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43: 1

일본군 선봉대가 온 것을 보고 양원(楊元)과 그 부하 명병들은 모두 무서운 생각이 났다. 그들은 남원에 들어온 후도 전라도 각지에서 소와 돼지를 가져다가 날마다 배껏 먹고 취하고 또 양가 여자들을 붙들어다가 진중에두고 희롱하였다.

아무리 미미한 졸병이라도 조선 여자를 한둘씩 희롱하지 아니한 자는 없었다.

남원부내에는 조선 백성들은 다 그 처 가족을 산을 피난 보내고 늙은 부녀들만 남아 있었다. 술 취한 명병은 주야를 불문하고 문을 차고 민가에 들어 와서는 손으로 음란한 시늉을 하면서 여자를 내어 놓으라고 주인을 때렸다. 어린 아이.

젊은 남자까지도 옷을 벗기고 음란한 짓을 하였다. 그래도 백성들은 감히 반항을 못하였다.

이렇게 행악을 하고 향락에만 빠졌던 명병들은 일본군이 온다는 말을 듣고 다들 겁을 집어 먹었다. 남원 성주에 있는 조선 장수로는 전라 병사(全羅兵使)이복남(李福男). 조방장(助防將) 김경로(金敬老). 광양 현감(光陽縣監) 이 춘원(李春元) 등이 있었다. 병사 이복남이 양원의 부름을 받고도 오기를 싫어하다가 하도 여러 번 부르매 부득이하여 수백의 군사를 끌고 왔다.

이 복남이가 오기를 싫어한 것은 싸움을 무서워함보다도 명병을 싫어한 까닭이었다. 임진 이래로 전라도 백성들은 조정에 있능 대관들과 명병에 대하여 심각하게 불신임하는 감정을 가졌었다. 거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순변사 이 일(李鎰) 같은 자격 없는 장수에게 군사를 주어 상중의 대패를 하여 첫 번 큰 수치를 주었다는 것. 둘째는. 서울을 지키지 나이하고 조정이 의주로 달아났다는 것. 셋째는 조정에 있는 대관이란 작자들이 모두 당파 싸움만 하하나도 사람 같은 것이 없었다는 것. 넷째는. 행주 싸움에 이긴 것이 전라도 군사연마는 논공 행상할 때에는 뒷줄에 숨어서 목숨을 아끼던 경관에게만 중하고 승장 처영(處英) 이하로 시골 장졸에게는 박하였을 뿐 아니하 거의 무시하였다는 것. 마지막으로. 국가의 간성이요 전라도의 부모라고 할 만한 이 순신을 모함하였다는 것 등이었다. 이것으로 전라도 백성의 조정 대관들에게 대한 원망을 샀다.

이 원망은 마침내 충청. 전라. 양도의 혁명 운동으로 화하여 폭발하였다. 이제 그 대강을 들면.

감오년에 홍산(鴻山)사람 송유진(宋儒眞)이. 「 」라는 격문을 돌려 혁명당을 모의하였다. 그들의 뜻은 「왕이 악함을 고치지 아니하고. 집권 계급이 당파 싸움만 하여 백성만 못 살게 부려 먹고 관리들이 비록 백이 숙제의 뜻에 부끄럽다 하더라도 탕과 무왕 모양으로 이 악한 왕도 그 밑에 있는 대관놈들을 응징하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실패하여 수령 송유진과 그 동지 오윤종(吳允宗). 김천수(金千壽). 이 춘복(李春福). 김언상(金彦祥). 송만복(宋萬福). 이 추(李秋). 김영(김영)은 다 잡혀서 목을 잘리고. 나주에 전주에 잡혀 간 이 산겸(李山謙)도 사형을 당하고 . 송유진의 심복이요 도지로 있다가 관에 밀고한 홍우(洪瑀). 홍 각(洪慤) 두 사람은 다상에 올랐다.

같은 해에 남원에는 김희(金希). 고 파(高波)등이 동지를 모아 난을 일으켰다.

도원수 권율이 그때 전라병사로 있던 김응서(金應瑞)로 하여금 치게 하였으나 혁명군에게 참패를 당하고. 다음에 상주 목사 정기룡(鄭起龍)으로 하여금 고파의 군사를 치게 하였으나 도리어 관군이 혁명군에 가담하여 또 참패를 당하였다. 이리해서 남원 운봉을 중심으로 한 칠팔읍은 전혀 혁명군 손에 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