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 좌병사이 각은 동래 부사 송상현의 말을 옳게 여겨 조방장(助防將)홍 윤관(洪允寬). 울산 군수 이 언함과 칠천 병마를 거느리고 밤도와 행군하여 십사일 오정에 동래부에 도달하고 양산 군수 조영규도 군사 이천을 거느리고 그보다 좀 일찍 동래성에 들어 왔다. 이리하여 동래성에는 모두 이민의 군사가 있었다. 미시 말이나 되엇 부산진의 패보가 동래에 들어오고 또 얼마 아니하여 좌수사 박홍이 성을 버리고 달아나서 좌수영이 싸우지도 아니하고 무너졌다는 경보가 들어 왔다. 이 경보를 받더니 참땋게 있던 좌병사이 각(李珏)이 동래 부사 송상현을 보고.
『여보 동래. 나는 가오.』
하고 동래에서 떠날 차비를 하였다.
『가시다니 사또가 어디를 가신단 말씀이요? 적병을 막으려고 밤도와 어셨다가 적병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가시다니. 어디로 가신단 말이요?』
하고. 송 부사는 병사의 소매를 붙들었다.
『아니. 내가 피하는 게 아니요. 나는 대장이니까 밖에 있어서 각진 군사를 지휘를 하야지 성안에 있어서 쓰겠소. 성을 지키는 것은 동래가 맡아 하오.』
하고. 동래 부사 송상현이 붙드는 것도 뿌리치고 아병 이십 명만 동래에 머무르게 하고 자기는 별장과 군사를 데리고 서문을 열고 달아나 소산(蘇山)이란 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좌병사이 각은 부산진이 함락되고 첨사 정발이 육천 병사로 더불어 전사하였단 말을 듣고 잔뜩 겁을 집어 먹어서 듣기 좋은 핑계로 동래성을 빠져 나온 것이다. 그의 생각 같아서는 곧장 서울로 도망이라도 하고 싶건마는.
아직도 염치가 약간 남아서 소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니. 여기서 기회를 보아서 동래성 싸움에 일본군이 지면 자기도 의기 양양하게 동래성으로 들어 가고.
동래가 지면 내빼자는 계교다. 왜 태평 시절에 병사 노릇을 못하고 난시에 병사가 되었던고 하고 이 각은 수없이 한탄하였다.
이 각이 바로 소산에 이르러 자리를 잡을 만한 때에 동래성에서는 포향과 고각이 진동하엿다. 일본군과 접전이 된 것이다. 이 각은 자기가 선견지경명이 있어서 도망한 것을 다행히 여겼다.
병사 이 각이 달아난 뒤에 동래 부사 송사 송상현은 그 병슬을 따라 주장이 되어서. 동래성 남문에 올라 전군을 지휘하였다. 울산 군수 이 언함(李喭諴)은 죄위장은 삼아 동문을 지키게 하고. 양산 군수 조영규(趙英珪)호우위장을 삼아서문을 지키게 하고. 조방장 홍 윤관(洪允寬)으로 충군을 삼아 성중과 북문을 지키게 하였다. 십사일 유시에 일본군의 선봉이 동래 남문 밖인 취병장(지름 말로 연병장)에 이르러 유진하였다.
일본 진중으로서 어떤 키 큰 순사 하나가 무기를 들지 아니하고 손에 흰 목패 하나를 들고 성 가까이 오더니 그것을 성중에 던졌다. 군사가 그 목패를 집어 부사 송상현에게 드리니. 부사는 가도 문제에 관하여 평 수길의 사자인 대마도주 평조신(平調信 ==() 調信)과 절충한 일도 있었고 또 조정으로부터 「다시 가도에 관한 청이 있거든 단연 거절하고 이체 접제 말라.」는 훈령도 있으므로.
『..(죽어도 길을 못 빌린다.)』
이라고 큰 목패에 써서 성 위에 세우게 하고. 곧 방포하고 활을 쏘아 싸움을 돋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