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 십 육일. 동이 트려 할 때에 노적봉에서 망을 보던 별망군이 적선이 보인다는 군호를 하였다. 그 군호는 횃불이었다.
아직도 새벽 어두운 빛이 남아 있는 때에 세 자루 횃불이 번쩍하는 것은 심히 비장한 일이었다. 이윽고 별 망군의 배가 순신이 탄 기함에 왔다.
『사또. 적선이 감보섬 앞에 다다랐소!』
하는 별망군의 어성이 숨이 찬 듯하였다.
『몇 척이 되드냐?』
하는 순신의 음성은 침착하였다.
『몇 척인지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소. 바다를 덮은 것같소.』할 뿐이었다.
순신은 기를 달아 전함대의 출동을 명하였다. 십 삼척(한 척은 우수사의 배다)의 함대가 울뚝목에 다다랐을 때에는 벌써 적선은 아직도 미는 물에 순풍까지 맞아서 쏜살 같이 울뚝목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 적선은 삼백 삼십여 척이었다.
적선은 이편 함대를 보곡 진을 벌려 에워싸려는 모양을 보였다. 이것을 보고 순신의 뒤에 달려 오던 배들은 마치 물과 바람을 이기지 못하는 듯이 하나씩 둘씩 뒤로 물러나갔다. 그들은 적선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바라 몇 시간 전에 맹세한 것도 잊어버리고 회피하려는 샌을 가진 것이었다.
그중에도 우수사 김 억추(金億秋)의 배는 마치 물러가는 배를 막기나 하려는 듯이 맨 뒤에 까맣게 떨어져서 뱃머리만 기함을 향하고 슬슬 돌았다. 아직 차마 달아나 버리지는 못한 것이었다.
순신의 배에 있는 장졸들도 배젓기를 쉬일까 말까 하는 태도였다. 순신은 칼을 들어 적진을 향하여 배를 젓기를 독려하였다.
순신은 울뚝목의 우수영 쪽 입의 한복판을 막고 구름같은 적선에 향하여 먼저 대포를 놓아 싸움을 돋구었다. 그리고 군관들로 하여금 활에 살을 먹여 들고 적선이 활한 바탕 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적선은 점점 가까이 왔다. 이편의 포성에 응하여 적선에서는 수십 방의 포성을 내어 엄포하였다. 그 소리가 고요하던 산과 바다를 뒤집는 듯하였다.
이 엄포에 기함대에 있던 장졸들은 떨고 노를 젓던 팔이 굳어졌다. 순신은.
『적선이 비록 천척이 오더라도 내 백 하나를 당치 못하리라.』
하고. 군사들을 독려하여 적선을 향하여 배를 젓게 하였다.
순신은 손수 활을 들어 맨 앞에 선. 뱃머리에 선 갑옷 입고 투구 쓴 적장을 향하여 활을 당기었다. 푸르륵 소리가 나는 듯 마는 듯. 그 장수는 두 팔을 벌리고 물에 떨어졌다.
이것을 보고 군관들은 일제히 활을 쏘았다. 뱃머리에 섰던 적의 장졸이 퍼덕퍼덕 쓰러졌다.
순신은 일변 활을 쏘며 일변 지자(地字). 현자(玄字)각양 총통을 놓게 하니.
순신의 기함 하나에서 발하는 총통 소리는 우레와 같고 검은 연기는 적의 눈에서 순신의 배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이 연기는 나는 화약은 순신이 발명한 것이었다. 때마침 들물이 거의 끝나고 참이 되어 불어오던 동남풍도 잤다. 만번 바다를 가리운 검은 연기는 아침의 무거운 공포에 눌려 움직이지를 아니하였다. 오직 수없는 화살과 화전만이 검은 구름 속으로서 수없이 적선을 향하여 날았다.
적의 함대는 놀랐다. 오직배 한 척이 당돌이 앞을 막고 총과 활을 빗발같이 쏟아 붓는 것에 의심이 들어 가 이편에 무슨 계교가 있는지 얼른 판단이 아니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동안에 적선은 다섯 겹인지 여섯 겹인지 모르게 반달 모양으로 순신의 배를 에워 싸고 오직 뒤만 텄을 뿐이었다.
순신은 황급해서 낯빛이 파랗게 질린 장졸을 돌아보며 또 한번.
적선이 천척이라도 『우리 배를 어찌하지 못한다! 조금도 동심 말고 힘껏 쏘아라!』
하고. 배에는 초요기(招搖旗)를. 높이 달아 뒤에 떨어진 배들을 부르기를 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