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초이레. 정혜사(定慧寺) 중 덕수(德修)가 와서 순신에게 짚신 한 켤레를 바치는 것을.
『내가 그것을 받을 까닭이 있나!』
하여 거절하였으나 늙은 중은.
『소승이 가나하여 대감께 바칠 것이 있으오니까. 손수 삼은 짚신 한 켤레라도 정성으로 드리는 것을 아니 받아주시면 소승이 수백리 길을 대가을 뵈오려 올라 온 정성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 오니까.』
하여 재삼 간청하므로 순신은 노승 덕수의 정성에 감격하여 값을 주고 그 짚신을 받았다. 정혜사는 충청도 예산(醴山)에 있는 절이다. 이 중은 이 순신이 아산에 왔다는 말을 듣고 그리로 찾아 왔다가 순신이 떠났다 하므로 뒤를 따라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순신이 자기가 삼은 짚신을 받아 발에 신어 보는 것을 보고 기뻐 눈물을 흘리며 합장하고.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마하살.』
을 수없이 부르고 물러갔다. 이튿날인 팔일에는 수인(守仁)이라는 늙은 중이 두우(杜宇)라는 젊은 중을 데리고 찾아 와서 순신을 보고 절하며.
『소승은 대감 같으신 나라의 기둥 되는 양반께 드릴 것이 없사와 소승이 데리고 있던 두우를 데리고 왔소. 이애는 밥을 잘 짓고 또 소찬을 정결하게 만들 줄 아오니 대감 곁에 두시고 조석 시봉을 하게 하시오.』
하였다.
순신이 산중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소찬 만드는 중을 데려 온 것이었다.
순신은 여러 번 사양하였으나 듣지 아니하고 수인은 두우를 떼어 두고 가 버렸다.
이날 통제사 원균의 조상하는 편지가 순신에게 왔다. 이것은 도원수 권율이 명령한 것이었다.
삼일에 큰 비가 내렸다 주인이 . 햇 보리밥을 지어 순신에게 드렸다. 십 일일에 체찰사(體察使) 이 원익(李元翼)의 군관 김성(金惺) 이 순천에 왔다. 체찰사도 일간 순천에 오리라는 말을 전하였다. 체찰사 이원익은 이 순신을 믿고 아끼는 사람이었다. 체찰사 부사(副使)가 순신을 보기를 청하였으나 순신이 몸이 불편하여 보지 아니하였다.
이튿날 순신은 이 원룡(李元龍)을 보내어 부사에게 문안하였더니 부사는 김덕린(金德麟)을 보내어 부사에게 문안하였다. 김덕린은 김덕령(金悳齡)의 아우다.
그날 저녁에 순신은 향사 당에 부사를 찾아 밤이 삼경이 되도록 이야기하였다.
부사는 상사나리 상공이 자기에게 하는 편지에 일을 많이 한탄하였다고 하였다.
십 사일에 순신은 순천부를 지나 솔 퇴(솔퇴)를 넘어 운봉(雲蜂)을 거쳐 찬수강(粲水江)을 건너 저물게 구례(求禮)에 다다랐다. 체찰사 이 상공이 진주(晋州)로 가는 길에 일간 구례에 온다는 말을 듣고 순신은 체찰사를 만나기 위하여 구례에 머물렀다.
십구일에야 체찰사가 곡성(谷城)으로부터 구례에 들어온다 하므로. 순신은 죄인으로서 성중에 있는 것이 미안하다 하여 동문 밖 장 세호(張世豪)의 집으로 옮고 그 뜻을 현감에게 고하였더니 현감이 곧 찾아 와서 보았다.
그날 저녁때에 체찰사가 입성하였다. 이튿날인 이십일에 체찰사 이 원익(李元翼)은 순신이 이 고을에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군관 이 지각(李知覺)을 보내어 문안하고 얼마 있다가 또 군관을 보내어 조상하였다.
『당고하였단 말을 인제야 듣고 놀랐소. 슬픈 말씀은 물을 말이 없소.』
하고 전갈하였다. 그리고 저녁에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해만지거든 곧 가 뵙는다 여쭈오.』
하고 순신은 군관에게 말하였다.
해가 진 뒤에 순신은 동헌에 체찰사를 찾았다. 체찰사는 상중인 순신에게 경의를 하여 체찰사는 순신을 대해 국사를 근심하는 의논을 하였다. 순신은 자기가 죄인이므로 다만 듣고만 앉아 있었다.
이십 삼일에 이 체찰사는 다시 사람을 보내어 순신을 불렀다. 이날 원익은 순신을 향하여 비분한 어조로 국사가 날로 그릇됨을 개탄하고 다만 죽는 날을 기다릴 뿐이라고까지 말하고 양인이 서로 대하여 눈물을 흘렸다. 순신은 이튿날은 초경도 원수진으로 간다는 말을 고하여 작별 인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