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53: 8

회령포를 떠난 것이 팔월 이십일. 함대를 배나루(배나루)에 옮겼다.

이십 일일 새벽에 순신은 갑자기 곽란을 일으켜 구토 설사를 시작하여 마침내 인사불성이 되었다. 이튿날도 낫지 아니하여 또 이튿날도 낫지 아니하여 병세는 더욱 위중하였다. 그래서 부득이이 배에서 내려서 민가에 들어가 쉬었다.

이십 사일에 순신은 병을 무릅쓰고 배에 올라 행선령을 내렸다.

칼거리(칼거리)에 이르러 아침 먹고 거끔섬(거금섬)을 지나 어란진(於蘭鎭)에 이르니. 벌써 관리와 백성은 다 달아나고 텅 비었었다. 그날 밤을 어란진 앞바다에서 지냈다.

이튿날 이십 오일에 어떤 포작(鮑作)이 소를 후쳐 가다가 붙들려서 공초하는 말이. 적선이 뒤에 온다고 하므로 순신은 거짓말을 하여서 군심을 소란시키는 허경자두 사람을 잡아서 베었다.

그러나 그 이튿날인 이십 육일에는 임 준영(任俊英)이라는 군관이 말을 달려 와서 적병이 배나무까지 왔다는 말을 고하였다. 이날에 전라 우수사 김 억추(金億秋)가 왔다. 김 억추는 칠천도에서 전사한 이 억기 대신에 우수사가 된 사람이었다.

이튿날인 이십 칠일에 경상 수사 배설(裵楔) 이순신을 보고.

『걱선 삼백여 척이 배나루까지 왔다 하니 어찌하오?』

하고 무서워하는 빛을 보였다.

『싸우지. 어떻게 하오?』

하고 순신은 그 빛나는 눈으로 설을 바라보았다.

『열두 척으로 샘백척을 어떻게 싸우오?』

하고 설의 읍성은 떨렸다. 그는 적선과 순신을 다 같이 두려워 함이었다.

『그러면 수사는 어디로 피신한단 말이요?』

하고 순신은 웃었다.

『피한다는 것은 아니오마는.』

하고 설은 물러갔다. 그러나 설은 어찌하면 이 죽을 곳을 빠져 나아갈 수가 있을까 하여 고집 불통하는 순신을 원망하였다.

이십 팔일에 과연 적선 팔척이 불의에 어란진 앞바다에 나타났다. 열 두 척선에 탄 아직 싸움 경험 없는 병사들은 모두 겁을 내어서 더러는 배를 육지로 저어다가 붙이고 하륙하려 하고. 경상 수사 배설은 달아나려는 기색을 보였다.

순신은 칼을 뻬어 들고 베 설에게 적선 추격을 명하고 순신이 몸소 선봉이 되어 적진을 향하여 배를 달렸다. 설은 부득이 순신의 명을 이기지 못하여 뒤를 따르고 제선들도 어찌 되나 하면서 순신의 명을 이기지 못하여 뒤를 따르고 제선들도 어찌 되나 하면서 순신의 배의 뒤를 따랐다. 순신의 함대가 북을 치고 습격하는 바람에 적선은 기를 꺽이어 뱃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적선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야 부하 제선은 기운을 얻어 앞을 다투어 적선을 따랐다.

칡머리( )에 이르러 순신은 쇠를 울려 군사를 거두었다. 군사들은 더 못따르는 것이 아까운 듯이 뱃머리를 돌려 의기 양양하게 어란진으로 돌아 왔다.

순신은. 적의 척후가 어란진에 순신의 함대가 있는 것을 보고 갔으므로 반드시 대부대의 적선의 습격이 있을줄 알고 곧 전함대 열 두 척을 노루섬에 옮겼다가 이튿날 진도 벽파진(珍島碧波津)에 진을 옮겼다 벽파진은 진도의 동쪽 끝에 있어 해남을 바라보는 곳이다. 앞에 조그마한 섬이 막아 있어서 그 안에 능히 수십척의 배를 숨길 수가 있었다.

벽파진에서 여러 작은 섬 틈바구니로 북으로 이십리나 가면 진도와 해남 두 끝이 한강 넓이만이나 한 물목을 새에 두고 나주 닿은 울뚝목( 또는 )이라는 해협이 있고. 그 해협을 지나서 오른편 해남쪽에 오긋하게 들어 간 곳이 전라도 우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