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20: 2

부산 함락의 경보가 서울에 올라 온 것은 사월 십 칠일이었다. 이것은 달아나기로 첫째인 경상 좌도 수군 절도사 박홍(朴泓)이 달아나면서 보낸 장계다.

『부산진에 연기 나고 붉은 기가 찼아오니 아마 적군이 들어 온 모양이로소이다.』

한 것이었다. 이 경보를 듣고 왕은 이것이 다 김 성일(金誠一)이 일본을 다녀 와서 보고를 잘못한 것이라 하여 우선 김 성일을 잡아 올리라 하였다. 이때에 김 성일은 경상 우도병마 절도사가 되j 부임하는 길에 있었다. 정진(鼎津)을 건너 해망원(海望原)에 이르러서 성을 버리고 도망해 오는 갈린 병사 조 대곤(曺大坤)을 만나서 인과 병부를 받았다. 그리고 성일이 함안에 이르렀을 때에 나명을 받은 것이다.

성일이 갈리고 조 대곤이 다시 병사가 되었으나 적군이 온단 말을 듣고 다시 달아났다 왕은 부산 동래가 .. 함락되고 적군이 무인 지경같이 내지로 들어 온단 말을 듣고 심히 놀래어 곧 영의정(領議政)이 산해(李山海). 좌의정(左義政) 류 성룡(柳成龍). 우의정(右議政) 이 양원(李陽元) 등을 불러 방어할 계책을 물었다.

그러나 삼 대신은 맥맥히 서로 볼 뿐이었다.왜 그런고 하면. 그들은 다 일본군이 오지 아니한다고 보아 양병을 반대한 자들일뿐더러. 서울에는 군사라고는 명색뿐이요. 정말 싸울 만한 것은 없었음이었다.

정부 대신과 비변사(備籩使)를 삼아 중로(가운데 길)를 지키게 하고. 성응길(成應吉)로 좌방어사(左防漁使)삼아 좌도로 보내고. 조경(趙敬)으로 우 방어사(右防禦使)를 삼아 서로(서쪽 길)로 보내고. 유극량(劉克良)으로 하여금 죽령(竹嶺)을 지키게 하고. 변기(邊璣)로 하여금 조령(鳥嶺)을 지키게 하고. 변응성(邊應星)으로 경주 부윤(慶州府尹)을 삼기를 청하였다. 그리고 군사는 없으니까 저마다 모집을 해 가지고 가기로 계책을 세웠다.

그러나 왕은 좌의정 류성룡을 신임함이 자못 두터워 류 성룡의 계책을 들어 병조 판서(兵曹判書) 홍여순(洪汝諄)을 갈고 김응남(金應南)으로 대신케 하고.

심충겸(沈忠謙)으로 병조 참판(兵曹參判)을 삼으니. 이는 일굴 병마의 권을 류 성룡으로 도체찰사(都體察使)를 삼아 병마의 최고 감동권을 주었다. 류 성룡은 병조 판서 김응남으로 부체찰사를. 옥에 갇혀 있던 전 의 주 목사 김 여물(金汝朆)을 특사하여 수원을 삼기를 청하고. 당대 명장으로 누구나 첫 손가락을 곱는 이 일(李鎰)로 순변사(巡邊使)를 삼아 곧 전장으로 향하게 하였다.

새로 순변사가 된 이 일은 곧 발정하려 하였으나 데리고갈 군사가 없었다.

일병조의 선병안(選兵案)을 드리라 하여 보니. 대부분은 시정(市井). 백정(白丁).

서리(胥吏) 따위로. 양반의 자제. 돈 있는 사람의 자제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탈을 하고 빠지려고만 하였다. 이 일이 명을 받은 지 삼일이 되어도 군사가 모이지 아니하니 하릴 없이 이 일은 손수 부하를 데리고 먼저 발정하게 하고 별장 유옥(兪沃)으로 하여금 군사를 모집하여 가지고 뒤를 따르게 하였다.

이일이 서울을 떠나매 조정에서나 민간에서나 잠시 안심이 되었다. 그는 이 일이 명장이라는 이름을 믿은 것이었다. 그러나 밀양이 함락되었다. 경주가 점령되었다 하는 경보가 연해 오고 종남산 봉수에 세 자루의 봉화가 아니 들리는 날이 없을 때에 서울의 인심은 물 끓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