을 겨쳐 용궁강(龍宮江)을 건너 대재(㐲載)를 넘어서 서울로 어는 길이요. 오른편 길이라 함은 주로 경상 우도의 길이란 말이니. 김해에서 성주(星州). 무현(茂縣)강을 건너지례(知禮). 김산(金山)을 거쳐 추풍령(秋風嶺)을 넘어 충청도 영동(永同)을 지나서 서울에 오는 길이다. 이제 이일은 이세 길 중에 가운데 길로 적군이 올 것을 예상하고 상주에 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일이 상주에 들어 온다는 사월 이십 이일데 그를 나와 맞는 이는 오직 상주 판관(尙州判官) 권 길(權吉)뿐이었다.

『목사(牧使)는 어디 가고 아니 나왔느냐?』

하고. 이 일은 판관 권 길을 보고 호령하였다. 이 일은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이 희나. 눈초리가 우으로 찢어지고 . 목소리가 크고. 과연 장수의 위엄이 있었다. 더구나 이날은 영남의 거진인 상주목에 도달하는 날이라 하여 중로에 함창(咸昌)에서부터 갑주에 위의를 갖추어 그 위엄이 만군을 누를 듯하고 수종하는 제장들도 그와 같았다. 판관 권 길은 두려움을 보이며.

『사또께서는 상사또 지영한다 하옵고 아침 일찍 군사 이백명을 다 데리고 함창으로 간다 하옵고 떠났소.』

하고. 아뢰었다. 과연 권 길은 영문 장교. 군노 수십 명을 거느렸을 뿐이었다.

『목사가 나를 맞으러 떠났어?』

하고. 순변사는 일변 노하고 일변 의심하였다.

『과연 그러하오.』

하고. 판관 권 길은 사실대로 아뢰인 것이다. 상주 목사(尙州牧師) 김해(金海)는 이 일을 맞으러간다 칭하고 군사 이백명을 거느리고 상주 서문을 나갔으나 중로에서 군사들을 쉬라 하고 김해는 단기로 잠간 다녀 오마 하고는 어디로 가 버리고 말았다. 군사들은 목사가 낮이 기울도록 아니 돌아 오는 것을 보고는 난을 일으켜 병기를 가진 채로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