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64: 19

적의 허실을 다 짐작한 면은 한걸음 바싹바싹 다가 들어 공세를 취하였다.

면의 칼끝이자주 적의 몸과 옆구리와 가슴을 범하였다 지금까지의 힘이 부친 듯하던 면은 새 기운을 얻은 듯이 몸이 가벼워지고 칼날 돌아 가는 것이 더욱 빨라졌다.

이것을 본 적은 초조한 생각을 넘어서 일종의 무서운 생각을 가진 듯하였다.

그의 이마에서는 땀이 흘렀다. 그러나면은 가끔 한 손으로 안으로 넘어 오려는 초립을 뒤로 잦혀 바로 잡을 여유를 보였다.

이러기를 거의 일각이나 한 때에 면은 힘없이 칼을 옆으로 비끼는 듯하였다.

이 틈을 타서 칼로 바로 면의 이마를 내리쳤다. 이번에는 면의 몸은 두 쪽으로 갈라지라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면의 일종의 전술이었다. 적이 연해 자기의 이마를 겨누는 눈치를 보고 정면에 허한 빛을 보여 적의 칼을 유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적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면의 정면을 내려 칠 때에. 면은 나는 듯이 적의 왼편 옆으로 몸을 돌려 칼끝을 깊이 적의 왼편 가슴에 찔렀다. 피는 면의 칼로 흘러내렸다. 면이 칼을 빼어다시 적의 목을 치려 할 때에 적은 칼에 쓰러지고 뒤로서 다른 적이 내달아 면의 칼 든 팔을 찍었다.

면은 곧 왼손으로 땅에 떨어진 칼을 집었으나. 다른 칼이 또 면의 왼편 팔을 찍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오는 칼이 또 면의 목을 쳐 떨어뜨렸다.

면에게 가슴을 찔려 넘어졌던 적은 이윽고 눈을 뜨더니.

『그. 고놈을 죽이지 말아라.』

하고 외쳤다.

『벌써 죽였소!』

하고 면의 목을 쳐 떨어뜨린 사람이 말하였다.

『아깝다!』

하고 적은 눈을 감았다가.

『조선에 아직도 사람이 있다. 순신의 집은 습격하지 말고 돌아 가거라.』

하고 적도 죽었다.

적은 죽은 대장과 동료의 시체를 말에 싣고 오던 길로 돌아갔다. 면이 죽은 것은 이리하여서였다. 이때에 면의 목을 잘라 떨어뜨린 적은 후에 수군이 되어 싸우다가 순신에게 잡혀서 죽었다.

순신은 곧 전라. 경상 양도의 바다를 손에 넣으려 하였으나 날은 점점 추워 가고 군량은 없고 군사도 부족할 뿐더러. 병선. 군기도 부족하여 경성히 단행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순신은 미조항 첨사(彌助項僉使). 강진 현감(康津縣監)등으로 하여금 군량을 실어 오라 명하고. 또 일변목포(木浦)항에 있는 보화도(보화도)에 병영을 건축하여 만일의 경우에 근거지를 삼기를 준비하고 또 김종려(김종려)로 염장 감자 도감(鹽場監煮都監)을 삼아 바람섬 등 열세 섬에 소금을 굽게 하였다.

각처에 숨었던 장졸들도 하나씩 둘씩 순신에게로 돌아 왔다. 순신은 돌아온 자는 죄를 사하여 다시 썼으나 그렇지 아니한 관리들. 예하면. 경상 수사 배 설 같은 자는 죄을 적어 장제하였다.

시월 이십 사일에 당 나라 주사가 강화도(江華島)에 왔다는 기별이 순신에게 왔다.

당 나라 주사는 수군 도독(水軍都督) 진인(陳璘)이 거느린 칠천명수군과 백여 척 전선이었다.

그 이튿날인 이십 오일에 선전관(宣傳官) 박희무(朴希茂)가 교지를 받들고 내려 왔다. 그것은 명나라 수군이 정박할 만한 근거지를 알아 올리라는 것이었다.

순신은 고금도(古今島)가 합당한 뜻으로 대답하고. 자기는 보화도에 병영과 창고 건축을 독려하였다. 대개 순신은 조선군과 명균이 도저히 같이 하기 어려울 것과. 또 명균이 싸움에 방해는 될지언정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을 잘 안 까닭이었다.

순신은 날마다 몸소 사오백명 역군을 독려하여 병영창고. 오로 . 선창 등의 공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