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가리포 첨사(加里浦僉使). 장흥 부사(長興府使)등이 와서 순시에게 보이고 승전을 축하하였다. 이튿날인 십삼일에 배 조방장(裵助防將)과 경상 우후(慶尙虞侯)가 오고 또 임영준(任英俊)이 정탐임무를 마치고 돌아 와서 이러한 보고를 하였다.
『해남에 있던 적병을 초칠일에 우리 주사가 내려 오는 jrt을 보고는 겁을 내어 십 일일에 다달아나 버렸다 하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탐으로 순신의 신임을 받는 임영준은 놀랄 만한 보고를 또 하였다.
『해남아 전송 언봉(宋彦逢)이란 놈과 신용(慎容)이란 놈이 적의 진중에 들어 가서 적의 앞잡이가 되어 사인을 많이 죽였다. 하오.』
하는 것이었다.
순신은 임영준의 보고를 듣고. 곧 순천 부사(順天府使) 우치적(禹致績). 금갑만 호(金甲萬戶). 당포 만호(唐布 萬戶)안 이명(安以命). 소라 만호(召羅萬戶) 정 공청(鄭共靑). 군관(軍官) 임계형(林季亨). 정상명(定翔溟). 태 귀생(太貴生). 박수환(朴壽煥) 등과 일대의 군사를 해남으로 보내어 해남의 치안을 유지하고 잔적을 소탕할 것을 명하였다.
시월 십 사일에 순신은 군사 일을 생각하다가 삼경이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잠이 들락말락한 때에 순신은 한 꿈을 얻었다. 그것을 순신의 난중 일기에 있는 대로 적어 보자.
『 』
번역하면.
십 사일 신미 맑다 사경 「 . 꿈에 내가 말을 타고 언덕위를 가다가 실족하여 개천에 떨어졌으나 넘어 지지는 아니하였는데. 끝에 아들 면이 나를 붙들어 안으려는 모양 같았다. 깨어 보니 이것이 무슨 징조인가. 저녁에 천안으로부터 사람이 와서 집 편지를 전하였다. 떼어 보기전에 벌서 골육이 먼저 동하여 심기가 황란하다. 겨우 겉봉을 떼어 보니 열의 편지인데 외면에 「 통곡」이란 글자를 쓴 것을 보고 면이 싸워 죽은 줄 알고 낙담하여 실성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죽은 줄 알고 낙담하여 실성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같이 어질지 아니 하신가 내가 죽고 네가 살아야 떳떳하거든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변이 어디 있을까. 천지가 캄캄하여지고 백일이 빛을 잃는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두고 어디로 돌아 가는 고. 영기가 뛰어났더니 하늘이 세상에 두시지 아니하심인가. 내가 지은 죄가 네 몸에 미침이냐. 내가 이게 세상에 있은 들 장차 누에게 의지하랴. 통곡할 따름이로다. 한밤을 지내기가 일년과 같구나!」 순신의 셋째 아들 면이 죽은 것은 이러한 일로였었다.
벼파진에 마다시의 함대가 참패를 당하고 대장 마다시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가등청정(加藤淸正)은 부하에게 명하여 충청도 아산에 있는 순신의 가족을 사로잡아 오기를 명하였다.
하루는 일본 군사가 뱀 발을 향하고 온다는 말을 듣고 집에 남아 있던 가족들은 모두 도망할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그때에 열 일곱 살 되던 면은 「적병이 오거든 나가 싸워 한 놈이라도 제 키에 어울리지도 아니하는 긴 칼을 차고 활을 메고 전통을 지고 말을 타고 적병 온다는 곳으로 맞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