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뿐 아니라 충청도로 직산(稷山)까지 적의 선봉대가 올라 가고 진천(鎭川). 천안(天安). 전의(全懿)까지 점령되어 임진년에도 점령 아니 되었던 지방까지 다 점령되고 말았다.
원래 임진년에 일본군이 충청도의 바다에 면한 부분과 전라 좌수도를 손에 젛지 못한 것은 이 순신의 수군을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순신이 없고 또 조선의 수군이 전멸하였으니 일본군으로는 도무지 거칠 것도. 꺼릴 것도 없었다. 한산도를 점령한 일본 수군이 전라도의 바다로 들었다. 한산도를 점령한 일본 수군이 전라도의 바다로 들기만하면 경성 이서로 의주까지 한 달이 못하여 점령할 형세였다. 비록 명나라 군사가 있다고 하나 그 정예라고 할 만한 양원(陽元)의 요동군이 남원에서 참패를 하였으니.
그것은 일본군에게는 도무지 무서울 것이 없었다.
한산도와 전라도를 손에 넣은 일본군은 수군의 힘을 모아 전라도 바다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 전라도 바다는 아직 일본 수군이 들어 가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수로를 잘 모르고 또 전라도의 좌수영과 우수영에 얼마나한 병력이 있고 방어 준비가 있는 지도 잘 몰랐다. 이 순신은 반드시 용의 주도하게 무슨 준비를 하여 두었으리라고 일본군이 생각하지 아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정만 분명히 알면. 일본 수군은 파죽의 세로 전라도 바다를 지나 경강과 황.
평양서를 석권할 것이다. 사실상 그러한 경륜을 가지고 있었다. 칠천도 대패전의 경보가 조정에 올라온 것은 싸움이 있는 지 닷새뒤인 칠월 이십 일일이었다.
때마침 왕은 종묘를 수리하고 평시보다 늦게 천신하는 예식을 행할 때이었다.
왕은 친히 이 놀라운 경보를 받고는 실색하여 손에 들었던 술잔을 떨어뜨렸다.
좌우 제신들도 모두 낯이 흙빛이 되었다.
이 순신이 통제사로 있는 동안 수군이란 것을 그리 중요하게 보지 아니하였으나. 그 수군이 전멸하였다는 말을 들을 때에는 왕이나 모든 대관들의 생각에는 직각적으로 일본 병선이 경강으로 들이닫는 모양이 보였다. 그들은 전신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그 무리들에게 (다라고는 못하겠지마는) 국가나 인민을 생각하고 하는 근심은 바라지 못하겠마지는. 가장 그 무리의 가슴을 찌르는 것은 자기네의 영화와 사랑하는 가족의 일이었다. 그들의 머리에 「또 피난을 가야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약속한 듯이 일제히 돌았다.
왕은 환궁하는 길로 비변사(備邊司) 제신을 불러 대책을 물었다. 그들은 다 이 순신을 탄핵하고 원균을 거천 하던 무리들일뿐더러. 무슨 대책이 있었을 리가 없다. 그들의 능사는 오직 저는 꼼짝 아니하고 가만히 있다가 남이 무슨 일을 할 때에 주둥이를 놀러 탄핵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왕의 물음을 대관들은 잠자하였다. 오직 벌벌 떨뿐이었다. 왕이 성낼 것이 무서워서. 일본군이 다시 서울을 점령할 것이 무서워서.
『또 대가가 평양으로 가시는 수밖에 없을까 하오.』
하고 어떤 원로가 피난하기를 청하였다.
『상국(上國)에 시급히 구원을 청하는 수밖에 없을까하오.』
하고 또한 대시 이 아뢰었다. 모두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이런 말을 먼저 내는 것도 그 무리중에서는 가장 용기 있는 자였다. 다른 무리들은 속으로 생각은 할지언정 저는 말할 용기가 없고 남이 말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럴 뿐더러. 남이 먼저 말을 하더라도 솔선해서 찬성할 용기들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