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이 뒷등에 올라가고개 마루턱 늙은 소나무 밑에 앉아 가쁜 숨을 쉬고 옷소매로 이마와 목의 땀을 씻을 때에는 벌써 햇발이 올려 쏘았다. 그러나 포구 안에서는 아직도 아우성 소리가 울려 오고 총포의 화약 불빛이 번쩍거렸다 전라 우사사 이억기(李億祺)가 최후까지 남아 싸우는 것이었다.
이때에는 물도 많이 밀려 와 배들이 둥실둥실 떠돌았으나. 그러나 그때에는 배들은 혹은 싸워 죽고 혹은 달아나서 주인 없는 빈 배였었다.
이억기의 부하도 이억기를 따라 끝까지 싸웠다. 그러나 대세는 기울어져서 이억기의 배까지도 적선의 포위를 받아 장졸이 거의 다 싸워 죽고 말았다.
그래도 이억기만은 칼을 빼어 들고 뱃머리에서 혼자 싸웠으나 마침내 적의 조총에 맞아 바다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때에 적군의 일대는 벌써 원균이 탔던 배를 점령하여 수색한 결과 원균이 없는 것을 보고 곧 하류하여 원균을 따랐다.
고개 소나무 밑에서 십수명 부하를 데리고 쉬던 원균은 고개를 밑에 적군의 다다른 것을 보았다. 그의 곁에 있던 부하들(서울서 온 군관들)은.
『사또. 어서 달아납시다.』
하고 먼저 달아나 버렸다.
원균도 일어나 그 뒤를 따르려 하였으나 다리가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 늙은 군사 하나만이 아까 배에서 나올 때 모양으로 원균을 부축하였을 뿐이었다.
『나를 좀 업어라!』
하고 원균은 늙은 군사에게 빌었다. 늙은 군사는 활과 전통을 원균에게 들리고 원균을 업었다. 그러나 그 비둔한 몸을 업고는 얼마를 달아날 수가 없었다. 적군은 점점 가까이 왔다.
늙은 군사는.
『소인이 늙어서 기운이 없소.』
하고 원균을 길가에 내려 놓으려 한나. 원균은 아니 내리겠다고 엇가자 졸랐다. 늙은 군사는 보채는 어린아이 뿌리치듯 원균을 떼어놓고.
『사또. 보시오. 적이 벌써 저기 보이오. 달아나더라도 죽기는 일반이니 여기서 한번 사내답게 싸우다가 죽읍시다.』
하고 마치 수하 사람을 타이르듯이 개유하였다. 그리고 늙은 군사는 원균에게 군복을 입히고(원균이 벗어 놓고 달아난 것을 늙은 군사가 주워서 허리에 차고 왔던 것이다) 원균의 손에서 활과 전통을 빼앗아 적군과 응전할 준비를 하였다.
『사또. 이왕 싸워 죽더라도 체면은 보셔야 하오.』
하고. 원균의 옷깃을 바로 잡고 전립패영을 단단히 매어 주었다.
원균은 마치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눈만 멀뚱멀뚱하고 늙은 군사가 하라는 대로 하고 있었다.
『인제 칼을 빼어 드시오.』
하고 늙은 군사가 최후의 명령을 원균에게 하고는. 전통에서 살을 빼어 활에 메워 들고 나무 뒤에 몸을 숨겼다.
아 하는 소리가 들리고 「!」 적병이 활한 바탕 밖에 다다른 것을 볼 때에 늙은 군사는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살은 푸르륵 소리를 내고 날았다. 앞선 군병 하나가 가슴에 손을 대이고 쓰러졌다.
늙은 군사는 또 살을 메워 쏘았다. 나무 뒤에 숨어서 내려다 보고 겨누고 쏘는 살은 한 방도 헛 맞히지 아니하였다. 연하여 사오인이 쓰러지매 적은 잠간 주저하더니. 군사를 헤치어 산병선을 펴 가지고 올라 왔다.
늙은 군사는 마지막 화살을 시위에 대이며 원균을 돌아 보고.
『사또. 인제는 화살도 다하였소. 이것도 전등 통제사 대감께 배운 재주요.
인제는 사또가 칼로 싸워 한 놈이라도 베이시오.』
하고 마지막 살을 날리고 활을 분질러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