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47: 2

아무리 오래 앉았더라도 「피난」과 「청병」이외에 다른 계책이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싸우자던 사라들은 다 어찌 되었노?』

하고 황망한 중에도 왕은 한번 풍자하는 말을 하였다. 병조판서 이 항복(李恒福)은 직책상 가장 구체적인 직언을 아니할 수 없었다.

『방금 지계로 보옵건댄 이 수신으로 다시 통제사를 하는 수밖에 없는 가 하오.』

하고 이 항복은 구체적 대책을 아뢰었다. 경림군(慶林君) 김명원(金命元)이 뒤를 이어.

『병조 판서의 말이 옳은가 하오. 다시 이 순신으로 통제사를 삼는 길 밖에 없는가 하오.』

하고 이 항복의 말에 찬성하는 뜻을 표하였다.

아무도 감히 여기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 속으로 다하는 말도 하기 싫었다. 그 무리들은 잠잠하였다. 이리해서 이 순신은 다시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수군 통제사(忠淸全羅 慶尙三道水軍統制使)가 되었다. 이보다 먼저 이 순신은 초계(草계)에서 김장할 무밭(죄인으로)직무를 갈고 배추씨를 뿌리고 채마에 새와 개를 보고 있을 때에 칠년도 대패전의 소식을 이틀 후인 십 팔일에 들었다.

새벽에 채마를 돌아 보러 나가려 할 때 이덕필(李德弼). 변 홍달(卞弘達) 두 사람이 한산도로부터 와서 순신에게 칠년도 패전하던 이야기며. 원균(元均)이가 달아난 이야기며. 경상 우수사 배설(裵楔)만이 한산도로 돌아 와서 그곳에 있는 군량과 군기와 가옥을 다 불살라 버리고 서쪽으로 달아난 것이며. 전라 우수사 이억기(李億祺). 충청수사 최호(崔瑚)등. 순신이 평소에 신임하던 장수들이 통곡하였다.

이윽고 도원수 권율(權慄)이 고성으로부터 돌아 와서 순신을 불러 보고.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하오? 모두 내 불찰이요.』

하고 심히 슬퍼하였다. 그가 자기의 불찰이란 것이 자기가 김응서의 말을 믿고 순신을 죄가 되게 하였다는 뜻이다. 권율은 순신에게 대하여 면목 없는 표정으로.

『이 일을 어찌하면 좋소?』

하고 순신의 의견을 물었다. 순신은.

『그러면 소인의 연해 지방을 한번 돌아 보고 계책을 하고 선선하게 대답하였다. 권 원수는.

그렇게 하시면 『 작히나 좋겠소. 도무지 내가 대감을 대할 낯이 없소.』

하였다. 원수는 처음으로 순신을 대감이라고 불렀다. 순신은 송대립(宋大立).

유황(柳滉) . 윤 선각(尹先覺). 방 응원(方應元). 현 응진(玄應辰). 임 엽립(林葉立). 이 원룡(李元龍). 이 희남(李喜男) . 홍 우공(洪禹功)등 아홉 사람을 데리고 우선 삼가(三嘉)로 향하였다. 이 하홉 사람은 원수 밑에 있던 군관으로서 원수가 순신의 막하로 준 사람들이었다.

순신은 단성(丹城). 진주(晋州)를 지나 칠월 이십 일일에 곤양(昆陽)에 들러 오후에 노량(露梁)에 다다랐다. 거기는 한산도(閑山島)에서 순신의 부하로 있던 거제 현령(巨濟縣令) 안위(安偉). 영등포 첨사(永登浦簽使) 조계종(趙繼宗) 등 십여 인이 한산도로부터 와서 머물러 있다가 순신을 보고 통곡하고. 거제(巨濟).

고성(固城) 방면으로부터 피난해 오던 백성들도 순신을 보고는 일변 반갑고 일변 감개무량하여 통곡하였다.

경상 수사 배설(裵楔)은 순신을 피하여 보지 안이하고 우후(우후) 이 의득(李의득)이 와 보고 칠천도(漆川島)싸움에 관한 보고를 하였다. 이 의득은 칠천도 패전의 원인은 통제사 원균(元均)이 먼저 도망한 까닭이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이날 밤에 수신은 거제 배 위에서 안위와 밤을 새워 이야기하였다. 그 이야기는 적군의 형세와 원균의 패전한 이유에 관한 것이다.

순신은 비분한 생각에 한잠을 못 이루고 그 때문에 안질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