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 구일에 이 순신은 순천을 떠나 낙안(樂安)에 다다랐다. 낙안에서는 순신이 온다는 말을 듣고 읍에서 오리나 되는 곳에 사오백명 백성이 나와 맞았다. 늙은이. 부인네. 아이들까지도 일찍부터 길에 나와서 아직 더운 볕에 땀을 흘리며. 우리 영웅 이 순신을 한번 보자고 순천 쪽을 바라보았다. 이 백성들 생각에는 순신이 통제사로 있는 동안 적병이 전라도를 범치 못하더니.
순신이 잠시 통제사를 그만두매 적병이 전라도에 편만하였으니 다시 전라도에서 적병을 물리쳐 줄 영웅은 이 순신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저녁때가 되어 이 순신은 검소한 군복에 말을 타고 김응서가 선물로 보낸 큰 칼을 찼다. 순신을 따르는 군사들도 순천 군기고에서 얻은 군복과 군기를 가졌다. 모두 활과 전통을 메고 더러는 칼을 차고 더러는 창을 들었다. 오랫동안 창고에 넣어 두고 돌아 보지 아니한 군복의 야청 물은 날고 다홍 소매동에는 얼룩이 보였고. 더러는 좀먹은 자리. 쥐가 쏜 자리가 있고 구김살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래도 군사들은 좋은 장수를 만난 것을 기뻐하는 듯이 기운차에 우쭐거리며 걸음을 걸었다.
『통제 대감 오신다!』
하고 군중에서 누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길 가에와 나무 그늘에 앉았던 백성들은.
『어머? 어디?』
하고 모두 일어서서 앞을 바라보았다. 이 순신의 길고 풍부한 수염이 눈에 보일 만한 때에는 백성들 중에는 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저런 장한 양반을 그 간신 놈들이 모함을 했어.』
하고 중얼거리는 갓 쓴 노인도 있었다.
순신은 백성들의 앞에 와서 말을 내렸다. 맨 처음에 읍하고 섰는 노인의 앞에 서며 순신은.
『어찌들 다 이렇게 나왔소?』
하고 물었다.
『통제 대감께서 오신다니까. 아침부터 나와서 기다리오.』
하고 그 노인은 잠간 고개를 들어 순신을 바라보았다.
『군수(郡守)는 어디 갔소?』
하고 순신은 다시 물었다.
『예.......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본관 사또는 어제 도망 하였삽고 병사또(兵史道)께옵서는 적병이 임박하였으니. 창고를 다 불사르고 백성은 피난하라고 영을 내리시와서. 어젯밤 본관 사또는 창고와 관사를 불을 지르고 달아났아옵고. 그러다 보니 백성들이 누구를 믿고 거접을 하오리까. 그래서 다들 부로 휴유하고 피난을 가려 하옵다가. 관속이나 부민들은 벌써 도망하옵고 소인네와 가난한 백성들만 어찌할까나 하고 방황하옵던 차에 통제 사또께옵서 이 고을로 행차 계시다 하옵기로 인제는 살아났다 하고. 이렇게 아침부터 나와서 행차를 고대하고 있소. 사또께옵서는 아무 죄도 없으신데도 소인의 참소를 받으시와 옥중 고행을 하시옵고 또 대고를 당하시다오니 무에라고 여쭐 말씀이 없소.』
하고 소매로 눈물을 씻었다. 순신은 노인의 말을 듣고 감개 무량하였다.
노인의 아들인가 싶었다. 젊은 사람은 노인의 손짓하는 대로 두어 식기나 들 듯한 검은 질그릇 술병과 백지에 싸고 지푸라기로 묶은 봉지를 받들어 순신에게 드렸다.
『이것이 술이요. 사또께 드릴 것이 없어 변변치 못한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왔소.』
하고 허리를 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