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42: 5

체찰사 이원익(李元翼). 도 원수 권율(權慄)이 다산성으로 들어가 숨고 오직 의병장 곽재우(郭再祐)가 창녕 화왕산성(昌寧火王山城)을 지켰으나 너무 궁벽하여 적병에게 함락은 아니 되었지마는. 적병을 막지는 못하고 그를 통과시켰다.

이때에 가등청정은 대구(大邱)를 지내어 질풍같이 전라도의 남원(南原)을 향하고 몰아 왔다. 그 길에 경상. 전라. 두 도의 접경언 요해지가 안음현(安陰縣)의 황석 산성(黃石山城)이었다.

안음 현감 곽준(郭焌)은 전 함양 군수 조종도(趙宗道)와 함께 죽기로써 황석 산성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군사와 가족을 모두 황석 산성으로 옮기었다. 옮기는 날에 곽준과 조종도는 군사들과 따르는 백성들에게 향하여 죽기로써 지키기를 맹세하고 군사들과 백성들도 그리하였다.

조종도는.

나는 돵하는 놈들과 함께 『 더럽게 죽지 아니하련다. 나는 나라를 위해서 싸워 죽으련다.』

하고 피난하기를 권하는 친구들을 향하여 말하였고. 가족을 데리고 곽준을 따라 황석 산서에 들어오는 날. 「 」이라는 글을 지었다. 이때에 전 김해 부사 백 사림(白士林)이 우대로 도망을 하는 길에 황석 산성에 들린 것을 곽준과 조종도는 그의 벼슬이 높은 것과. 또 무관인 것을 생각하고 만류하여 주장을 삼았다.

군사들도 일개 현감인 곽준보다는 부사 백 사림을 더욱 존경하고 믿었다.

마침내 팔월 초생에 적운이 황석 산성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대장인 백 사림은 어느 틈에 도망하였는지 없어지고 말았다. 백 사림은 어느 틈에 도망하였는지 없어지고 말았다. 백 사림이 달아났단 말을 듣고 군사들은 거의 다 흩어져서 하루가 다 못하여 황석 산성은 함락을 당하고 말았다. 곽준(郭준)은 적의 항복 권고를 물리치고 끝까지 싸워 그 아들 형제 이상(李祥). 이후(履厚)와 함께 적의 칼에 죽고. 곽준의 사위 유 문호(柳文虎)는 적에게 사로잡혀 가고. 문호의 아내인 준의 딸은. 「아버지가 죽어도 내가 죽지 아니한 것은 남편이 있기 때문 이어니와. 남편마저 잡히니 내 어찌 살랴」하고 붙드는 시비에게 말하고 목을 매어 죽고. 조종도(趙宗道)도 그가 산성에 들어 갈 때에 (.

.」이라고 한 것같이. 장순(張巡) . 허원(許遠)의 본을 받아 성중에서 싸워 죽었다.

이때에 남원에서 명장 양원(楊元)이 성을 높이 쌓고 성 둘레에 늪을 파고 성위에 대포와 소포를 걸고 요동군(療東軍) 삼천명과 조선군 이천을 거느리고 지키고 있었고. 전주(全州)에는 명장 진우충(陳愚衷)이 있었다.이 때문에 일본군은 남원의 명군을 깨뜨려 일거에 전라도를 손에 넣으려 한 것이었다.

일본군을 팔월 일일에 병을 발하여 세 길로 남원을 향하였으니. 일대는 평 수가(平秀家 ==字 ( )가 대장이요.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선봉이 되어 군사 오만을 거느리고 경상도로부터 운봉(雲峰)을 지나 남원으로 향하였고. 일대는 모리 수원(毛利秀元)이 대장이 되고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선봉이 되어 군사 오만을 거느리고 경주(慶州)를 떠나 밀양(密陽). 대구(大邱)를 지나 전의관(全義館)을 거쳐 남원으로 향하였다.

또 일대는 소조천 수추(小早川秀秋)가 군사 팔천을 거느리고 밀양.

현풍(玄風)지나 충청도로 향하여 구원군이 올 길을 끊으려 하였다.

팔월 십 삼일에 일본군 선봉대가 남원성 밑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