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을 부지른 늙은 군사는 돌멩이를 들어 팔매치기를 시작하였다.
따라 오던 적병들은 조선 군사의 그림자가 없고 늙은 군사 하나가 태연히 서서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고 더구나 분명이 화살은 날아 와서 사람을 칠팔인아나 죽였는데 혼자 선 늙은 군사가 활을 아니가진 것을 보고 멈칫 서서 따라 오지를 아니하였다. 혹시나 이곳에 대부대의 복병이나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모양이었다. 늙은 군사는 연해 돌팔매질을 하였다. 이 돌 팰매가 무서운 것은 아니겠지마는 적군은 웬일인지 오던 길로 물러가고 말았다.
늙은 군사는 고개턱까지 따라 가며 돌을 던졌으나 적군은 그것은 본 체도 아니 하고 다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알았다.
늙은 군사가 원균이 섰던 자리에 왔을 때에는 원균은 간 곳이 없었다. 거기 남은 것은 군복과 전립과 칼과 병부뿐이었다. 원균은 늙은 군사가 돌팔매질을 하여 적을 막는 동안에 군복을 벗어 버리고 달아난 것이었다.
아무도 원균이 간 곳을 아는 이가 없다. 혹은 물에 빠져 죽었으리라고 하고.
혹은 거지 모양으로 집에 돌아와 뒷방에 숨었다가 칠천도 싸움에 놀란 것이 병이 도어서 죽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늙은 군사는 원균의 옷과 병부를 싸가지고 고성(固城)에 와 있던 도원수 권율(權慄)에 와 있던 도원수 권율(權慄)에게 가서 이날 전황을 말하고 원균은 끝까지 싸우다가 죽었다고 고하였다.
이날에 맨 처음 배를 버리고 달아난 군사들은 일본군의 복병을 만나 거의 다 전멸하고 말았다.
소서행장(小西行長)은 요시라(要時羅)를 시켜. 예전 이순신을 꾀어 내려고 하던 것과 같은 솜씨로 경상 우병사 김응서(金應瑞)를 달래어 원균(元均)을 부산 앞바다에 끌어 내어 일변 군사를 피곤케 하고 조정과 군사들에게 대한 원균의 위신을 떨어뜨리게 하고. 일변 조선 주사의 실력(병선). 수효. 전술 등을 알아 본 뒤에 일거에 수륙 협공으로 원균의 주사를 무찌르려 하여 모두 그 계교대로 된 것이었다.
칠천도에서 승전한 일본 수군은 임진년 이순신의 주사에게 패한 원수를 갚는 것을 기뻐하여 만만세를 불렀다. 이때 칠천도에서 원균의 주사를 전멸시킨 일본 장수들은 다 한두 번씩 이 순신에게 패함을 당한 등당고호(謄當高琥). 협판안치(脇坂安治). 도진 충항(島進忠巷)등이었다.
칠천도에서 조선의 수군을 전멸한 일본군은 다시 꺼릴 것이 없었다. 그들은 수로로. 육로로 평생에 탐내이던 전라도로 물밀 듯 질풍같이 몰려 들었다. 가등청정(加藤淸正)은 서생포(西生浦)를 떠나 육지로 전라도 남원(南原)으로 향하고.
소서행장(小西行長)은 수로로 숱천(順天)에 하륙하여 역시 남원을 향하였다.
대개 남원에는 명나라 총병 양원(揚元)의 본진이 있던 까닭이었다.
이때에 고성(固城)에 있던 도원수 권율(權慄)은 늙은 군사로부터 칠천도 대패전의 전말을 듣고. 대사가 다 그릇되었다 하여 사천(泗川)을 지나 진주(晋州)도 버리고 초계(草溪)도 버리고 도내 산성(道內山城)으로 달아나 버리고 말았고. 체찰사 이원익(李元翼)도 칠천도 패보를 듣고는 산서에 들어 가 숨어 버렸다. 오직 의병장 곽재우(郭再祐)만이 창녕 화왕산성(昌寧火王山城)을 죽기로써 지켰으나 마침내 일본군은 그 앞으로 지나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