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 이광수

Chapter 132: 33

이십 일일에 여산(廬山) 관노의 집에 숙소를 정하였다. 밤에 순신은 심사가 불평하여 홀로 일어나 앉아 국사와 어머니를 생각하고 울었다.

이십 이일에 삼례(參禮) 역리의 집에서 자고 저녁때에 전주(全州) 감영에 들어가 남문 밖 이의신(李義臣)의 집에 들었다. 판관 박근(判官朴勤)이 와 보고 부윤도 후대하였다.

이십 삼일에 일찍 떠나 오원(烏原) 파밭에서 아침을 먹고 저녁에 일실현(任實縣)에 이르러 의례로 현감을 만났다. 현감은 홍언순(洪彦純)이었다.

이십 사일. 맑다. 일찍 떠나 남원(南原)에서 십리 되는 이 희경(李喜慶)의 집에서 잤다.

이십 오일. 비가 올 듯하다. 아침을 먹고 길을 떠나 운봉(雲峰)박용(朴龍)의 집에 드니 비가 크게 내려 머리를 내어 밀 수가 없다. 들은즉 원수는 이미 순천(順川)으로 향하였다고 한다. 곧 사람을 금부 관원의 하처로 보내고 머물기로 하였다. 원은 병이라 하여 나오지 아니하였다.

이십 육일. 흐리다. 아침을 먹고 길을 떠나 구례(求禮)현손인 필(손인필)의 집에 들었다. 원이 급히 나와 보고 대단히 은근하게 대접하였다. 금부 관원도 와 보았다.

이십 칠일에 순천에 도달하였다 그날 일기를 그대로 적자 -.

(二十七日......)

(이십 칠일. 맑다. 일찍 떠나 순천 송원에 다다르니 이득종. 정선이 와서 기다린다. 저녁에 정원명의 집에 이르니 원수가 내가 온 것을 알고 군 관권 승경을 보내어 조상하고 또 문안하고 위로하는 말이 심히 간절하다. 저녁에 원이 와 보았다. 정 사준도와서원공(원균을 가리킨 말 -작자)이 패망 전도하는 모양을 많이 말하였다. )도원수 권율은 통제사로 내려 온 뒤의 원균의 소위를 보고 벌써 불안한 생각을 가지고 이순신의 아까움을 깨달은 것이었다.

( )

(이십 팔일. 맑다. 도원수가 또 군관 승경을 보내어 문후하고. 또 상중에 몸이 곤할 터이니 기운이 소복되거든 나오라고 전하였다.) 그래도 도원수 권율은 이 순신을 알아 대단히 친절하게 대우한 것이었다.

( )

(오월 초이일 저녁에 맑다. 원수는 보성 가는 길에 병사는 본영에 가는 길에. 순사는 담양에 가는 길에 와 보고 갔다. 부사도 와 보았다. 진홍국이 좌수영으로부터 와서 눈물을 흘리며 원균의 일을 말하였다. 이 형복. 신 홍수도 왔다. 남원 관노 끝 돌이가 아산으로부터 와서 영연이 평안하시다는 말을 전하였다. 홀로 빈 집에 앉았으니 비통함을 견디지 못 못하였다.)

( )

(초삼일. 맑다. 이 기남이 찾아 왔다. 울(순신의 아들-작자)의 이름을 열자로 고쳤다. 열은 움이 비로소 나서 초목이 성장한다는 뜻이니 대단히 좋다.)

( )

(초사일 비 이날은 어머니 생신이다. 슬픔을 어찌 견디랴. 닭 울 때에 일어나 울 따름이었다. 오후에 큰 비가 왔다. 정 사준이 오고 이 수원도 왔다.)

( )

(초 오일. 맑다. 아침에 부사가 와 보다. 저녁에 충청 우후 원 유남이 한산도로부터 와서 원공의 패망한 일을 많이 말하고. 또 말하기를 진중 장졸이 이반하여 형세가 장차 어찌될는지 모른다고 하였다.)