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71: 6

무술년 구월 십 오일에 순신은 진인(진인)과 함께 또 함대를 거느리고 고금도를 떠났다. 이는 순천(順川)에 와있는 명장 유정(劉艇)과 합하여 왜교(倭橋)에 응거하고 있는 소서행장(小西行長)군을 수륙으로 합공하려 함이었다.

순신의 생각에는 먼저 왜교의 소서 행 장군을 격멸하고 다음에 사천(泗川)과 부산과 울산을 순차로 격멸할 계획이었다 왜 그런고 하면. 일찍 계사년에 경상 감사 김수(金수)와 상약하고 부산의 적을 협공하려 하였으나 김 수가 겁을 내어 약속을 지키지 아니하기 때문에 실패하였지마는 지금은 울산에도 명균이 와 있고 사천 근방에도 명군이 와 있으므로 만일 진실로 수륙 협공을 한다고 하면 적을 격멸하기는 반드시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직 염려도는 것은 믿을 수 없는 명 나라 장수의 심사이지마는 진인은 이미 순신에게 심복하여 순신의 의사대로 좇는 터이므로 수군에 있어서는 염려가 없다고 자신한 것이었다.

십 구일에 수신에게 있어서는 가장 감개무량한 좌수영에 이르러 참담한 폐허가 된 것을 보고 이십일 미명에 좌수영을 떠나 괴섬(괴섬) 에 이르니 때는 신시였다.

이때에 벌써 명장 유정(劉綎)의 군사는 육지로부터 적진을 공격하여 포성이 은은히 들렸다.

순신은 적은 배를 적질으로 보내어 싸움을 돋구었다. 이때에 왜교에 오백척 전선과 삼만 명의 적의 장졸이 있어. 현재 조선에 있는 적진 중에는 가장 큰 근거지였다. 더구나 왜교의 근거지는 사천. 울산 등지에 있는 적에게 군량을 공급하는 근원이므로 만일 왜교의 적진이 함락한다고 하면. 사천. 부산. 울산 등지의 적은 불공 자파가 될는지도 몰랐을 뿐더러 풍신수길(豊臣秀吉) 이 이미 죽었으므로 적의 사기는 많이 저사되었던 것이었다.

이십 이일 싸움에 명 유격장이 팔에 총을 맞고 당인(명나라 사람이라는 말)십 일명이 전사하고 지세 만호(知世萬戶). 옥포 만호(玉浦萬戶)도 총을 맞았다.

때는 마침 조금이라 물이 얕아서 큰 배가 노루섬( ) 안까지 들어 갈 수가 없었다. 큰 싸움을 하려면 아직 적군을 항구 안에 봉쇄해 놓고 그믐 사리가 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진인은 순신의 말대로 주사를 노루섬으로 옮겨서 왜교에서 나오는 바다 입을 봉쇄하고 물이 살아나기를 기다렸다.

왜교라는 데는 여수 반도(麗水半島)가 순천에 붙은 밑동으로서 그 입에 노루섬이 문 모양으로 가로 막아서 노루섬 앞을 지나지 아니하고는 바다에 나올 수가 없는 곳이었다.

이러한 곳에 소서행장은 영구적인 성을 쌓고 토지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게하고 인근 읍에 부하를 보내어 전곡을 가져 오게 하였던 것이었다.

그믐날 일일이 일에. 다순신은 진인(陳璘)에게 총 공격하기를 청하였으나 진인은 듣지 아니하였다.

이러는 동안에 또 조수는 점점 줄기를 시작하였다.

순신은 심히 초조하였다. 지금같이 물이 깊은 때면 적이 아무리 응전하지 아니하더라도 거북선(새로 고금도에서 지은 것 두 척)과 기타 전선으로 적선의 정박지를 습격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 기회를 놓친다 하면 다시 반달이나 기다리지 아니하면 기회가 없을 것이요. 그리하는 중에는 적이 사천. 부산 등지에 청병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진 인은 듣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