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모욕적 자문을 받고도 조선의 조정에서는 왕이 나 대신이나 매양 고담 주론으로 일을 삼던 대간이라는 위인들이나 감히 분개하지도 못하고 오직 황송할 뿐이었다. 「예. 황송하오. 살려 줍시오.」할 뿐이었다. 그리고 왕은 한문 잘하는 사람을 시켜 변명하는 회답을 하였다. 그리고 곧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
함경도 군사만여 명을 모집하여 명 나라 경리 양호(楊鎬). 제독(提督) 마귀(馬貴)의 분부를 듣기 하고 명병과 합력하여 한강의 여러 여울을 지키세하였다. 그러나 음식이나 의복이나 조선병과 명병과는 큰 차별이 있었다. 명병은 좋은 옷에 좋은 음식에 술과 고기를 막 먹어도 조선 군사는 명병이 내어 버리는 것을 얻어 먹고. 조선 병정 중에 아무리 지위가 높은 이라도 명병중에 가장 지위가 낮은 이보다 낮았다. 그래서 걸핏하면 욕을 얻어 먹고 매를 얻어 맞고.
심지어는 까닭 없이 못매를 맞아 죽은 이도 있었다. 이러한 고초를 겪어도 조정에서나 대관들이나 드른 명나라 장졸에게 아첨하고 시중 들기에 그들은 돌아 봄을 받지도 못하였다.
오직 경기도 도체찰사 류 성룡(柳成龍)이 몸소 강변으로 순회하면서 조선 장졸을 위로함이 있을 뿐이었다. 왕도 몸소 서울을 나와 강변 각군을 순시하였다.
경리 양 호 이하 명 나라 장졸의 폭행은 조선 편의 무기력을 볼수록 더욱 중장하여 장졸의 폭행은 조선 편의 무기력을 볼수록 더욱 중장하여 그칠 바를 몰랐다. 그들은 군자금이라 하여 날마다 왕에게 재물을 조르고. 만일 다라는 대로 한번이라도 응하지 못하면. 「너희 재물을 숨기고 군비를 아니 대이니.
황상께 아뢰어 죄를 내리게 하겠다」는 등.「너희가 그러면 우리느 나갈 테니.
그리 알라」는 등 위협을 일삼았고. 또 밑에 있는 졸병들은 민가에 무상 출입 하여 부녀를 겁간하고 재물을 늑탈하며. 만일 항거하면 때리고 차고 죽였다.
그들의 눈에는 조선의 대관이니 양반이니 하는 것도 없었다. 그들은 양반의 집에 보물이 많고 어여쁜 부녀가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양반의 집같이 보이는 집을 골라서 폭행을 하였다. 그들은 일본군과 싸운다 칭하고 남방으로 내려 가는 길에 더욱 폭행이 심하였다.
류 성룡은 참다 못하여 왕에게 이러한 상소를 하였다.
『 』
그 뜻은.
「명나라 군사의 작폐를 이루 견디어 내일 수가 없소. 나라에 있는 힘을 다 털어 대이더라도 도저히 버티어 갈 수가 없소. 요새에 남 쪽으로 내려 오기 시작한 후로부터는 연도 작폐가 무쌍하오. 관리를 때리고 하인을 결박하고 술을 내라 밥을 내라 하여 갈수록 더 심하니. 수령들은 그 행패에 못 이겨서 달아나 산 속에 숨어 버리고 하인들만 남아서 접대를 하고 있소. 참참이 있던 말은 다 타고 가서는 백에 하나도 올려 보내지를 아니하니. 민가에 마소가 자취를 끊었소. 그래도 내고 내라니 백성의 정경은 차마 볼 수 없소 달리 도리가 없으니. 접대사를 시켜서 틈을 타서 제독에게나 이런 말을 해보게 하시면. 혹시 좀 나을는지 그도 어떨지 모르니. 이런 딱한 일이 있소.」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