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도록 양 진이 대 접전을 하여 피차에 수천 명의 사상자가 생겼으나 무론 승부가 나지 아니하였다. 밤도 낮과 같이달이 밝았으므로 으레히 일본군이 엄습할 것을 믿었으나 적연히 아무 소리가 없었다. 군사들은 아마 일본군이 잠을 자고 내일 날이 밝기를 기다려서 싸우려는 가 하였다.
그러나 일본 군사는 자지 아니하였다. 동래 부사 송상현이 쉽사리 달아나거나 항복할 위인이 아닌 줄을 안 일본군은 계교를 쓰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것은 밤 동안에 군사를 성으로 돌려 방비가 약한 북문으로 쳐들어 오자는 것이었다.
송 부사는 충성과 용기가 있었으나 결코 장수의 재목은 아니었다. 하물며 울산 군수 이 언함은 병사 이 각이 달아날 때에 같이 따라 가지 못한 것을 향하여 벌벌 떨고 앉았고. 오직 조방장 홍 윤관. 양산 군수 조영규 같은 장수들은 죽기로써 성을 지키려고는 하나. 적군은 오만이 넘고 이편은 이만이 다 못되니.
비록 성이 있다. 하더라도 승패는 벌써 정한 일이었다. 만일 도망하였던 이 각이 그 군사를 끌고 온다면 며칠 동안은 견딜 만도 하지마는 돌아 올 사람이 도망할 리가 있는가.
이렇게 군사는 잔약하고장수는 없는 동래성은 마치 도마에 오른 고기와 같은데. 사월 보름의 달 그림자는 점점 금정산(金井山)으로 빗기고 뒷산의 두견만 목이 메어 울었다. 그러나 일본군의 진중은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지금으로 이르면 아침 네 시가 될락말락한 때에 동북방을 지키던 군사가 놀래어 일시에 소시를 쳤다. 그것은 새벽빛이 훤히 올려 쏘는 동쪽으로부터 불의에 괴상한 물건이 올라 온 때문이다. 보통 사람의 삼 갑절이나 큰 허수아비에 붉은 옷을 입히고 푸른 수건을 동이고 등에 붉은 기를 지고 번쩍번쩍하는 긴 칼을 찬 흉물이 성안으로 넘실넘실 들여다보는 것이다.
밤새도록 겁을 집어 먹고 있던 군사들에게 이 흉물은 완전히 정신 착란을 주었다 더구나 장수 되는 . 울산 군수 이 언함이 소리를 치고 달아나는 것을 보고는 군사들은 병기를 던지고 통곡하였다.
그러나 이 언함이 피신할 수 있기도 전에 성을 넘어 정말 일본 군사들이 칼을 두르고 조총을 놓으며 달려 들었다. 울고불고하던 조선 군사들은 두 팔을 들고 땅바닥에 앉은 대로 칼과 총에 맞아 죽었다. 달아나던 이 언함은 다리에 기운이 없어 일본군에 붙들렸다.
그는 일본 군사 앞에 엎드려 합장하고 살려 달라고 빌었다. 일본군은 그가 울산 군수 이 언함인 줄 알고는 죽이지 않고 뒷짐으로 결박을 지어 앞을 세우고 성내의 길을 인도하라고 하였다. 이 언함은 길을 인도하여 부사 송상현의 진을 가리켰다. 일본군은 성을 넘어서 엄살하는 줄을 안 조방장 홍 윤관은 군사를 돌려 일본군이 남문으로 향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그의 군사는 너무나 적었다. 홍 윤관이 거느린 이천명 군사는 순식간에 총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홍 윤관 자신도 군사들과 한 가지로 맞아 죽었다. 그러나 홍 윤관이 죽은 것이 결코 값이 없지는 아니하였다. 홍 윤관의 저항이 없었던들 남문에 있는 본진은 준비도 없는 동안에 경각 간에 함몰을 당하였을 것이다. 그 뿐더러 홍 윤관의 군사는 졌더라도 하나가 하나씩은 적군을 죽이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