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신은 교서를 받고 나라 일이 급하니. 일각을 지체할 수 없다 하여 즉일 발정하여 팥재 (팥재)를 향하였다. 초경에 행보역(行步繹)에 이르러 말을 먹이고 밤비를 맞으면서 다시 행보역을 떠나 팥재에 다다랐을 때에는 훤하게 동이 텄다.
쌍계동(쌍계동)에 다다르니. 개천에는 물이 창일하고 뾰죽뾰죽한 돌부리가 많아서 건너기가 대단히 위태하여 물이 지기를 기다리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순신은 건너기를 명하였다.
해가 저물어 구례현(求禮縣)에 이르니. 제전이 적연하여 무인지경과 같았다.
전에 들었던 북문 밖 주인집을 찾으니 주인은 산골로 피난하고 빈 집뿐이었다. 손인 필(손인필) 두 사람이 밤에 이른 감을 가지고 찾아 왔다.
초사일에 곡성(곡성)에 이르니. 역시 관군은 달아나고 백성들은 피난하여 관사와 여염이 텅 비었다.
이튿날 옥과 (옥과) 지경에 당도하니 피난하는 백성이 길에 찼다. 아이들을 업고 웃보퉁이를 지고 그 정경이 시로 참혹하였다. 피난민들ㅇㄴ 이 수닛ㄴ이 온단 말을 듣고 모두 길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순신이 오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일제히 소리를 내어 통곡하였다.
순신은 말에서 내려 백성들을 gi하여. 피난을 가면 어디로 가느냐. 어디나 적병 없는 곳이 없으니 다 집에 있어서 일하고. 군사 되기를 원하는 자는 따르라고 하였다. 그 자리에서 장정 삽십여 명이 군사 되기를 자원하고 순신을 따랐다.
그리고 백성들이 이 통제사가 오셨으니 살았다 하고 다 집으로 돌아갔다.
순신이 옥과현에 들어 가는 길에 이 기남(李奇男) 부자를 만났다. 이 기남은 일찍 순신의 신임을 받던 군관으로서 원균(元均)에게 쫓겨 난 사람이었다.
기남의 아버지는 이 통제라는 말을 듣고 길바닥에 엎디어 순신에게 절하였다.
평소에 그 아들에게서 순신의 말을 많이 들은 것이었다.
이 순신이 읍에 들어 왔다는 말을 듣고도 원은 병이라 칭하고 나와 보지를 아니하였다. 순신은 군관을 보내어 현감을 잡아 오라 하였다. 그때에야 현감은 이 순신이통제사인 줄을 알고 황망히 순신의 여관에 와서 뜰에 엎디어 대죄하였다.
초팔일에 순천(順天) 지경에 드니. 병사 이복남(李福男)이 달아날 준비를 하므로 부하 사졸이 거의 다 흩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부유창(富有倉)에 다다르니. 병사 이복남이가 벌써 영을 내려 불을 질럿 그 많은 군량마조가 재가 되고 말았다. 순신은 이 광경을 보고 분개함을 마지아니하였다.
광양 현감(光陽縣監) 구덕령(具德齡). 나주 판관(羅州判官) 원종의(元宗義)가 창저(倉底)에 있다가 순신이 온다는 말을 듣고 비둘기재(기재)로 달아난 것을 순신이 전령하여 부르니 부득이하여 왔다. 순신은.
『너희가 국록을 먹는 관원이 되어서 나라에 일이 있으면 몸을 잊고 나서는 것이 도리어든. 내가 온다는 말을 듣고 달아나는 것은 무슨 버릇이냐!』
하고 엄책하였다.
구덕령. 원종의는 군법으로 처단될까 두려워 순신의 앞에 엎디어 사죄하고 목숨을 내어 놓고 순신을 따르기로 맹세하였다.
순천 부중에 들어 가니 인적이 적연하다. 중 혜희(惠熙)가 와서 순신에게 뵈오니. 순신은혜희에게 의장첩(義裝帖)을 주어 중을 모집하여 의병을 조직하라 하였다. 순천 성중에는 관사와 창고. 군기가 여전하였다. 병사가 이것을 처치하지 아니하고 달아난 것이었다. 순신은 군기를 내어 부하 각관에게 나눠 주었다.
이리해서 순신이 통제사 교지를 받고 진주 지경을 떠날 때에 겨우 부하라고 아홉 사람 밖에 없던 것이 순천에 이르러서 백명 가량의 무장한 군사를 얻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