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34: 35

이튿날 아침 이 순신이 구례를 떠나려 할 때에 체찰사는 군관 이 지각을 보내어 안부를(李知覺) 묻고 또 양식하라고 쌀 두 섬을 보내며 경상 우도 연해의 지도를 하나 그려 보내라고 하였다. 순신도 지도를 가진 것이 없으나 그려 보내었다.

그러다가 그날은 비가 와서 못 떠나고. 이튿날도 비가 그치지 아니하여 못 떠나고. 또 그 이튿날인 이십 육일에도 비가 종일 퍼부었으나 이날은 비를 무릅쓰고 길을 떠났다. 사량 만호(蛇梁萬戶)변 익성(邊翼星)이순신을 보려고 배를 타고 찾아 왔으나 길 떠날 때라 잠깐 상면하고 말도 못하였다.

석주관(石柱關)에 이르니 비가 퍼붓고 길이 미끄러워서 일행이 넘어지고 자빠지기를 여러 번 하였다. 그 아들 열(열) 은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순신을 부축하였다. 저물어서 악양(岳陽) 이 정란(李廷鸞)의 집에 당더하니 문을 닫고 일행을 거절하였다. 김덕령(金德齡)의 아우 덕린(德麟)이가 먼저 들었다는 핑계였다. 열이 주인을 불러 강청하여 겨우 방 하나를 얻어 들었다. 일행의 행장은 물에 넣었던 것같이 젖었다.

이십 칠일에 팟퇴(팟퇴). 이십 팔구일에 하동(河東)에 들려 유월 초일일에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청주역(淸水繹)을 지나 저물게 단성(丹城)땅 박 호원(朴好元)이라는 사람의 머슴의 집에 드니 주인은 이 순신이라는 말을 듣고 흔연히 맞아 안방을 내어 주었으나 방은 좁고 물 것은 많아서 한잠을 못 이루고 밤을 새웠다.

다시 사흘을 걸어 유월 초오일에 초계(초계)에 이르러 어떤 주막에 들었으나 이튿날 그 주인이 과부란 말을 듣고 곧 다른 집으로 떠났다.

초팔일에도원수 권율이 남원(南原)으로부터 돌아 왔다. 그는 명장 양호(楊鎬)를 맞으러 갔던 것이다. 가등청정(加藤淸正)이 다시 조선을 침범한다 하여 조정에서는 다시 명나라에 청병하여 양호라는 사람을 경략사(經락使)로 보낸 것이었다.

순신이 원수를 찾으니 원수는 순신을 반갑게 맞았다. 시국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한 끝에 권 원수는 박성(朴惺)의 상장초(上章草)를 순신에게 보였다.

박성의 상정에는 권 원수의 처사가 너무 소탈한 것을 많이 말하였으므로 원수는 스스로 편안치 못하여 체찰사 이원익에게 상서하였다는 말을 하였다.

순신은 권 율의 진에서 사처에 돌아 와서 마음이 불평하여 저녁밥을 폐하였다.

십 일일에 순신의 아들 열이 곽란을 일으켜 밤새도록 고통 하였다. 순신은 손소 아들의 손발을 더운 물로 씻고 약을 달이고 하느라고 밤을 새웠다.

십 이일에 행주싸움에 이름낸 승장 처영(處英)이 부채 한 자루와 짚신 한 죽을 가지고 와서 순신을. 보았다. 순신은 다른 물건으로써 그것을 갚았다.

이날 부산에 있는 적병이 창원(昌原)으로 향하고. 서생포(西生浦)에 있는 적병은 경주(經州)를 치려 한다는 고목이 왔다. 하여 원수는 중군장에게 군사를 주어 전선에 내보내었다.

십 칠일에 순신이 원수를 찾았더니. 이날 원수는 순신을 향하여 통제사 원균(元均)이 마음이 바르지 못하여 항산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통분히 여긴다 하고. 그 예로 비변사(備邊司)의 계를 보였다. 그 내영은 이러하였다.

「원균(元均)의 장계 내에 수륙으로 함께 나아가먼저 안골포(安骨浦)의 적을 친후에야 주사가 부산(釜山)에 들어 갈 것이니 먼저 육군을 보내어 안골포의 적을 치게 하소서.」권 원수는 이에 대한 장계에 이러한 말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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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사 원균이 나아가 싸우기를 원치 아니하오며. 아직 안골포를 먼저 쳐야 한다는 것으로 핑계를 삼사오며. 주사제장이 많이 의심을 두건마는 원균은 안에만 있고 밖에 나오지 아니하오며. 한번도 제장으로 더불어 의논하는 일이 없사오니 일을 그릇할 것을 알리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